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부터 인터넷상에서 자주 사용되는 신조어 중 ‘뇌절’이라는 용어가 있다. “똑같은 말이나 행동을 집착적으로 반복해 상대를 질리게 하는” 행태를 부정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최근 우리 사회에, 이 용어가 딱 들어맞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름하여 ‘MZ뇌절’
오해에서 이해로
변화된 시대와 문화 속 점차 달라지는 사람들의 행동 양식을 효과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MZ세대’라는 용어가 탄생했다. MZ세대라는 이름 붙이기가 시작되면서, 실제로 청년세대에 대한 오해나 세대 갈등 문제들이 조금씩 완화되어 가는 효과를 보였다. MZ라는 이름을 붙이고 청년세대가 가진 특성들을 소개하면서, 그저 ‘외면한 채 비판만 했던’ 세대 갈등에서 점차 ‘이해를 위한 시도’들로 사회 분위기가 바뀌어나간 것이다. 이후 기업이나 방송매체 대학가, 심지어 교회까지 ‘MZ’라는 말을 즐겨 쓰며, 요즘 트렌드를 익히고 알리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인가, 이 움직임은 갑자기 개그나 비판의 소재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기성세대가 이질감을 느끼는 청년세대의 사고방식이나 태도에 대해, “역시 MZ세대라 그런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또 하나의 현상이 된 것이다. 한 유튜브 채널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풍자하는 콘텐츠를 만들어 올려 청년들에게 큰 공감을 얻기도 했다.
이 짧은 드라마는, 2023년 현재 회사에서 “역시 MZ네”라는 말을 듣고 살아가는 청년세대가 10년이 지나고, 또 10년이 지나도 사소한 말과 행동에 대해 “역시 MZ네”라는 피드백을 받으며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웃픈 현실을 담고 있다.
이해에서 편견으로
조직에서의 MZ세대를 그린 또 다른 콘텐츠가 있다. 지난 2월에 막을 내린, 쿠팡플레이 <SNL코리아 시즌3>의 코너인 ‘MZ오피스’가 대중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한 회사 조직 안에 다양한 계층이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자아내는 갈등을 재미있게 표현해 낸 콘텐츠다. 그런데 여기서 MZ세대는, 좋게 말하면 자기주장이 뚜렷하고 솔직한 사람이지만, 안 좋게 보면 황당할 정도로 개념 없는 사회 초년생으로 그려진다. 모두가 현실 고증이 제대로 된 장면이라며 칭찬했고, ‘맑눈광(맑은 눈의 광인)’이라는 새로운 캐릭터가 탄생하기도 했지만 사실 당사자인 대부분의 MZ세대는 “현실에서 저런 캐릭터는 불가능에 가깝다”며 불편함을 호소했다.
<출처: 쿠팡플레이, SNL코리아3 'MZ오피스' 유튜브 영상>
실제로 MZ세대에게 덧입혀진 대부분의 이미지는 다른 세대나 계급에서 만들어지곤 한다. 왜일까? 기업이나 교회는 둘 다 조직과 시스템으로 이루어져 운영되는 곳이다. 그리고 이런 조직 내에서는 ‘획일화’와 ‘순응’이 가장 효율적인 운영 방식이라 여겨지곤 한다. 그렇기에 조직을 이끄는 기성세대 혹은 리더 계급들에게는 전통적인 조직 분위기에 균열을 내는 피지배계층의 태도에 대해 당황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과거의 탑다운 전달 방식을 거부하고 자세한 설명과 합리성을 요구하며, 무조건적인 희생과 헌신이 아닌 ‘저녁이 있는 삶’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청년세대의 태도는 기업 운영의 효율성과 이익을 반감시키는 움직임이라 여겨지는 게 아닐까. 그리고 이러한 염려들은, 사회로 하여금 기성세대 관점으로 청년세대를 바라보도록 만들었으며, 전통구조를 ‘불편해하는 사람’이 오히려 이 사회의 ‘불편한 존재’라는 사고를 무의식적으로 생산해내고 있다.
