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 이웃, 어린이를 향한 따뜻한 초대 : 교회에서 초청하기 좋은 기독교 뮤지컬 세 편 소개
가을 전도 축제와 성탄 행사, 교회학교 가족 초청 행사를 앞두고 교회 공동체와 어떤 공연을 함께 나눌지 고민하는 사역자들이 적지 않다. 좋은 공연은 교회 문턱을 낮추고, 익숙한 복음을 새로운 결로 다시 듣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가을을 앞두고, 소개하는 세 편의 뮤지컬은 저마다 다른 구성원들을 향한다. 〈BACK TO 1931 : 시무언 이용도〉는 스펙과 경쟁에 지친 청년에게, 〈컨츄리 씨스터즈〉는 믿지 않는 가족과 이웃을 품고 기도해 온 성도에게, 〈옐토의 신비한 책갈피〉는 아이 손을 잡고 오는 가족에게 말을 건넨다.
〈BACK TO 1931 : 시무언 이용도〉
포스터 한가운데 커다란 손목시계가 하나 놓여 있다. 시곗바늘 위쪽에는1931, 아래쪽에는 2026. 그 바늘 위에 두 사람,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은 오늘의 대학생, 그리고 흰 두루마기 차림으로 성경을 든 1931년의 청년 목회자가 등을 맞대고 앉아 있다. 창작뮤지컬 〈BACK TO 1931 : 시무언 이용도〉는 95년이라는 시간을 사이에 두고 시작한다.

시곗바늘 위에 등을 맞대고 앉은 2026년과 1931년의 두 청년의 모습
주인공 '주아'는 스펙과 취업에 쫓기다 신앙의 자리에서 저만치 멀어진 대학생이다. 어느 날 엄마가 책 한 권과 이상한 쿠키를 건네고, 투덜거리며 받아 든 그 선물은 주아를 1931년 평양, 부흥회가 한창인 예배당 한복판으로 데려다 놓는다. 놀랄 틈도 없이 주아는 책의 주인공과 마주 선다. 청년 부흥사, 이용도다. 주아를 이 자리에 데려다 놓으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이용도(1901~1933)는 감리교 목사이자 초기 한국 개신교가 낳은 시인이었다. 그는 교파와 지역을 가리지 않고 강단에 섰고, 가진 것을 나누며 청빈하게 살았다. 조선 교회의 갱신을 외치다 서른셋에 주님 품에 안긴 그의 짧은 생애를 한 문장으로 줄이면 ‘하나님 한 분으로 충분했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흰 두루마기를 입고 성경을 든 1931년의 청년 부흥사가 무대 한가운데 선다
이 무대는 객석의 두 사람을 동시에 부른다. 먼저 청년이다. 무엇을 더 갖춰야 괜찮은 사람이 되는지 세상이 매일 친절하게 일러주는 시대, 스펙 한 줄이 곧 자기소개가 되는 자리에서, 아무것도 갖추지 않고도 충만했던 한 청년의 하루는 낯설고 조금 부럽다. 그러다 결국 질문이 된다. 나는 무엇으로 나를 증명하며 살고 있는가.

휴대폰을 손에 들고, 가방을 맨 주아를 통해 오늘의 청년에게 질문을 던진다
두 번째 대상은 중장년이다. 이용도의 서른셋을 지나온 중장년 세대에게 이 무대는 거울과 같다. 처음 예수를 만나 잠 못 이루던 밤이 누구에게나 있었다. 다만 그 뜨거움이 언제부터 계산과 자리와 익숙함으로 바뀌었는지는 대개 기억나지 않는다. 주아가 떠밀리듯 1931년에 도착하는 동안, 객석의 중장년도 자신의 1931년으로 잠시 돌아간다.
작품을 관통하는 물음은 창세기 3장 9절의 '너 어디에 있느냐.'라는 하나로 모아진다. 에덴에서 숨은 사람을 먼저 찾아오신 하나님의 첫 질문이 그랬듯, 이 말은 위치를 묻는 것이 아니라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를 부른다.

무대 벽면에 이름들이 빛으로 떠오르고 1931년의 사람들과 오늘의 사람들이 한자리에 선다
러닝타임은 100분이며 12세 이상 관람가이기에 청소년부와 청년부가 함께 보기에 무리가 없다. 주요 대사와 숫자는 이용도의 실제 설교와 기록에서 나온 것이기에 관람 뒤 나눔으로 이어가기도 좋다.
