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의 시작과 함께 한국의 주요 개신교 교단들은 ‘교회정치’로 분주해집니다. 주요 교단의 총회가 주로 9월에 전국 각지에서 개최되기 때문입니다. 총회에서는 새로운 지도부를 선출하고, 지난 1년 동안 지역 노회와 여러 위원회에서 올라온 안건들을 보고받고, 분명한 의사결정이 필요한 경우에는 총대(노회의 대표)들의 표결을 진행합니다. 장로교의 경우에는 총회에서 결의된 내용을 9월 말부터 10월 중에 각 지역에서 열리게 되는 노회로 보내서 동의를 받고, 공포합니다. 그래서 9월은 '교회정치의 계절'입니다.
많은 이들이 교회와 정치라는 단어가 서로 어울리지 않으며, 세속적이고 부정적인 느낌을 받곤 합니다. 하지만, 개신교의 교회정치체계는 종교개혁의 정신을 목회 현장에서 실체화한 개혁의 결과물이며, 앞으로도 개혁의 정신을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입니다. 특히, 대표적인 개신교 교파인 장로교의 정치체계는 민주주의의 핵심적 가치인 ‘투표권’, ‘대의제도’, ‘권력 분산’, ‘헌법주의’가 시작되고, 인류 사회에 뿌리내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오늘은 교회사로 읽는 기독교문화 네 번째 시간으로 장로교 정치체계의 태동과 발전 그리고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에 이바지한 바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제네바에서 시작된 칼뱅의 도전
독일의 마르틴 루터와 스위스의 울드리히 츠빙글리가 종교개혁의 불꽃을 지핀 1세대 종교개혁자라면, 장 칼뱅은 선배들이 피운 불꽃을 체계적인 신학과 실제적인 교회 정치체계로 구현한 2세대 종교개혁자로서 종교개혁의 완성자라고 불립니다.젊은 시절 프랑스 정부와 가톨릭교회의 박해를 경험했던 칼뱅은 교황을 중심으로 한 로마가톨릭의 부패와 위험성을 직접 체험했고, 이는 훗날 그가 기초를 놓은 개신교 정치체계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칼뱅이 목회한 생피에르 교회, photo by Dennis Jarvis, CC-BY-SA 2.0>
칼뱅이 제네바에서 실험한 교회정치체계는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그는 교회의 직분을 목사, 교사, 장로, 집사로 나누었는데, 이를 통해 단순한 역할 분담이 아니라 권력의 분산을 추구했습니다. 특히 칼뱅은 장로를 '가르치는 장로'(목사)와 '치리하는 장로'로 구분했고, 치리하는 장로는 평신도 중에서 선출되어 목사와 함께 교회를 운영하는 평신도 지도자의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중세 로마가톨릭교회에서는 성직자만이 교회를 다스릴 수 있었지만, 이제 평신도도 교회의 운영에 참여할 수 있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칼뱅은 한발 더 나아가 치리장로를 선출할 때 여러 소의회의 추천과 목회자의 동의를 받은 명단을 위원회에서 승인한 뒤, 교구 신자들의 동의를 거치도록 했는데, 이는 오늘날 투표를 통해 지도자를 선출하는 현대적인 대의민주주의의 기초적인 형태입니다.
칼뱅은 제네바에서 목회하면서 교회정치 이론을 현실화시켰고, 칼뱅의 정신은 제네바 아카데미에서 훈련받은 개신교 목회자들을 통해 전 유럽으로 퍼져나갔습니다. 그중에는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자 존 낙스가 있었습니다.
