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짜 산타를 찾아서 : 성 니콜라우스 그리고 성육신의 사랑 이야기
붉은 옷을 입고, 선물 보따리를 매고, 사슴 썰매를 탄 산타클로스는 성탄절을 상징하는 가장 익숙한 이미지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산타클로스를 기독교와는 무관한 상업주의의 상징으로 여기지만 그 붉은 옷 뒤에는 한 신앙인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3세기 소아시아의 도시 뮈라의 주교였던 성 니콜라우스입니다. 현대 산타클로스의 모델이 된 성 니콜라우스의 삶을 통해, 점점 상업화되어 가는 이 시대의 성탄절을 기다리며, 우리가 진정으로 회복해야 할 성탄의 의미를 다시 돌아보고자 합니다.
나눔의 사람, 성 니콜라우스
성 니콜라우스는 주후 270년경, 오늘날 터키 남부 지중해 연안, 리키아 지방의 파타라에서 부유한 기독교 가정에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전염병으로 부모를 잃은 그는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았지만, 그 재산을 자신을 위해 쓰지 않았습니다. 니콜라우스는 가난한 이들, 고아, 과부, 병자들을 위해 재산 전부를 나누어 주었으며, 거리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며 살았다고 전해집니다.

가난한 세 자매를 위한 금화 자루
성 니콜라우스와 관련된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가난한 세 자매의 이야기입니다. 성 니콜라우스가 목회하던 뮈라의 한 가난한 집에 세 자매가 있었습니다. 자매의 아버지는 막대한 결혼 지참금을 마련할 수 없었기에 사랑하는 딸들을 제대로 결혼시킬 수 없었고, 세 자매는 부잣집에 여종으로 팔려 갈 상황이었습니다. 길을 가다가 열린 창문을 통해 그들의 비참한 사정을 듣게 된 니콜라우스는 교회로 돌아와 금화가 든 자루를 가져와서 밤에 몰래 창문으로 던져 넣었습니다. 자루는 난로 주변에 걸린 양말 속에 떨어졌고 세 자매는 무사히 결혼할 수 있었습니다. 니콜라우스가 던진 자루가 난로 가의 양말에 떨어졌다는 이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가 크리스마스에 양말을 걸어두면 산타클로스가 밤에 몰래 굴뚝으로 들어와 선물을 넣어준다는 이야기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Saint Nicholas Providing Dowries (1435) by Bicci di Lorenzo>
그를 기억하며, 선물을 나누다
성 니콜라우스가 주후 343년경, 7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사람들은 그가 세상을 떠난 12월 6일을 성 니콜라우스 축일로 기념하기 시작했습니다. 중세 이후 유럽, 특히 독일, 네덜란드, 프랑스, 벨기에에서는 이날을 특별하게 기념하면서 12월 5일 밤에 성 니콜라우스가 찾아와 착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고 나쁜 아이들에게는 회초리를 준다는 전통이 생겨났습니다. 아이들은 5일 밤에 신발이나 양말을 창가에 놓아두고 잠자리에 들었고,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그 안에서 과자나 작은 선물을 발견했습니다. 12세기 초 프랑스의 수녀들은 니콜라우스의 축일 전날인 12월 5일, 그의 선행을 기념하며 가난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니콜라우스는 단순히 과거의 인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매년 겨울마다 다시 찾아와 선물과 자비를 나누는 존재로 사람들의 계속 기억되었습니다.

신터클라스에서 산타클로스로: 전통의 변형과 상업화
시간이 흐르면서 니콜라우스의 이야기는 각 지역의 문화와 결합하여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변주되었습니다. 특히 네덜란드에서는 성 니콜라우스가 'Sinterklaas(신터클라스)'라는 독특한 이름으로 재구성되었습니다. 붉은 주교복과 곧은 지팡이를 들고 긴 수염을 가진 성직자의 모습을 유지하면서도, 12월 5일 저녁 스페인에서 배를 타고 도착해 흰색 말을 타고 아이들 집을 방문한다는 민속적 인물로 자리 잡았습니다. 17세기에 네덜란드 이민자들이 신대륙으로 건너가면서 신터클라스 전통도 북미에 전해졌습니다. 영어를 쓰는 사람들에게 'Sinterklaas'라는 발음은 어려웠기 때문에 점차 'Santa Claus'로 변형되었습니다. 미국에서 산타클로스 이미지는 19세기에 이르러 문학과 삽화를 통해 구체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1823년 발표된 클레멘트 무어의 시 "성 니콜라스의 방문(A Visit from St. Nicholas)"에서 산타가 순록이 끄는 썰매를 타고 하늘을 날아 굴뚝으로 들어온다는 장면을 생생하게 묘사하면서 대중의 상상력을 사로잡았습니다. 19세기 후반에는 삽화가들이 그린 통통하고 자상한 산타클로스 이미지가 확산하면서 빨간 옷과 흰 수염, 북극 거주 등의 요소가 산타클로스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20세기가 되면서 산타클로스는 상업 광고의 주요 소재가 되었습니다. 1930년대 코카콜라의 크리스마스 광고 캠페인은 빨간 옷을 입은 통통하고 친근한 산타 이미지를 전 세계에 확산시켰으며, 영화, TV, 카드, 장난감을 통해 이 이미지가 반복되면서, 산타클로스는 완전히 세속화되고 상업화된 크리스마스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오늘날 우리가 아는 산타클로스는 성 니콜라우스라는 역사적 인물과는 거리가 먼, 상업화된 캐릭터가 되어갔습니다.