이 작품을 만든 ‘오늘의 메시지’는 ‘하나님 한 분만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 하나로 2023년에 시작한 팀이다. 이들은 청년들이 가장 오래 머무는 자리인 SNS에서 하루 한 번은 복음과 마주치게 하자고 마음을 모았고, 3년 동안 말씀 큐레이션과 찬양, 그림 묵상을 매일 업로드 하였다. 뮤지컬은 SNS 다음 걸음으로 몇 초 만에 스크롤로 스쳐 가는 말씀을 넘어, 100분 동안 한자리에 앉아 몸으로 겪어내는 시간을 만들어보려는 결과물이다.
배경호 연출은 오직 하나님 한 분으로 충분했던 한 목회자의 뜨거운 삶이 스펙과 경쟁 속에서 지쳐있는 청년들의 고민에 진짜 답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초청 및 관람 문의 : 최예음 피디 (7pipe7@naver.com)
〈컨츄리 씨스터즈〉
조명이 쏟아지는 커다란 콘서트 무대 위에 두 여인이 마이크를 쥐고 나란히 서 있다. 실루엣뿐이지만 그곳이 두 사람이 오래 꿈꿔온 자리라는 것쯤은 금세 알 수 있다. 그런데 막이 오르면 정작 무대 뒤편에 걸린 것은 감나무 가지가 늘어진 시골집 툇마루이고, 그 앞에서는 고무장화 신은 아저씨들이 입씨름하고 있다. 그 사이를 잇는 것은 시골 아줌마 박말숙의 구수한 한마디다. “내 꿈은 말이여… 멋진 드레스를 입고 화려한 무대 위에서 박수받으며 주님을 찬양하는 겨…” 크리스천 뮤지컬 〈컨츄리 씨스터즈〉는 밀짚모자와 스팽글 드레스 사이, 그 엉뚱함에서 시작한다.

조명이 쏟아지는 무대 위 두 개의 실루엣. 시골 아줌마와 도시 아가씨가 꿈꾸는 자리. (2026년5월CTS아트홀 공연 포스터)
한적한 시골 마을에 온 유학생 지유는 자신과 똑같이 가수의 꿈을 품고 사는 말숙을 만난다. 흥 많고 종종 엉뚱하지만, 누구보다 찬양을 사랑하는 말숙과 모태신앙이지만 유학 생활 동안 교회와 멀어진 지유. 나이도, 살아온 자리도 전혀 다른 두 사람이 팀을 이뤄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선다. 심지어 그들 곁에는 술 없이는 하루도 못살면서 교회라면 질색하는 말숙의 남편 봉태가 있다. 어느 날, 두 사람의 꿈 앞에 예상치 못한 일이 찾아온다.
원작은 2019년 대학로에서 초연해 관객들과 함께 울고 웃었던 뮤지컬 〈디바〉다. KBS 공채 개그맨 출신으로 원작 제작을 맡았던 김성규 집사가 연출을 맡아, 믿지 않는 이들에게도 거부감 없이 복음이 스며들도록 기독교 버전으로 다시 빚었다. 성경 속 인물은 한 명도 나오지 않지만, 실컷 웃다 보면 어느새 눈물 속에서 은혜를 만나는 이야기이다.

뮤지컬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우리네 주위에서 있을 법한 이웃들의 모습이다
이 공연의 대상은 크게 두 세대이다. 먼저는 청년이다. 지유는 교회에서 자랐지만, 공부와 경쟁의 시간을 지나며 신앙을 조용히 내려놓고 청년부 명단에 이름만 남은 누군가의 얼굴이다. 꿈을 좇느라 하나님을 잊은 줄 알았던 지유가 가장 촌스러운 자리에서 찬양을 다시 마주하게 되는 과정은, 교회를 떠나 있던 청년들에게 조용히 말을 건넨다.

손을 맞잡고 노래하는 두 사람. 시골 아줌마와 도시 아가씨가 한 팀이 되었다.
