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의 문화 읽기[문학 속 성경] 이육사의 <광야>

2019-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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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베료 황제가 통치한 지 열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왕으로,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누가복음 3:1~3)

카프리 섬에 은둔한 채로도 로마 제국을 통치했던 황제 티베리우스(Tiberius, 기원전 42년~37년)는 강력했다. 티베리우스 황제가 통치하는 “제국의 동쪽과 서쪽, 남쪽과 북쪽에서도 모든 땅과 바다가 로마 제국의 이름 아래 조화로운 통일체를 이루고 있다. 제국 내부에서는 야만족도 문명인과 뒤섞이고, 정복자는 피정복자와 뒤섞이고, 양쪽 모두의 소망인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각자 자신의 책무를 다한다. 나날의 생활을 보면 저절로 감탄이 나온다. 부가 축적되어 금과 은은 화폐와 공예품의 형태로 넘쳐흐르고, 제국 전역에 퍼진 교역망을 통해 부와 물산이 왕성하게 교류되고 있다. 군사력도 보병, 기병, 해군으로 정비되어, 제국 안에서는 어디서나 안전하게 살 수 있다.” 티베리우스 치세기에 대한 필로의 극찬이다.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선대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기초를 놓았던 소위 ‘로마의 평화’(Pax Romana)가 티베리우스 황제 때 구축되었다.

티베리우스가 파견한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이었고, 헤롯 가문 사람들이 제국의 꼭두각시 왕 노릇을 하고 있었고, 대제사장은 총독과 친 로마 유대 정치인들과 유착하여 그 지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로마 제국이 구축한 평화와 번영이 아시아까지 미쳤고, 유대 또한 로마의 평화 속에서 가만히 있으면 전쟁에 휩싸이지 않고 현상을 유지할 수 있었다. 유대 왕과 제사장들은 최소한의 자치권과 백성들의 안녕을 명분으로 로마 당국과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적당히 손잡고, 적절히 긴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했다. 하나님의 말씀은 로마 황궁에 임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말씀은 총독의 관저에 임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말씀은 유대 왕궁에 임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말씀은 심지어, 성전에도 임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말씀은 “빈 들”에 임했다. 하나님의 말씀은 로마 제국의 그물이 채 펴지지 않은 빈 들에 임했다.

빈 들에서 사람들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던 요한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다. 요한은 제사장 사가랴의 아들이다. 제사장 사가랴는 다윗이 지명한 제사장 아비야의 후손으로 차례를 따라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고, 성전에 와서 제물을 바치고 제사장의 제의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강복하는 일을 맡았었다.(눅 1:5~23) 제사장 직무는 세습되었기 때문에, 요한도 서른 살이 되면 제사장이 될 것이었다.(민 4:3) 요한은 성전에서 복무하며 사람들이 갖다 주는 제물을 급료로 수령할 자격 있는 정통 제사장 가문의 후예였다. 서른 즈음에 그러나 요한은 성전에서 제물을 바치는 사람들을 기다리지 않았다. “요한은 요단 강 주변 온 지역을 찾아가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다.”(눅 3:3) 사람들이 가져오는 제물이 아니라, 빈 들에서 잡은 메뚜기로 일용할 양식 삼고, 제사장의 옷이 아니라 낙타털 옷을 입고, 흠 없는 제물이 아니라 흐르는 물로 죄 사함을 선포하는 요한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다. 정통 제사장 가문의 후예 요한을 사람들은 세례자라고 불렀고, 정통 제사장 가문의 후예 요한은 스스로를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칭했다.(요 1:23)

1937년 중일전쟁이 시작되고, 1939년 2차 대전 속으로 세계가 빨려 들어가면서 한반도 상황 역시 엄혹해졌다. 이전까지 일제에 저항하던 이들이 훼절하고 오히려 제국을 찬양하는 사람들로 타락해갔다. 문인들 역시 글로 일제가 벌이는 전쟁을 위해 부역했다. 목사들은 각 교단 총회에서 신사 참배 결의안을 통과시키고, 심지어 교회가 예배를 드리며 일본 황궁을 향하여 허리 굽혀 절하는 궁성요배 순서를 갖기도 했다. 1930년대 말부터 한반도 어디에도, 심지어 예배당에도 하나님의 말씀이 임할 공간이 없었다. 다만, 감옥이 있었다. 감옥엔 훼절하지 않고 끝까지 저항하거나 부역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육사가 있었다. 



이육사는 스물 네 살 되던 해, 1927년 “10월 18일에 장진홍 의거에 엮여 들어가 1년 넘는 동안 고문과 옥살이”를 시작했다. 스물네 살, 처음 감옥에서 받은 수인번호가 264였다. 자신의 수인 번호로 이름을 삼은 이육사는 17번째 감옥에서 죽을 때까지 요한처럼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였다. 요한이 감옥에서 죽었던 것처럼 이육사도 끝내 베이징에 있는 감옥에서 1944년 1월 16일 나이 마흔에 순국했다. 동생 이원조가 《자유신문》에 1945년 12월 17일에 발표한 이육사의 유고《광야曠野》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렷스랴

모든 산맥山脈들이
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때도
참아 이곧을 범犯하든 못하였으리라

끈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季節이 픠여선 지고
큰 강江물이 비로소 길을 열엇다

지금 눈 나리고
매화향기梅花香氣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白馬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曠野에서 목노아 부르게하리라


광야曠野의 광曠은 비어있다는 뜻이다. 광야는 빈 들이다. 옛날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였던 빈 들, 감옥에서 이육사는 자신에게 명령한다.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씨를 뿌려도 겨울이 계속된다면, 계절이 바뀌지 않는다면 싹은 트지 않는다. 이육사는 빈 들을 흐르는 강물을 보면서 계절이 바뀌고 있음을 믿는 성싶다. 산맥도 범하지 못한 빈 들을 굽이쳐 흐르는 강물 소리를 들으며, 가난한 노래 부르길 포기하지 않는다. 사람은 계절을 밀어낼 수도 없고 당길 수도 없다. 계절은 가는 것이고, 오는 것이다. 계절처럼 제국은 가고, 천국이 올 것이다. 악한이 다스리는 제국은 가고, 초인이 노래하는 천국이 올 것이다. 


식민지 수인이 불렀던 가난한 노래를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목노아 부르게”된다면 더 이상 가난한 노래가 아닐 터다. 이육사의 가난한 노래는 아득하지만, 초인의 쩌렁 울리는 노래는 가득할 것이다. 노랫소리에 광야를 덮은 눈도 녹아내리고, 이육사가 뿌렸던 씨알도 싹틀 것이다. 


정통 제사장의 후예였으나 성전에 갇히지 않았던 요한은 헤롯의 감옥에서 자유했다. 이육사도 제국의 족쇄에 매여서야 자유했다. 진리가 자유케 한다. 감옥에서 요한과 이육사는 자유했다. 엄혹한 시절 감옥은 진리가 충만한 유일한 공간이다. 지금 진리는 어디에 충만할까. 감옥에 갇히기도 여의치 않은 지금, 빈 들이 어디인지 분별 못하는 지금, 어디에 있어야 진리에 닿을 수 있을까. 옛날 성전에 임하지 않았던 하나님의 말씀이 지금 우리 모이는 교회당엔 임하실까.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은 아직 멀리 있는데, 우리 노래는 벌써 찰지다. 



글/김영준

민들레교회 목사다. 전라도 광주에서 자랐고, 서울 이문도과 광장동에서 놀았다. 열심히 공부할 걸, 후회하는 중년 아저씨다. 김포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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