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리뷰 [오트밀]영화 <다음소희>, 넷플릭스 <D.P 2>에 드러난 청년세대의 죽음과 내일 - “더 나은 내일이 되려면 청년이 죽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2023-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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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음소희>, 넷플릭스 <D.P>에 드러난 청년세대의 죽음과 내일

“더 나은 내일이 되려면 청년이 죽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청년들의 죽음

2014년, 대한민국에는 슬프고도 비참한 사건이 일어났다.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인근 해상에 침몰하면서, 대부분이 수학여행을 가던 고등학생이었던 탑승객 300여 명이 실종되거나 사망했다. 그런데 같은 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끔찍한 일이 또 벌어지고 있었다. 일명 ‘윤일병 구타 사망사건’ 그리고 ‘임병장 총기 난사 사건’이라 불리는 군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들이 발생한 것이다. 이 일로 군부대 안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던 ‘위계질서에 의한 가혹행위’, ‘힘의 논리에 의한 집단 따돌림’의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국가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군대에 모인 청년들 사이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문제는 군내 폭력문화가 지속되고 강화되도록, 암암리에 행해져 온 반생명적 문화가 있었다는 점이고, 또한 관리자 혹은 책임자들은 이를 알면서도 묵인하고 관여하지 않았었다는 점이다. 이 각각의 사건들에는 공통점이 있는데, 아직 사회에 발을 내디뎌보지도 못한 젊은이들이 어이없는 사고로 생명을 잃었다는 점이다. 더 나아가 책임과 관리를 맡고 있던 어른들이 조금만 더 자신의 역할들에 충실했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안타까운 사고라는 점에서 닮아있다.

그런데 이러한 비극은, 일찍이 사회에 발을 내딛고 살아가고 있던 청소년들에게도 일어났다. 2017년, 통신사 고객 상담센터에  현장실습을 나간 한 고등학생이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운 노동환경에서 신음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했다. 당시 이 사건은 서로 책임을 회피하고 덮으려는 무책임한 어른들에 의해 조용히 묻혀가는 듯했으나, 몇몇 기자들의 끈질긴 취재 덕분에 사회에 알려질 수 있었다. 그리고, 죽음의 원인을 학생 개인의 탓으로만 돌리던 ‘학교’, ‘교육청’ 그리고 ‘대기업’과 ‘하청업체’ 모두가, 사실은 그 아이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정황이 발견되면서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줬다.

 

그런데 과연, 이 모든 것이 사회구조의 탓, 그리고 사회구조를 구축해 온 어른들의 탓인걸까? ‘불법 때문에 일어난 안전사고 문제’, ‘비행을 일삼는 몇몇의 폭력 행동’, ‘분노를 참지 못한 범죄’, 그리고 ‘고통을 참지 못하고 쉽게 자신의 목숨을 끊어버린 사건’. 누군가는 이 사건들을 이렇게 기억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렇게 질문할지도 모른다. “이게 왜 개인의 탓이 아닌, 국가나 어른들이 책임져야 하는 문제들인가?” 혹은 이러한 사건들이 벌어졌는지 잘 알지 못하거나 관심조차 없는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반면, 여전히 이러한 사건들에 안타까움을 가지며, 다시는 ‘다음 죽는 청년’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누군가는 집요하게 취재를 하여 진실을 알리기도 하고, 누군가는 생명을 지키는 법안을 개정하려고도 하고, 또 누군가는 이 사건을 대중문화 콘텐츠로 제작하여 더 많은 대중들이 이러한 일들에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돕기도 한다.

과거의 사건들을 그저 과거의 시간에 두고 넘기는 것이 아닌, 왜 그런 사건이 일어났는지 무엇이 문제였는지 다시 되짚어보고, ‘책임지고 사과하는 어른들이’ 더 많아질 때 우리 사회는 더 나은 미래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의미 있는 두 작품을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영화 <다음소희>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D.P>이다. 이는 앞서 언급했던, 실제 우리 사회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을 각색하고 재구성하여 만들어진 작품들이다.


