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리뷰 [오트밀]디즈니+ 오리지널 <조명가게> - "공존하는 삶과 죽음, 그리고 교회의 역할"

2025-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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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디즈니+에서 <무빙>으로 큰 인기를 끈 강풀 작가가 다시 한번 드라마 <조명가게>라는 실험적인 작품을 공개했다. 지난해 12월 18일, 마지막화까지 공개된 <조명가게>를 다 보고 한동안 가슴이 먹먹했다. 1화부터 4화까지는 호러라는 장르 때문에 드라마 속 무서운 장면이 잔상으로 계속 남았더랬다. 하지만 5화부터 8화까지 보고 난 후에는, 드라마 속 인물들과 같은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내 주변 어딘가에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며 무겁고 복잡한 생각들이 떠나질 않았다. 

그러고 약 10일 후인 12월 29일, 나는 주일 사역을 하고 있던 중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제주항공 2216편이 무안국제공항에서 착륙하던 중 기체가 폭발해 큰 인명사고가 났다는 속보였다. 긴급속보라 자세한 내용이 실려있진 않았지만, “연말이라 태국으로 여행을 다녀온 가족 단위의 승객들이 많이 타있었다”는 짧은 한 줄을 보게 됐다. 나는 순간적으로 얼마 전에 보았던 <조명가게> 속 사건과 인물들이 떠올랐다. 1970년대 아파트 붕괴사고로, 또 2020년대 버스 추락 교통사고로 가족을 두고 먼저 떠나야 했던 사람들, 혹은 혼수상태에 빠진 가족이 돌아오기만을 기도했던 사람들. 그리고 어김없이 한국 사회에서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 사회적 참사들까지. 

‘아, 우리는 또 충격적인 사고를 접했구나. 많은 사람들이 우리 곁을, 사랑하는 가족의 곁을 떠나갔구나. 이 슬픔은 우리를 오래도록 아프게 하겠구나.’


#공존하는 삶과 죽음

<조명가게>는 어두운 골목 끝을 밝히는 유일한 곳 ‘조명가게’와 그곳을 찾아오는 수상한 사연을 가진 손님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드라마 속 배경은 크게 둘로 나뉜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대학병원 중환자 병동, 그리고 어딘가 수상해 보이는 사람과 공간인 컴컴한 골목길 동네. 드라마는 밝은 빛이 가득한 병원과 어두움만 가득한 이상한 동네를 왔다 갔다 한다. 후반부로 갈수록 시청자들은 깨닫게 된다. 병원은 이생, 즉 현실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반면,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는 어두운 동네는 사후세계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데 현실세계라고 해서 꼭 산자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중환자 병동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권영지’(박보영)의 눈에는 죽은 자 혹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자들이 보인다. 사후세계도 마찬가지다. ‘아직 죽지 않은 자들’이 죽은 자들과 함께 그곳에 살고 있다. 그곳이 어디인지, 자신이 어느 상태인지 깨닫지도 못한 채 어둠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조명가게에 들어가 자신만의 빛을 찾게 된다면, 그들은 살아서 나갈 수 있다. 현실에서는 중환자실에서 생사를 오고 가는 그들이, 사후세계 속에서는 어두운 골목길을 헤맨다. 코마상태에 빠진 환자들이 깨어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의사는 말한다. “저희는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습니다. 이제는 환자의 의지가 중요합니다.” 조명가게 주인은 말한다. “자신의 빛을 가지고 나가려면 의지가 중요합니다.” 그 의지란 무엇일까? 현실세계 속에서는 의식을 잃고 누워만 있는 중환자들이, 사후세계 속에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어두운 골목을 헤매고 있는 자들이 어떻게 의지를 가진단 말인가? 어떻게 빛이라는 희망을 적극적으로 붙잡을 수 있다는 말인가? 드라마는 그 질문을 던지며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사랑의 노력, 눈물의 기도가 만들어내는 의지

드라마 전반부는 내내 미스터리 한 인물들이 나와서 꽤 무섭다. 그 인물들은 모두 귀신이다. 그런데 우리가 평소에 상상하는 무섭고 혐오스러운 귀신의 모습은 아니다. 어딘가 쓸쓸해 보이고 슬픈 사연을 가진 평범한 인간의 모습에 가깝다. 그들은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아파트 붕괴사고를, 버스 추락사고를 겪어 먼저 죽게 된 자들이다. 귀신의 모습으로라도 남아서 혼수상태에 빠진 가족들을, 이웃들을 살리려고 노력한다. 중환자 병동에 누워있는 환자들을 위해 의료진들이 노력하고, 가족들이 노력하듯이, 먼저 죽게 된 이들도 사랑하는 이를 살리기 위해 가까스로 노력한 것이다. 

