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 꽃이 피었습니다'다크히어로'에 환호하는 사회적 현실에 대해 - 드라마 <모범택시>를 보고

2021-05-26
조회수 2832


*참여자

사회: 임주은 전도사 (문화선교연구원 연구원)
패널: 김지혜 목사 (평화나루도서관장)
 정수인 전도사 (문화선교연구원 기획간사)


임주은: 안녕하세요~오랜만에 돌아온 코너, ‘수다꽃이 피었습니다’ 시간입니다! 오늘은  tvN 드라마 <모범택시>를 보고 함께 수다 꽃을 피워보려 하는데요.

문화선교연구원(이하 문선연)에서 새롭게 일하기 시작하신 정수인 전도사님, 그리고 한동안 수다꽃을 이끌었었지만 지금은 평화나루도서관장으로 계시는 김지혜 목사님을 모셔봤어요! 오늘은 특별히 우리가 <모범택시>의 애청자들로 모였는데요. 어떤 수다가 펼쳐질지 기대가 됩니다!! 

먼저 제가 드라마 <모범택시>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 해 볼게요. <모범택시>의 제작진은 “정의라는 것은 사회나 공동체를 위해서 마땅히 해야 할 옳고 바른 길인데, 이 시대에 그 정의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의문을 품으며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해요. 죄를 지은 가해자는 멀쩡하게 돌아다니고, 피해자들이 오히려 가슴앓이하는 고구마 같은 답답한 사회의 현실 속에서 <모범택시>라는 픽션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사이다를 선사하려는 것이죠.

이런 내용이다 보니, 각 에피소드마다 실제 우리 사회에서 공분을 일으켰던 범죄 사건들이 오마주 되어 등장하는데요. 지금까지 1화부터 12화가 공개되었고, 앞으로 총 4화만 남겨두고 있는 상황입니다. 남은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고 마무리될지 흥미진진한대요.



1. 여러분들은 <모범택시>를 왜 즐겨보게 되었나요? 이 드라마의 매력을 한 가지씩 말씀해 주세요.


김지혜: <모범택시>는 1화부터 흡입력이 대단했어요. 아무래도 이 드라마를 맡은 박준우 감독이 SBS <그것이 알고싶다>와 MBC <궁금한 이야기Y>의 연출자였다 보니, 우리 현실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범죄 사건들을 리얼리티 하게 녹여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현실에서는 답답하고 분노가 치밀었던 사건들이 드라마 안에서는 복수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해준다는 게 정말 좋았어요. 그런데 사회적 메시지가 강렬하게 들어가 있는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에게 윤리적으로 다가가기보다는, 치밀하게 짜여진 연기, 연출, 각본으로 시청자들로 하여금 몰입하게 한다는 게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아요.


정수인: 어느날 집에서 조성희 감독의 영화<탐정 홍길동>을 시청하고 배우 이제훈의 캐릭터와 연기가 너무 좋아서 여운이 남아 있었어요. 그런데  TV를 돌리다가 이제훈 배우가 <탐정 홍길동>에서와 비슷한 캐릭터로 드라마에 나오는 거예요. 그게 <모범택시>였어요. 1화에서부터 사회적 이슈들이 등장했고, 거기에 추격씬, 격투씬 같은 만화적 요소가 더해져서 강력하게 몰입할 수 있었어요. 영화 <배트맨>을 연상시키는 세트라던가, 설정, 내용이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다크 하지 않아서 다음 회차가 계속 궁금해졌죠.


임주은: 저는 이 드라마 각 에피소드에 등장했던 범죄 사건들 중에 평소에 굉장히 관심 갖고 있는 사건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아무리 그 사건들에 대해 심각성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주변 사람들에게 설명하려고 할 때는 한계를 느끼곤 해요. 보통 사람들은 그러한 범죄 사건들이 우리 삶과 가까이 있다고 여기지 않잖아요. 그래서 공감하거나 크게 관심 갖기도 어렵고요. 그런데 <모범택시>는 우리 사회가 '나의 일'이라 여기지 않았던, 그러나 분명 사회 속에 만연해 있는 추악한 범죄들을 조명해주고 자세히 다뤄주잖아요. 그게 고마웠어요. 또 흥미로웠던 건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겨라”(롬12:21) 라는 성경 말씀이 등장한다는 거예요. 그 장면을 보자마자 “어? 이거 기독교에서 흔히 말하는 ‘용서’에 대한 개념을 말하려는 건가?” "어떻게 풀어나갈까?"라는 궁금증이 들어서 더 열심히 보게 됐어요.

