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의 문화 읽기코로나19 시대의 영화 <반도> 읽기 : 재난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

2020-07-28
조회수 3004



좀비물이 강세다. 넷플릭스의 <킹덤 2>, 코로나19 이후 처음으로 100만 관객을 넘은 <#살아있다>, 그리고 <반도>까지. 특히 <반도>는 코로나19 이후 첫 블록버스터로, 연상호 감독의 천만 영화 <부산행>와 애니메이션 <서울역>의 세계관을 이으며 칸 영화제에 공식 초청되었단 소식에 개봉 전부터 많은 이들의 관심을 자아냈다. <부산행>보다 신파적 요소는 짙어졌지만 4DX로 체험하는 영화의 액션이 <반도>의 매력이다. 


코로나19의 여파로 특수를 누리고 있는 OTT(넷플릭스, 유튜브 등 동영상 플랫폼)에 대항해 <반도>는 4DX, ScreenX, SUPER 4D, IMAX 등 다양한 특수관 포맷에서 누릴 수 있는 영화적 경험을 무기로 내세운 듯 하다. 올해 최고 흥행작인 <남산의 부장들>보다 많은 사전예매량을 기록했으며(13만), 국내(35만)를 넘어 대만, 싱가포르 등 아시아에서도 첫날 압도적인 오프닝 스코어를 기록하면서, 과연 전세계적인 침체 속에 있는 영화 산업계가 활기를 되찾는 전환점이 될 수 있을지 주목받고 있다.


왼쪽부터 연상호 감독의 영화 <서울역>, <부산행>, <반도>의 포스터


 

그런데 왜 좀비물이 강세일까? 


<결백>이나 <침입자> 등 현실세계를 기반으로 한 영화가 넘지 못한 100만 관객 고지를 <#살아있다>나 <반도>는 첫 주 만에 넘는 기록을 세웠다. 좀비 바이러스로부터 생존을 모색하는 모습이 코로나19 라는 재난적 상황과 맞물려 관객들에게 몰입감을 더욱 제공하는 듯하다. 한국에서 비주류였던 좀비물을 대중문화의 한복판으로 가져와 한국형 좀비물의 시대를 연 것이 <부산행>이었다. 


느릿하게 걷던 좀비의 걸음에 속도를 붙이고 관절을 기괴하게 움직이는 디테일이 더해지니 “호러를 가장한 액션” 장르적 재미가 더욱 살아났다. 한국 좀비물은 괴기스럽고 공포스러운 분위기보다 이웃과 가족이 좀비가 되고, 일상과 맞닿은 드라마적 요소를 삽입하면서 대중성을 확보했다. 나아가 좀비의 등장은 역설적으로 인간에 대한 질문과 연결된다. 


<부산행>은 객차 간 연결과 배제가 모두 가능한 열차라는 직선적 메타포와 함께 생존 본능만 남은 채 인간성을 상실한 존재들을 등장시키며, 약육강식의 생존경쟁 속에서 무한 이기주의로 치닫는 사회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를 부각한다. 여기서 인간성을 상실한 존재는 영혼 없는 몸, 즉 좀비만 말하는 게 아니다. 자신이 죽을까 두려워 시종일관 이기적인 선택을 하는 용석(김의성 분) 같은 인물도 해당된다. <반도>는 이러한 <부산행> 세계관의 연장선상에서 인간-비인간(좀비)-비인간적 인간이라는 삼자 구도를 심화시키고 공간적 배경을 확장시키며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를 연다.


631부대의 모습



정석(강동원 분)은 좀비 떼로 뒤덮인 한국을 겨우 탈출했지만 되돌아가야만 하는 상황에 놓였다. 국가의 기능을 상실하고 폐허가 된 고향 땅. 익숙하면서도 낯선 그곳을 밟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원망 어린 절규다: “신은 우리를 버렸다.”

 

영화는 시종일관 이곳이 얼마나 지옥 같은 곳으로 전락했는지 보여준다. 무너진 건물, 버려진 차들, 짐승 같은 좀비들. 살아남은 이들은 두 부류다. 들개 혹은 631부대. 부패한 권력 631부대는 들개들에게 좀비나 다름 없는, 어쩌면 좀비보다 무서운 존재다. 처음에는 사람들을 구하던 군대였으나 희망을 잃으면서 인간성마저 포기해버렸다. 광기와 야만에 취해 두려운 것이 없는 그들의 ‘놀이’는 들개라 부르는 민간인 생존자들을 좀비와의 사투로 몰아넣는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두려움도 불사하는 약자들의 연대, 곧 엄마 민정(이정현 분), 딸 준이(이레 분)와 유진(이예원 분), 그리고 김노인(권해효 분)의 투쟁과 대비된다.


버려진 도시에서 들개로 살 수밖에 없는, 왼쪽부터 유진, 김노인 그리고 준이



절망이 가득한 반도에서 구원이란 무엇일까? 


모두가 그곳을 ‘지옥’이라 부르며 탈출하려 할 때, 준이는 달랐다. “우리가 살던 곳도 별로 나쁘지 않았어요.” 준이가 머물던 그곳에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혈연으로 맺어져 있지 않더라도 서로의 피난처가 되어주던 ‘가족’이 있었기 때문이다. 생존이 위협받는 재난적 상황에서도 타자를 향한 연민과 연대의 자세를 잃지 말아야 한다는 <반도>의 메시지는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이 된 요즘 더욱 와 닿는다. 


세상의 “상식”은 나를 포함한 다수의 생존과 안전, 번영을 위해 약자와 소수의 희생을 당연시하고 때로 배제와 혐오, 차별을 일삼지만,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상식”을 뛰어넘으시는 분이다. 흥미롭게도 좀비 영화를 통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깨닫게 된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 2:26)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것, 다시 말해 긍휼과 사랑이라는 믿음의 실천이다. 사랑이 있는 곳에 희망이 머무른다. 거기에 구원이 있다.



글쓴이_ 김지혜 목사(문화선교연구원 책임연구원)

이 글은 <한국기독공보>에 실린 글을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 



0 0
2020년 이전 칼럼을 보고 싶다면?

한국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변화하는 문화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방향을 제언하는 다양한 콘텐츠를 온라인에서 나눕니다.

문화매거진 <오늘>

살아있는 감성과 예술적 영성을 통해 아름다운 삶의 문화를 꽃피워가는 문화매거진 <오늘>(2002~2014)입니다.

시대를 읽고 교회의 미래를 열어갑니다

뉴스레터 구독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뉴스레터 발송을 위한 최소한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이용합니다. 수집된 정보는 발송 외 다른 목적으로 이용되지 않으며, 서비스가 종료되거나 구독을 해지할 경우 즉시 파기됩니다.

광고성 정보 수신

제휴 콘텐츠 정보 등의 광고성 정보를 수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