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의 문화 읽기드라마 <악귀>속 드러난 한국사회 이야기 : "돈이면 귀신도 부린다"

2023-08-05
조회수 969



#남들만큼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인 대한민국에서 청소년·청년 자살률까지도 기하급수적으로 치솟고 있다. 많은 청년들이 ‘남들만큼만’ 살고 싶다는 열망을 가지고 아등바등 살아보지만, 그 기준 때문에 더 좌절하고, 끝끝내 ‘남들만큼은’ 살 수 없는 것을 깨달으며 자신을 놓아버리게 되곤 한다. 이러한 현대 사회의 문제들을 날카롭게 비판한 드라마가 있다. 지난 주말 인기리에 종영된 드라마 <악귀>다.<악귀>는 한국 전통과 민중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민속학’과 한의 정서가 서려 있는 ‘귀신’이라는 모티브를 이용해, 오늘날의 심각한 문제인 ‘청년’, ‘가난’, ‘자살’ 그리고 ‘돈’에 대해 다루었다. 사실 <악귀>는 ‘귀신의 한(恨)’이나 ‘무속신앙 미신들’을 주된 내용으로 담고 있다는 점에서 기독교 문화와는 분명 거리가 있는 작품이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들이 이 드라마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악귀>는 극 중 ‘악한 영적 존재’가 돈에 의해, 돈으로부터 탄생했으며, 또 돈을 이용해 사람들을 하나둘씩 죽여 나가고 있다는 서사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극 중에서 ‘악귀’가 하는 말이나 생각들을 보고 있자면,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죄성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드라마 <악귀>가 대중에게 던지는 메시지에 집중해 볼 필요가 있다. 


#돈이면 귀신도 부린다

1958년 가난한 시절, ‘장진리’라는 마을에서 모두가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을 때 ‘염매’1)를 하는 풍습이 이루어졌다. 염매란 어린아이를 굶겨 죽여 귀신을 만드는 주술 행위로, 여기에 희생되어 어린 나이에 죽은 귀신을 ‘태자귀’라 불렀다. 그런데 당시 ‘중현상사’라는 회사를 운영하며 큰 힘을 가진 염승옥·나병희 부부가 이 마을에서 행해질 염매를 오로지 자신들의 집에 부를 축적할 목적으로 이용해 버린다. 희생될 아이의 부모부터 이웃들까지 마을 전체가 악한 풍습에 더해, 기업으로부터 받을 큰돈을 기대하며 희생될 아이를 고르는 데 암묵적으로 일조했다. (실제 김은희 작가는 1958년에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졌던 염매 사건의 기사를 보고, 가슴 아픈 과거의 현실을 이 작품에 반영했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태자귀가 된 희생자 ‘향이’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둘째 딸로, 꿈과 욕망이 가득한 소녀였지만 현실에서는 가족(특히 동생)을 돌보느라 희생하며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지 못했던 안쓰러운 소녀였다. 평생을 ‘나 자신’이 아닌 가족을 위해 살아왔다는 불만, 아무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외로움, 돈 때문에 자기를 죽이고 이용하는 자들에 대한 분노를 품고 태자귀가 된 향이는, 수십 년간 나병희 집안의 부를 축적하는 데 이용되어 왔다. 그러다 태자귀(악귀)는 우연히, 자신이 가진 갈증과 똑같은 감정을 가지고 사는 ‘구산영’의 몸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둘은 ‘아무리 노력해도 사라지지 않는 가난’, ‘자신의 욕망은 버려두고 가족을 위해 희생해야 했다는 억울함’, ‘자신보다 더 나은 상황의 사람들을 보며 생기는 질투심’까지 많은 것이 닮아있다. 이 모든 것들은 ‘돈’이 있어야만 해결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래서 악귀는 산영의 몸을 이용해 주변 사람들을 하나둘씩 죽여 나가며, 산영이 그토록 원했던 부를 가져다주려 한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산영과 악귀에게는 큰 차이점이 있었는데, 산영은 탐심과 분노라는 감정에 자신을 내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악귀를 이용하려면 탐심과 분노에 눈이 멀어,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잃는 대가를 치러야만 했는데, 이 법칙을 깨달은 산영은 악귀를 없애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악귀를 만든 장본인이자, 여전히 부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던 나병희는 악귀를 없애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이미 악귀로부터 소중한 가족들을 다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계속해서 돈을 갈구하며 산다. 이처럼 드라마 <악귀>는 ‘돈이면 귀신도 부리는’ 인간이야말로 가장 악한 존재라는 것을, 누구나 그런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간의 욕망에서 태어난 악귀