스코틀랜드에서 꽃핀 장로교회
칼뱅의 교회정치 이론은 그의 동료이자 후배인 존 녹스(John Knox)를 통해 ‘장로교회’의 형태로 구체화하였습니다. 녹스의 사상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잉글랜드 여왕 메리 1세의 박해를 피해 1556년부터 1559년까지 제네바에서 보낸 3년이었습니다. 이 시기 그는 칼뱅과 함께 사역하며 영어권 피난민 교회를 목회했습니다. 녹스는 제네바 아카데미를 ‘사도 시대 이후 지상에 존재했던 가장 완벽한 그리스도의 학교’라고 극찬했는데, 이는 단순한 찬사가 아니라 그가 제네바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했는지를 보여줍니다.

<녹스가 사역한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의 세인트 자일스 교회, photo by Rich Barrett-Small, CC 2.0>
이후 스코틀랜드로 돌아간 녹스는 동료들과 함께 세계 최초의 장로교 헌법이라고 할 수 있는 『스코틀랜드 제1치리서』를 작성했습니다. 1560년에 작성된 『제1치리서』는 목사, 장로, 집사의 직제를 체계화하고, 각 직분의 선출 방법과 임기, 권한과 책임을 명확히 규정했습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평신도 중에서 선출된 장로가 목사와 함께 교회를 다스리는 체계를 확립하고 교회 재정의 투명한 운영을 강조했다는 점입니다. 녹스와 그의 동료들이 만든 장로교 정치체계는 단순한 교회 운영 매뉴얼을 넘어 권력이 한 사람이나 소수에게 집중되는 것을 막고, 구성원들의 참여를 통해 의사결정을 하며, 정해진 규칙과 절차에 따라 조직을 운영한다는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들을 담아낸 역사적 전환점이었으며, 17세기와 18세기를 거치며 영국의 명예혁명, 미국의 독립에 영향을 미쳤고, 근대 민주주의 발전의 중요한 기초가 되었습니다.
교회, 한국 민주주의의 요람이자 학교
1884년, 알렌의 입국에 이어서 언더우드, 아펜젤러 등 많은 선교사가 한국에 들어왔고 선교사들이 기독교 신앙과 함께 가져온 민주적 정치체계는 강력한 신분제가 유지되고 있었던 당시 한국사회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1887년 최초의 조직교회인 새문안교회가 설립되고, 1907년에는 평양에서 독노회(지금의 노회)가 조직되었으며,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7명의 한국인이 목사 안수를 받으면서 교회는 점차 독자적인 정치체계를 확립했습니다. 당시는 여전히 국왕이 모든 권한을 가지고 결정하는 절대왕정 시대였지만, 교회만큼은 평신도가 직접 교회의 지도자를 선출하고, 그들이 모인 당회에서 교회의 중요한 일들을 결정하는 민주적 공간이었으며, 아직 민주주의를 접해보지 못한 한국인들이 자연스럽게 민주주의 원리를 접하고 민주주의 시민으로 양육되는 교육기관이었습니다.

<1907년 장로교 독노회 설립 이후 찍은 기념사진, 『기독교, 한국에 살다 - 한국기독교역사100선 -』 중>
장로교 정치체계가 이 땅에 남긴 흔적
1912년 9월 1일,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가 조직되면서 한국의 장로교회는 당회(개교회) - 노회(지역) - 총회(전국)로 이어지는 3단계 대의정치 시스템을 완성했습니다. 장로교의 정치체계는 현대 민주주의 국가의 정치체계와 매우 닮았습니다. 개별 교회의 목사와 장로들로 구성되어 교회의 일상적인 일들을 결정하는 당회는 오늘날 각 도시의 지방의회와 비슷합니다. 일정한 지역 안 여러 교회의 대표들이 모여 지역 교회들의 문제를 결정하는 노회는 도의회와 비슷합니다. 전국 노회의 대표들이 모여 교단 전체의 방향을 결정하는 총회는 국가적인 문제를 다루는 국회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이러한 체계는 헌법에 의해 운영되었기에 장로교인들은 자연스럽게 민주주의의 근간인 헌법주의와 법치주의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수천 년 동안 절대왕정의 통치를 받으며 철저한 계급 사회에서 살아온 한국인들이 해방 직후인 1948년 5월 10일에 치러진 전국 총투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제헌의회를 구성하고,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를 담은 헌법을 공포하고, 이를 기반으로 민주주의 국가체계를 정비하는 것이 가능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로 선교초기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는 60여년 동안 교회를 통해 이루어진 민주주의 선행학습을 이야기해도 무리는 아닐 것입니다.
