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리뷰 [오트밀]NETFLIX 영화 '정이' - "미래의 기술은 우리에게도 '평등'할까?"

2023-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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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정이’의 탄생

<사진 출처: 넷플릭스>

2315년, 멀다면 멀지만 가깝다면 가까운 미래. 지구는 끝끝내, 모두가 우려한 대로 기후변화로 인한 심각한 위기를 맞는다. 더 이상 인간이 살 수 없는 환경으로 오염되자, 인간은 지구와 달 사이에 있는 곳에 인류가 살 수 있는 ‘쉘터’라는 곳을 만들어 이주하게 된다. 자고로 인간이 모여 사는 곳이라면 악의 문제가 늘 생겨나듯, 이주해서 간 쉘터들 간에 전쟁이 시작된다. 아무런 목적도 이유도 찾을 수 없는 이 전쟁은 40년 간 지속된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거의 모든 전투를 승리로 이끌며 인류를 구할 전쟁영웅인 ‘윤정이’가 등장한다. 하지만 딱 한 번의 전투에서 실수로 인해 패배를 맞게 되는데... 이는 윤정이가 식물인간이 되기 전 마지막으로 참전한 전투가 돼버렸다.

이 전쟁에는 명분이 없지만, 윤정이 팀장의 참전에는 분명한 명분이 있었다. 사랑하는 자신의 딸 ‘윤서현’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딸에 대한 마음을 동력으로 삼은 윤정이의 전술전략은 그 누구의 것보다 막강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식물인간이 된 윤정이의 복제인간을 필요로 했다. 마침,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기술을 개발 중인 ‘크로노이드’라는 대기업이 윤정이의 신체를 ‘구매’해 연구를 시작했다. 그렇게 35년이 지난, 영화 시점에서의 현재, 윤정이의 딸 윤서현은 크로노이드사에 들어가 전쟁 AI 로봇 개발 팀장이 되어 ‘정이’라는 AI를 탄생시키게 된다. 인간 정이의 신체 능력을 학습시킨 로봇에, 뇌를 이식시킨 AI ‘정이’는 1호, 2호, ‥19호, 20호를 거쳐 점점 완벽한 전쟁영웅으로 만들어져나가고 있었다.

 

미래의 기술은 나에게도 평등할까?

그런데 이러한 미래는 어떻게 가능해진 것일까? 단순히 기술의 발전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식물인간이 된 당사자의 자의도 없었는데, 사기업에서는 어떻게 그 사람의 기억과 신체 능력을 구매해 마음대로 상품화시킬 수 있게 된 것일까? 그것은 <정이> 속 미래에서 A, B, C타입으로 분류되는 사후(?) 세계가 열렸기 때문이다. 영화 속 세계관에서는, 인간이 죽을병에 걸리거나 혹은 불의의 사고로 죽게 되면, 그 뇌를 이식해서 연명해 나갈 수 있는 선택이 주어진다. 단, 재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타입이 나눠진다. A타입의 돈을 지불하면, 나를 복제한 ‘고유한’ AI가 나와 똑같은 인간의 권리를 누리며 살 수 있다. B타입의 경우, 최소한의 인권은 보장되지만 결혼이나 거주 이동 등 몇 가지 자유가 제한된다. 마지막 C타입은 뇌와 신체의 모든 정보를 사기업에 이관하고, 기업에서 나의 정보를 이용해 다양한 목적의 복제 AI를 만들 수 있는 것에 동의해야 한다. 이럴 경우 최소한의 인간적 대우도 받지 못하며, 자유도 주어지지 않는다. 단, 그 가족이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막대한 돈을 벌 수 있다.자신의 뇌와 신체 능력이 전쟁 로봇으로 개발되고 있는 윤정이는 홀로 남겨진 노모와 어린 딸의 앞날을 위해 어쩔 수 없이 C타입으로 ‘결정당하게’ 된 존재였다. C타입의 AI ‘정이’는 그렇게 가상 전쟁 시뮬레이션에 참전하여 총알이 몸을 관통하고, 신체 일부가 잘려 나가며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는 고통을 끊임없이 겪게 된다. 그러다가 연합군과 아드리안이 자기들끼리의 이해관계에 따라 전쟁을 종식시키기로 협상하여, ‘정이’는 결국 가정용 AI신세, 구체적으로는 성행위를 돕는 ‘섹스돌’ 정도로 사용될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처럼 요즘 시대의 SF영화는 단순히 액션이나 기술의 진보만을 다루지 않는다. 관객들로 하여금 그저 미래에 일어날 공상과학 정도로 편하게 생각하며 감상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정이>처럼 A, B, C타입과 같은 불편한 진실을 펼쳐놓고, “미래의 기술은 당신에게도 평등할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제는 나와 똑같은 복제 AI가 만들어진다는 기술에 놀라워하는 게 아니라, 미래에 나는 어떤 등급으로 매겨지고, 나의 정보는 어떻게 이용될 것인가에 대해 소름 돋아하는 시대가 됐다.

