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서라는 고통> | 스티븐 체리 지음 | 황소자리 | 2013
Healing Agony: Re-Imagining Forgiveness
용서에 대한 깊은 성찰과 실제적인 이야기, 신학자이자 목회자인 저자의 깊은 인간 이해가 담긴 책 <용서라는 고통>을 소개합니다. 고단한 삶의 자리에서 여러 피해와 상처를 받으며 살아가는 성도들을 깊이 이해하고자 하는 목회자들에게, 나아가 상처와 응어리, 깊은 한으로 인해 고통받는 이들의 곁을 지키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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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우리는 6.25 73주년을 보냈습니다. 지나온 전쟁의 역사를 돌아보고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기를 바라지만, 남북 관계는 다시 갈등 일변도를 향하고 있습니다. 아쉽고 답답할 뿐입니다. 화해와 평화, 그리고 통일의 문제는 여전히 우리 사회가 풀어가야 할 가장 중요한 난제 중 하나입니다. 어려운 일이지만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더욱이 그리스도인은 평화의 사람으로 부름을 받았기에, 여전히 교회들은 남북 간의 평화를 꿈꾸고 기대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화해와 평화의 문제를 다루다 보면 반드시 만나게 되는 주제가 있습니다. 바로 ‘용서’의 문제입니다. 용서는 기독교의 중요한 가치이며 윤리적 덕목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하나님께 용서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다른 이들에게도 용서를 베풀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 신앙과 윤리의 핵심에 놓여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복음서에서 ‘70 X 7’의 용서 명령을 만나고, 예배 때에도 용서에 대한 권면을 오랫동안 들어왔습니다.
용서,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용서라는 것이 정말로 우리 마음처럼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일까요? ‘하나님께 용서받았으니, 나도 남을 용서해야지’라는 마음먹기 하나만으로, 또는 일시적으로 주어지는 감동만으로 진정한 용서가 가능할까요? 결코 쉽게 풀리는 문제가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북한 정권이나 일본을 대하는 남한의 국민들에게, 사회적 재난이나 구조적 억압 및 폭력의 피해자들에게, 그리고 개인적으로 부당한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용서를 권면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 아니 애초부터 그것이 바르고 정의로운 것인지 고민이 될 때가 많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말씀을 깊이 성찰하지 못하고 피해자의 고통도 헤아리지 못한 채, 너무나도 쉽게 ‘용서에 대한 권면’을 해왔는지도 모릅니다.
끝나지 않는 길, 함께
<용서라는 고통>에서 스티븐 체리Stephen Cherry는 용서에 대한 윤리적인 권면보다는 고통받는 피해자의 용서의 길을 곁에서 함께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피해자의 상처와 고통에 공감하며 그들에게 희망 있는 미래를 그릴 수 있도록 돕는 것, ‘상처의 황무지’를 빠져나오는 걸음을 격려하고 지지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라는 것이지요.
“1943년 칸차나부리에서 일어났던 일을 결코 잊을 순 없지만, 나는 당신을 전적으로 용서합니다.”
나가세는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
저자 스티븐 체리는 성공회 신부로 사역하며 신학과 심리학을 연구하는 ‘용서’ 연구자입니다. 그의 책 <용서라는 고통>은 용서에 대한 우리의 고민과 성찰을 도와주고, 실제적인 용서 이야기들을 통해 참된 용서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용기와 도전을 주는 책입니다.
2차대전 포로수용소 고문 피해자, 익명의 폭탄 편지로 두 손을 잃은 신부, 홀로코스트 생존자, 남아공 아파르트헤이트 피해자, IRA 폭탄테러로 눈앞에서 딸을 잃은 아버지, 강도살인으로 일가족을 잃은 가장, 성폭행 살인사건으로 여동생을 잃은 언니 등 ‘용서가 불가능한 사건들’ 속에서 이루어진 다양한 용서의 이야기들이 등장합니다. 이를 통해 저자는, 용서가 단번에 이루어지는 단회적이고 종결적인 사건이 아니라, 끝까지 완성되지 않지만 계속해서 걸어가야 하는 길이라고 말합니다.
불가능의 가능성
#관대하고 창조적인 신뢰의 모험
#용서와 사면은 다르다
#뉘우침이 없는 가해자에 대한 용서
#가해자에 대한 피해자의 공감
쉽지 않고 때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주제들이지만, 저자는 실제 이야기들을 토대로 용서의 여정이자 모험을 진솔하게 풀어냅니다. 때로는 우연처럼, 때로는 선물처럼 찾아오는 일련의 사건들이 용서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중요한 디딤돌이 되는 것도 보여줍니다. 그래서 용서는 ‘불가능의 가능성’이라고 부를만합니다. 의무감도 아니고, 힘에 의해서도 아니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자발적 의지에 의해서만 진정한 용서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저자의 관점에서 볼 때, 교회공동체는 용서에 관해 규범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우리 삶의 지향점이자 지녀야 할 정신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당위성과 의무감에 의한 실천보다는 용서의 정신을 함양하고, 상처와 고통 가운데 있는 이들의 마음을 공감하고 지지하며 자발적인 용서의 여정을 걸어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교회를 참된 용서의 공동체로 세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될 것입니다.
용서,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 책의 원제는 Healing Agony 즉 ‘치유의 고통’입니다. 참된 용서의 여정은 결코 행복하거나 기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나의 존재 자체를 흔들어놓기도 하고, 때론 악의에 찬 가해자에게까지 마음을 열어야 하는 고통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상처의 황무지를 벗어나 치유의 삶을 걸어가려면, 고통과 마주하고 악과 대면하는 지난한 시간들을 피할 길은 없어 보입니다. 그렇기에 저자는 용서자의 마음에 필요한 덕목 중 하나로 ‘믿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용서하는 사람은 겉으로 드러내든 속으로 품고 있든, 선이 악보다 강하다는 믿음으로 가득 차 있다는 뜻이다.