다음은 중장년이다. 말숙은 오래 교회를 섬겨온 성도들의 거울이다. 살림과 밭일에 꿈을 접어둔 세월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교회 문턱을 넘지 않는 남편 곁에서 찬양을 놓지 않는다. 믿지 않는 가족을 위해 오래 기도해 온 이들에게 봉태를 바라보는 말숙의 마음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객석의 누군가는 자신의 봉태를 떠올리며, 또 누군가는 바로 그 봉태의 자리에 앉아 이 무대를 보게 된다.
제작진은 빌립보서 4장 4절,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를 붙잡고 작품을 만들어간다. 뜻대로 풀리지 않는 삶 한가운데서도 찬양을 멈추지 않는 말숙은, 그 '항상'이 무엇인지를 웃음과 눈물로 풀어 보여준다. 기쁨은 형편이 아니라 주님께 달려 있다는 것을, 객석은 한바탕 웃고 운 뒤에야 알아차린다.

교회 강단 위에 구성된 무대에 선 배우들과 호응하는 성도들의 모습
러닝타임은 100분이며, 출연진 다섯 명의 단출한 구성이라 예배당 무대에도 부담 없이 올릴 수 있다. 우리 동네 이야기로 복음을 건네는 작품이기에 믿지 않는 가족과 이웃을 초청하는 전도 축제나 새 생명 축제에 잘 어울린다.
제작팀인 J&J는 ‘Joy in Jesus’의 약자로, 김대혜 목사(기독교대한감리회 공감예수마을교회)를 중심으로 실제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활동하는 배우와 제작진이 모인 문화 사역팀이다. 출발점은 코로나 이후의 교회였다. 예배를 잃은 성도와 성도를 잃은 교회를 보며, 이제는 먼저 깨어 예배와 복음의 회복에 힘써야 할 때라고 마음을 모았다. 매달 두 번 함께 예배하며 무대에 설 힘을 구하고, 재정을 떼어 아프리카 등 선교지를 직접 찾아가고 있다.
2023년 첫 교회 공연 이후, 이듬해에는 소안도, 청산도의 낙도 교회와 제주까지 발길이 닿았고, 올해 연말까지 60회 가까이 전국 교회 무대에 오른다. 칠복 역의 손진영 배우는 회차를 거듭하며 성도들과 함께 울고 웃는 동안 오히려 자신의 신앙이 단단해졌다고 고백한다. 무대가 객석을 섬기는 동안, 무대 역시 은혜를 경험하고 있다.
초청 및 관람 문의 : 김대혜 목사 (kbr8461@naver.com)
〈옐토의 신비한 책갈피: 삭개오 이야기〉
무대 뒤편 스크린에 별이 촘촘히 박힌 밤하늘이 떠오른다. 노란 토끼 모자를 쓴 아이가 활짝 펼쳐진 커다란 성경책에 올라타 날아오르고, 그 곁으로 커다란 나무와 금화, 빨간 지붕 집이 말풍선처럼 둥실 떠 있다. 그 앞에서 똑같이 노란 모자를 쓴 배우 셋이 두 팔을 활짝 벌리면, 바닥에 둘러앉은 아이들의 눈이 동그래진다. 가족 성경 뮤지컬 〈옐토의 신비한 책갈피〉는 책갈피 하나로 오늘의 아이를 2천 년 전 여리고 마을로 데려간다.

팔 활짝 벌린 옐토 가족과 둘러앉은 아이들의 모습
할머니에게서 신비한 책갈피를 건네받은 옐토는 책갈피에 이끌려 성경 속 여리고 마을로 가게 된다. 그곳에서 옐토는 작은 키 때문에 무시당하고 마을 사람들에게 미움받는 부자 삭개오를 만난다. 옐토는 외로운 삭개오와 조금씩 깊은 우정을 쌓아가던 어느 날, 예수님이 여리고에 오신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수많은 사람 틈에서 키 작은 두 친구는 그토록 기다리던 예수님을 만날 수 있을까?
여리고의 세리장으로 재산은 넉넉했지만, 동족에게서 세금을 걷는 일 때문에 죄인 취급을 받던 삭개오는 예수님을 보고 싶은 마음 하나로 체면을 내려놓고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간다. 성경 속 인물들을 한 사람씩 무대에 올리겠다는 목표로 시작된 옐토 시리즈의 첫 주인공인 삭개오를 통해 작은 키에서 시작해 커다란 사랑과 용기를 얻게 된다.