 

AI와 '구별된' 인간성이란 과연 무엇일까?

<사진 출처: open AI Chat GPT 홈페이지>

최근 들어, ‘챗GPT’라는 기술로 인해 AI와 한 발짝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든다. 이는 미국의 AI개발사인 ‘Open AI(오픈에이아이)’가 개발한 ‘인공지능 챗봇’으로, 사용자가 대화창에 원하는 명령어를 입력하면, 그에 맞춰 대화뿐만 아니라 문제에 대한 해결답안까지 제시해 준다. 문제는 챗GPT 기술이 지금껏 인간이 생성해 온 수백만 개의 웹페이지를 데이터베이스 삼아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인간이 가진 편향적인 정보를 답습할 수도 있다는 점에 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개발자들이 미리 ‘인종차별적, 성차별적, 혐오적’ 텍스트에 대해서는 답을 하지 않는 시스템을 설계해놨다고 하니, 재작년 챗봇 ‘이루다’를 향한 성희롱과 같은 불미스러운 사건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래본다.

영화 <정이>에서도, 인간의 뇌를 이식한 AI가 오히려 인간을 차별하고 무시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다. AI ‘정이’를 전쟁 용병으로 만드는데 혈안이 된 ‘김상훈’ 연구소장은, 사실 크로노이드사 회장의 뇌를 그대로 이식한 AI였다. 그래서 회장의 성격을 그대로 닮아, 매사에 실리를 추구하고, 분노를 참지 못하고, 상대가 로봇이든 사람이든 자기 마음대로 휘두르는, ‘인간성이 상실된’ 성정을 갖고 있다. 특별히 그는 A타입을 통해 만들어진 존재이기에, 사회에서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은 물론이며, ‘갑질’까지도 가능한 위치에 있다. 그런 그는 어색하리만큼 과장된 텐션과, 억지스러우리만큼 재미없는 유머와 농담을 보여주곤 하는데, 이는 인간과 AI의 구별이 거의 사라졌음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실제로 ‘유머’가 인간과 기계를 구별하는 기준이 된다는 실험 결과가 나온 적이 있다.(기사) 인공지능은 인간의 유머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분석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정이>는 지금으로부터 약 300년 후 즈음에는, 당연히 AI도 유머를 구사할 수 있는 존재가 될 것이라 암시한다. 즉, 인간을 AI로부터 구별해 낼 수 있는 기준인 ‘인간성’의 개념이 점차 모호해질 것이라는 이야기다. 존중, 배려, 생명의 가치를 중시하는 AI가, 돈을 위해 인간성을 포기하는 인간보다 오히려 더 인간답다고 말하게 될 시대가 오게될지도 모른다. 그러한 미래에서, 인간은 단지 ‘인간이 아니라는’ 이유로 로봇을 ‘비인간’으로 여기고, ‘비인간적인’ 태도로 대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인간과 AI 간의 관계성, 사회 질서 등 다양한 윤리적인 문제들을 심각하게 고민하며 준비해나가야 한다. AI의 발전이 단순히 인간을 위한 노예 계층을 생성하는 프로젝트가 아니라면 말이다.

