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리뷰(오트밀)군필자가 아니어서 쓸 수 있는 드라마<D.P.>리뷰 – 변화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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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군대 가던 날을 잊지 못한다. 군대 가기 전에 먹고 싶은 거 다 먹겠다며 100킬로에 육박하는 몸무게를 준비해 놓았던 녀석. 학교 수업을 듣고 있는 중에 부모님과 논산 훈련소로 향하는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고, 나는 강의실 밖에서 휴대폰을 붙들고 건강히 잘 지내야 한다며 목 놓아 울었다. 수화기 너머의 동생도 같이 울었고, 우리의 이별은 그렇게 애절했다. 도대체 군대가 뭐길래 그 시절 헤어짐이 그렇게도 슬펐을까. 동생은 훈련소 후, 강원도 비무장지대 GP로 배치되었고 전방의 외롭고 고립된 부대였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배치되기 몇 년 전, 김일병 사건이 일어났던 부대여서 친구들보다 편안한 군대생활을 했다고 전해 들었다. 인간 개인의 자유가 제한되고 외부로부터의 관계가 단절된 2년여간의 시간을 말 그대로 존버하기 위해서 대부분이 20대 초반인 청년들은 타의로 강제적인 이별을 경험하고 권력구조 속 군림과 복종을 습득한다. 자유와 사유를 헌납해야 평화를 보장받는다는 ‘노예의 평화’를 군대 안에서 체화시키는 것이다. 사유하지 않는 강제의 삶이 평안이라 느낄 때 인간의 인간성은 무력해진다.


‘하이퍼리얼리즘’1)이란 찬사를 받으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D.P.를 보며, 내 가슴을 긁어낸 장면 중 제일은 다름 아닌 인트로였다. 갓 태어난 아이가 돌을 맞이하고, 어른들 앞에서 재롱 잔치하는 유년시절을 거쳐, 청소년이 되고, 사랑과 미래를 고뇌하는 청춘의 시간을 만끽하다가 모두가 같은 까까머리를 하고(마치 산부인과 신생아실에 똑같은 모습으로 누워있는 까까머리 아가들처럼) 훈련소에 모이는 그 장면. 한 존재의 성장이 ‘군대’라는 시커먼 지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듯한 이 씬은 관객에게 징집의 폭력성과 불합리를 아련히 주지시키며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들을 예상케 한다. 군 내부의 모습과 탈영에 대해 다룬 이 드라마 안에서 우린 무얼 느낄 수 있을까. 교회가 D.P.와 만날 수 있는 지점은 어디일까.

 

# 군대: 자유 그리고 억압

이 드라마의 매 회는 ‘병역법 3조 1항’이 명시되면서 시작된다. 내용인 즉, ‘대한민국 국민인 남성은 ‘대한민국 헌법’과 이 법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병역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여야 한다.’는 것. 그렇다면, 대한민국 국민인 모든 남성은 병역의 의무를 수행할까? 그렇지 않다. 모든 국민이 병사가 되어야 한다는 1950년 국민개병제 도입 이후로, 돈으로 병역을 면제하는 일이 허다했다고 한다. 모든 남성이 군대에서 현역으로 복무하는 것이 아니며, 비리, 거부, 기피, 특례를 비롯해 당대의 인구수, 학력 구조, 고용시장의 상황에 따라 조절되는 것이다.2)  극 중에서도 돈과 지위로 병역을 면제받은 무리들 혹은 면제받지 못했어도 군대 안에서 공공연하게 건드릴 수 없는 계급이 되어버리는 존재들이 등장한다. 반대로, 병역의 의무를 피할 수 있는 지위와 재화를 가지지 않은 이들은 징집된다. 부모님과 선생님의 조언을 소 귀에 경읽기로 흘려보냈던 자유로운 영혼들이 바로 그 자유가 억압된 시공간, 촘촘한 위계서열 안에서 ‘선임이 시키는 건 무엇이든지’ 하는 충성스런 개3)가 된다. 


그것이 D.P.의 악독한 선임 황장수(신승호)가 저지르는 방독면을 씌우고 물을 붓는 물고문이거나, 가정형편이 어려운 후임병 안준호(정해인)의 어머니의 편지를 읽으며 ‘너희 집 거지냐’고 모욕하는 것이거나, 근무 중 자위행위를 강요하거나, 전기 파리채를 물 부은 무릎에 작동시키는 전기고문 등의 심각한 가혹행위라 할지라도 군대 안에서 이것은 ‘인권침해’로 인정되지 못한다. 오히려, 가혹행위를 경험한 무사유의 청년은 다시 또, 가혹행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평범한 악’이 된다.