성경책을 펼친 할머니 옆에 서 있는 옐토
이 공연의 대상은 크게 두 세대이다. 먼저는 아이들이다. 옐토는 호기심 많고 누구와도 친구가 되고 싶은 아이지만, 친구들의 놀림에 마음을 다친 적이 있다. 키가 작아서, 조금 느려서, 남들과 달라서 속상했던 기억은 교회학교 아이들에게도 낯설지 않다. 그런 옐토가 모두에게 외면당한 삭개오 곁에 서는 모습을 보며, 아이들은 누군가의 외로움에 먼저 손 내미는 법을 배운다. 공연을 보고 나온 한 아이는 엄마에게 ‘엄마, 나도 옐토처럼 예수님 만나고 싶어요.’라고 말하게 된다.

여리고의 돌무화과 나무 아래에서 옐토와 머뭇거리는 삭개오
그리고 어른이다. 아이 손에 이끌려 왔다가 정작 마음이 먼저 움직이는 쪽은 어른들이다.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자신을 작게 여기며 살아온 세월, 달라지고 싶지만 정말 달라질 수 있을지 자신 없는 마음은 삭개오만의 것이 아니다. 아이들 공연인 줄 알았는데 어른의 눈으로 보아도 깊이 감동했다는 후기가 적지 않은 것은 아이 곁에 앉은 부모가 어느새 나무 위 삭개오의 자리에서 무대를 보게 되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19장 5절에서 예수님은 나무 위의 삭개오를 올려다보며 먼저 그의 이름을 부르셨다. 이 작품 속 예수님이 건네는 말도 그 부르심을 닮았다. ‘모든 사람은 있는 그대로 소중하단다.’ 작은 키를 부끄러워하던 두 친구의 이야기는, 내 모습 그대로도 높이 날아오를 수 있다는 용기로 아이와 어른을 함께 초대한다.

이름을 불러주신 예수님 곁에 선 삭개오와 옐토
제작진은 이 작품을 ‘찾아가는 어린이 성경 뮤지컬’로 소개한다. 스크린 그림과 나무 소품, 의자 몇 개로 장면을 바꿔 가는 무대라 교회마다 다른 공간에 맞춰 세팅을 새로 꾸린다. 배우 한 사람이 아빠와 예수님을, 또 한 사람이 할머니와 삭개오를 오가는 단출한 구성이어서, 전도 축제나 성탄 행사, 교회학교 가족 초청 행사에도 쉽게 초청할 수 있다.
옐토라는 이름은 이스라엘의 발달장애인 친구들과 맺은 인연에서 출발한 소셜 디자인 브랜드로, 히브리어 '옐라딤 토빔', 곧 '좋은 아이들'을 줄인 말이다. 여기에 '옐로우 토끼'라는 뜻을 겹쳐 노란 모자를 쓴 토끼 캐릭터가 태어났다. 디자인 브랜드를 넘어 다음 세대를 위한 기독교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성경뮤지컬로 이어진 것이다.
안무를 맡은 정소연 감독이 발달장애인을 위한 즉흥 움직임 클래스를 함께 이끌어 왔다는 점도, '좋은 아이들'이라는 이름의 출발점과 맞닿아 있다. 세상의 모든 아이는 저마다의 빛을 품고 있다는 옐토의 고백이, 이번에는 삭개오의 이야기로 무대에 오른 셈이다.