 

디스토피아적인 현실에서 우리를 구원할 ‘인간성’

어머니가 자기 때문에 C타입으로 구매됐다는 죄책감, 비록 AI지만 여전히 뇌 속에 자신을 향한 사랑으로 걱정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정이’를 지켜보는 괴로움. 이 모든 사회적 악과 가족의 비극을 경험한 윤서현은 결국 ‘정이’에게 모성애로부터의 자유, 전쟁으로부터의 자유, 기업의 횡포로부터의 자유를 선물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SF 액션이라는 장르를 기대하고 관람한 사람들은, ‘갑자기 분위기 가족애’인 드라마 장르에 크게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다른 한편으로, 필자 역시 영화 <정이>에 대한 아쉬운 마음은 숨길 수가 없다. 차라리 드라마 시리즈로 제작됐다면 어땠을까? 98분에 다 담기에는 <정이>가 가진 세계관이 너무 방대했고, 캐릭터 간의 관계성에 대한 설명은 불친절했다. 그럼에도 “가족애로 시작해 가족애로 끝났다”라는 등의 비판에 대해서는 크게 동의하지 않았다. 만족스럽다기보다 “그럴 줄 알았지“ 정도로 여기고 넘어갔다. ‘연상호’ 감독이 자신의 작품에 가족애를 단골 서사로 사용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크게 흥행한 영화 <부산행>부터 <반도>,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과 티빙 시리즈 <괴이>까지. 연상호는 디스토피아적인 현실 속에서 인간성을 잃지 않게 만드는 유일한 것이 가족애라고 줄곧 설명해오지 않았는가.(물론, 그는 생물학적 가족뿐만 아니라 확장된 가족 형태를 제시하기도 했다) 이제는 <정이>를 통해 그 가족애를 통한 인간성은 미래의 AI에게서도 발견될 수 있으리라 말하고 있다.

 

왜곡된 인간성이 아닌, 창조신앙의 '확장된' 인간성으로

이렇듯 연상호 감독은 늘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디스토피아, 즉 최악의 암흑세계가 펼쳐졌을 때, 인간성 및 윤리성을 잃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은 이제 공상과학 콘텐츠뿐 아니라, 기독교 안에서도 깊게 고민되어야 할 난제다. (물론, ‘인간성’ 혹은 ‘비인간’의 개념에는 꽤 넓고 다양한 층위의 설명이 필요하다. 그래서 여전히 다툴만한 여지가 많은 개념이다. 이 표현이 피조세계 안에서 ‘인간중심적’으로 사용되어 왔다는 것만 봐도 그렇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 앞에서 자주 “인간성을 말살했다”, “비인간적인 태도이다”라는 식의 말을 통해, 이 두 가지의 개념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음을 드러낸다.) 미래는 이미 왔고, 계속해서 새로운 미래들이 다가오고 있다. 기독교인들이 가져야 할 중요한 태도는, 미래에 있을 ‘비인간적인 문제들’에 대해 고민하고 기독교적인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이다. 단, 여기서 ‘비인간’이란, 단순히 생물학적 인간이 아닌 존재들을 지칭하는 개념은 아니다. 생물학적 인간이든 로봇이든 간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첫 모습과 세계를 파괴하려는 모든 악의 문제를, 우리는 ‘비인간’이라 지칭할 수 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죽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창 1: 26) 

인간은 하나님의 외적인 형상을 닮아 만들어진 독보적인 존재가 아니다. “사랑으로 상호 내주, 상호 침투, 상호 의존, 상호 순환”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을 담아 창조된 존재다. 또한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피조세계에 대한 섬김과 책임의 자세를 닮도록 창조된 존재다. 하지만 이미 숱한 전쟁과, 생태계 위협으로 인해 처음 창조된 인간성을 잃어가고, 이 세계를 열심히 생명 죽임의 문화로 이끌어 왔다. 오늘날 우리가 고민해야 할 모든 사회 문제, 기술 문제, 종교 문제에는 결국 ‘올바른’ 창조 신앙으로의 회복이 수반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우리가 회복해야 할 창조신앙 안에서의 인간성은, 생물학적인 인간을 넘어 모든 생태계의 생명으로 확장되어야 하고, 기술 세계에서의 포스트 휴먼이라는 생명의 개념도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글. 임주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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