 


2. <모범택시>를 보면서 각자 마음에 와닿았던 명장면이나 명대사가 있다면 소개해주시고, 그게 여러분에 마음에 가장 와닿았던 이유는 무엇인지 말씀해주세요.

 

정수인: 저는 3~4화에 등장했던 에피소드인 ‘세정고 학교폭력사건’에서 명대사를 뽑아봤어요.

“누군가에겐 학창 시절의 작은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죽고 사는 문제가 될 수 있으니까...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죄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건 아니야. 누가 돌을 던졌건 가라앉는 건 마찬가지니까”

이 에피소드를 보고 난 후에, 소년법에 대해 궁금해졌어요. 찾아보니, 살인, 폭행, 강도, 사기 같이 아무리 극악무도한 강력범죄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그게 청소년이면 겨우 단기로는 7년, 장기로는 15년밖에 처벌받지 않더라고요. 분명 가해자가 누가 됐든 간에 범죄를 당한 피해자에게는, 위에 대사에서처럼, 동일하게 아프고 고통스러운 일인데.. 단지 가해자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그 대가가 줄어든다는 현실이 속상하더라고요. 소년이란 이유로 지금과 같은 정도의 형벌은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잔인한 범죄 처벌에는 나이를 고려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학창 시절의 피해로 인해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이들에게 이 드라마가 어떤 방식의 치유, 위로가. 또 가해자들에게는 진실한 뉘우침의 실천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봐요.

 

김지혜: 저는 5~8화의 에피소드인 ‘유데이터 직원 폭행 사건’, ‘불법 동영상 유포 사건’에 등장했던 대사를 꼽아봤어요.

“저 동영상들 하나하나가 전부 사람 목숨이야.” 

지금껏 우리 사회가 얼마나 사람 목숨에 대한 무게를 크게 인식하지 못하고, 자기의 가벼운 유희가 우선시 되는 분위기에서 살아왔는지, 그런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대사였던 것 같아요.

사회에서 일어나는 폭력을 피라미드로 보면, 가장 하위 단계는 편견, 교묘한 차별 등이 있고 점차 위로 갈수록 ‘구조적 차별’, ‘폭력적 행위’ 등이 있어요. 그리고 가장 상위에 있는 것은 바로 ‘제노사이드(genocide)’, 즉 집단 말살이에요.

저는 이 시대에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불법 촬영물이 다시 불법으로 공유, 유포되면서 여성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 현상들이 거의 제노사이드 수준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역사적으로 실제 일어났던 집단 학살과 다른 게 있다면, 권력유지를 위해 집단적으로 자행되었던 폭력이 이제는 단순히 개인의 유희를 위해 너무 가볍게 자행되고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피해자와 관련 없는 개인과 집단은 사회에서 방관하고 있고, 바뀌지 않고 더욱 심화되고 있는 이러한 현실을 “동영상 하나하나가 사람 목숨”이라는 대사로 꼬집고 있는 것 같았어요.

 

임주은: 제가 뽑은 대사는 두 개인데요. 하나는 마찬가지로 5~8화에 등장했던 장면으로 유데이터 회장 박양진이 자신의 일을 방해하는 김도기에게

 “미친놈이네, 너 걔의 뭐야? 너 안정은 가족이야? 아님 남친이야?”

라고 말하는 장면이었고, 두 번째는 11~14회에 등장하는 에피소드 ‘김명철 실종사건’에서 김도기가 검사 강하나에게

“초범이라고 깎고, 심신 미약이라고 깎고, 반성한다고 깎고. 근데 그거 알아요? 피해자들은 그딴 거 신경도 안 써.”

라고 말했던 장면이에요. 이 두 대사는 드라마가 얼마나 ‘피해자 중심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지를 보여줘요. 사실 이러한 범죄 사건들은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시민들이 심각성을 몰라주면 해결될 수가 없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오로지 ‘가족’이나 ‘절친한 친구’만이 피해자의 아픔에 공감하고 관심을 갖고, 그 외에 사람들은 잘 관심 갖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을 반증하며 꼬집는 대사 같았어요. 그리고 실제 피해자들은 가해자들이 법의 테두리 안에서 초범이라는 이유로, 심신 미약이라는 이유로 감형되는 과정이나 절차들. 그런 것은 피해의 심각성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거든요. 오히려 피해자들을 더 고통스럽게 할 뿐이죠.