초청 및 관람 문의 : 아래의 구글 폼 링크를 통해 신청
가을을 맞이하여, 어린아이부터 중장년에 이르기까지, 온 세대가 함께 모여 이웃을 초대한 자리에서 좋은 뮤지컬을 보면서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마음 속 이야기들과 신앙의 고민을 나누면 어떨까? 위에 소개한 세 편의 뮤지컬 외에 소개하고 싶은 기독교 뮤지컬이나 공연을 아래의 댓글에 적어주면 더 많은 교회가 풍성하고 행복한 시간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정일석 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 장로회신학대학교 교회사 Ph.D)
성실함으로 거룩함을 이루어 가는 돌멩이를 꿈꾸며
청년, 이웃, 어린이를 향한 따뜻한 초대 : 교회에서 초청하기 좋은 기독교 뮤지컬 세 편 소개
가을 전도 축제와 성탄 행사, 교회학교 가족 초청 행사를 앞두고 교회 공동체와 어떤 공연을 함께 나눌지 고민하는 사역자들이 적지 않다. 좋은 공연은 교회 문턱을 낮추고, 익숙한 복음을 새로운 결로 다시 듣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가을을 앞두고, 소개하는 세 편의 뮤지컬은 저마다 다른 구성원들을 향한다. 〈BACK TO 1931 : 시무언 이용도〉는 스펙과 경쟁에 지친 청년에게, 〈컨츄리 씨스터즈〉는 믿지 않는 가족과 이웃을 품고 기도해 온 성도에게, 〈옐토의 신비한 책갈피〉는 아이 손을 잡고 오는 가족에게 말을 건넨다.
〈BACK TO 1931 : 시무언 이용도〉
포스터 한가운데 커다란 손목시계가 하나 놓여 있다. 시곗바늘 위쪽에는1931, 아래쪽에는 2026. 그 바늘 위에 두 사람,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은 오늘의 대학생, 그리고 흰 두루마기 차림으로 성경을 든 1931년의 청년 목회자가 등을 맞대고 앉아 있다. 창작뮤지컬 〈BACK TO 1931 : 시무언 이용도〉는 95년이라는 시간을 사이에 두고 시작한다.
시곗바늘 위에 등을 맞대고 앉은 2026년과 1931년의 두 청년의 모습
주인공 '주아'는 스펙과 취업에 쫓기다 신앙의 자리에서 저만치 멀어진 대학생이다. 어느 날 엄마가 책 한 권과 이상한 쿠키를 건네고, 투덜거리며 받아 든 그 선물은 주아를 1931년 평양, 부흥회가 한창인 예배당 한복판으로 데려다 놓는다. 놀랄 틈도 없이 주아는 책의 주인공과 마주 선다. 청년 부흥사, 이용도다. 주아를 이 자리에 데려다 놓으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이용도(1901~1933)는 감리교 목사이자 초기 한국 개신교가 낳은 시인이었다. 그는 교파와 지역을 가리지 않고 강단에 섰고, 가진 것을 나누며 청빈하게 살았다. 조선 교회의 갱신을 외치다 서른셋에 주님 품에 안긴 그의 짧은 생애를 한 문장으로 줄이면 ‘하나님 한 분으로 충분했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흰 두루마기를 입고 성경을 든 1931년의 청년 부흥사가 무대 한가운데 선다
이 무대는 객석의 두 사람을 동시에 부른다. 먼저 청년이다. 무엇을 더 갖춰야 괜찮은 사람이 되는지 세상이 매일 친절하게 일러주는 시대, 스펙 한 줄이 곧 자기소개가 되는 자리에서, 아무것도 갖추지 않고도 충만했던 한 청년의 하루는 낯설고 조금 부럽다. 그러다 결국 질문이 된다. 나는 무엇으로 나를 증명하며 살고 있는가.
휴대폰을 손에 들고, 가방을 맨 주아를 통해 오늘의 청년에게 질문을 던진다
두 번째 대상은 중장년이다. 이용도의 서른셋을 지나온 중장년 세대에게 이 무대는 거울과 같다. 처음 예수를 만나 잠 못 이루던 밤이 누구에게나 있었다. 다만 그 뜨거움이 언제부터 계산과 자리와 익숙함으로 바뀌었는지는 대개 기억나지 않는다. 주아가 떠밀리듯 1931년에 도착하는 동안, 객석의 중장년도 자신의 1931년으로 잠시 돌아간다.
작품을 관통하는 물음은 창세기 3장 9절의 '너 어디에 있느냐.'라는 하나로 모아진다. 에덴에서 숨은 사람을 먼저 찾아오신 하나님의 첫 질문이 그랬듯, 이 말은 위치를 묻는 것이 아니라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를 부른다.
무대 벽면에 이름들이 빛으로 떠오르고 1931년의 사람들과 오늘의 사람들이 한자리에 선다
러닝타임은 100분이며 12세 이상 관람가이기에 청소년부와 청년부가 함께 보기에 무리가 없다. 주요 대사와 숫자는 이용도의 실제 설교와 기록에서 나온 것이기에 관람 뒤 나눔으로 이어가기도 좋다.
