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의 문화 읽기"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 영화 <모가디슈>를 보고

2021-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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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확산세 중에도 영화 <모가디슈>가 올해 한국 영화 중 최고 흥행작이 되었다. “한국 영화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는 평(정유미)을 들을 정도로 배우들의 연기며 카체이싱 탈출 액션, 전반적인 완성도 면에서 어느 하나 부족함이 없다. ‘아프간 사태’로 국제적 시의성까지 획득하였다. 더불어 30년 전 남북 간의 정치적 상황을 통해 오늘날 한반도의 평화 모색과 진정한 이웃됨의 의미를 성찰하게 한다.


영화 <모가디슈> 안에 두 개의 전쟁이 있다. 하나는 6.25 전쟁의 연장선상에서 UN 가입을 둘러싼 남북 대사관 간의 총성 없는 전쟁이다. 남한은 1986 아시안게임과 1988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 UN에 단독 가입해 국제사회의 공식 일원으로 당당히 인정받고자 했고, 북한은 남북 단일 가입을 주장했던 상황이었다. 영화에서 UN 가입을 위해 소말리아 외교에 총력을 기울이는 한국 대사관과 한발 앞서 이를 가로막는 북한 대사관 간의 사이는 도무지 좁혀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또 다른 하나는 소말리아 내전이다.


영화는 20여 년간 지속되어온 소말리아의 부패한 시아드 바레 정권에 대한 반정부 시위가 내전으로 격화되는 시발점을 배경으로 삼는다. 나라의 ‘정의’를 스스로 세우겠다며 정부군과 반군이 총구를 겨누는 사이, 실질적 정의는 사라지고 어린 소년들조차 총을 들고 괴물로 돌변한 지옥이 되어버렸다. 통신과 전기가 끊기고 치안이 무너졌으며 곳곳에서 약탈이 벌어졌다. 이 즈음을 기점으로 소말리아는 1990년대 초 30만이 기아로 아사하고, 2011년 우리나라의 삼호주얼리호를 피랍하기도 했던 소말리아 해적이 출몰하는 역사가 전개된다.


“갈 데가 없소.” 깊은 밤, 소말리아 무장 강도가 들이닥쳐 머무를 곳이 없는 북한 대사관 공관원들이 총성을 뚫고 찾아와 남한 대사관을 향해 호소했다. 굳게 닫혀 있던 남한 대사관 문이 열리면서, 영화 <모가디슈>의 초점은 두 개의 전쟁으로부터 전쟁 속에서 꽃피운 ‘일시적 평화’로 이동한다. 첫 번째 전쟁은 생존을 위협하는 또 다른 전쟁 앞에서 멈춘다. 이념과 국가를 우선시하며 상대를 적대시하던 것에서 ‘함께 살아남기’라는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면서 하나의 운명 공동체가 되었다.

오늘날 불안정한 남북 관계와 국제 정세의 혼돈 속에서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평화의 꿈은 과연 실현될 수 있을까? 영화에서 남북의 “작은 통일”은 한반도가 아니라 더없이 낯선 땅,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같은 말을 하고, 같은 음식을 먹던 ‘식구(食口)’는 짧은 동거 생활을 마치고 케냐 땅에 발을 딛자 다시금 ‘적’으로 상정되었다. 이들이 바라던 바가 아니었을지라도 말이다.

플라톤이 “죽은 자만이 전쟁의 끝을 본다”고 한 것처럼, 폭력과 전쟁은 영화 밖에서 구체적인 모습과 시공간만 달리하며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일제로부터 해방을 맞은 광복절 76주년, 남한 땅에서 소말리아에 고립된 남북 대사관 사람들의 탈출을 다룬 <모가디슈>가 상영되는 한편 지구 반대편 아프간에서는 남한 대사관 공관원들이 급박하게 탈출을 시도하고 있었다. 탈레반이 아프간 수도 카불을 20년 만에 다시금 장악하면서, 카불 공항은 두려움에 떨며 탈출하려는 사람들로 아비규환이었다.


영화 <모가디슈>는 성급히 답을 내리지 않는다. 다만 케냐에 도착한 비행기 안에서 나누었던 뜨거운 악수와 달리 비행기 밖에서 ‘의도적으로’ 헤어지는 사람들의 뒷모습, 표정과 시선이 말없이 많은 것을 이야기해준다. 서로 이어져 있다는 것에 대해 말이다. “같이 살 방법이 있는데...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봐야지.” 한신성 대사(김윤석)의 말이다. 개인의 삶은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기 어려우나 비틀거리더라도 평화로 가는 길은 ‘함께 살기’를 택하는 것과 무관치 않다.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눅 10:29) 묻는 율법교사에게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닫혀 있던 문을 열어 함께 살기를 택할 이웃은 누구여야 하는가?


김지혜 목사/솔틴비전센터장·평화나루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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