<최근 고용노동부 장관이 '주 69시간제' 사안에서 나온 '휴가 문제' 질문에 대해 "요즘 MZ세대는 권리의식이 뛰어나서"라고 답해버린 사례가 있었다>
숨 쉬듯 서로를 대상화하는 사회
그러나 사실, 이러한 현상을 단순히 기성세대 혹은 리더계급의 악의적인 행동이라고'만' 해석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또 언제나 숨 쉬듯 서로를 대상화하며 살아가지 않는가. 특정 집단을 더 잘 이해하고 설명한다는 이유로, 해당 집단이 ‘대체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성을 뽑아내 이름 짓기를 시도한다.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이런 방식이 누군가를 향한 편견과 차별로 변질되어 간다. 가령, “남자는 이성이 발달했고, 여자는 감성이 더 발달했다”는 사회적 통념을 사실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다가, 이런 무례한 질문을 던지곤 한다. “당신은 남잔데, 왜 그리 눈물이 많습니까?” 이러한 사고방식은 상대방을 향한 이해보다는 차별에 가까운 것들이다. MZ뇌절 현상도 이와 비슷하다. 특별히 기성세대와 청년세대의 또 다른 갈등이 파생됐다기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습성, 즉 ‘섣부른 판단’의 결과로 생겨난 현상이라 볼 수 있다.
숨 쉬듯 서로를 존중하는 교회
좋은 의도를 가지고 시작한 이름 짓기가 왜곡되며 서로의 거리를 더 멀어지게 만들기도 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이러한 현상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살아가게 된다면, 언젠가는 MZ세대도 알파 세대에게 의도치 않은 편견을 덧씌울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인간이 흔히 가지고 있는 ‘대상화’라는 습성을 버리고,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새로운 방식을 터득해 나가야 할 것이다. 서로에 대해 쉽게 말하고 희화화하며 편견을 강화시키는 동안, 사회나 교회가 변할 수 있는 시기를 놓치게 될지도 모른다. 서로를 이해하고 환대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될지도 모른다. 비교함으로써 서로를 대상화하는 교회가 아닌, 이해로 나아갈 수 있는 교회 그리고 우리 사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부정적인 워딩이 된 MZ
몇 해 전부터 인터넷상에서 자주 사용되는 신조어 중 ‘뇌절’이라는 용어가 있다. “똑같은 말이나 행동을 집착적으로 반복해 상대를 질리게 하는” 행태를 부정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최근 우리 사회에, 이 용어가 딱 들어맞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름하여 ‘MZ뇌절’
오해에서 이해로
변화된 시대와 문화 속 점차 달라지는 사람들의 행동 양식을 효과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MZ세대’라는 용어가 탄생했다. MZ세대라는 이름 붙이기가 시작되면서, 실제로 청년세대에 대한 오해나 세대 갈등 문제들이 조금씩 완화되어 가는 효과를 보였다. MZ라는 이름을 붙이고 청년세대가 가진 특성들을 소개하면서, 그저 ‘외면한 채 비판만 했던’ 세대 갈등에서 점차 ‘이해를 위한 시도’들로 사회 분위기가 바뀌어나간 것이다. 이후 기업이나 방송매체 대학가, 심지어 교회까지 ‘MZ’라는 말을 즐겨 쓰며, 요즘 트렌드를 익히고 알리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인가, 이 움직임은 갑자기 개그나 비판의 소재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기성세대가 이질감을 느끼는 청년세대의 사고방식이나 태도에 대해, “역시 MZ세대라 그런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또 하나의 현상이 된 것이다. 한 유튜브 채널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풍자하는 콘텐츠를 만들어 올려 청년들에게 큰 공감을 얻기도 했다.
이 짧은 드라마는, 2023년 현재 회사에서 “역시 MZ네”라는 말을 듣고 살아가는 청년세대가 10년이 지나고, 또 10년이 지나도 사소한 말과 행동에 대해 “역시 MZ네”라는 피드백을 받으며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웃픈 현실을 담고 있다.