이 작품을 만든 ‘오늘의 메시지’는 ‘하나님 한 분만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 하나로 2023년에 시작한 팀이다. 이들은 청년들이 가장 오래 머무는 자리인 SNS에서 하루 한 번은 복음과 마주치게 하자고 마음을 모았고, 3년 동안 말씀 큐레이션과 찬양, 그림 묵상을 매일 업로드 하였다. 뮤지컬은 SNS 다음 걸음으로 몇 초 만에 스크롤로 스쳐 가는 말씀을 넘어, 100분 동안 한자리에 앉아 몸으로 겪어내는 시간을 만들어보려는 결과물이다.
배경호 연출은 오직 하나님 한 분으로 충분했던 한 목회자의 뜨거운 삶이 스펙과 경쟁 속에서 지쳐있는 청년들의 고민에 진짜 답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초청 및 관람 문의 : 최예음 피디 (7pipe7@naver.com)
인스타그램 : instagram.com/365_musical
〈컨츄리 씨스터즈〉
조명이 쏟아지는 커다란 콘서트 무대 위에 두 여인이 마이크를 쥐고 나란히 서 있다. 실루엣뿐이지만 그곳이 두 사람이 오래 꿈꿔온 자리라는 것쯤은 금세 알 수 있다. 그런데 막이 오르면 정작 무대 뒤편에 걸린 것은 감나무 가지가 늘어진 시골집 툇마루이고, 그 앞에서는 고무장화 신은 아저씨들이 입씨름하고 있다. 그 사이를 잇는 것은 시골 아줌마 박말숙의 구수한 한마디다. “내 꿈은 말이여… 멋진 드레스를 입고 화려한 무대 위에서 박수받으며 주님을 찬양하는 겨…” 크리스천 뮤지컬 〈컨츄리 씨스터즈〉는 밀짚모자와 스팽글 드레스 사이, 그 엉뚱함에서 시작한다.
조명이 쏟아지는 무대 위 두 개의 실루엣. 시골 아줌마와 도시 아가씨가 꿈꾸는 자리. (2026년5월CTS아트홀 공연 포스터)
한적한 시골 마을에 온 유학생 지유는 자신과 똑같이 가수의 꿈을 품고 사는 말숙을 만난다. 흥 많고 종종 엉뚱하지만, 누구보다 찬양을 사랑하는 말숙과 모태신앙이지만 유학 생활 동안 교회와 멀어진 지유. 나이도, 살아온 자리도 전혀 다른 두 사람이 팀을 이뤄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선다. 심지어 그들 곁에는 술 없이는 하루도 못살면서 교회라면 질색하는 말숙의 남편 봉태가 있다. 어느 날, 두 사람의 꿈 앞에 예상치 못한 일이 찾아온다.
원작은 2019년 대학로에서 초연해 관객들과 함께 울고 웃었던 뮤지컬 〈디바〉다. KBS 공채 개그맨 출신으로 원작 제작을 맡았던 김성규 집사가 연출을 맡아, 믿지 않는 이들에게도 거부감 없이 복음이 스며들도록 기독교 버전으로 다시 빚었다. 성경 속 인물은 한 명도 나오지 않지만, 실컷 웃다 보면 어느새 눈물 속에서 은혜를 만나는 이야기이다.
뮤지컬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우리네 주위에서 있을 법한 이웃들의 모습이다
이 공연의 대상은 크게 두 세대이다. 먼저는 청년이다. 지유는 교회에서 자랐지만, 공부와 경쟁의 시간을 지나며 신앙을 조용히 내려놓고 청년부 명단에 이름만 남은 누군가의 얼굴이다. 꿈을 좇느라 하나님을 잊은 줄 알았던 지유가 가장 촌스러운 자리에서 찬양을 다시 마주하게 되는 과정은, 교회를 떠나 있던 청년들에게 조용히 말을 건넨다.
손을 맞잡고 노래하는 두 사람. 시골 아줌마와 도시 아가씨가 한 팀이 되었다.