산타클로스를 통해 성육신하신 사랑을 기억하다
성 니콜라우스가 캄캄한 밤, 절망에 빠진 세 자매의 집 창가로 조용히 찾아갔던 그 마음의 근원은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은 높고 높은 하늘 보좌를 버리고 가장 낮고 누추한 말구유로 내려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Incarnation)' 사건에 닿아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 가난하게 되셨고, 죄인들과 병든 자들의 친구가 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모든 권리를 포기하신 성육신 사건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베풀어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성 니콜라우스가 자신의 막대한 유산을 가난한 이웃에게 나누어주며 빈손이 된 것은, 부요하신 분으로서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신(고린도후서 8:9) 예수님의 삶을 자신의 삶으로 번역한 신앙고백이었습니다. 니콜라우스가 던진 금화 자루는 단순한 재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절망 속에 있던 자매들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한 '희망'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에게 물질적인 풍요를 약속하기 위함이 아니라, 죄와 죽음에 매여 종노릇하던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과 자유를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진짜 산타클로스를 기억함으로 회복해야 할 진정한 성탄의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성탄절은 '내가 무엇을 받을까'를 기대하는 날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낮아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입은 우리가 이제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우리 주변의 '세 자매'와 같은 연약한 사람들을 찾아가는 날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산타클로스의 선물 보따리보다 그가 붙잡았던 십자가와 복음과 생명에 주목할 때, 비로소 성탄절은 화려한 축제를 넘어선 거룩한 예배가 됩니다.
화려한 트리 밑에 쌓인 선물보다, 차가운 거리의 소외된 이웃을 향해 따뜻한 손길을 내미는 '성육신의 사랑'이 우리 삶 가운데 가득한 성탄절 되시길 소망합니다. 그것이 진짜 산타클로스, 니콜라우스가 꿈꾼 세상이자, 아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진정한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Merry Christmas!
글. 정일석 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 장신대(역사신학 Ph.D cand)
진짜 산타를 찾아서 : 성 니콜라우스 그리고 성육신의 사랑 이야기
붉은 옷을 입고, 선물 보따리를 매고, 사슴 썰매를 탄 산타클로스는 성탄절을 상징하는 가장 익숙한 이미지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산타클로스를 기독교와는 무관한 상업주의의 상징으로 여기지만 그 붉은 옷 뒤에는 한 신앙인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3세기 소아시아의 도시 뮈라의 주교였던 성 니콜라우스입니다. 현대 산타클로스의 모델이 된 성 니콜라우스의 삶을 통해, 점점 상업화되어 가는 이 시대의 성탄절을 기다리며, 우리가 진정으로 회복해야 할 성탄의 의미를 다시 돌아보고자 합니다.
나눔의 사람, 성 니콜라우스
성 니콜라우스는 주후 270년경, 오늘날 터키 남부 지중해 연안, 리키아 지방의 파타라에서 부유한 기독교 가정에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전염병으로 부모를 잃은 그는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았지만, 그 재산을 자신을 위해 쓰지 않았습니다. 니콜라우스는 가난한 이들, 고아, 과부, 병자들을 위해 재산 전부를 나누어 주었으며, 거리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며 살았다고 전해집니다.
가난한 세 자매를 위한 금화 자루
성 니콜라우스와 관련된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가난한 세 자매의 이야기입니다. 성 니콜라우스가 목회하던 뮈라의 한 가난한 집에 세 자매가 있었습니다. 자매의 아버지는 막대한 결혼 지참금을 마련할 수 없었기에 사랑하는 딸들을 제대로 결혼시킬 수 없었고, 세 자매는 부잣집에 여종으로 팔려 갈 상황이었습니다. 길을 가다가 열린 창문을 통해 그들의 비참한 사정을 듣게 된 니콜라우스는 교회로 돌아와 금화가 든 자루를 가져와서 밤에 몰래 창문으로 던져 넣었습니다. 자루는 난로 주변에 걸린 양말 속에 떨어졌고 세 자매는 무사히 결혼할 수 있었습니다. 니콜라우스가 던진 자루가 난로 가의 양말에 떨어졌다는 이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가 크리스마스에 양말을 걸어두면 산타클로스가 밤에 몰래 굴뚝으로 들어와 선물을 넣어준다는 이야기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Saint Nicholas Providing Dowries (1435) by Bicci di Lorenzo>
그를 기억하며, 선물을 나누다
성 니콜라우스가 주후 343년경, 7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사람들은 그가 세상을 떠난 12월 6일을 성 니콜라우스 축일로 기념하기 시작했습니다. 중세 이후 유럽, 특히 독일, 네덜란드, 프랑스, 벨기에에서는 이날을 특별하게 기념하면서 12월 5일 밤에 성 니콜라우스가 찾아와 착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고 나쁜 아이들에게는 회초리를 준다는 전통이 생겨났습니다. 아이들은 5일 밤에 신발이나 양말을 창가에 놓아두고 잠자리에 들었고,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그 안에서 과자나 작은 선물을 발견했습니다. 12세기 초 프랑스의 수녀들은 니콜라우스의 축일 전날인 12월 5일, 그의 선행을 기념하며 가난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니콜라우스는 단순히 과거의 인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매년 겨울마다 다시 찾아와 선물과 자비를 나누는 존재로 사람들의 계속 기억되었습니다.
