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리뷰 [오트밀]영화 <힐빌리의 노래> - 굴레를 벗어나! : 가족, 돌봄, 책임

2021-05-26
조회수 1999



한 아이를 책임지는 사람은 누구여야 하는가. 낳아놓기만 하고, 데려다놓기만 하고 아이를 방치하거나 학대하는 어른들의 뉴스가 범람한다. 이해하기 힘든 이유와 사정들로 한 생명을 한낱 하찮은 종이짝으로 만드는 사람들. 또 다른 한편의 뉴스는 한 생명의 부모도, 가족도, 친구도 아닌 이들이 타인의 삶의 짐을 함께 져 준 것에 대한 이야기다. ‘책임’이란 무엇인가. 각자도생의 세계에서 ‘책임’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혹독하고 암울했던 IMF 외환위기 때, 개발이 한창이던 도시의 생활을 멈추고 경기도 외곽 소위 ‘시골’마을 소녀가 되었다. 그곳엔 우리집과 같이 갑작스런 경제사정의 변동을 이유로 이동한 친구들이 꽤 많았고, 이미 그곳에 살고 있던 친구들의 가족 구성과 기능은 나의 그것과는 많이 달랐다. 가정의 울타리 안에서 안전함을 경험하기보다는, 도리어 위태로운 어린 아이가 더 위태한 가족을 지켜내야 하는 모습들. 그 곳에서 나는 가족과 가족이 진 책임에 골몰하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가족이란 뭘까. 가족이 지닌 책임은 어디까지일까. <힐빌리의 노래>는 가족과 책임, 가난과 폭력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이미지 출처: 글로벌이코노믹

 

#트럼프 지지층, 힐빌리

특별히 이 영화(영화에 앞선 원작 도서)는 트럼프 전대통령 선거와 맞물려 큰 반향을 일으킨 작품으로 유명하다. 제목의 ‘힐빌리(hillbilly)’는 멸칭인데, 미국의 쇠락한 공업 지역인 러스트벨트에 사는 백인 노동 저소득층, 낮은 교육수준과 보수적 성향을 띤 이들을 비하하는 용어다. 트럼프 전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으로 거론되면서 미국사회에 새롭게 거론되기 시작한 용어이기도 하다. 영화는 가난한 백인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나 예일대를 졸업한 변호사 J.D. 밴스의 동명 자서전을 원작으로 만들어졌다. 약물중독인 엄마 베브(에이미 애덤스)와 자신을 보살피는 할머니 마모(글렌 클로스), 각자의 시간을 열심히 살아낸 동지 누나 린지(헤일리 베넷)까지 힐빌리들의 출구 없는 일상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며 한 가족의 역사를 훑는다.


#가족이라는 굴레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가족주의’에 대한 비판적 논의와 성찰은 이제 익숙한 것이 되었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정상가족이란 무엇인가?’ 이런 질문들은 혈연을 넘어서는 친밀성과 돌봄의 관계를 요청하며 새로운 가족 개념을 재구성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여기서, 가족주의의 비판 지점에는 집단적 개인주의가 있다. 가족이 집단주의 안에서 가족 이기주의로 드러나거나, 가족이 개인의 일상을 ‘가족 혹은 가문’이라는 담론을 통해 억압하고 속박하는 근원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그러니까, 가족이라는 틀거리가 가족 구성원 개인의 정체성과 생활의 범위를 가족이라는 이유로 위축시키는 것이 비판의 칼날을 피하지 못하게 만드는 핵심이 되는 것이다. 힐빌리의 J.D.도 이러한 가족의 피해자로서 유년시절을 보낸다. 약물중독인 엄마 베브의 폭력, 반복된 재혼 생활 속에서 방치된 생활을 한다. 가족의 굴레 안에 있을 수밖에 없는 ‘어린 아이’라는 이유로 뿌리칠 수 없는 고통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는 말한다. “엄마는 엄마 자격이 없어”

 