다음은 중장년이다. 말숙은 오래 교회를 섬겨온 성도들의 거울이다. 살림과 밭일에 꿈을 접어둔 세월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교회 문턱을 넘지 않는 남편 곁에서 찬양을 놓지 않는다. 믿지 않는 가족을 위해 오래 기도해 온 이들에게 봉태를 바라보는 말숙의 마음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객석의 누군가는 자신의 봉태를 떠올리며, 또 누군가는 바로 그 봉태의 자리에 앉아 이 무대를 보게 된다.
제작진은 빌립보서 4장 4절,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를 붙잡고 작품을 만들어간다. 뜻대로 풀리지 않는 삶 한가운데서도 찬양을 멈추지 않는 말숙은, 그 '항상'이 무엇인지를 웃음과 눈물로 풀어 보여준다. 기쁨은 형편이 아니라 주님께 달려 있다는 것을, 객석은 한바탕 웃고 운 뒤에야 알아차린다.
교회 강단 위에 구성된 무대에 선 배우들과 호응하는 성도들의 모습
러닝타임은 100분이며, 출연진 다섯 명의 단출한 구성이라 예배당 무대에도 부담 없이 올릴 수 있다. 우리 동네 이야기로 복음을 건네는 작품이기에 믿지 않는 가족과 이웃을 초청하는 전도 축제나 새 생명 축제에 잘 어울린다.
제작팀인 J&J는 ‘Joy in Jesus’의 약자로, 김대혜 목사(기독교대한감리회 공감예수마을교회)를 중심으로 실제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활동하는 배우와 제작진이 모인 문화 사역팀이다. 출발점은 코로나 이후의 교회였다. 예배를 잃은 성도와 성도를 잃은 교회를 보며, 이제는 먼저 깨어 예배와 복음의 회복에 힘써야 할 때라고 마음을 모았다. 매달 두 번 함께 예배하며 무대에 설 힘을 구하고, 재정을 떼어 아프리카 등 선교지를 직접 찾아가고 있다.
2023년 첫 교회 공연 이후, 이듬해에는 소안도, 청산도의 낙도 교회와 제주까지 발길이 닿았고, 올해 연말까지 60회 가까이 전국 교회 무대에 오른다. 칠복 역의 손진영 배우는 회차를 거듭하며 성도들과 함께 울고 웃는 동안 오히려 자신의 신앙이 단단해졌다고 고백한다. 무대가 객석을 섬기는 동안, 무대 역시 은혜를 경험하고 있다.
초청 및 관람 문의 : 김대혜 목사 (kbr8461@naver.com)
카카오톡 채널 : @컨츄리씨스터즈 / 인스타그램 : instagram.com/jnj_mission
〈옐토의 신비한 책갈피: 삭개오 이야기〉
무대 뒤편 스크린에 별이 촘촘히 박힌 밤하늘이 떠오른다. 노란 토끼 모자를 쓴 아이가 활짝 펼쳐진 커다란 성경책에 올라타 날아오르고, 그 곁으로 커다란 나무와 금화, 빨간 지붕 집이 말풍선처럼 둥실 떠 있다. 그 앞에서 똑같이 노란 모자를 쓴 배우 셋이 두 팔을 활짝 벌리면, 바닥에 둘러앉은 아이들의 눈이 동그래진다. 가족 성경 뮤지컬 〈옐토의 신비한 책갈피〉는 책갈피 하나로 오늘의 아이를 2천 년 전 여리고 마을로 데려간다.
팔 활짝 벌린 옐토 가족과 둘러앉은 아이들의 모습
할머니에게서 신비한 책갈피를 건네받은 옐토는 책갈피에 이끌려 성경 속 여리고 마을로 가게 된다. 그곳에서 옐토는 작은 키 때문에 무시당하고 마을 사람들에게 미움받는 부자 삭개오를 만난다. 옐토는 외로운 삭개오와 조금씩 깊은 우정을 쌓아가던 어느 날, 예수님이 여리고에 오신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수많은 사람 틈에서 키 작은 두 친구는 그토록 기다리던 예수님을 만날 수 있을까?
여리고의 세리장으로 재산은 넉넉했지만, 동족에게서 세금을 걷는 일 때문에 죄인 취급을 받던 삭개오는 예수님을 보고 싶은 마음 하나로 체면을 내려놓고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간다. 성경 속 인물들을 한 사람씩 무대에 올리겠다는 목표로 시작된 옐토 시리즈의 첫 주인공인 삭개오를 통해 작은 키에서 시작해 커다란 사랑과 용기를 얻게 된다.