교회정치체계의 의의
때로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교회의 정치체계는 단순히 교회를 운영하는 방식을 넘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뿌리 중 하나이며, 교회와 신앙을 지키고 발전시킬 수 있는 중요한 도구입니다. 우리 중 상당수는 태어날 때부터 경험한 민주주의를 당연하다 여기며 자랐습니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많은 사람의 노력과 희생으로 만들어졌으며, 종교개혁자 장 칼뱅과 존 녹스 그리고 수백 년 동안 기독교인을 중심으로 한 많은 이들의 고민과 노력이 있었습니다. 특히, 장로교회의 정치체계에는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함께 참여하여 결정하며, 권력을 나누고 견제하는 민주주의의 원리가 담겨 있는 장로교의 정치체계는 하나님께서 종교개혁을 통해 이 세상에 주신 선물입니다.

이제, 나와는 상관없는 회의로 보였던 당회, 노회, 총회가 조금은 다르게 보이시나요? 우리가 교회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한 명의 책임있는 동역자로 교회의여러 회의와 정치체계에 참여할 때, 교회정치는 지루하고 무의미한 모임이 아니라 교회를 통해 세상을 향한 뜻을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의 통로이자, 현대 민주주의를 다듬어가시는 하나님의 도구가 됩니다.
교회정치의 계절인 9월을 맞이하며, 더위를 몰아내는 선선한 바람을 고대하는 만큼 교회의 정치체계와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기억하며, 곳곳에서 들려올 여러 소식에 귀 기울여 보면 어떨까요?
글. 정일석 연구원(문화선교연구원, 장신대(역사신학 Ph.D cand))
가을의 시작과 함께 한국의 주요 개신교 교단들은 ‘교회정치’로 분주해집니다. 주요 교단의 총회가 주로 9월에 전국 각지에서 개최되기 때문입니다. 총회에서는 새로운 지도부를 선출하고, 지난 1년 동안 지역 노회와 여러 위원회에서 올라온 안건들을 보고받고, 분명한 의사결정이 필요한 경우에는 총대(노회의 대표)들의 표결을 진행합니다. 장로교의 경우에는 총회에서 결의된 내용을 9월 말부터 10월 중에 각 지역에서 열리게 되는 노회로 보내서 동의를 받고, 공포합니다. 그래서 9월은 '교회정치의 계절'입니다.
많은 이들이 교회와 정치라는 단어가 서로 어울리지 않으며, 세속적이고 부정적인 느낌을 받곤 합니다. 하지만, 개신교의 교회정치체계는 종교개혁의 정신을 목회 현장에서 실체화한 개혁의 결과물이며, 앞으로도 개혁의 정신을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입니다. 특히, 대표적인 개신교 교파인 장로교의 정치체계는 민주주의의 핵심적 가치인 ‘투표권’, ‘대의제도’, ‘권력 분산’, ‘헌법주의’가 시작되고, 인류 사회에 뿌리내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오늘은 교회사로 읽는 기독교문화 네 번째 시간으로 장로교 정치체계의 태동과 발전 그리고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에 이바지한 바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제네바에서 시작된 칼뱅의 도전
