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교회사로 읽는 기독교 문화] 두 개의 달력, 하나의 믿음 :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달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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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로 읽는 기독교 문화]

두 개의 달력, 하나의 믿음

 :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달력 이야기


이미지 출처: ChatGPT를 통한 생성 이미지 (© OpenAI)


부활절과 크리스마스 날짜가 다른 교회들

우리에게 12월 25일은 크리스마스이지만, 러시아나 동유럽에서는 크리스마스가 1월 7일입니다. 부활절 날짜도 우리를 비롯한 서방교회와 동방교회가 다릅니다. 올해(2025년)는 전 세계 모든 교회가 4월 20일에 부활절을 맞이했는데, 사실 이는 매우 드문 사건이었고, 작년(2024년)에는 우리가 지킨 부활절(3월 31일)과 동방교회 부활절(5월 5일) 사이에 한 달 이상 차이가 났습니다.

이런 이상한 날짜 차이의 비밀은 바로 교회가 사용하고 있는 ‘두 개의 달력’에 있습니다. 이 시간에는 동방교회와 서방교회가 왜 다른 달력을 사용하게 되었는지, 역사속 비밀 이야기를 함께 나누어보려고 합니다.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대분열

예수님이 세우신 이후 줄곧 하나였던 교회가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로 갈라진 시점은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의 대주교와 로마의 주교인 교황이 서로를 교회에서 쫓아낸다고 선언한 1054년이었습니다. 이 ‘대분열’은 단순히 몇몇 지도자의 개인적 갈등이 아니라 오랫동안 쌓여온 여러 가지 차이점이 폭발한 결과였습니다.

‘서방교회’는 로마를 중심으로 라틴어를 사용했고, 로마의 주교를 교황이라는 세계 교회의 최고 지도자로 세웠으며, 오늘날의 로마가톨릭 교회와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모체가 되었습니다. 반면 ‘동방교회’는 그리스어를 중심으로 사용하며, 여러 지역의 대주교들이 함께 전체 교회를 이끄는 운영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러시아 정교회, 그리스 정교회가 동방교회에 속합니다.

대분열을 거치며 둘로 나뉜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는 예배 방식부터 신학까지 많은 부분에서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되었고, 사용하는 달력도 서로 다릅니다.


율리우스력 :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만든 고대의 기준

이미지 출처: ChatGPT를 통한 생성 이미지 (© OpenAI)

기원전 46년, 우리에게는 ‘시저’라는 이름으로 익숙한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당시 사용하고 있었던 제국의 달력이 실제 계절과 점점 어긋나는 문제에 해결하고자 천문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달력을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이 달력을 ‘율리우스력’이라고 부릅니다.


새로이 만들어진 달력의 원칙은 단순했습니다.

1. 1년을 365일로 한다.

2. 4년마다 2월에 하루를 더해 윤년으로 만든다.

  *윤년은 평년(365일)에 하루가 추가되어 366일이 되는 해로, 2월 29일이 등장합니다.


율리우스력은 당시로서는 매우 과학적이고 정확한 달력이었으며, 당시 최고 지도자가 만든 달력이었기에 로마의 영향력이 닿는 모든 지역에서 사용되었습니다. 당연히 로마 제국의 영역에서 시작된 초기 기독교회도 자연스럽게 이 달력을 따랐습니다.

교회 역사에서 달력과 날짜가 중요하게 등장한 순간은 서기 325년, 제1차 니케아 공의회였습니다. 제1차 니케아 공의회에서 부활절을 ‘춘분 이후 첫 번째 보름달 다음에 오는 주일’로 정할 때, 그 기준이 되는 춘분을 율리우스력 기준으로 정했고, 지금도 이 원칙을 따라 부활절 날짜를 계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율리우스력에는 결정적 문제가 있었습니다. 지구가 태양을 한번 공전하는 ‘1년’의 실제 길이는 365.2422일인데, 율리우스력은 이를 365.25일로 계산하면서 약 11분 12초 정도의 차이가 생긴 것입니다. 이는 당시의 기술적 한계로 인해 발생한 사소한 오차였지만, 달력이 오랫동안 사용되면서 오차가 누적되자 달력과 실제 계절의 격차가 커져서 4백여 년이 지났을 때 그 차이는 3.1일에 이르렀습니다.