복수를 넘어서 ‘용서라는 고통’을 선택하려면, 인간사를 뛰어넘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분 앞에서 정직하고 진솔하게 반응하고, 연약하지만 참된 인간으로서의 길을 걸어가다보면, 우리 삶에 용서라는 흔적이 남게 되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글. 김용준
<용서라는 고통> | 스티븐 체리 지음 | 황소자리 | 2013
Healing Agony: Re-Imagining Forgiveness
얼마 전 우리는 6.25 73주년을 보냈습니다. 지나온 전쟁의 역사를 돌아보고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기를 바라지만, 남북 관계는 다시 갈등 일변도를 향하고 있습니다. 아쉽고 답답할 뿐입니다. 화해와 평화, 그리고 통일의 문제는 여전히 우리 사회가 풀어가야 할 가장 중요한 난제 중 하나입니다. 어려운 일이지만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더욱이 그리스도인은 평화의 사람으로 부름을 받았기에, 여전히 교회들은 남북 간의 평화를 꿈꾸고 기대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화해와 평화의 문제를 다루다 보면 반드시 만나게 되는 주제가 있습니다. 바로 ‘용서’의 문제입니다. 용서는 기독교의 중요한 가치이며 윤리적 덕목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하나님께 용서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다른 이들에게도 용서를 베풀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 신앙과 윤리의 핵심에 놓여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복음서에서 ‘70 X 7’의 용서 명령을 만나고, 예배 때에도 용서에 대한 권면을 오랫동안 들어왔습니다.
용서,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용서라는 것이 정말로 우리 마음처럼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일까요? ‘하나님께 용서받았으니, 나도 남을 용서해야지’라는 마음먹기 하나만으로, 또는 일시적으로 주어지는 감동만으로 진정한 용서가 가능할까요? 결코 쉽게 풀리는 문제가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북한 정권이나 일본을 대하는 남한의 국민들에게, 사회적 재난이나 구조적 억압 및 폭력의 피해자들에게, 그리고 개인적으로 부당한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용서를 권면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 아니 애초부터 그것이 바르고 정의로운 것인지 고민이 될 때가 많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말씀을 깊이 성찰하지 못하고 피해자의 고통도 헤아리지 못한 채, 너무나도 쉽게 ‘용서에 대한 권면’을 해왔는지도 모릅니다.
끝나지 않는 길, 함께
<용서라는 고통>에서 스티븐 체리Stephen Cherry는 용서에 대한 윤리적인 권면보다는 고통받는 피해자의 용서의 길을 곁에서 함께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피해자의 상처와 고통에 공감하며 그들에게 희망 있는 미래를 그릴 수 있도록 돕는 것, ‘상처의 황무지’를 빠져나오는 걸음을 격려하고 지지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라는 것이지요.
저자 스티븐 체리는 성공회 신부로 사역하며 신학과 심리학을 연구하는 ‘용서’ 연구자입니다. 그의 책 <용서라는 고통>은 용서에 대한 우리의 고민과 성찰을 도와주고, 실제적인 용서 이야기들을 통해 참된 용서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용기와 도전을 주는 책입니다.
2차대전 포로수용소 고문 피해자, 익명의 폭탄 편지로 두 손을 잃은 신부, 홀로코스트 생존자, 남아공 아파르트헤이트 피해자, IRA 폭탄테러로 눈앞에서 딸을 잃은 아버지, 강도살인으로 일가족을 잃은 가장, 성폭행 살인사건으로 여동생을 잃은 언니 등 ‘용서가 불가능한 사건들’ 속에서 이루어진 다양한 용서의 이야기들이 등장합니다. 이를 통해 저자는, 용서가 단번에 이루어지는 단회적이고 종결적인 사건이 아니라, 끝까지 완성되지 않지만 계속해서 걸어가야 하는 길이라고 말합니다.
불가능의 가능성
쉽지 않고 때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주제들이지만, 저자는 실제 이야기들을 토대로 용서의 여정이자 모험을 진솔하게 풀어냅니다. 때로는 우연처럼, 때로는 선물처럼 찾아오는 일련의 사건들이 용서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중요한 디딤돌이 되는 것도 보여줍니다. 그래서 용서는 ‘불가능의 가능성’이라고 부를만합니다. 의무감도 아니고, 힘에 의해서도 아니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자발적 의지에 의해서만 진정한 용서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저자의 관점에서 볼 때, 교회공동체는 용서에 관해 규범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우리 삶의 지향점이자 지녀야 할 정신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당위성과 의무감에 의한 실천보다는 용서의 정신을 함양하고, 상처와 고통 가운데 있는 이들의 마음을 공감하고 지지하며 자발적인 용서의 여정을 걸어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교회를 참된 용서의 공동체로 세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될 것입니다.
용서,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 책의 원제는 Healing Agony 즉 ‘치유의 고통’입니다. 참된 용서의 여정은 결코 행복하거나 기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나의 존재 자체를 흔들어놓기도 하고, 때론 악의에 찬 가해자에게까지 마음을 열어야 하는 고통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상처의 황무지를 벗어나 치유의 삶을 걸어가려면, 고통과 마주하고 악과 대면하는 지난한 시간들을 피할 길은 없어 보입니다. 그렇기에 저자는 용서자의 마음에 필요한 덕목 중 하나로 ‘믿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복수를 넘어서 ‘용서라는 고통’을 선택하려면, 인간사를 뛰어넘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분 앞에서 정직하고 진솔하게 반응하고, 연약하지만 참된 인간으로서의 길을 걸어가다보면, 우리 삶에 용서라는 흔적이 남게 되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글. 김용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