그런 의미에서 김도기는 복수를 하며 사건을 해결할 때 오로지 피해자 중심적인 해결 방법을 택해요. 예를 들어 ‘불법 동영상 사건’ 때는 동영상을 계속해서 불법으로 유포하는 원산지인 광산을 찾아 폭파한다던가. ‘보이스 피싱 사건’ 때는 오로지 피해자들의 돈을 찾는 데 온 힘을 기울이죠. 그는 피해자들이 진짜 원하는 것을 위해 싸워요.

김도기라는 역할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범죄사건, 그리고 그 피해자들의 삶에 대해 관심 갖지 못했었는지, 그들에게 관심과 공감해줄 누군가가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는지를 깨닫게 되는 것 같아요.


김지혜: 맞아요. 같은 맥락인데요. 강하나 검사(이솜)가 우연히 ‘피해자 생존모임’에 갔다가 범죄 피해자와 가해자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던 모습이 참 인상 깊었어요. 그리고 11화에서는 가족 같은 동료가 범죄 피해를 당해 죽은 것을 경험하며 피해자 중심적으로 한 번 더 생각이 바뀌게 되잖아요. 검사로 살면서 지금껏 정의라고 생각해왔던 것에 조금씩 균열이 일어나는 지점인, 이 장면이 저는 명장면이라고 생각해요.

 

정수인: 또 드라마를 피해자 중심에 서서 그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해자로 등장하는 악역들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않고 있다는 점도 좋았어요. 사실 극작품 대부분이 악역에게도 인간적인 서사를 입히죠. 시청자들로 하여금 ‘저 가해자도 범죄를 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다’라는 이해를 요청하듯이 말이에요. 그런데, 이 작품은 의도적으로 그 장치를 뺀 듯해서 좋았어요. 그 의도가 전체 플롯의 빈약함으로 드러나지 않고, 오히려 드라마 취지를 흩뜨리지 않는 장치가 된 것 같아서요.

 



3. 드라마 <모범택시> 이외에도 요즘 다른 드라마나 영화에서 ‘사적 복수’, 즉 “악을 악으로 갚는 것”에 대한 내용이 자주 등장했어요. 이러한 대중문화계의 흐름이 사회적으로 갖는 함의가 있을 것 같아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임주은: <모범택시> 속 강하나 검사는 굉장히 열정이 넘쳐요. 맡는 사건마다 진심을 다해 해결하려고 애쓰는 인물이잖아요. 그런데 그런 성격의 검사마저도 ‘법 테두리’ 안에서 사건을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피해자의 마음을 다 풀어줄 순 없는 거죠. 그런데 오늘날 사회에서는 누가 봐도 가해자를 위한 법과 같이 느껴지는 사건과 결론이 많이 있어요. 아무리 법의 심판을 받는다 하더라도 실제 범죄에 비하면 제대로 벌을 받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아요. 더 나아가 아무리 범죄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가해자가 법을 잘 알고 권력이 있어 법을 이용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법망을 쉽게 빠져나가기도 하고요. 요즘은 그런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사람들의 분노가 극에 달한 것 같아요.

 

정수인: 그런데 또 여기서 갈등도 있어요. 아무리 통쾌한 사적 복수라 하더라도, 법 테두리를 벗어난 것이라면, 사회의 질서를 무너뜨릴 위험이 다분하잖아요. 제가 즐겨봤던 최근 드라마 <괴물>에서는 이동식 경사(신하균)가 복수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범죄에 가담하게 되는 장면이 나와요. 그런데 그 사건 후가 중요하다고 생각되는데요. 이동식이 범죄 가담을 인정하고, 감옥에 감으로써 복수 과정에서 파생된 또 다른 범죄에 대해 책임을 지거든요. 이런 결론을 통해 드라마는 시청자들에게 사적 복수는 피해자 입장에서 카타르시스를 주지만, 현실적으로는 완벽한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 같아요. 심정적으로는 사적 복수에 대해 공감하고 동의하고 지지하지만, 그것이 과연 현실적이고, 범죄의 악순환을 막을 유일한 방법일까 하는 회의감이 드는 거죠. 모범택시의 결론이 어떻게 풀려갈지 궁금하네요.