독일의 마르틴 루터와 스위스의 울드리히 츠빙글리가 종교개혁의 불꽃을 지핀 1세대 종교개혁자라면, 장 칼뱅은 선배들이 피운 불꽃을 체계적인 신학과 실제적인 교회 정치체계로 구현한 2세대 종교개혁자로서 종교개혁의 완성자라고 불립니다.젊은 시절 프랑스 정부와 가톨릭교회의 박해를 경험했던 칼뱅은 교황을 중심으로 한 로마가톨릭의 부패와 위험성을 직접 체험했고, 이는 훗날 그가 기초를 놓은 개신교 정치체계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칼뱅이 제네바에서 실험한 교회정치체계는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그는 교회의 직분을 목사, 교사, 장로, 집사로 나누었는데, 이를 통해 단순한 역할 분담이 아니라 권력의 분산을 추구했습니다. 특히 칼뱅은 장로를 '가르치는 장로'(목사)와 '치리하는 장로'로 구분했고, 치리하는 장로는 평신도 중에서 선출되어 목사와 함께 교회를 운영하는 평신도 지도자의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중세 로마가톨릭교회에서는 성직자만이 교회를 다스릴 수 있었지만, 이제 평신도도 교회의 운영에 참여할 수 있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칼뱅은 한발 더 나아가 치리장로를 선출할 때 여러 소의회의 추천과 목회자의 동의를 받은 명단을 위원회에서 승인한 뒤, 교구 신자들의 동의를 거치도록 했는데, 이는 오늘날 투표를 통해 지도자를 선출하는 현대적인 대의민주주의의 기초적인 형태입니다.
칼뱅은 제네바에서 목회하면서 교회정치 이론을 현실화시켰고, 칼뱅의 정신은 제네바 아카데미에서 훈련받은 개신교 목회자들을 통해 전 유럽으로 퍼져나갔습니다. 그중에는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자 존 낙스가 있었습니다.
스코틀랜드에서 꽃핀 장로교회
칼뱅의 교회정치 이론은 그의 동료이자 후배인 존 녹스(John Knox)를 통해 ‘장로교회’의 형태로 구체화하였습니다. 녹스의 사상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잉글랜드 여왕 메리 1세의 박해를 피해 1556년부터 1559년까지 제네바에서 보낸 3년이었습니다. 이 시기 그는 칼뱅과 함께 사역하며 영어권 피난민 교회를 목회했습니다. 녹스는 제네바 아카데미를 ‘사도 시대 이후 지상에 존재했던 가장 완벽한 그리스도의 학교’라고 극찬했는데, 이는 단순한 찬사가 아니라 그가 제네바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했는지를 보여줍니다.
<녹스가 사역한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의 세인트 자일스 교회, photo by Rich Barrett-Small, CC 2.0>
이후 스코틀랜드로 돌아간 녹스는 동료들과 함께 세계 최초의 장로교 헌법이라고 할 수 있는 『스코틀랜드 제1치리서』를 작성했습니다. 1560년에 작성된 『제1치리서』는 목사, 장로, 집사의 직제를 체계화하고, 각 직분의 선출 방법과 임기, 권한과 책임을 명확히 규정했습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평신도 중에서 선출된 장로가 목사와 함께 교회를 다스리는 체계를 확립하고 교회 재정의 투명한 운영을 강조했다는 점입니다. 녹스와 그의 동료들이 만든 장로교 정치체계는 단순한 교회 운영 매뉴얼을 넘어 권력이 한 사람이나 소수에게 집중되는 것을 막고, 구성원들의 참여를 통해 의사결정을 하며, 정해진 규칙과 절차에 따라 조직을 운영한다는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들을 담아낸 역사적 전환점이었으며, 17세기와 18세기를 거치며 영국의 명예혁명, 미국의 독립에 영향을 미쳤고, 근대 민주주의 발전의 중요한 기초가 되었습니다.