신터클라스에서 산타클로스로: 전통의 변형과 상업화
시간이 흐르면서 니콜라우스의 이야기는 각 지역의 문화와 결합하여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변주되었습니다. 특히 네덜란드에서는 성 니콜라우스가 'Sinterklaas(신터클라스)'라는 독특한 이름으로 재구성되었습니다. 붉은 주교복과 곧은 지팡이를 들고 긴 수염을 가진 성직자의 모습을 유지하면서도, 12월 5일 저녁 스페인에서 배를 타고 도착해 흰색 말을 타고 아이들 집을 방문한다는 민속적 인물로 자리 잡았습니다. 17세기에 네덜란드 이민자들이 신대륙으로 건너가면서 신터클라스 전통도 북미에 전해졌습니다. 영어를 쓰는 사람들에게 'Sinterklaas'라는 발음은 어려웠기 때문에 점차 'Santa Claus'로 변형되었습니다. 미국에서 산타클로스 이미지는 19세기에 이르러 문학과 삽화를 통해 구체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1823년 발표된 클레멘트 무어의 시 "성 니콜라스의 방문(A Visit from St. Nicholas)"에서 산타가 순록이 끄는 썰매를 타고 하늘을 날아 굴뚝으로 들어온다는 장면을 생생하게 묘사하면서 대중의 상상력을 사로잡았습니다. 19세기 후반에는 삽화가들이 그린 통통하고 자상한 산타클로스 이미지가 확산하면서 빨간 옷과 흰 수염, 북극 거주 등의 요소가 산타클로스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20세기가 되면서 산타클로스는 상업 광고의 주요 소재가 되었습니다. 1930년대 코카콜라의 크리스마스 광고 캠페인은 빨간 옷을 입은 통통하고 친근한 산타 이미지를 전 세계에 확산시켰으며, 영화, TV, 카드, 장난감을 통해 이 이미지가 반복되면서, 산타클로스는 완전히 세속화되고 상업화된 크리스마스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오늘날 우리가 아는 산타클로스는 성 니콜라우스라는 역사적 인물과는 거리가 먼, 상업화된 캐릭터가 되어갔습니다.
산타클로스를 통해 성육신하신 사랑을 기억하다
성 니콜라우스가 캄캄한 밤, 절망에 빠진 세 자매의 집 창가로 조용히 찾아갔던 그 마음의 근원은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은 높고 높은 하늘 보좌를 버리고 가장 낮고 누추한 말구유로 내려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Incarnation)' 사건에 닿아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 가난하게 되셨고, 죄인들과 병든 자들의 친구가 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모든 권리를 포기하신 성육신 사건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베풀어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성 니콜라우스가 자신의 막대한 유산을 가난한 이웃에게 나누어주며 빈손이 된 것은, 부요하신 분으로서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신(고린도후서 8:9) 예수님의 삶을 자신의 삶으로 번역한 신앙고백이었습니다. 니콜라우스가 던진 금화 자루는 단순한 재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절망 속에 있던 자매들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한 '희망'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에게 물질적인 풍요를 약속하기 위함이 아니라, 죄와 죽음에 매여 종노릇하던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과 자유를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진짜 산타클로스를 기억함으로 회복해야 할 진정한 성탄의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성탄절은 '내가 무엇을 받을까'를 기대하는 날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낮아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입은 우리가 이제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우리 주변의 '세 자매'와 같은 연약한 사람들을 찾아가는 날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산타클로스의 선물 보따리보다 그가 붙잡았던 십자가와 복음과 생명에 주목할 때, 비로소 성탄절은 화려한 축제를 넘어선 거룩한 예배가 됩니다.
화려한 트리 밑에 쌓인 선물보다, 차가운 거리의 소외된 이웃을 향해 따뜻한 손길을 내미는 '성육신의 사랑'이 우리 삶 가운데 가득한 성탄절 되시길 소망합니다. 그것이 진짜 산타클로스, 니콜라우스가 꿈꾼 세상이자, 아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진정한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Merry Christmas!
글. 정일석 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 장신대(역사신학 Ph.D c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