인간 개인의 자유와 존엄을 억압하고 제한하는 이 권리를 누가 누구에게 준 것인가? 타인을 무참히 짓밟아도 된다는 허용은 누구로부터 받아낸 것인가?

 

# 군대: 남성성 그리고 여성성

남성뿐 아니라, 여성들에게까지 만연한 “쟤, 적응 못하는 거 보니까 군대 안 갔다 온 게 분명해”, “남자는 군대에 다녀와야 남자가 되지.” 등 남성성의 정상성이 군대에서 구성된다는 논리, 군대 간 남성과 가지 않은 남성의 거리를 우리 스스로 두는 이 현상이 이토록 자연스러운 것은 사회구조와 군대, 남성의 자리를 우리 스스로 어떻게 위치시키고 있는지 확인하게 한다.

주목할 만한 것은, 여기서 ‘여성다움’, ‘여성성’의 역할이다. D.P.를 본 주변의 남성들과 감상을 나눴다. 다양한 의견이 오고갔지만 내게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온 내용은 ‘군대가 힘든 점이 많이 있지만 자신들은 재미있었고, 고참들도 사람 봐가면서 괴롭히지 ‘개길 수 있는’ 후임들은 괴롭히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동시에, 군의 위계와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탈락되는 이들을 ‘보편에서 벗어난 남성, 여성스러운 남성’으로 지칭하면서 그들을 겪어봐야 안다고 말하는 남성들의 너무도 확고한 경험적 신념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실제로, <D.P.>를 비롯해 군내부를 다룬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는 군대의 위계질서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들을 대부분 ‘여성적인’ 모습으로 재현한다. 코골이가 심해 선임으로부터 방독면 물고문을 당한 준목(김동영)과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혀 선임의 가혹행위를 다 받아내고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석봉(조현철)과 승영(서장원, 용서받지 못한 자) 모두 강인함, 인내, 당당함, 용기, 힘과 같은 남성성과는 반대되는 부정적 프레임으로써의 여성성을 뒤집어쓰고 있다. 그들은 군대의 비합리적이고 폐쇄적인 위계문화에 순응하지 못하는데, 내가 이 가혹행위를 당하더라도 내 후임에게는 이런 문화를 물려주지 않을 거라는 세심한 의지가 이들에게 있다. 

이들 대부분은 온화하고, 생각을 멈추지 않고, 겁이 많고, 내향적인데, 군대문화는 이들이 가진 소위 ‘여성성 혹은 사려 깊음’에 모독을 가한다. 여성학자 권김현영은 이를 “남성성이 여성을 비하함으로써 구성된다고 설명하는데, 남성 문화에서 ‘그 남성’을 여성과 동일시시킴으로써, 그를 남자가 아닌 존재, 결핍된 존재로 간주”하는 것이다. 즉, 국가를 지키는 자신들을 즐겁게 해주는 여성적 유희 대상으로 그들을 소비, 착취한다. 이것은 김권현영의 말대로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는 여성의 성이 필요하다는, 기지촌 성 매매나 군 위안부와 같은 조공 심리’가 한국 남성의 무의식에 뿌리 박혀 있음을 반증하는 현상4)일지 모른다.

 

