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의 문화 읽기"이것은 구원과 희망에 관한 이야기다" - 영화 <미나리>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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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 대사 중에 이런 게 있다. 

“돈이 다리미라고. 돈이 주름살을 쫘악 펴줘.” 

돈이 뭐길래, 사람을 이리 들었다 놨다 하는지. 돈이 그어놓은 선을 넘었던 가족은 결국 참혹한 결말을 맞는다.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수상 열풍을 일으키고 제93회 미국 아카데미 6개 부문(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남우주연상(스티븐 연), 여우조연상(윤여정), 음악상)에 노미네이트 되면서 제2의 <기생충>이라 불리는 <미나리> 역시 돈 때문에 울던 한 가족의 이야기다. 독립영화 문법에 익숙지 않은 분이 <기생충> 같은 스릴을 기대하고 <미나리>를 보러 영화관을 찾았다간 당혹스러울 수도 있다. 그 점에서 영화 <미나리>는 향이 강해 호불호가 갈리는 진짜 미나리 같은 영화이다. 생명력이 강해 어디서든 뿌리내리고 잘 자랄뿐더러 오염된 물을 정화시키고 건강에도 좋은 미나리마냥 요즘같이 모두가 힘든 때에 꿋꿋하게 버티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슴 뭉클한 격려와 따뜻한 위로를 안겨주는 아름다운 영화이기도 하다. 

아메리칸드림

“한국에서 했던 말 기억해? 미국에 가면 서로를 구해주자고 했던 거. 서로를 구해주기는커녕 하도 많이 싸워서 애가 이렇게 태어난 건가.” 

아메리칸드림의 부푼 꿈을 안고 한국 땅을 떠난 지 어느새 10년. 하지만 강산이 바뀔만한 시간이 지나도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한국에서 애정 넘치는 눈빛으로 서로를 향해 <사랑해>를 부르던 부부가 서운함을 토로하는 소리를 내뱉는다. 

“그러니까 당신 말은 우리는 서로를 구해주지 못하지만 돈은 할 수 있다?”

80년대 후반 한국의 경제 상황이 나아지기 전까지만 해도 지리한 가난을 탈출하고 자녀에게 더 나은 삶을 살게 해 주기 위해 미국으로 이주한 이들만 7-80년대 매년 2-3만 명이었다. 모니카(한예리)와 제이콥(스티븐 연) 부부도 그들 중 하나였다. 희망도 잠시, 연고도 없는 곳에서 네 가족이 아등바등 살다 보니 지치기도 많이 지쳤다. 무언가 보여줘야 한다는 가부장적 부담을 가진 아빠 제이콥, 꿈을 좇는 남편 대신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에 지쳐가는 엄마 모니카, 아픈 동생을 돌보며 제 나이보다 이르게 어른이 되어버린 앤(노엘 조), 자신을 걱정하는 가족의 염려에 둘러싸여 심장이 멈출까 불안하고 두려운 데이빗(앨런 김), 그리고 할머니(윤여정)까지. 서로 사랑함에도 쪼들리는 형편에 저마다의 부담과 책임으로 위태롭던 이 가족은, 때로 이질적인 세대와 문화의 충돌로 격화되기도 하지만 마침내 하나가 되어간다. 그곳이 어디든 무엇을 하든 서로를 붙잡고 지탱하며 뿌리를 내린다.

 

지극히 미국적이면서 한국적인

<미나리>가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받으면서 미국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갑론을박이 있었다. 그런데 온전히 미국적이라는 것, 한국적이라는 것이 가능한가? 더욱이 태생적으로 ‘이민자의 나라’ 미국에서 말이다. 20세기 들어 더욱 급격히 진행된 세계화는 로컬과 글로벌의 경계를 무너뜨렸고, 정이삭 감독의 자전적 경험이 담긴 <미나리>는 지극히 미국적이면서 한국적인 혼종의 지점을 일상의 언어로 자연스럽고 사랑스럽게 담아내고 있다. 

“진짜 할머니 같지 않은” 한국 할머니가 미국으로 이주한 딸 모니카의 가족을 찾아오며 벌어지는 일들은 80년대 흔히 생각되는 한인 이민자 가족의 전형적인 것들을 변주하면서 자칫 지루할 수 있는 단조로움을 깨뜨린다. 종종 등장하는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 어린 표현이나 고된 노동 장면은 이민자들이 겪었을 혼란과 고충을 짐작케 하고, 아메리칸드림이라는 부와 성공의 전형적인 이미지는 아칸소에 심긴 한국의 풀, 미나리적인 삶의 끈기로 향한다.

 

희망이 싹트는 곳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종교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만하다. 캘리포니아를 떠나 도착한 미국 남부 아칸소는 보수 기독교 신앙 색이 강한 지역이다. 기댈 데 없이 외로운 타향살이에 한인들은 대개 교회를 찾게 마련이지만, 7-80년대 한인사회가 성장하면서 함께 커진 한인교회에서 갖가지 문제를 겪으면서 그곳을 떠난 사람들이 오히려 아칸소에 있었다. 정통 미국 교회와 교차되어 등장하는 은사주의적 신앙인 폴(윌 패튼)의 모습은 규정하기 어려우나 백인 교인들만의 식탁과 가장 먼저 제이콥·모니카 가족을 환대하고 마침내 친구가 되어 둘러앉아 함께 음식을 먹었던 폴과의 식탁은 분명 차이가 있다.


우리를 진흙탕 같은 절망에서 구해줄 것이라 여기기 쉬운 것들이 많지만, 그간 일군 모든 것이 무너지는 상황에서라도 희망은 가장 평범하고 미천한 것, 그래서 종종 무심하기 쉬운 것에서 싹이 튼다. 오래전 이사야의 예언처럼 말이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자라서 열매를 맺는다.”(사 11:1, 새번역)


김지혜 목사 (문화선교연구원 객원연구원/평화나루도서관장)

*이 글은 <한국기독공보>에 실린 글에서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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