[기타][성령강림절] 사회와 문화 속에서 활동하시는 성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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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절이 다가왔습니다. 교회와 성도의 신앙을 새롭게 하시고 모든 피조물과 함께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기억하는 절기입니다. 이를 맞이하여, 이 글에서는 성령과 문화의 관계를 다루려 합니다. 성령의 역사가 교회를 넘어 사회와 문화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말하는 신학자들의 연구를 살펴볼 것입니다.


성령의 시대의 성령론과 오늘날의 ‘우주적 성령론’

교회에게 20세기는 성령의 시대라고 해도 좋을 만큼, 우리는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성령의 역사를 경험했고 또 보았습니다. 우리나라도 평양대부흥운동을 시작으로 거대한 성령의 역사를 경험했고, 남미와 아프리카 등 세계 각지에서 오순절 계통의 교회들이 급격한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성령에 관한 신학적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주된 성령론이 교회의 문턱 안에 있거나 교회와의 연결선 상에서만 주로 논의되었다는 것입니다. 성도 개인의 삶, 교회 내적인 교제와 연합, 선교적 상황 등과 관련된 성령의 역사가 우리의 주된 관심사였고, 그동안의 성령론이 다루는내용이었습니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이러한 성령론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흔히 ‘우주적 성령론’이라고 부르는 이것은 성령의 역사를 교회와의 연결성 안에서만 생각하지 않고 모든 창조세계로 넓히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성령은 성도와 교회에 내주하시며 역사하시지만, 이뿐 아니라 자연과 생명을 보존하고 회복하는 일에도 함께하시고, 나아가 인간의 사회와 문화 속에서도 선을 이루어가신다는 것입니다. 이에 관하여 윤철호는 오늘날의 성령론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1) 삼위일체의 한 위격으로서, 성령의 개별성과 동등성 강조

2) 생명의 영으로서의 성령
“오늘날 세계는 가난, 질병, 테러, 자연파괴, 생태계의 위기, 핵 등으로 인한 인간과 자연의 모든 생명이 위협을 당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성령은 생명을 살리고 회복시키고 완성시키는 영으로 이해된다.”

3) 개인적, 교회적 범주를 넘어서 사회 정치적, 범세계적, 우주적 차원의 성령
“자유, 생명, 정의, 평화, 그리고 창조세계의 보전과 회복을 위한 성령의 사역이 강조되며, 이와 아울러 이러한 성령의 사역에 대한 교회와 기독교인의 실천적 참여가 중요시된다.”

4)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 완성을 위한 성령의 역할 강조

5) 교회 밖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위한 신학적 근거로서의 성령

- 윤철호, <기독교 신학 개론> (대한기독교서회, 2015), 302-304.


이처럼 성령론에 관한 연구가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지만, 그 핵심에는 온 창조세계에서의 성령의 우주적 활동과 사회적‧지구적 문제에 관심하며 그 가운데 일하시는 성령의 사역이 있습니다.

이러한 논의를 적극적으로 펼친 사람 중에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사람은 독일의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Jürgen Moltmann)입니다. 몰트만은 여러 정치‧사회적 억압의 상황들과 기후위기의 문제 앞에서, 이에 응답할 수 있는 신학적 논의를 전개했습니다. 이를 위해 그는 종말론적 희망의 강조, 삼위일체론에 대한 연구,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삶 등 폭넓은 연구를 진행했고, 여기에는 교회의 울타리를 넘어서 온 창조세계 속에 역사하시는 성령에 관한 연구도 들어있습니다.

몰트만은 특히 성령을 ‘생명의 영’으로 말합니다. 모든 생명 파괴의 현상에 반대하고 생명 살림과 회복의 성령론을 전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따르는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삶은 생명 파괴에 저항하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을 사명으로 합니다.1 또한 이를 위해, 사회 속 다양한 운동 및 단체들과도 연대하며 성령의 역사를 풍성히 하기 위해 힘쓰게 됩니다.2

 


‘일반은총’과 우주적 성령론

다니엘 밀리오리는 이러한 우주적 성령론을 보다 쉽게 설명합니다.