영화 <다음소희> 줄거리

완주생명과학고등학교 3학년인 ‘소희’(김시은)는 어디서나 밝고 당당하게 자신을 표현할 줄 아는 야무진 학생이었다. 어느 날 담임선생님은 소희에게 대기업 취직자리가 들어왔다며, ‘애완동물 관리과’였던 소희를 전혀 관련 없는 ‘통신사 해지 업무를 방어하는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보낸다. 하지만 사실, 담임선생님이 소희에게 강조했던 ‘대기업’은 허울일 뿐, 대기업의 일을 담당하고 있는 하청업체였으며 노동자로서 제대로 보호받을 수 있는 허술한 시스템의 조직이었다. 소희는 아직 배우는 학생이고 실습생 신분으로 들어간 것이지만, 회사는 업무에 대한 제대로 된 교육도 없이 소희를 바로 현장에 투입시켜 버린다. 소희가 맡은 ‘해지 방어’ 일은 인터넷과 IPTV 해지를 원하는 고객에게 역으로 상품을 판매하는 일로, 수시로 들려오는 고객들의 분노와 폭력적 언행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하루가 멀게 받아야 하는 성희롱 전화도 어쩔 수 없이 인내로 버텨야만 했다. 그런데 이 콜센터 회사는 오직 실적만을 강조하고, 강요하는 곳이었다. 실적을 다 채우지 못하면 불법적인 방식으로 야근을 시키는 것은 물론, 인격적 대우도 해주지 않았다. 고객의 해지 요청을 방어하지 못하면, 그 귀책은 콜센터 노동자에게 있는 것이 되어 벌칙처럼 더 힘든 노동을 감당해야 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 회사는 ‘미성년 노동자’라는 이유로 학생을 속여 ‘이중계약서’를 쓰게 했고, 적합한 임금조차 제대로 지불하지 않았다.

사회에 처음 발을 내디딘 소희는 결국 건강한 땅을 밟지 못해 넘어지고 고통받다가, 차가운 물속에 자신의 몸을 던지고 만다. 소희는 적극적으로 죽음을 택한 것이 아니다. 아무리 고통을 토로해도 들어주지 않는 어른들 때문에 그 정신과 몸이 서서히 죽어간 것이다. 소희의 죽음이 결코 개인의 탓이 아니라고 믿고 있던 형사 ‘유진’(배두나)만이 이 사건을 파고드는데, 콜센터도, 원청도, 학교도, 교육청도 죽음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급급해한다. 개인의 우울감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다. 소희를 죽게 만든 것은 누구일까? ‘취업 실적’을 쌓기 위해 혈안이 된 학교 교사들, 학교와 기업이 학생을 두고 거래를 하는 것을 묵인해 오던 ‘교육청’, 하청을 맡기고 노동자의 권리는 책임지지 않는 ‘대기업’, 돈과 실적이 생명보다 더 중요했던 ‘콜센터’. 이들 모두가 범인이다. 그러나 이 진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사건을 파고든 몇몇의 사람들 때문에 어렵게 밝혀진다. 아무도 관심 갖지도 않았다면 조용히 묻혔을 사건이었다. 고통 속에 죽어간 소희는 또 다른 누군가가 될 수도 있다. 이 영화는 또 다른 소희가 나타나지 않기 위해, 우리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만든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D.P> 줄거리

<D.P>는 ‘탈영병을 잡는 군인 DP’를 주제로 다룬 웹툰 <D.P 개의 날>을 원작으로 둔 드라마로, ‘윤일병 구타 사망 사건’, 과 ‘임병장 총기 난사 사건’이 벌어졌던 2014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주인공 ‘안준호’가 입대해서 자대배치받은 곳은 제103 보병사단 헌병 특임대이다. 안준호는 ‘한호열’ 병장과 함께 탈영병들을 잡는 DP조에 들어가게 된다. ‘준호’와 ‘호열’은 탈영병들을 잡으러 다니며, 그들이 탈영한 배경과 심경을 점차 이해하게 되며 군대에 적응하지 못한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대리 경험하게 된다. 그런데 ‘준호’가 속한 부대에는 ‘황장수’라는 제대를 코앞에 둔 말년 병장이 있었는데, 그는 ‘준호’를 포함한 후임들을 괴롭히고 폭행하는 장본인이었다. 특히 ‘조석봉’ 일병은 아무 이유 없이 황장수에게 폭언, 폭행, 성희롱, 가혹행위 등을 당하며 살면서도, 후임들에게만은 자상하고 따뜻하게 대해주는 인물로 최악의 피해자로 등장한다. 

