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의 문화 읽기영화 <듄>을 보고 - 평화, 실패와 시작 사이에서

2021-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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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듄친자'라는 말이 등장했다. '영화 '듄'에 미친 자'의 준말이란다. 영화를 여러 번 보는 n차 관람은 물론이고 세계관이나 등장인물, 용어 해설 등 관련 정보를 섭렵하거나 굿즈를 모은다. '듄친자'들이 늘어나면서 IMAX가 재상영되고 원작인 프랭크 허버트의 소설 <듄>은 20만 부가 넘게 팔리면서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차지했다.


영화 '듄'은 본래 프랭크 허버트의 소설 '듄' 시리즈 중 첫 번째 책을 2편으로 나눠 제작할 예정이었다. 이번에 개봉한 1편에서 방대한 내용의 일부를 2시간 30분 남짓에 압축적으로 담으면서 우주적 스케일의 미장센과 한스 짐머의 음악이 어떤 이들에게는 압도적인 몰입감을, 어떤 이에게는 지루함을 안겨주는 듯하다. 성차별적, 시대착오적이란 비판도 적잖다. 또한 종교가 중요한 정치적 도구이자 신앙의 대상으로 설정되면서 기독교를 비롯해 여러 종교들을 연상시키는 부분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지금껏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읽고 대중문화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SF 고전 '듄'이 오늘날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영화는 10191년,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후계자 폴(티모시 샬라메)이 혼란스러운 우주 제국을 더 나은 미래로 인도할 퀴사츠 헤더락으로서의 정체성을 자각하고 각성해 나가는 성장의 여정을 담고 있다. 퀴사츠 헤더락이란 베네 게세리트가 오랜 시간에 걸친 우생학적 프로젝트에 의해 정치적으로 만들어내고자 한 메시야적 존재이다. 폴은 자신의 운명을 거부하려 했지만, 원치 않는 미래를 반복해서 꾸는 꿈에 고뇌하고 고통스러워하다 마침내 그 길을 걷게 된다. 자신의 이름으로 광신의 군대가 온 우주를 불태우는 전쟁이 일어나는 미래를 막기 위하여 말이다. 낙원을 건설하기 위해 수많은 피를 흘리는 꿈을 꾼 그는 괴물인가, 메시야인가?


여기에 영화는 우주에서 가장 값비싸고 귀중한 물질인 스파이스 멜란지를 둘러싸고 황제와 하코넨 가문, 아트레이데스 가문, 아라키스 행성의 원주민 프레멘 족 등 간의 전쟁과 음모를 배경으로 한다. 스파이스는 정신 기능을 향상시키고 생명을 연장시키며 우주 항해를 가능하게 하는 신비한 물질이다. 세계사 속에서 대항해 시대, 세계 열강 간 갈등의 원인이었던 향신료(spice)와 이름이 같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전 우주에서 오직 아라키스 행성의 사막, 곧 듄(dune)에서만 생산되기에, 아라키스가 물이 흐르고 숲이 우거진 풍요의 땅이 되길 원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곳에 살고 있는 프레멘 외에는. 스파이스가 없이는 성간(星間) 여행도, 우주 제국의 존립 자체도 위협을 받는다. 이 딜레마는 코로나19로 심각해진 경제 위기와 기후 위기 사이에 놓여 있는 현 상황을 떠올리게도, 인간과 자연을 착취하고 공격하는 인간의 탐욕이 과거와 현재로도 모자라 머나먼 미래까지 반복될 수밖에 없는 것일까, 회의감이 들게도 한다. 불모의 행성 아라키스는 억압과 착취 대신 녹지로 뒤덮인 낙원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감독 드니 빌뇌브는 2023년에 개봉할 '듄' 2편에서 이 질문들에 어떤 답을 내릴까. 원작자 허버트는 힘이 커질수록 통제력을 잃게 되며 오류투성이의 사람들이 영웅을 둘러싸 결국 재앙으로 이끈다면서 영웅 신화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를 담고자 했다고 한다. 원작에서 폴은 온 우주의 왕좌에 오르지만 적대세력에 의해 몰락하고 만다. 인간 정신의 초월적 능력으로 풍요와 번영을 이루고자 했던 베네 게세리트의 시도는 성공하는 듯 보였지만 결국 틀어지고 만다. 당연한 일이다. 손짓 한 번으로 쉬이 이루어지는 낙원은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불완전하며, 힘으로 세운 평화는 모래로 만든 성처럼 무너지게 되어 있다. 인간의 종교적 갈망, 정치적 야망에 부응하는 평화도 마찬가지이다. 가룟 유다와 열심당원, 유대인 무리들의 사례처럼 말이다. 다만, 매번 실패해 때로 불가능해 보일지라도 미래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열려 있으며, 진정한 메시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우리를 위해 오고 계시다는 점은 희망이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한 챠니(젠데이아 콜먼)의 말을 인용하며 글을 맺어본다. 평화로 가는 길은 "아직 시작일 뿐이다."




김지혜 목사 (문화선교연구원 객원연구원/솔틴비전센터장·평화나루도서관장)

*이 글은 <한국기독공보>에 실린 글을 동시게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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