이해에서 편견으로
조직에서의 MZ세대를 그린 또 다른 콘텐츠가 있다. 지난 2월에 막을 내린, 쿠팡플레이 <SNL코리아 시즌3>의 코너인 ‘MZ오피스’가 대중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한 회사 조직 안에 다양한 계층이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자아내는 갈등을 재미있게 표현해 낸 콘텐츠다. 그런데 여기서 MZ세대는, 좋게 말하면 자기주장이 뚜렷하고 솔직한 사람이지만, 안 좋게 보면 황당할 정도로 개념 없는 사회 초년생으로 그려진다. 모두가 현실 고증이 제대로 된 장면이라며 칭찬했고, ‘맑눈광(맑은 눈의 광인)’이라는 새로운 캐릭터가 탄생하기도 했지만 사실 당사자인 대부분의 MZ세대는 “현실에서 저런 캐릭터는 불가능에 가깝다”며 불편함을 호소했다.
실제로 MZ세대에게 덧입혀진 대부분의 이미지는 다른 세대나 계급에서 만들어지곤 한다. 왜일까? 기업이나 교회는 둘 다 조직과 시스템으로 이루어져 운영되는 곳이다. 그리고 이런 조직 내에서는 ‘획일화’와 ‘순응’이 가장 효율적인 운영 방식이라 여겨지곤 한다. 그렇기에 조직을 이끄는 기성세대 혹은 리더 계급들에게는 전통적인 조직 분위기에 균열을 내는 피지배계층의 태도에 대해 당황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과거의 탑다운 전달 방식을 거부하고 자세한 설명과 합리성을 요구하며, 무조건적인 희생과 헌신이 아닌 ‘저녁이 있는 삶’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청년세대의 태도는 기업 운영의 효율성과 이익을 반감시키는 움직임이라 여겨지는 게 아닐까. 그리고 이러한 염려들은, 사회로 하여금 기성세대 관점으로 청년세대를 바라보도록 만들었으며, 전통구조를 ‘불편해하는 사람’이 오히려 이 사회의 ‘불편한 존재’라는 사고를 무의식적으로 생산해내고 있다.
숨 쉬듯 서로를 대상화하는 사회
그러나 사실, 이러한 현상을 단순히 기성세대 혹은 리더계급의 악의적인 행동이라고'만' 해석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또 언제나 숨 쉬듯 서로를 대상화하며 살아가지 않는가. 특정 집단을 더 잘 이해하고 설명한다는 이유로, 해당 집단이 ‘대체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성을 뽑아내 이름 짓기를 시도한다.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이런 방식이 누군가를 향한 편견과 차별로 변질되어 간다. 가령, “남자는 이성이 발달했고, 여자는 감성이 더 발달했다”는 사회적 통념을 사실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다가, 이런 무례한 질문을 던지곤 한다. “당신은 남잔데, 왜 그리 눈물이 많습니까?” 이러한 사고방식은 상대방을 향한 이해보다는 차별에 가까운 것들이다. MZ뇌절 현상도 이와 비슷하다. 특별히 기성세대와 청년세대의 또 다른 갈등이 파생됐다기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습성, 즉 ‘섣부른 판단’의 결과로 생겨난 현상이라 볼 수 있다.
숨 쉬듯 서로를 존중하는 교회
좋은 의도를 가지고 시작한 이름 짓기가 왜곡되며 서로의 거리를 더 멀어지게 만들기도 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이러한 현상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살아가게 된다면, 언젠가는 MZ세대도 알파 세대에게 의도치 않은 편견을 덧씌울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인간이 흔히 가지고 있는 ‘대상화’라는 습성을 버리고,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새로운 방식을 터득해 나가야 할 것이다. 서로에 대해 쉽게 말하고 희화화하며 편견을 강화시키는 동안, 사회나 교회가 변할 수 있는 시기를 놓치게 될지도 모른다. 서로를 이해하고 환대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될지도 모른다. 비교함으로써 서로를 대상화하는 교회가 아닌, 이해로 나아갈 수 있는 교회 그리고 우리 사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글. 임주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