실제 2014년의 군대 분위기는 폭력과 생명 죽임의 문화가 가득했다. 누군가는 폭력의 가해자, 누군가는 폭력의 피해자, 그리고 나머지 대다수는 폭력의 방관자가 됐다. 함께 생활하는 이들도, 군대 문화를 건강하게 형성해 가야 할 상급자들도 죽어가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지 않았다. 결국 ‘석봉’은 몸과 마음이 점점 미쳐가고, 죽어갔다. 그 누구도 이런 일을 당한다면 미치지 않을 수가, 죽지 않을 수가 없지 않은가. ‘석봉’은 ‘장수’에게 복수를 하려고 애쓰지만 실패하고 총기로 자살을 시도하며 드라마의 시즌1이 끝이 난다. 많은 시청자들이 이 드라마의 연출과 대사 하나하나를 보며, “PTSD가 올 정도로 사실적”이었다며 슬픈 극찬을 보냈었다.

시즌2는 괴롭힘을 당하던 또 다른 인물인 ‘김루리’ 일병이 내무반 부대원들에게 총기를 난사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일로 2명 사망, 여러 명이 크게 다치게 되고, 김루리 일병은 탈영을 하다 붙잡혀 재판을 받게 된다. 그리고 이 사건을 둘러싼 군 간부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개인의 정신병 문제로 대중의 시선을 돌리려는 관리자들과 이 사건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려는 책임자들의 갈등이 팽팽하다. 나라를 지키러 갔다가 총격에 희생당한 군인들의 가족도 고통스럽지만, 한순간에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된 아들을 둔 어머니의 고통도 잘 드러난다. 물론 어떤 일이 있어도 살인은 정당하지 않다. 가해자를 두둔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이 사건을 자극적인 이야기와 장면으로 포장해 덮으려는 군 간부들의 비열함도 심각한 문제로 여겨진다. 그들이 진실을 왜곡하고 전혀 다른 사실로 가공해 퍼뜨린 뉴스들은 이 사건만이 아니었다. 군내 가혹행위로 인한 사망 및 자살 사건부터 성폭행 사건까지 모든 것을 덮기에 급급했던 정황이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이 사건의 중심에 있는 국군본부 법무실장 ‘구자운’ 준장은 군대교회를 성실하게 출석하는 기독교 신자 캐릭터로 등장한다.

군대 내 청년들을 책임지지 않으려는 어른들과, 책임지고 보듬으려는 어른들의 갈등은 결국 책임을 진 어른들이 승리하고 그 대신 군 기밀을 유출했다는 죄명으로 국군교도소에 갇히며 끝이 난다. 정의에 필요한 어른의 책임과 희생을 몸소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시즌2의 결말이 다소 ‘판타지스럽다’는 비판을 내놓았다. 그도 그럴 것이, 책임지고 사과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많이 보지 못한 사회적 경험에서 비롯한 불신이 아닐까 싶다. 불신보다는 애초부터 ‘기대감이 없다’는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러한 시청자들의 의견은 약 10년이 흘러도 여전히 변하지 않은 현실을 나타내기도 한다.