# 군대 : 폐쇄성과 폭력성

<D.P.>의 주인공 준호(정해인 분)의 입을 통해 드라마는 끊임없이 같은 질문을 던진다. ‘군대에 안 왔으면 탈영할 일도 없지 않았을까요.’, '군대는 과연 바뀔 수 있을까.' 군대에 다녀온 내 주변의 남성들은 이 질문에 주저함 없이 ‘No’를 외치고, 극의 절정으로 치닫는 결말에서 석봉도 “저희 부대에 있는 수통 있잖습니까. 거기 뭐라고 적혀 있는지 아십니까? 103. 6.25 때 쓰던 거라고. 수통도 안 바꾸면서 무슨..”이라며 냉소한다. 유구하게 대물림되어온 군대의 폭력과 방관을 끊을 수 없다는 사실에 군대에 다녀온 누구나가 동의하는 것이다.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개인은 국가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 시기에 남성 개인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며 국가의 명예를 드높이는 일, 스스로 군사력과 전투력을 향상시키는 일은 남성적 민족성의 핵심이었다.5) 극도로 불안한 전시상황의 군사력과 전투력을 위해 개인의 생각과 감정을 소외시켜야만 했다. 군대 내 가학행위는 상명하복을 위한 위계적 조직에서 생겨나고, 위계적 조직은 전쟁을 효율적으로 수행해야 할 필요에서 생겨났다. ‘전시상황’이라는 환경적 요인이 위계와 질서라는 명명 하에 폭력과 방관을 유지시켜 왔을 것이다. 그런데 이 불안한 전시상황은 여전히 유효한가. 군대는 원래 그런 곳이라는 논리는 적절한가. ‘지구 상 유일한 분단국가’라는 사실은 폭력과 방관, 억압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D.P.>의 석봉과 <용서받지 못한 자>의 승영에게 누가 죽음을 주었는가. 왜 국가의 시스템이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것인가. 이 시스템의 무엇이 문제인가. 우리 군의 끊임없는 문제는 폐쇄적인 공간과 네트워크에서부터 비롯된다. 여전히 장병들의 기본권, 생명권이 무시되고 내부의 사건을 축소하고 은폐하는 조직. 인권 플랫폼과 민주주의 원칙이 적용될 수 없는 “특수성”을 지닌 조직으로 공공연하게 인정받고 있는 이 시스템. 이제는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 변화의 가능성, 바꿔야 할 이유

무엇보다도 군대문화의 가장 주요한 문제는 ‘전체주의’6)로 포괄된다. ‘군사력’과 ‘안보’라는 전체의 존립과 발전을 위해 개인의 자유가 억압되어야 한다는 군대의 이념과 체제가 개인의 자유와 사유를 소거하고 다름을 수단화하거나 멸시하는 문화를 만들어냈다. 군대의 전체주의적 시스템에 문제를 제기하면 가장 많이 듣는 소리는 강제와 억압이 없이는 전쟁 상황의 긴급한 명령과 수행에 문제가 생긴다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한 개인이 명령을 듣고 그대로 복종하는, 생각 없는 기계가 되어야만 군사력과 안보가 유지, 발전된다는 소리인데 정말 ‘그래야만’ 할까. 뭐, 징병제가 시작된 1949년 이후로 한 번도 전체주의적 병역문화가 바뀐 적이 없으니 개인의 자유로움이 존중되는 분위기에서의 군사력과 안보의 유지력이 어땠는지 파악할 수는 없겠다. 하지만 지속해오는 전체주의적 병역문화로 인해 얼마나 끔찍한 일들이 발생되고 있는지는 잊힐만하면 보도되는 뉴스 기사와 <D.P.>와 같은 ‘하이퍼리얼리티’ 콘텐츠들을 통해 누구나 알고 있다. 그렇다면, 바꿔야 할 이유는 충분하지 않은가. 물론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비극적인 일들의 까닭을 하나의 깔때기로 바라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교차적인 층위들이 겹치고 겹쳐 궁극의 사건을 만들기 때문이다. 

군에서 일어난/일어나고 있는 김일병, 윤 일병, 김 병장 사건, 승영과 조석봉 사건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 미시적인 접근들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결국 거대한 힘을 만나게 되는데(가령 전술한 ‘전체주의’와 같은 것들) 그것은 개인의 노력은 헛수고가 되게 하는 큰 힘이다. 나는 군대를 없애자는 것이 아니다. ‘군사력’, ‘안보’와 같은 거대담론 아래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힘의 관계 이외에 별다른 존재가 아닌, 전체주의가 가져다 놓은 그 ‘도구적 관계성’의 시스템을 폐기하자는 것이다. 목적이 존재보다 우선이 될 때, 우리는 타 존재를 소외시키게 된다. 그러나, 레비나스의 말처럼 타자는 얼굴로 다가오고 그 얼굴은 스스로의 의지로는 결코 피할 수 없으며, 타자의 얼굴은 우리 각자에게 책임감 있는 수용과 섬김을 요청한다. 그 피할 수 없는 수용과 섬김의 요청을 전체나 목적이라는 이름 아래 그저 묻어두고 외면했을 때, 우리는 끝내 함께 외면되고 말 것이다.


