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의 문화 읽기"다크 히어로에 열광하는 사람들" - 영화 <크루엘라>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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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중문화계는 다크 히어로 열풍이다. 얼마 전에 종영한 드라마 '빈센조'와 '모범택시' 등은 사법 체계의 한계와 부패한 카르텔을 고발하며 악으로 악을 이기는 속 시원한 복수극을 선사했다. 영화 '크루엘라'는 앞서의 작품들과 다른 지점에서 젊은 세대에게 인기를 얻었다. 화려한 볼거리와 음악도 매력적이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악당에게 맞서는 다크 히어로의 탄생이 대중에게 카타르시스를 주었다. 영화의 배경인 1970년대 영국의 상황, 우아하고 격식 있는 상류층의 고급문화와 청년 노동자 계층의 사회 저항적인 펑크 록 스타일의 대비는 바로네스 남작부인(엠마 톰슨)과 크루엘라(엠마 스톤)의 대결을 더욱 극적으로 보이게 했다.


영화 '크루엘라'는 1961년 월트 디즈니가 만든 애니메이션 '101마리의 달마시안 개'에서 파생한 실사 영화이다. '잔인한', '잔혹한'(cruel)이란 의미가 담겨있는 이름의 크루엘라 드 빌(Cruella de Vil)은 '101마리의 달마시안 개'에서 자신이 입을 코트를 만들기 위해 달마시안 개의 가죽을 벗기려는 전형적인 악당으로 등장한다. 반면 영화 '크루엘라'는 에스텔라(엠마 스톤)가 크루엘라로 변하는 이야기이다. 에스텔라는 패션 쪽으로 빛나는 재능을 가졌는데 자기주장과 개성이 매우 뚜렷하다. 흑백으로 나뉜 머리색처럼, 에스텔라에게 과격한 성향의 본성 크루엘라와 이를 억누르고 '착한' 소녀가 되려는 페르소나가 공존한다. 사랑하는 엄마를 잃고 크루엘라를 마음 속 감옥에 가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엄마를 만나면서 에스텔라 인생의 무대의 주인공은 크루엘라가 된다.


 
디즈니는 권선징악적 메시지를 고수하던 경향에서 차츰 벗어나 악당을 재해석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최영주는 디즈니가 반도덕적인 행위를 하는 전통적인 악역이 아니라, 타파해야 할 문제적인 사회 체제에 저항하는 다크 히어로를 등장시키고 있다고 분석한다. '크루엘라'에서 튀는 외모를 가진 에스텔라가 자신을 못살게 구는 아이들에게 대응하다 문제아로 낙인찍히고, 사회의 일원으로 수용되지 못한 채 좀도둑질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밑바닥 시절의 이야기는 혐오와 소외에 대한 비판적 시선으로 읽을 수 있다. 꿈에 그리던 리버티 백화점에 취업했지만 기회를 얻지 못하고 바닥 청소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모습, 바로네스 남작 부인(엠마 톰슨)이 에스텔라의 재능을 알아보고 디자이너로 일하게 됐지만 그저 도구로 사용될 뿐인 이야기들은 오늘날 청춘들이 문제제기하는 사회적 구조와 무관치 않다. 이미 짜여진 판에서 '착한 에스텔라'의 방식으로는 아무리 '노오오오력'해도 성공할 수 없는 현실 말이다. 오히려 크루엘라의 파격적인 스타일이 런던 패션계를 뒤흔들고 미래의 아이콘으로 떠오르게 된다.

 

최근 정치계에 획기적인 인사가 이어지는 것을 보아 알 수 있듯이, 기존의 체제와 전통, 관념을 탈피하고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자 하는 갈망이 세대와 영역을 막론하고 어느 때보다 큰 시절을 보내는 중이다. 이러한 갈망은 스크린에도 반영되며, 스크린에서 다시 현실의 우리들에게로 전달된다. 다크 히어로 열풍은, 한계가 명확한 규범과 질서에 순응하는 것으로는 부정의와 불공정의 문제가 해결될 수 없음을 안 사람들의 답답함과 맞닿아 있다. 영화와 드라마에서나마 갈증을 해소하고픈 것이다. 영화 '크루엘라'는 이러한 대중의 열망에 응답했다. 사회적 기준과 틀에 맞춰 억압하던 자아를 자유롭게 하고 정체성을 되찾는 성장담, 주변인들의 사랑과 연대에 힘입어 스스로 계획을 세우는 한 사람의 행보를 선보이며 말이다. 그리고 이 과정을 지켜본 수많은 '에스텔라'들의 내면에 눌려있던 '크루엘라'를 일깨웠다.

 

이제 한국교회의 차례다.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위기라는 말을 숱하게 해왔다. 그러나 여전히 변화가 요원해 보인다. 우리는 문제적인 상황들을 얼마나 절박하게 인식하고 있는가. 다크 히어로가 등장하기 전에 응답하라, 한국교회!

 

김지혜 목사/솔틴비전센터장·평화나루도서관장

*이 글은 <한국기독공보>에 실린 글에서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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