김지혜: ‘세정고 학교폭력사건’ 에피소드 결말을 보면, 김도기가 학교폭력 최고 가해자인 학생의 손에 수갑을 채워 나무에 걸어놓잖아요. 여기서 카메라가 클로즈업해서 그 학생이 계속해서 힘을 주고 흔들면서 수갑을 풀려고 하는 모습을 보여줘요.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저 학생은 언제든 수갑만 풀어지면 다시 가해자가 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분명 사회의 부조리한 현실은 비극적이지만, 가해자를 사회에서 분리시켜버리는 것만이 해답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폭력을 단순히 폭력으로 잠재우는 방식이 사회의 정의가 이루어지는 데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까요? 착한 일은 착한 일로, 악한 일은 악한 일로 되갚는 ‘응보적 정의’는 보편적 기준으로 볼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어떤 범죄를 바라볼 때 사람마다 그에 상응하는 처벌의 강도가 다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그런 의미에서 ‘죗값’이라고 말하는 응보적 정의에는 한계가 있어요.

피해자의 응어리를 풀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하나만 말하기보다, 굉장히 이상적일 수 있는 이야기지만, ‘모두가 회복될 수 있는 시스템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를 고민할 필요가 있어요. 드라마 <빈센조>의 경우, 악한 자가 더 악한 자를 처단해요. 분명한 건 오늘 우리 사회에 폭력이 범람해 있고, 이러한 대중문화 콘텐츠가 그런 분노와 폭력이 일상화되는 부분에 시너지를 줄까 봐 우려가 돼요. 그런 의미에서 응보적 정의가 아닌 ‘회복적 정의’를 말하고 싶어요. 물론 ‘너무 쉬운 용서’를 말하고 싶은 건 아니에요. 그것보다 조금 더 진지하게 현실적으로 우리 사회가 회복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처벌과 정의에 대해 고민하고 싶어요.


임주은: 아마 이 드라마도 그 부분에 대해 깊게 고민하고 있는 것 같아요. 처음엔 사적 복수에 대한 카타르시스만을 주는 것 같지만, 회차가 거듭될수록 극 중 장성철(김의성)의 방법이 정말 옳은 것일까에 대한 질문을 계속 던지죠. ‘사설 감옥’을 운영하고 있는 대모 백성미(차지연)가 악의 카르텔의 최고 구조에 있다는 걸 점점 보여주더라고요. 사적 복수도 폭력의 일환이기 때문에 최초 범죄가 일어난 폭력의 크기보다 더 큰 크기의 힘과 폭력이 필요해요. 소위, 짱짱한 뒷배가 필요한 일이니까요. 그 뒷배를 이용해 온 장성철이 결국 좋지 않은 결말을 맞이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드라마는 “사적 복수만이 시원한 답이다!” 혹은 “법 테두리 안에서 해결될 수 있게 법에 맡기자!”라고 말하려는 것 같지 않아요. 양쪽 다 불온전하다는 것을 꼬집어요. 이런 온전한 선과 온전한 악이 구별되지 않는 애매모호함 속에서 어떤 정의를 이뤄갈 것인지, 선택하라는 질문을 계속 시청자들에게 던지는 것 같아요.

드라마의 모든 캐릭터들은 범죄 피해로 인해 가족을 잃었다는 슬픔을 가지고 살아요. 물론 우리가 여기서 특정 힘을 가진 장성철이나 강하나 검사, 김도기 기사가 될 순 없지만.. 그 외에 등장인물들, 안고은, 박주임, 최주임처럼 그저 평범한 시민이지만, 동시에 범죄 피해에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슬픔을 적극 공감하고 ‘내 일’처럼 여겨줄 수 있는 사람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김지혜: 특정한 소수의 ‘다크히어로’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기보다는, 평범한 우리 모두가 우연한 계기로 영웅이 될 수 있고, 서로에게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모범택시>와 같은 콘텐츠가 시청자들에게 그런 희망을 불어넣어 줬으면 좋겠어요.

 

정수인: 저도 시민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걸 말하고 싶었는데요. 어떤 확실한 ‘법’이나, 한 명의 ‘영웅’이 아니라,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주체로서 연대하는 ‘시민들’이 가장 중요한 존재들이라는 걸요.

 



4. 범죄 피해자는 고통받으며 살아가고, 그에 반해 범죄 가해자는 ‘마땅한’ 처벌을 받지 살아가는 듯한 이 사회의 현실을 생각하며, 종교가 사회의 정의를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과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정수인: 극 중 장성철의 집이 나오는 장면에서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12:21)는 말씀 구절을 계속 비춰줘요. 저는 이 의미를, 악을 해결은 하되 어떤 선한 방식으로 그것을 처단할 것인가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보았어요. ‘복수’할 것인가? ‘용서’할 것인가? 여기서 ‘선’은 아무래도 용서를 이야기할 것 같아요. 그런데 기독교에서 말해져 온 ‘용서’ 개념, 즉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소위 ‘쉬운 용서’의 개념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진 않아요. 어쨌든 악을 선으로 “이기는 것”이니까요. 덮고 끝내는 게 아니라 ‘해결’하는 것을 강조하는 거죠.