 

여전한 현실

물론 군 문화와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다. 함부로 선임이 후임을 가혹행위로 괴롭히거나 폭행을 가할 수 없다. 콜센터 근무환경의 분위기도 달라진 건 마찬가지다. 2018년부터 ‘감정노동자 보호법’으로 불리는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이 시행됐다. 하지만 이 사건들에서 핵심이 되는 문제는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청년들의 죽음 앞에서 전혀 책임지려 하지 않는 어른’은 더 많아졌고 그 방법은 더 치밀해졌다. 재작년에는 전남 여수의 한 특성화고에 재학 중이던 3학년 학생이 요트 업체로 현장실습을 나갔다가 물속에 빠져 죽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었다. 작년에는 화훼 농원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20살 대학생이 비료 기계에 끼어 사망하기도 했다. 이처럼 현장 실습이라는 명목으로 학생을 근로자 취급하며 최저 임금도 보장하지 않는 기업과,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내몬 학교는 여전히 존재한다. 최소한의 상식과 기본을 따르는 어른들이 있다면 일어나지 않을 사고들이었다.

 

불과 한 달 전에는, 한 해병대 상병이 구명조끼조차 없이 집중호우 실종자 수색에 나섰다가 사망한 사건도 있었다. 실적과 성과에 급급한 어른들이 잘못된 비상식적인 지휘를 내려 벌어진 일이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이 사건을 제대로 조사하려고 했던 해병대 전 수사단장이 조사결과에 있던 ‘과실치사 혐의’ 내용을 삭제하라는 압력을 받았다는 점이다. 이는 10년 전 사건을 다루던 <D.P>의 이야기가 현실에서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과거에 청년들이 죽었고, 사회는 충격을 받았으며, 어른들은 뒤늦게 사과를 했음에도 왜 미래인 지금의 사회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것일까?


교회의 역할, 생명 살림의 문화

이러한 생명 죽임의 문화를 물려주고 있는 사회 분위기에서 교회도 자유로울 순 없다. 교회는 사회와 동떨어진 단독 기관이 될 수 없다. 기독교는 한 국가의 언어, 시대, 성별, 사회 분위기라는 요소에 영향을 받는 것으로서, ‘문화’에 속해 있다고 볼 수 있다. 사회가 생명 죽임의 문화를 향유하고 있다면, 그 사회에 속한 교회도 그 문화와 절대 분리될 수 없다는 이야기다. 동시에 사회의 문제를 하나님 나라 방식으로 치유하고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는 결코 사회 문화와 분리되어서도 안 된다. 무엇보다 교회는 ‘생명’을 주로 다루며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구원받은 생명들이 자유와 평안 안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장이 되어야 한다.

생명 죽임의 문화란 성장과 실적, 즉 숫자로 인간의 가치를 매겨버린다. 그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엄은 짓밟힌다. 또 이 문화 안에서는 사람을 다루고 조종하기 위해서 ‘폭력적인 방식’을 사용한다. 생명보다는 경제적 이익과 효율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문화 속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은 어른들을 신뢰할 수 없다. 그리고 비슷한 혹은 더 폭력적인 어른으로 자라나 남을 해하거나 나 자신을 해하며 살아가게 된다. 그래서 교회는 생명 죽임의 문화를 반대하는 장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 우리 사회에 일어났던 청년 세대의 죽음에 대해 관심을 갖고 ‘다음소희’가 없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문제의 탓을 다음세대로 돌릴 것이 아닌 ‘책임지고 사과할 때’ 더 나은 내일로 나아갈 수 있다.

교회가 먼저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생명 죽임의 문화에 관심하고, 생명 살림의 문화로 만들어 나갈 수 있는 ‘말씀’이나 ‘양육 프로그램’들을 준비해 나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이러한 교회 공동체를 경험한 그리스도인들은 사회에서 더 이상 ‘수동적 참여자나 방관자’가 아닌, ‘적극적 주체자’로서 문화를 조금씩 바꾸어나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어른들이 교회 안에서 건강한 신앙의 선배로 존재해 줄 때, 청년 그리스도인은 사회에 대한 불신이 아닌 희망과 사랑을 경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교회에서의 이러한 경험은 청년들로 하여금 더 나은 사회인으로 세워줄 땅이 되어줄 것이며, 더 많은 영혼들을 이끌어갈 문화적 주체자로 성장해 나갈 수 있게 될 것이다.



글. 임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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