# 그래서, 우리는?

극 중 군대에서 후임들을 악랄하게 괴롭혔던 황장수(신승호)는 전역 후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편의점 점주는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를 진열대에서 빼는 황장수에게 "야, 유통기한 지났다고 바로바로 치우면, 적자 나면 네가 메꿀 거야? 아씨, 군필이라 뽑아놨더니만." 이라고 다그치며 불법 행위를 지시하고, 그 앞에서 황장수는 어떤 반문도 제기하지 못한다. 군대에서 누구보다 악랄했던 그도, 군대처럼 부당한 사회의 위계적 갑질에 쉽게 저항하지 못하는 약자가 된다. 이 장면은 황장수가 평범한 인간임과 동시에, 앞서 논의했던 군대의 문화와 체제는 곧 사회의 단면이라는 현실을 보여주는 리얼리티였다. 위계와 힘의 논리, 전체주의라는 사상과 체제, 폐쇄적인 네트워크 그리고 미비한 변화 가능성은 비단 군대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군대를 비롯한 가정, 학교, 사회라는 공동체의 거대한 힘은 때때로 사유하는 자유로운 개인을 죽이고, 나아가 죽게 만들고, 그저 죽도록 내버려 둔다. 그럼, 교회는 어떠한가.

지난 7월, 문화선교연구원에서 열린 웨비나의 발제자 중, 여성목사님 한 분이 ‘주보 글씨체 하나 바꾸는 일에도 설득하고 씨름해야 하는 실전의 세계’로 교회의 변화 속도를 설명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6.25 때 수통을 그대로 쓰고 있는 군대의 변화 가능성을 냉소한 조 이병보다는 희망적이긴 하지만, 교회의 ‘변화’ 또한 얼마나 더딘지를 강조하는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D.P.>를 보며 생각한다. 교회는 맹목적인 신앙, 비성경적인 신앙주의로 성도 개인의 자유와 사유를 소거하고 있지는 않은지, 혹여 교회의 문화 안에 다가오는 낯선 타자의 얼굴들을 외면해버리는 배제와 혐오를 저지르고 있지는 않은지, 교회의 문화와 공간은 폐쇄적이지 않은지, 교회의 건강하지 못한 위계문화에 순응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부정적 프레임으로의 여성성을 덧씌워 소외시키고 있지는 않은지를.... 

혹, 교회가 수많은 가나안 성도들과, 그 많은 ‘상처’의 가해자로써 자리매김하고 있지 않은지 겸허히 돌아보는 자세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나아가, 군대 안에서 자유를 잃고, 오직 죽음으로만 자유를 말할 수 있었던 <D.P.>의 석봉과 스러져가는 병사들의 모습은 흡사 출애굽 전의 히브리 노예들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는 교회의 역할이 애굽과 같은 문화와 체제, 그리고 그 아래에 있는 이들에게 출애굽의 자유를 선포하는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자유의 선포는 어디서부터 시작될까. 그것은 고통을 등지고 달아난 탈영병들을 ‘찾아가’ 그들의 삶과 목소리에 ‘귀 기울여준’ 준호(정해인)와 호열(구교환)의 진정 어린 마음의 실천으로부터 시작될지도 모른다.

 

 정수인 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

 

 


1)  HyperRealism, 극사실주의: 주관을 극도로 배제하고 사진처럼 극명한 사실주의적 화면구성을 추구하는 재현주의 경향의 예술양식.

2) 김형준. 점점 작아지는 군대…나라 지킬 '군인'이 없다,  노컷뉴스, 2021.09.04 일자.  https://m.news.nate.com/view/20210904n01833

3) 실제로 D.P.의 원작 웹툰 제목은 ‘D.P. 개의 날’이다.

4) 권김현영· 루인· 엄기호· 정희진· 준우· 한채윤(2017).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 서울:교양인, 60-61.

5) 권김현영· 루인· 엄기호· 정희진· 준우· 한채윤(2017).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 서울:교양인, 136.

6) 전체주의란, 개인의 모든 활동이 이념, 종교, 민족, 국가와 같은 전체 대중의 존립과 발전을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이념 아래 개인의 자유를
억압해야 함을 주장하는 극단적인 대중주의 성향의 정치 사상 및 체제를 의미한다.
 (나무위키: https://namu.wiki/w/%EC%A0%84%EC%B2%B4%EC%A3%BC%EC%9D%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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