그레고리력: 교황, 달력을 수정하다.

16세기가 되자 달력의 오차 문제는 더욱 심각해져서 부활절이 초여름까지 늦어졌습니다. 이에 교황 그레고리오 13세는 1582년, 예수회 수학자들과 천문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달력을 만들었고, 이것이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달력인 ’그레고리력‘입니다.

그레고리오 교황의 달력 개혁은 두 단계로 이루어졌습니다.

1단계: 쌓인 오차를 한 번에 해결한다.

그레고리오 교황은 1500년 이상 쌓여온 율리우스력의 오차를 해결하기 위해 1582년 10월 4일 다음 날을 10월 5일이 아니라 10월 15일로 정하여 10일을 건너뛰었습니다. 달력에서 10일을 지워버리면서 이 10일은 인류 역사에서 사라진 기간이 되었습니다.

2단계: 윤년 규칙을 더 정교하게 다듬다.

- 4로 나누어떨어지는 해를 ‘윤년’으로 정한다.

- 하지만, 100으로 나누어떨어지면 윤년이 아니다.

- 단, 400으로 나누어떨어지면 윤년이 된다.

예를 들어 4와 400으로 나누어떨어지는 주후 2000년은 윤년이 되지만, 100으로만 나누어떨어지는 주후 1900년은 윤년이 아닙니다. 이런 세밀한 조정으로 그레고리력은 매우 정확한 달력이 될 수 있었습니다.


동방교회가 율리우스력을 사용하는 이유

교황이 통치하는 서방교회는 곧바로 그레고리력을 받아들였지만, 동방교회는 달력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동방교회는 초대 교회부터 사용해 온 율리우스력을 바꾸면 교회의 정체성이 흔들릴 수 있다고 생각했고, 서방교회의 지도자인 교황이 중심이 되어 만든 달력을 받아들이는 것에 상당한 거부감이 있었기 때문에 그레고리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 시점부터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날짜가 달라졌습니다.

그레고리력을 따르는 로마가톨릭과 개신교의 영향력이 큰 지역에서는 그레고리력 12월 25일에 성탄절을 지켰고, 율리우스력을 기준으로 교회 절기를 지키는 동방교회의 영향력이 큰 러시아, 그리스 등의 지역에서는 율리우스력 12월 25일, 그레고리력 1월 7일쯤에 성탄절을 지키게 되었습니다.

20세기에 들어서 일부 정교회에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오차를 최소화한 '수정 율리우스력'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부활절만큼은 여전히 율리우스력에 기초한 전통 방식으로 계산하고 있습니다.


11월에 일어난 10월 혁명. 달력이 달라서 생겨난 오해

율리우스력과 그레고리력의 차이가 교회 밖 역사에서 드러난 사건은 ‘10월 혁명’입니다. 레닌이 중심이 된 볼셰비키가 로마노프 왕조를 무너뜨리고 러시아를 장악한 1917년의 '10월 혁명'은 그레고리력으로는 11월 7일에 일어났기에 엄밀히 말하면 ‘11월 혁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러시아는 율리우스력을 사용하고 있었기에 율리우스력 10월 25일(그레고리력 11월 7일)에 일어난 이 사건을 자연스럽게 '10월 혁명'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다른 달력, 같은 믿음

동방교회와 서방교회가 서로 다른 달력을 사용한다고 해서 성삼위 하나님을 믿는 믿음까지 다른 것은 아닙니다. 날짜가 달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뻐하고 부활을 기념하는 마음은 같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서로 다른 달력을 통해 나와 다른 전통 아래에서 신앙생활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었고, 다양한 기독교 문화의 발전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같은 신앙이 지역과 문화에 따라 얼마나 다양하게 표현될 수 있는지, 다양하게 표현되는 하나의 믿음을 기억한다면, 달력에 표기된 시간 속에서 우리는 ‘다름’이 아니라 ‘하나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12월 25일이든 1월 7일이든, 부활절이 3월이든 5월이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전해주시는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는 한결같기 때문입니다.


마무리하며

전통을 지키려는 간절한 마음, 새로워지려는 열망, 다양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도 하나의 믿음으로 이어진 형제자매임을 확인하는 하나됨의 소망은 동방교회와 서방교회가 지켜온 두 달력의 날짜 뒤에 담긴 진정한 가치입니다.




정일석 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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