성경책을 펼친 할머니 옆에 서 있는 옐토
이 공연의 대상은 크게 두 세대이다. 먼저는 아이들이다. 옐토는 호기심 많고 누구와도 친구가 되고 싶은 아이지만, 친구들의 놀림에 마음을 다친 적이 있다. 키가 작아서, 조금 느려서, 남들과 달라서 속상했던 기억은 교회학교 아이들에게도 낯설지 않다. 그런 옐토가 모두에게 외면당한 삭개오 곁에 서는 모습을 보며, 아이들은 누군가의 외로움에 먼저 손 내미는 법을 배운다. 공연을 보고 나온 한 아이는 엄마에게 ‘엄마, 나도 옐토처럼 예수님 만나고 싶어요.’라고 말하게 된다.
여리고의 돌무화과 나무 아래에서 옐토와 머뭇거리는 삭개오
그리고 어른이다. 아이 손에 이끌려 왔다가 정작 마음이 먼저 움직이는 쪽은 어른들이다.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자신을 작게 여기며 살아온 세월, 달라지고 싶지만 정말 달라질 수 있을지 자신 없는 마음은 삭개오만의 것이 아니다. 아이들 공연인 줄 알았는데 어른의 눈으로 보아도 깊이 감동했다는 후기가 적지 않은 것은 아이 곁에 앉은 부모가 어느새 나무 위 삭개오의 자리에서 무대를 보게 되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19장 5절에서 예수님은 나무 위의 삭개오를 올려다보며 먼저 그의 이름을 부르셨다. 이 작품 속 예수님이 건네는 말도 그 부르심을 닮았다. ‘모든 사람은 있는 그대로 소중하단다.’ 작은 키를 부끄러워하던 두 친구의 이야기는, 내 모습 그대로도 높이 날아오를 수 있다는 용기로 아이와 어른을 함께 초대한다.
이름을 불러주신 예수님 곁에 선 삭개오와 옐토
제작진은 이 작품을 ‘찾아가는 어린이 성경 뮤지컬’로 소개한다. 스크린 그림과 나무 소품, 의자 몇 개로 장면을 바꿔 가는 무대라 교회마다 다른 공간에 맞춰 세팅을 새로 꾸린다. 배우 한 사람이 아빠와 예수님을, 또 한 사람이 할머니와 삭개오를 오가는 단출한 구성이어서, 전도 축제나 성탄 행사, 교회학교 가족 초청 행사에도 쉽게 초청할 수 있다.
옐토라는 이름은 이스라엘의 발달장애인 친구들과 맺은 인연에서 출발한 소셜 디자인 브랜드로, 히브리어 '옐라딤 토빔', 곧 '좋은 아이들'을 줄인 말이다. 여기에 '옐로우 토끼'라는 뜻을 겹쳐 노란 모자를 쓴 토끼 캐릭터가 태어났다. 디자인 브랜드를 넘어 다음 세대를 위한 기독교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성경뮤지컬로 이어진 것이다.
안무를 맡은 정소연 감독이 발달장애인을 위한 즉흥 움직임 클래스를 함께 이끌어 왔다는 점도, '좋은 아이들'이라는 이름의 출발점과 맞닿아 있다. 세상의 모든 아이는 저마다의 빛을 품고 있다는 옐토의 고백이, 이번에는 삭개오의 이야기로 무대에 오른 셈이다.
초청 및 관람 문의 : 아래의 구글 폼 링크를 통해 신청
https://buly.kr/H6kgYSK
가을을 맞이하여, 어린아이부터 중장년에 이르기까지, 온 세대가 함께 모여 이웃을 초대한 자리에서 좋은 뮤지컬을 보면서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마음 속 이야기들과 신앙의 고민을 나누면 어떨까? 위에 소개한 세 편의 뮤지컬 외에 소개하고 싶은 기독교 뮤지컬이나 공연을 아래의 댓글에 적어주면 더 많은 교회가 풍성하고 행복한 시간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정일석 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 장로회신학대학교 교회사 Ph.D)
성실함으로 거룩함을 이루어 가는 돌멩이를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