“자신이 가진 소중한 것을 내어주고, 원하는 것을 얻는다”는 교환법칙은 그간 우리가 봐온 수많은 동화나 영화 속에 등장했던 서사이다. 그런데 이 법칙은 마법 같은 것을 통해서 일어나는 특별한 사건이 아닌, 이미 우리 현실 속에서 자주 일어나고 있는 일상적인 것들이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돈’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거나 희생시키며 살아가지 않는가. 또한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고, 남의 것을 탐하며 ‘아귀’ 그 자체로 살아가고 있다. 한 가지 안타까운 사실은, 이 드라마를 다 보고 난 후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에서 돈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쉽게 떨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 시대가 그렇다.  

먹고살 것이 없어 배고픔으로 죽어갔던 과거 ‘향이’가, 여유롭게 살 수 없어 정신적으로 죽어가던 오늘날 ‘산영’에게 원망하며 소리치는 장면이 있다. (정확히는 산영을 지키려는 ‘해상’에게 토로하는 장면이었다)

“우린 살려고 했어. 먹을 게 없어서 나무껍질까지 벗겨 먹고 친자씩까지 팔아먹으면서도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발악을 했다고. 근데 니들은 죽고 싶어 하잖아. 구산영 이 기지배도 똑같아. 외롭다고, 힘들다고 죽고 싶어 했어. 진짜 외롭고 힘든 게 뭔지 알지도 못하면서.. 내가 그렇게 원하던 인생이란 걸 포기하려 했다고.” 

그렇다. 당장에 굶어 죽는 문제가 아닌 이 시대의 가난(산영)은 과거(향이)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요즘 청년들이 느끼는 가난의 감정은 훨씬 복잡하고, 깊고 넓다. 부와 가난의 격차로 인해, 어려서부터 받아온 무시와 차별의 시선. 학자금 혹은 대출이라는 과제, 연애·결혼·내 집 마련의 포기 등 “남들만큼 살지 못한다는” 인격적·문화적 가난은 사람의 정신을 서서히 죽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악귀와 같은 존재, 즉 자신들의 영혼을 좀먹고 있는 돈에 대한 욕망을 쉬이 포기할 수 없다. 그래서인지, 드라마 <악귀>는 ‘돈’과 ‘악’ 그리고 ‘사람의 본성’에 대해 단순하게 그리고 있지 않다. 우리는 모두 다 돈을 필요로 하고, 돈 때문에 죽어가기도 하고, 돈 때문에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는 존재라는 복잡다단한 사회 현실을 그대로 전달하고 있다.