성령의 사역을 다루는 기독교 신학은 자신의 범위를 교회의 삶과 증언으로 한정하지 말아야 한다. 성령의 사역에는 우주적 차원이 있다. 만약 성령이 “임의로 부는” 바람과 같다면(요3:8), 교회의 담장 너머에서 활동하는 성령의 사역을 기대하고 그것에 열려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영은 자연계 안에, 쉼을 모르는 인간의 마음 안에, 인간관계의 정의와 조화를 추구하는 활동 속에,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 안에, 창의적인 예술가의 솜씨 속에, 세계 종교들의 역사 속에서 현존하고 일한다.

- 다니엘 L. 밀리오리, <기독교 조직신학 개론> (새물결플러스, 2012), 390-391.

 

사실 사회적 구조, 지식, 예술, 문화 등 교회 밖에서의 하나님의 역사가 생소한 것은 아니며, 우리는 이미 ‘일반은총’이라는 주제를 오랫동안 배워왔습니다. 이는 칼뱅의 신학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것으로, 칼뱅에게서 그리스도를 경험하는 특별은총 또는 특별계시는 교회와 직접적으로 연결되고, 교회를 넘어 사회 속에서의 하나님의 역사는 일반은총과 연결됩니다. 타락 이후에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인간이지만, 그럼에도 모든 인간에게 남겨두신 은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는 사회와 문화를 유지하고 형성하며, 불완전하지만 선을 이루어갈 수 있습니다. “모든 이러한 은혜들은 하나님의 영의 은사들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좋게 보이는 자들에게 이러한 은사들을 인류의 공통적 선으로서 분배하신다.”3

칼뱅은 이러한 인간의 사회적 활동의 기초에 성령의 역사를 둡니다. 성령의 역사로 인해 과학, 의학, 예술, 기술 등 인간 문명이 형성되고, 이러한 영역의 발전 속에 또는 이러한 것들 속에서 진리가 드러나는 일을 통해 성령은 활동하십니다. 김선권은 결론적으로 칼뱅의 신학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합니다.

칼뱅은 이 세상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무대라고 했다. 구속의 영의 역사는 간과한 채 성령의 우주적, 일반적 역사에 빠져드는 것도 문제지만, 성령의 우주적, 일반적 역사를 부정하고 개인의 구속의 측면에서만 머무는 것도 문제이다. 성령에 대한 이러한 양극단에서의 치우친 이해는 칼뱅에게서 결코 발견되지 않는다. 칼뱅의 성령론은 성령과 우주, 성령과 사람, 성령과 신자, 성령과 교회를 통전적으로 균형 있게 강조한다.

- 김선권, "칼뱅의 성령론," <성령론> (대한기독교서회, 2017), 154-155.


교회 밖에서의 성령의 활동은 공공신학에서도 다뤄진 주제입니다. 창조세계에서의 성령의 활동을 심도 있게 탐구한 공공신학자로 빈센트 바코트를 들 수 있습니다. 그는 아브라함 카이퍼의 공공신학을 연구하면서 성령이 일반 사회와 국가, 문화 속에도 내주할 수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술과 과학, 사회문화적인 영역에서의 성령의 역사도 있고, 신앙과 무관하게 모든 시민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시민적 선 역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에 따르면, 성령의 역사는 명시적으로 구분되기보다는 인간의 평범한 삶 속에, 나아가 “인간의 공통적인 형식들과 나라들과 문화들의 구조 속에”4 숨겨져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성령의 활동은 인간과 함께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그 결과로 우리가 경험하는 사회와 문화는 불완전함을 내포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성령과 인간이 함께하는 문화적 영역의 선한 변화가 불가능하다거나 의미가 없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바코트는 이러한 현실에 낙심하지 말고, 도리어 그리스도인은 사회적 활동에 있어서 겸손함을 유지하고 공적인 활동에서의 우리의 접근방식을 계속적으로 성찰하고 새롭게 할 것을 촉구합니다.5

 


여전히 남아 있는 ‘분별’의 문제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교회를 넘어서 온 창조세계와 문화 가운데 성령이 활동하시지만, 모든 것을 성령의 역사와 동일시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과 모든 생명을 번성케 하고 정의로움을 진전시키는 사회문화적 변화도 있지만, 이와 반대로 억압과 착취, 불의와 악함으로 움직이는 사회문화적 변화도 있습니다. 때로는 이러한 일들이 기독교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여기에는 분명히 ‘분별’이라는 측면도 고려되어야 합니다.