김지혜: 지금껏 드라마나 영화에서 마치 기독교가 범죄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종용하는듯한 장면이 자주 등장해 왔어요. 피해자들이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먼저 용서를 하면 마음에 평화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한 거죠. 이제는 우리가 개인과 공동체 그리고 사회가 함께 진정한 평안을 이룬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 의미를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임주은: ‘범죄 피해자’라는 개념이 참 어려워요. 세상에 용서하기 어려운 일이 많은데 범죄를 입는 것만큼 고통스럽고 용서하기 힘든 사건은 없거든요. 그런데 기독교는 ‘용서’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종교예요. 아마 예수님도 이걸 예견하셨을 거예요. 가장 극강의 억울함과 분노, 그리고 가장 극강의 용서가 서로 충돌할 것이라는 것을요. 기독교인인 우리는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 속에서 기독교의 교리를 선택하고 녹여내야 할 책임이 있는 존재예요.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신앙적 가치관을 무시할 수는 없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매일같이 ‘용서’와 ‘희생’이라는 개념을 '더 무겁게' 받아들이고, '더 천천히' 해석하고,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 빠르게 해석하고 빠르게 적용하는 것을 멈추자는 거예요. 용서와 희생이라는 신앙적 가치를 이야기 할 때, 자신도도 충분히 ‘소화’를 시키고, 타인에게도 ‘소화’가 될 수 있도록 돕고 힘써야 해요. 

사회적으로 큰 희생의 사건이 있었을 때마다 지금껏 기독교는 남아있는 피해자나 유가족들에게, 어떻게 보면 ‘빠른 용서’를 말하는 우를 범한적이 종종 있었어요. <모범택시>에도 마치 영화 <밀양>을 오마주한 것 같은 장면이 등장하잖아요. 연쇄 살인범이 “신이 나를 용서했으니까 나의 죄는 해결되었다”라고 말해요. 왜 아직도 대중문화에서 하나님에 대해, 기독교에 대해, 기독교인들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지 우리는 그 문제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어요.


김지혜: 예를 들어 성폭력이나 가정폭력 같은 사건이 벌어졌을 때, 사법체계의 도움을 받아야 하잖아요. 그런데 지금껏 사회에서 경험한 기독교는 이런 문제들을 먼저 공동체 안에서 해결하려고 하는 경우가 많았었어요. 물론 기독교인들이 모든 삶의 방식에서 용서를 지향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때로는 해결 방식이 기독교적 용서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 사회적으로 더 다양하고 넓은 범주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 같아요.


임주은: 맞아요. 오히려 이러한 대중문화 콘텐츠들을 거울삼아 교회가 세상에 대한 태도에 대해 조금 더 고민하고, 또 세상과 함께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잡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오늘도 이렇게 드라마 <모범택시>를 가지고 뜨거운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는데요. 범죄 사건들, 피해자와 그 유가족의 고통, 그런 상황 가운데 정의를 세우고 법을 수호한다는 것의 의미. 그리고 시민들의 공감과 연대. 정말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있는 드라마였고 그만큼 우리가 함께 나눌 이야기도 많았던 드라마였어요. 앞으로도 '재미'에 더해 함께 사회적 문제와 현실에 관심을 기울이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좋은 대중문화 콘텐츠들이 만들어지길 바라며 여기서 오늘의 수다를 마무리 짓겠습니다!

2 0
2020년 이전 칼럼을 보고 싶다면?

한국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변화하는 문화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방향을 제언하는 다양한 콘텐츠를 온라인에서 나눕니다.

문화매거진 <오늘>

살아있는 감성과 예술적 영성을 통해 아름다운 삶의 문화를 꽃피워가는 문화매거진 <오늘>(2002~2014)입니다.

시대를 읽고 교회의 미래를 열어갑니다

뉴스레터 구독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뉴스레터 발송을 위한 최소한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이용합니다. 수집된 정보는 발송 외 다른 목적으로 이용되지 않으며, 서비스가 종료되거나 구독을 해지할 경우 즉시 파기됩니다.

광고성 정보 수신

제휴 콘텐츠 정보 등의 광고성 정보를 수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