# 책임을 져주는 가족

가족의 자격을 논하는 J.D.에게 그의 외할머니 ‘할모’의 대답은 어쩐지 맥이 빠진다. “이 세상에 가족 말고 더 중요한 게 뭐가 있니? 너도 곧 알게 될 거야” 아니, 가족 안에서 겪지 않아도 될 온갖 고통을 경험하고 있는 손자에게 가족 말고 더 중요한 게 없다니, 심각한 공감 저하이거나 한국의 것과 유사한 미국의 가족주의 아닌가. 그러나, 할모는 가련한 손자 J.D.에 대한 책임을 ‘목격자’로서 외면하지 않고, 자신에게로 가져옴으로써 그 대답을 해명한다. 가족에 속해 어쩔 수 없이 맞딱뜨리는 우리의 ‘시작’이 우릴 정의하더라도 매일의 선택이 우리의 삶을 다르게 만들 수 있음을 할모는 ‘가련한 책임자’가 되어 이야기한다. 나는 그러니까 혈연가족이 중요하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가족이라는 필연적 고리 안에서 누군가의 책임의 무게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이다. 삶을 재생산 시키는 ‘책임적 돌봄’이 없이는 가정도, 사회도, 그 어떤 공동체도 절대 유지될 수 없다.


 # 책임적 돌봄의 분배

영화에서 주인공 J.D.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도(엄마 베브), 그 고통으로부터 주인공을 지켜주는 사람도(할머니 할모), 과거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사람(아내 우샤)도 모두 가족(혹은 미래의 가족)이며 여성이라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것은 지금껏 자녀양육과 가사노동, 가정돌봄의 돌봄노동이 대부분 여성의 몫이었음을 반증하는 동시에, 돌봄책임을 지고 있는 여성은 도대체 어디에서 돌봄을 받는가를 고민하게 만든다. 양육과 가사, 가정에 대한 책임은 모두 여성에게만 부과되는 것인가. 그럴 수 없다. 공동체로 묶인 아이와 집안을 돌보고, 가정을 세우는 일이 한 사람만의 몫이 될 수 없지 않는가. 이는 가족 모두의 일이며 사회의 일이고 나아가 교회의 일이기 때문이다. 돌봄을 우리 모두의 노동으로 분배해내고, 사회와 교회는 돌봄을 제공하는 방식을 고민하는 수준이 되어야 한다. 바로 여기서부터 가족 개념의 재구성이 시작된다.

[실제 J.D. 와 할모의 사진]

 

# 교회의 몫

생을 얼마 남기지 않은 할모가 J.D.에게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니 강해져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장면은 J.D.에게 미친 교회와 신앙의 영향에 대해 상상하게 한다. 그가 가난과 폭력이 점철된 끔찍한 가정의 여건을 딛고 건강하고 유능한 기업가가 된 데에 과연 할머니만의 노력이 있었을까. 경기도 외곽 시골마을에서의 청소년기, 위태한 가족 안에서 외롭고 위태롭던 내 친구들에게 진정 가족이 된 건 다름 아닌 교회였다. 안정을 찾지 못해 그저 나부끼던 아이들을 차별과 편견 없이 환대해준 교회 공동체의 품이 그들을 돌보고 책임졌다. 그 친구들을 책임지려는 지도자의 선택과 결정이 마음의 기로에서 더 선한 것을 택하게 만들었다. 자기 자신을 책임지고 사회에 책임을 다하는 성인이 되도록 이끌었다.

돌봄의 몫은 그 어느 단체, 기관보다 교회가 더 많은 파이를 갖는다. 그리스도의 구원 안에서 가족공동체, 한 권속이라는 개념은 교회가 사회와 개인에게 갖는 거룩한 돌봄과 책임을 통해서만 의미를 지닌다.


정수인 전도사 (문화선교연구원 기획간사)


OTT, me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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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에서는 <오트밀, OTTmeal>이라는 코너를 통해 볼 만한 콘텐츠로 꼽히는 영화, 드라마들을 비판적이지만 애정어린 시각으로, 건강하고 솔직하게 읽어 내보려 합니다. 씹을수록 고소하고, 건강에 좋은 오트밀처럼 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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