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리뷰 [오트밀]넷플릭스 오리지널 <중증외상센터> - "영웅이 필요한 시대"

2025-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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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 동안 화제가 된 드라마 한 편이 있다. 한 병원의 중증외상센터에 부임한 백강혁(주지훈)이라는 의사의 이야기를 다룬 넷플릭스 오리지널 <중증외상센터>이다. 돌직구 같은 제목처럼 내용 역시 중증외상센터를 담당하는 의사가 좌고우면 하지 않고 직진만 한다. 어떤 응급환자라도 그에 맞는 진단과 탁월한 실력으로 환자를 살리고, 크고 작은 음모와 방해 속에서도 목표했던 과제들을 모두 성취해 내는 주인공의 추진력과 성과가 돋보이는 드라마다. 그보다 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일을 그르치고, 덜 악한 사람들에 의한 견제에도 길이 막혔던 현실에서 느꼈던 좌절감을 단번에 보상해 주는 쾌감을 느끼게 하는 스토리다.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건 누구나 안다. 모든 분야의 수술을 완벽하게 해내는 전능한 의사도 없고, 구급차를 위해 모든 차가 양보하듯 선의가 모두의 동의를 얻으며 아름다운 결말로만 다다르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다만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라 할지라도 문틈 사이로 찾아오는 여명을 향한 기다림일 것이다. ‘나도 다 해봤어’, ‘거기서 거기야’라는 말처럼 위로를 가장한 절망의 언어에 익숙한 세상에서 그래도 한 번은 역전의 날이 오기를 바라는 걸 미몽이라 깎아내리지 않고, 비전이라 부르고 싶은 마음과 같은 것이다. 히브리 노예들의 탄식에서 홍해의 기적이 찾아왔고, 여호와를 비웃는 소리에 울분을 감추지 못한 소년의 분기가 물맷돌 하나로 거구의 적장을 쓰러뜨렸던 것처럼 말이다.

 

현실은 어떠한가? 1년 전 시작된 의정 갈등이 해법을 찾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고, 서울대 의대 정시 합격자가 등록을 포기하자 뉴스가 될 만큼 의사는 사회적 성공의 절대적 척도처럼 여겨지고 있다. 그런데도 내과, 외과, 산부인과, 응급의학과 등 필수 의료 분야의 인력 부족이 심각하고, 지방에서는 의사 부족으로 인해 응급환자가 수도권으로 이송되는 사례가 자주 발생한다. 의료 인프라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아 과로에 시달리는 의료진과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병원도 늘고 있다. 백강혁 같은 의사가 없어서 그럴까? 초점을 의료계가 아닌 교계로 돌려본다. 의료계와 비슷하다. 부교역자 청빙이 어렵고, 교회마다 봉사자를 구하지 못해 외부에서 유급 인력으로 대체하거나 관련 사역을 중단하고 있다. 반면, 담임목회자 청빙은 중•소 도시의 교회만 해도 지원자가 쇄도한다. 그렇게 청빙 된 목회자가 이전 세대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새로운 세대의 목회적 필요에 잘 부응하며 교회의 성장과 성숙을 도모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현실 속에서 기도와 말씀으로 항상 준비돼 있어 어떤 상황에서도 적합한 메시지를 전해주고, 교회 안팎의 모든 문제를 척척 해결해 내는 목회자가 있다면? 주중에는 일터에서 헌신적으로 일하며 능력을 인정받고, 평일 저녁에는 가족들을 위해 쉼과 즐거움의 시간을 만들어내며, 주일에는 교회에서 서너 개의 봉사를 하면서도 피곤한 기색 없이 섬김의 삶을 일관되게 이어가는 성도가 있다면? 목회자는 목회자대로, 성도는 성도대로 너무 이상적이고, 만약 그런 사람이 존재한다면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바람직하지 않다고 얘기할 것이다. 실제로 한 사람의 과도한 희생으로 인해 이룩된 과업이 대를 이어가기가 어려운 것은 오로지 그렇게 살기로 결심한 당사자 개인의 결단에 의해서만 가능한 일이지, 그것을 다른 누군가에게 요청했을 때는 폭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영웅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가치를 알고, 그러한 삶을 형성하기 위해 수고와 기쁨을 함께 일궈가는 공동체다. 다메섹 도상에서 기적적으로 부활의 예수를 만난 바울의 삶이 그러했다. 체험과 기적이 사역하는 곳곳에서 벌어졌지만, 정작 그가 세운 교회들에게 보낸 목회서신을 보면, 기적 대신 지난한 과정을 마다하지 않는 수고를 당부한다. 사역으로 병든 동역자들의 돌봄과 부족한 재정을 채워주는 마음에 대한 감사가 있고, 눈물이 담긴 기도뿐 아니라 엄중한 책망도 자주 등장한다. 한 번의 교회 설립과 한 번의 가르침으로 공동체가 세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바울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천 년 교회의 역사는 그렇게 이름도 빛도 없이 일상의 자리에서 주님의 몸 된 공동체를 세워가기 위해 노력했던 성도들의 시간이 축적된 결과물인 것이다.

 

아마도 현실에서는 ‘백강혁(주지훈)’이 아니라 자기 딸이 치료받는 경험을 통해 공익적 삶에 눈을 뜨게 되는 항문외과 과장 ‘한유림(윤경호)’이나 실수하며 조금씩 성장해 가는 펠로우 ‘양재원(추영우)’, 남들은 꺼리지만, 백강혁 같은 의사가 오기 이전부터 5년간 중증외상센터를 지켜온 간호사 ‘천장미(하영)’ 같은 이들은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현실은 어둡고, 비관적인 전망이 가득하다. 그러나 여전히 진정성을 가지고, 삶의 자리를 지켜야 하는 까닭은 우리가 백강혁이 될 수는 없지만, 한유림, 양재원, 천장미로서 삶의 재난 속에 응급실을 찾는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그 한 사람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의 삶에서는 이들이 진정한 영웅이 아닐까? 그 영웅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함께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어가기 위해 힘을 보탤 것을 다짐해 본다.

 


글. 성현 목사 (창조의정원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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