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리뷰 [오트밀]영화 <셀프 메이드> - 차이, 욕망, 연대

2021-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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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f Made : Madam C.J. Walker」


태어날 때부터 까만 피부를 가지고 있던 나는 어릴 적부터 별명이 많았다. 깜순이, 까마귀, 흑염소, 니그로, 원시부족… 까맣다는 이유로 얻은 수많은 별명을 받아내며, 선크림을 강박처럼 바르고, 한 여름에도 긴팔을 입는 고통의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리곤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효리언니를 보고 까만 피부에 대한 장점을 깨쳤다. 까만 피부는 강해서 햇빛에 노출돼도 쉽사리 빨개지지 않는다. 노릇하게 구워져 반짝거리는 태닝 피부가 될 수 있다. 까만 것이 곧 추한 게 아님을 그 때부터 인지했다. 하얀 건 예쁘고 까만 건 예쁘지 않다는 식의 주입된 편견 때문에 햇빛에 나를 꽁꽁 숨겨온 시간들이 억울하게 느껴졌다.


아름다움을 가르는 기준 중 하나는 ‘색’이다. 선과 악을 가르는 색이기도 한 흑과 백의 이항적 대립은 ‘미’에도 영향을 미쳐 더 순백일수록 아름답고 순결하게, 더 검을수록 추하고 불결하게 신화화 혹은 문화화 되었다. 이러한 이미지는 노예제시기에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백인 여성성은 ‘진정한 여성성 신화’와 상호작용하며, “경건, 순결, 복종심, 가정 중시” 라는 네 가지 미덕과 한 계열을 이루고, 흑인 여성에게는 이것과 대립적인 것들로 이해되는 관념들이 할당되었다.*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드라마 『Self Made』는 다양한 이항적 대립을 더 치밀하고 정교하게, 그렇지만 무겁지 않게 다룬 작품이다. 이 드라마에는 백인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더 검은 흑인과 덜 검은 흑인이 있을 뿐이다. 문제는 더 혹은 덜 검은 자들이 그 색에 따라 권력을 행사하는 사회적 관계가 형성된다는 점에 있는데, 이 영화는 그 부분을 꼬집는다.

 


영화는 더 까맣고 뚱뚱한 주인공 세라가 (백인과의 혼혈로 태어난 흑인이지만)덜 까맣고 마른 애디 먼로의 ‘발모제’로 인해 빠져 버린 머리카락을 되찾는 ‘구원’의 서사로 시작된다. 머리가 빠진 세라의 독백은 인상적이다. 

“신이 추한 걸 싫어한다면 왜 날 만든 걸까? 세상엔 미가 넘쳐나는데 내게 허락된 건 왜 이리 적지?”

그녀가 스스로를 추하다고 느낀 건 빠진 머리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다행히 애디가 만든 발모제로 인해 세라는 새로운 꿈을 갖는다. 애디의 발모제를 팔아보고자 하는 꿈틀대는 욕망 말이다. 하지만 그 꿈은 꿈의 기회를 준 애디에 의해 무너진다. 애디의 발모제로 효능을 체험한 자신이 직접 발모제를 팔아보겠다는 세라에게 애디는 이렇게 말한다. 

“유색인 여자는 뭘 해서든 내 외모를 갖고 싶어 해. 속으론 불가능할 걸 알면서도… 넌 외출복을 차려입어도 방금 농장에서 나온 일꾼 같잖아. 너 같은 부류한테 일 못 맡겨.” 

같이 아픔을 공유하며 자아를 회복했다고 느껴왔던 세라는 배신감에 결국 자신만의 발모제를 만들게 된다. 검지도 희지도 않은 애디가 검은 세라에게 던진 조롱 섞인 말은 관객으로 하여금 과연 ‘유색인’이 누구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화이트: 백인 재현의 정치학』을 쓴 리처드 다이어는 그의 책에서 백인들이 다른 사람들을 ‘유색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흰색은 색이 아니며 색을 초월해 있다’는 그들의 관념이 반영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색이 없다’는 관념은 백인이 모든 유색인과 다른 차원에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덜 검은 혼혈 흑인 애디는 완전한 흑인인 세라를 유색 ‘부류’로 대상화하면서 스스로 백인의 위치, 권력 행사자의 자리에 선다. 자신과 비교할 수 없게 가난하고 비루한 인생이었던 세라가 자기 결정과 자기 발전의 의지를 갖게 되자, ‘내가 당신을 돕겠다’던 동정과 연민이 곧 지배와 억압의 태세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흑인여성’이라는 동일성을 지닌 세라와 애디는 동일한 집단으로 환원되지 않고, 피부색의 차이, 계급과 같은 복잡한 층위를 통해 분리된다. 같은 여성이라 할지라도, 같은 흑인이라 할지라도, 같은 장애인이라 할지라도 저마다의 처한 현실에 따라 다른 차별을 경험한다. <Self Made>는 인종과 계급, 그 안에서도 디테일하고 교차적으로 존재하는 주변적 차이들을 무시한 채, 환원된 집단을 내세워 주장하는 규칙, 기준, 권리는 또 다른 형태의 차별과 억압이 될 수 있음을 우리에게 주지시킨다.