사회와 문화에 대한 기독교적 분별은, 달리 말해 사회현상 및 대중문화를 기독교적으로 읽는 것은 총체적인 신학적 작업과 연결됩니다. 여기에는 우리가 읽어내야 하는 주제와 대상에 따라 여러 신학적‧간학문적 기초와 관점들이 필요하며, 사회적‧문화적 맥락도 충분히 이해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에 대한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더라도, 현실은 다양한 주체들과 다층적인 사회문화적 맥락이 만나는 곳이기에, 간단명료한 결론을 내린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바코트는 분별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모호함”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6

사회와 문화 속에서 성령의 역사를 읽어내려는 모든 이들은 이러한 복잡함과 모호함의 늪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를 증언하고 이를 따르는 것이 교회에게 주어진 중요한 책임이기 때문입니다.7 우리가 가진 신앙적 방향성과 신학적 기초 위에서, 대화가 가능한 겸손한 태도를 가지고 성령의 활동을 계속해서 읽어가고 따라가야 할 것입니다.

 


성령과 함께하는 하나님 나라 일구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라.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려라.”(창1:28)

우리는 이 말씀을 사회 곳곳에서,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뜻을 일구라는 의미로 받아들였고, ‘문화명령’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명령이지만, 인간 홀로 행해야 하는 명령은 아닙니다. 우주적으로 역사하시는 성령은 창조세계의 모든 생명을 지탱하고 계시며, 나아가 인간의 사회와 문화 속에서 선을 이루고자 지금도 활동하고 계십니다.

교회는 이로 인해 다층적인 명령을 부여받게 됩니다. 스스로가 하나님의 나라를 일구어가는 하나님의 기관이 되어야 하고, 나아가 사회와 문화 속에 나타나고 있는 성령의 활동을 분별하며 지지하고 함께해야 합니다. 또한 그러한 일에 참여하는 기관 및 단체들과 연대하고 협력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위에서 일구어가기 위해 온 힘을 다해야 합니다. 교회 혼자서도 잘해야 함은 물론, 사회와 함께하는 법도 철저히 훈련해야 합니다. 성도들의 공동체를 아름답게 세우기 위해 힘쓰는 것과 함께, 성령의 바람을 따라 교회 밖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사역에도 지혜롭게 참여해야 합니다. 또한 성도 개개인의 사회적 삶에서도 성령의 활동을 따라야 하며, 다채로운 대중문화 가운데에서 드러나는 세미한 하나님의 소리를 분별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말로 해봐도 간단한 일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계속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한 번에 다 할 수는 없지만, 시작은 언제나 할 수 있습니다. 먼저는 우리의 신앙적 기초에, 우주적 성령님을 깊이 새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창조세계와 모든 생명과 인간의 모든 활동 가운데 지금도 실제로 활동하시는 성령님을 믿고 기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번 성령강림절기가 교회와 성도의 신앙을 새롭게 하는 것과 함께, 온 창조세계와 문화 가운데 역사하시는 성령을 기억하고 함께 경축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김용준 (문화선교연구원)

미주             

1 김성원, "위르겐 몰트만의 성령론," <성령론> (대한기독교서회, 2017), 300-301.

2 위르겐 몰트만, <생명의 영> (대한기독교서회, 2017), 351-376.

3 Calvin, IRCII. ii. 15, 재인용, 김선권, "칼뱅의 성령론," <성령론>, 150.

4 빈센트 E. 바코트, <아브라함 카이퍼의 공공신학과 성령> (SFC, 2019), 194.

5 위의 책, 179-201.

6 위의 책, 201-211.

7 다니엘 L. 밀리오리, <기독교 조직신학 개론>, 391-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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