교회, 한국 민주주의의 요람이자 학교
1884년, 알렌의 입국에 이어서 언더우드, 아펜젤러 등 많은 선교사가 한국에 들어왔고 선교사들이 기독교 신앙과 함께 가져온 민주적 정치체계는 강력한 신분제가 유지되고 있었던 당시 한국사회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1887년 최초의 조직교회인 새문안교회가 설립되고, 1907년에는 평양에서 독노회(지금의 노회)가 조직되었으며,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7명의 한국인이 목사 안수를 받으면서 교회는 점차 독자적인 정치체계를 확립했습니다. 당시는 여전히 국왕이 모든 권한을 가지고 결정하는 절대왕정 시대였지만, 교회만큼은 평신도가 직접 교회의 지도자를 선출하고, 그들이 모인 당회에서 교회의 중요한 일들을 결정하는 민주적 공간이었으며, 아직 민주주의를 접해보지 못한 한국인들이 자연스럽게 민주주의 원리를 접하고 민주주의 시민으로 양육되는 교육기관이었습니다.
<1907년 장로교 독노회 설립 이후 찍은 기념사진, 『기독교, 한국에 살다 - 한국기독교역사100선 -』 중>
장로교 정치체계가 이 땅에 남긴 흔적
1912년 9월 1일,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가 조직되면서 한국의 장로교회는 당회(개교회) - 노회(지역) - 총회(전국)로 이어지는 3단계 대의정치 시스템을 완성했습니다. 장로교의 정치체계는 현대 민주주의 국가의 정치체계와 매우 닮았습니다. 개별 교회의 목사와 장로들로 구성되어 교회의 일상적인 일들을 결정하는 당회는 오늘날 각 도시의 지방의회와 비슷합니다. 일정한 지역 안 여러 교회의 대표들이 모여 지역 교회들의 문제를 결정하는 노회는 도의회와 비슷합니다. 전국 노회의 대표들이 모여 교단 전체의 방향을 결정하는 총회는 국가적인 문제를 다루는 국회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이러한 체계는 헌법에 의해 운영되었기에 장로교인들은 자연스럽게 민주주의의 근간인 헌법주의와 법치주의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수천 년 동안 절대왕정의 통치를 받으며 철저한 계급 사회에서 살아온 한국인들이 해방 직후인 1948년 5월 10일에 치러진 전국 총투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제헌의회를 구성하고,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를 담은 헌법을 공포하고, 이를 기반으로 민주주의 국가체계를 정비하는 것이 가능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로 선교초기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는 60여년 동안 교회를 통해 이루어진 민주주의 선행학습을 이야기해도 무리는 아닐 것입니다.
교회정치체계의 의의
때로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교회의 정치체계는 단순히 교회를 운영하는 방식을 넘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뿌리 중 하나이며, 교회와 신앙을 지키고 발전시킬 수 있는 중요한 도구입니다. 우리 중 상당수는 태어날 때부터 경험한 민주주의를 당연하다 여기며 자랐습니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많은 사람의 노력과 희생으로 만들어졌으며, 종교개혁자 장 칼뱅과 존 녹스 그리고 수백 년 동안 기독교인을 중심으로 한 많은 이들의 고민과 노력이 있었습니다. 특히, 장로교회의 정치체계에는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함께 참여하여 결정하며, 권력을 나누고 견제하는 민주주의의 원리가 담겨 있는 장로교의 정치체계는 하나님께서 종교개혁을 통해 이 세상에 주신 선물입니다.
이제, 나와는 상관없는 회의로 보였던 당회, 노회, 총회가 조금은 다르게 보이시나요? 우리가 교회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한 명의 책임있는 동역자로 교회의여러 회의와 정치체계에 참여할 때, 교회정치는 지루하고 무의미한 모임이 아니라 교회를 통해 세상을 향한 뜻을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의 통로이자, 현대 민주주의를 다듬어가시는 하나님의 도구가 됩니다.
교회정치의 계절인 9월을 맞이하며, 더위를 몰아내는 선선한 바람을 고대하는 만큼 교회의 정치체계와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기억하며, 곳곳에서 들려올 여러 소식에 귀 기울여 보면 어떨까요?
글. 정일석 연구원(문화선교연구원, 장신대(역사신학 Ph.D c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