 


<Self Made>에서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한 흑인 여성의 성공스토리에 등장하는 남성들의 반응과 자신의 삶에서 남성을 위치시키는 세라의 시선의 변화다. 이 드라마에서도 기존의 드라마들이 재현하듯 ‘의존적인 여성은 괜찮지만, 욕망하는 여성은 용납할 수 없는 남성들’의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새로운 삶을 꿈꾸며 실패를 거듭하는 세라에게 그냥 빨래 일을 하면서 예전처럼 살자고, 다른 남성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자는 남편 CJ와 전미흑인사업자연맹을 설립해서 흑인의 재정적 독립과 백인으로부터의 분리, 평등을 위해 힘쓰지만 세라의 사업제안에는 ‘흑인은 미용 쪽에 낭비할 돈이 없다’, ‘흑인 여성이 흑인 남성 소득을 추월하면 안 된다’며 흑인 남성의 지위를 우선시하는 모순적 인물인 워싱턴이 대표적이다. 물론 극의 초반, 세라도 사회문화적 요청과 동일한 태도를 취한다. 새로운 발모제를 만들면서도 자신의 딸에게 ‘네 팔자 펴줄 남자를 찾으라고, 맘에 들지 않아도 의사이니 만나보라고, 너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결혼할 사람을 찾으라고’ 종용하는 모습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의 부속으로 살아야 하는 여성의 속박적 기제를 영락없이 드러낸다. 그러나, 그녀의 욕망이 실현되어 가면서 그녀는 변한다. “네 꿈은 뭔데? 남자한테 네 미래를 걸지 말라는 거야. 어떤 남자든 그래. 네 돈은 네가 벌어야지”

 

여성기업을 통해 흑인 여성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흑인의 지위를 궁극적으로 향상할 방법이라 여긴 세라는 그 믿음을 실현하고, 흑인을 위한 발모제로 최초의 미국 흑인 여성 백만장자가 된다. 가부장적 체제의 관습과 규율을 무화시키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욕망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임을 세라의 서사가 설득하는 것이다. 『Self Made』는 욕망해서는 안 되는 ‘여성’을 욕망의 주체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드라마다. 누가 권력과 지배의 자리를 차지할 것인지의 문제가 아니라, 지배와 피지배의 경계 틈새에서 새로운 가능성이 돋아날 수 있음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녀의 욕망과 꿈이 그녀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음에 뭉클한 감동이 있다. 거기에, 이 작품이 픽션이 아닌 실제 역사적 인물을 다뤘다는 점에 짜릿함도 있다. 차별의 교차성, 중복성이 이미 설정된 ‘흑인’이며 ‘가난’한 ‘여성’을 ‘우리’로 동일시하고, 우리 같은 여성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 자신의 유일한 소망이라고 외치는! 그리고 그들과 연대하며 ‘말대로’ 살아낸 한 여성에게 존경심이 드는 것이다. 뒤에 서있는 연약한 개인들의 가능성과 연대하여, 공동체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새로이 구성하는 경험.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것이 되는(고후5:17)’ 세라의 그 갱신의 경험이 우리에게도 절실하다.

 

* 퍼트리샤 힐 콜린스(1990). 흑인페미니즘사상. 여성문화이론연구소



OTT, meal

시공간의 제약 없이, 어떤 단말기에서도 동영상 스트리밍이 가능한 구독 서비스가 대세가 되면서 OTT서비스의 핵심인 ‘콘텐츠’에 대한 관심과 수요는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넷플릭스 추천영화’, ‘왓챠 시리즈 소개’, ‘OTT 숨은 띵작 추천’ 등의 추천 혹은 안내 콘텐츠를 유튜브나 인터넷 검색엔진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걸 보면 그 관심과 인기를 실감할 수 있죠. 한국 드라마인 스위트홈(넷플릭스), 영국드라마 이어즈앤이어즈(왓챠), 미국드라마 체르노빌(왓챠) 등 해당 플랫폼에서만 볼 수 있는 다국적 드라마들을 비롯해, 넷플릭스 개봉작인 로마, 옥자, 아이리시맨, 결혼이야기 등 유명감독들의 완성도 높은 영화들도 OTT를 통해 소개되고 있습니다. 동시에, 기독인으로서 OTT 플랫폼에서 화제가 되는 콘텐츠들을 어떻게 읽어낼 수 있을지, ‘시선’에 대한 고민이 여기저기에서 들려옵니다. 

문화선교연구원에서는 <오트밀, OTTmeal>이라는 코너를 통해 볼 만한 콘텐츠로 꼽히는 영화, 드라마들을 비판적이지만 애정어린 시각으로, 건강하고 솔직하게 읽어 내보려 합니다. 씹을수록 고소하고, 건강에 좋은 오트밀처럼 말이죠. ^^  



정수인 전도사 (문화선교연구원 기획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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