버스 바퀴에 이상이 있음을 감지했으나, 제대로 된 점검도 받지 못하고 운행을 나가야 했던 소시민 운전기사 ‘오승원’(박혁권)은 죽은 후에도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괴로워한다. 그의 영혼은 떠나가지 못하고 사후세계 속에서 승객이었던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용서를 빈다. 그리고 그들을 조명가게로 인도해 빛을 찾게 하려 애쓴다. 이미 죽은 엄마가 딸을 위해, 이미 죽은 사람이 연인을 위해, 이미 죽은 아빠가 혼자 남은 딸을 위해 빛을 찾아주려 애를 쓴다. 어찌 보면 이런 설정들은 한국의 무속신앙과 그 결이 같이한다. 사고 등으로 죽음에 가까워진 이들이 사후 세계를 체험하고 돌아오는 것을 ‘임사체험’이라 한다. 이 암사체험을 경험한 몇몇 사람들은 꿈속에서 사랑하는 가족이나 연인 등의 도움과 설득으로 깨어난 적이 있다고 증언한 바 있다. 

‘귀신’이라니, ‘사후세계’라니, ‘임사체험’이라니. 사실 <조명가게>는 기독교와는 꽤 거리가 있는 모티브를 갖고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드라마를 다 보고 나면, 여기서 말하는 ‘의지’란 사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중보기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강풀 작가는 이 드라마의 원작인 만화 ‘조명가게’를 13년 전 처음 쓰게 된 계기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참고로 저는 기독교인입니다. 조명가게 자체를 쓴 계기가 목사님이신 저희 아버지 때문이었어요. 저희 아버지가 작은 개척 교회의 목사셨죠. 요즘은 중환자실에 들어가기 어렵게 되었지만, 20년 전 즈음에는 아버지를 따라 중환자실 심방에 따라 들어가곤 했어요. 깨어나지 못하는 환자를 위해 아버지가 기도를 해주셨거든요. 그때 그곳에서 의사 선생님이랑 환자의 보호자가 나눈 대화를 들었어요. ‘병원이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 이제는 환자분의 살고자 하는 의지가 중요하다.’라는 말이었죠. 제가 20대였을 때인데, ‘환자가 의식도 없는데.. 어떻게 의지가 생길 수 있지?’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이 경험과 고민이 조명가게의 출발이 되었어요”

강풀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오는 환자들을 볼 때, 그들의 의지가 혼자만의 것이 아닌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들의 것이 더해진 것이라 믿은 것이다. 조명가게는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기도와 노력이라는 시작점에서 만들어진 이야기다.


#현실과 맞닿아있는 이야기들

어두운 터널 끝 빛을 찾아 다시 살아나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인 <조명가게>를 보고, 나는 왜 한동안 가슴이 먹먹했을까? 배달원에 의해 조명가게에 새로운 조명들이 배달되는 날이 있다. 그날은 큰 사고가 나 인명피해가 많은 비극적인 날이다. 대다수 조명의 주인들은 자신의 빛을 찾지 못하고 꺼지는 경우가 더 많다. 181명의 승객 중 179명의 사상자가 난 이번 사고도 그렇다.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가족들을 떠나보냈다. 생존자들도 트라우마 속에서 한동안은 고통 속에 살아갈 수도 있다. 

강풀은 <무빙> 때도 초능력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그려냈지만, 동시에 우리나라 근현대사에 서려있는 분단과 갈등, 사회적 아픔들에 대해 깊게 연결해 다루었다. <조명가게>도 마찬가지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라는 초현실적인 세계관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결국 우리 가장 가까운 이웃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우리 앞에 닥치게 될 수 있는 사회적 재난과 그로 인해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경험을 진실되게 그려냈다. 강풀 유니버스 작품 안에 담겨있는 특유의 신파와 가족주의, 온정주의는 우리네 현실과 맞닿아 있어서 설득력 있다. 과거의 아픔을 단순히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바탕으로 현재와 연결된 이야기를 상상력 있게 만드는 작품들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제시해 준다. 

기독교는 ‘생과 사’ 그리고 ‘부활과 죽음’에 대해 다루는 종교이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으로써 오히려 새로운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고, 어둠을 헤매는 우리에게 빛으로 오셔서 다시 살게 하도록 중보 하시는 분이다. 교회는 죽음이 끝이 아닌 것을 알기에, 초월적인 영혼의 세계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긍정하고 상상하는 공간이다. 우리는 그곳을 하나님 나라라고 부르며, 전혀 다른 공간이 아닌 이 땅에 펼쳐질 것을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죽음으로 이별과 상실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위로하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준비하는 사람들 혹은 죽음으로 인해 가족을 떠나보낸 사람들에게 종교적이고 형식적인 의식만 선사해서는 안 된다. ‘이 생’, ‘저 생’으로 분리하지 않고 죽음을 예비하는 종말론적인 신학, 충분히 애도하는 장례 문화, 기억하고 추모하는 공동체 문화를 만들어나갈 수 있어야 한다.


글. 임주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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