#내가 날 죽이고 있었어

그런데 돈 때문에 나를 죽이던 모든 가해자들이 ‘나 자신’이었다면 말은 달라진다. 산영도 그랬다. 산영의 목을 조르고 있던 존재는 악귀도 아닌, 가난을 만든 사회도 아닌, 자기 자신이었다. 어려서부터 가장으로서 책임지고 살아야 한다는 부담감, 사람들에게 무시받을 때마다 쌓아왔던 분노, 돈만 있으면 다 해결될 거라는 믿음, 자신의 감정을 돌아보지 않고 살아온 모든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 자기의 영혼을 가두어버린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달은 산영은 그제야 악귀를 물리칠 수 있게 된다. 이로써 악귀는 인간과 상관없는 절대적인 악한 존재가 아닌, 인간의 욕망과 맞닿아서 만들어지고, 오히려 인간에 의해 이용되는 존재임을 분명히 한다. 즉, 드라마 <악귀>는 우리에게 단순히 ‘돈 조심’이나 ‘이 생에 대한 감사’를 말하는 게 아닌,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음을 지키며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건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악한 영으로부터 마음을 지키며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보다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삶의 목적이다. 드라마 <악귀>가 ‘악귀’와 ‘인간’을 ‘선함 vs 악함’이라는 이분법으로 나누지 않듯이, 교회 안에 있다고 해서 누구나 늘 선하고, 교회 밖에 있다고 해서 누구나 악하다고 말할 수 없다. 다만 ‘선한 존재’로 지음 받았다는 사실을 믿고, 하나님이 주신 ‘마음을 치열하게 지키며 살아가는’ 것뿐. 사실 교회 안에도 자기 자신에 의해 죽어가는 이들이 꽤 많다. 가져도 가져도 물질에 목말라하는 이들, 혹은 사회의 부조리한 시스템에 상처를 받고 분노를 머금은 이들, 자신의 영혼은 돌보는 방법을 모르고 외로움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 어쩌면 우리 모두가 산영처럼 치열하게 악한 영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내야 하는 존재들일지도 모른다. 


#그래, 살아보자!

차라리 드라마 속 민속학에서는, 악귀를 물리치는 법칙들이라도 확실하게 마련되어 있다. 예를 들어, ‘금줄’을 달면 그 안과 밖으로는 악귀가 넘나들 수 없다는 사실이 그러하다. 그러나 현실에 그런 법칙들은 없을뿐더러, 특별히 교회에는 그런 강력하고 확실한 주술 따윈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믿음을 갖고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해서 갑자기 청년들의 삶이 더 나아지거나, 사회 시스템이 확 개편되거나, 마음에 쌓인 욕망들이 눈 녹듯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앞서 언급했듯, 우리는 선한 존재로 지음 받았음을 믿을 뿐이다. 여전히 삶은 각박하지만 악함에게 내 마음을 내어주지 말고 계속해서 하나님 나라의 방식을 따를 뿐이다. 이러한 삶이 퍽 미약해 보이지만, 그 안에서 강력하게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두 눈의 시력은 잃어가지만, 삶의 의미를 깨닫고 더 나아가 자기 자신을 믿고 “그래 살아보자”라고 다짐했던 산영처럼 말이다. 

악귀보다 더 무서운 욕망을 품고 살아가지만, 은혜 안에서 마음을 지키며 그래, 살아보자.

<이미지 출처: SBS>



*각주

1) 염매: 이는 실제 과거 동양에서 이뤄졌던 악한 주술이다. 어린아이를 훔쳐서 아무것도 먹이지 않은 뒤에, 살이 빠지고 말라죽을 때쯤 먹을 것을 준다. 아이가 음식을 잡으려 할 때 날카로운 것으로 빠르게 죽여 귀신으로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악한 태자귀는 온 집을 다니며 사람들의 몸을 아프게 하는데, 병에 걸린 사람들이 무당을 찾아와 돈과 곡식을 주며 낫게 해달라고 요청하게 된다. 이때 받은 돈과 곡식으로 무당이 배를 불리게 되는 것이다. 



글. 임주은




4 1
2020년 이전 칼럼을 보고 싶다면?

한국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변화하는 문화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방향을 제언하는 다양한 콘텐츠를 온라인에서 나눕니다.

문화매거진 <오늘>

살아있는 감성과 예술적 영성을 통해 아름다운 삶의 문화를 꽃피워가는 문화매거진 <오늘>(2002~2014)입니다.

시대를 읽고 교회의 미래를 열어갑니다

뉴스레터 구독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뉴스레터 발송을 위한 최소한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이용합니다. 수집된 정보는 발송 외 다른 목적으로 이용되지 않으며, 서비스가 종료되거나 구독을 해지할 경우 즉시 파기됩니다.

광고성 정보 수신

제휴 콘텐츠 정보 등의 광고성 정보를 수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