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의 문화 읽기영화 <라이스보이 슬립스> - "늘 어렵다, 가족" (가정의 달 추천 영화)

2023-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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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스보이 슬립스 (Riceboy Sleeps, 2022)

1990년대 캐나다. 엄마 ‘소영’은 어린 아들 ‘동현’을 키우며 낯선 땅에서의 자립을 시작한다. ‘동현’의 등하교를 책임지고 또 공장에서 일하며 그들만의 따스한 ‘집 home’을 만들어간다. 남편의 죽음 이후 한국에서 아이를 키울 수 없었던 ‘소영’이 캐나다로 와서 늘 바라보는 것은 ‘동현’ 뿐이다. 그들은 그렇게 한 집에서, 한 식탁에서 같은 밥을 먹는다.

‘쌀 Rice’. 소영이 요리하는 주메뉴는 역시 한식이고 쌀이다. 매일 저녁뿐만 아니라 그녀가 공장에서 점심시간에 먹는 메뉴이며 아들 ‘동현’이 학교에 갈 때 꼭 챙겨주는 도시락의 메뉴이다.

변화의 파도는 조금씩 밀려 들어온다. ‘동현’은 자신이 주변 아이들과 사뭇 다르다는 사실에 위화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왜 나는 다르게 생겼는가. 왜 나는 다른 음식을 먹는가. 함께 공부하는 것뿐만 아니라 함께 놀아야 하는 주변 아이들은 멀리 떨어져 ‘동현’을 향해 외친다. “라이스 보이 Rice boy!” ‘동현’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몰래 버리는 것.

시간이 더 흐르고 ‘동현’은 조금씩 캐나다 사람이 되어 간다. 그의 한국어는 조금은 어눌하고, 엄마와 나누는 대화는 많지 않다. ‘동현’은 종종 아버지에 대해 묻는다. ‘소영’은 늘 대답을 회피한다. ‘동현’의 아버지가 정신적으로 온전치 못했음을, 그리고 그 끝은 스스로 택한 죽음이었음을 말할 수 없다. 어쩌면 그것 때문일까. 모자(母子) 사이는 멀어져만 가고 틀어져만 간다.


가족은 어떻게 다시 서로를 사랑할 수 있을까.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나 책이 참 많다. 가족이란 가장 근본적인 관계 단위이기에 모두가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가족이 있고 모두가 가족의 일원이다. 어찌 보면 가장 쉬운 소재일 수 있는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 <라이스보이 슬립스>는 단순한 일상의 영역에 머물지 않고 더 깊은 곳을 향해 조금씩 파고 들어가는 영화다.

데면데면해진 엄마와 아들에게는 각자의 상처가 있다. 그들의 상처는 일회성의 화해로, 폭발적인 눈물로 치유되지 않는다. 삶에서 세밀하게 베이고 할퀴어진 상처는 결국 삶을 다시 살아가며 미세하게 치료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소영’의 마음을, ‘동현’의 마음을 서로가 어찌 쉽게 들여다볼 수 있을까. 아무리 가족이어도 서로의 마음을 훤히 읽는 것은 불가능하며, 애초에 '완전한 이해'라는 것이 갈등 해소의 열쇠도 아니다.

하나의 대안을 보여주는 것일까. <라이스보이 슬립스>의 엄마와 아들은 그 벼랑 끝 같은 상황에서 한국을 방문하기로 한다. 90년대 말인 듯 보이는 한국의 시골은 캐나다와는 너무나 다르다. 그곳을 여행하며 두 사람이 서로를 알아가기보다 오히려 자기 자신을 알아간다. 스스로를 위로하고 치유하는 시간을 묵묵히 갖는다. 그 과정에서 두 사람에게는 많은 대화가 필요치 않다.

가장 가까운 타인, 가족과의 관계에서조차 우리는 수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이런 우리가 어찌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을까? 각자의 상처를 내세우며 한풀이를 하면 위로가 될까. 서로를 낱낱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많은 대화를 통해 개선점을 정하고 요구사항을 제시하면 봉합이 될까. 가족끼리도 이런 수술과도 같은 해결 과정을 거치기에는 쉽지 않다.

다만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선 단독자로서 자기 자신을 마주하고 위로와 사랑을 온전히 받아 삼켜야 하겠다. 그때에 내 몸과 같은 내 가족을 품고 또 내 몸이 같이 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가능해지기 시작한다.

작은 라이스 보이 ‘동현’은 비로소 조금씩 한국을, 그리고 가족과 아버지를 알아감을 통해 자기 자신을 찾았다. 위대한 어머니였던 ‘소영’은 아들과 함께 과거를 마주함을 통해 ‘동현’을 알아가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동현’과 ‘소영’이 조금은 더 행복해지길 소망한다. 그리고 수많은 가족들이 그렇게 각자의 치유를 거쳐 서로를 품고 사랑하는 것이 가능해지길 소망한다.


글. 주보라 프로그래머 (필름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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