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마를 본 적 있나요?’
손사래를 치며 말할 것이다. ‘악마가 눈에 보이나요?’ 다시 물어본다. ‘정말 악마를 본 적이 없다고 생각하나요?’ 잠시 멈칫할 것이다. 그리고 말할 것이다. ‘악마를 본 적이 있어요.’
그렇다. 악마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악마는 보인다. 전쟁의 광기 속에서, 약자를 짓밟는 강자들의 탐욕 속에서, 진실을 은폐하는 거짓의 담합 속에서. 옳은 줄 알면서도 어긋난 길을 가려는 마음의 유혹 속에서. 은밀하게 때론 대담하게 나라와 관계와 한 사람을 망가뜨리려 악마는 오늘도 일하고 있다. 사람들은 악으로만 설명될 수 있는 일에서 악을 빼놓은 채 ‘도대체 왜?’라는 질문을 한다. 심지어 그 화살을 신에게 돌리기까지 하면서 말이다.
그 악마가 21세기 대학로 한복판에서 출몰했다. 1942년 출간돼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사랑을 받아온 C.S. 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를 원작으로 한 연극 <스크루테이프>(연출 : 이석준, 제작 : 야긴과보아스 미니스트리)를 통해서다. 시대상을 반영해 ‘편지’ 대신 악마 조카 웜우드에게 ‘인터넷 라이브 방송’으로 메시지를 전한다. 스크루테이프(악마)도 하나가 아니라 셋이다. 덕분에 원작이라는 활자에 갇히지 않고, 입체적인 모습으로 걸어 나와 관객에게 말을 건네는 악마를 만날 수 있다.
악마는 ‘환자’로 불리는 한 사람이 무신론자에서 회심을 거쳐 영적 성숙에 이르는 길목마다 방해물과 덫을 놓는다. 목표는 하나다. ‘원수’(예수 그리스도)에게 환자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들의 계략은 낯설지 않고, 친숙하다. 일상 안에서 구체적인 방법론을 가지고 협박 대신 매력으로 환자를 유인한다. 번번이 이들의 전략은 실패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유효한 다음 술책을 의논한다. 신자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가까워질수록 악마들의 사이는 갈라지고, 서로를 힐난한다. 마침내 이들의 실패가 자명해지는 순간, 영적 전쟁의 끝은 폐허가 아닌,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 찬 승리의 축제임을 깨닫게 된다.
신학자 알리스터 맥그라스는 기독교 서사뿐만 아니라 그 서사를 변증적으로 해석하는 이들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기독교 서사 안에는 모든 종류의 인간 상황을 다룰 본질적 능력이 있는데, 청중의 구체적 상황을 염두에 두고서 기독교 서사를 번역하고 옮기는 일은 결국 그 서사를 해석하는 사람의 임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책 ‘포스트모던 시대, 어떻게 예수를 들려줄 것인가’ 에서). 연극 <스크루테이프>는 바로 이 해석자의 역할을 훌륭히 해낸다. 문학가이자 변증가였던 루이스 특유의 논리적이면서도 풍부한 상상력에 기반한 31통의 편지를 프롤로그와 6개의 에피소드, 에필로그로 농축해서 연극이라는 생동감 넘치는 언어로 재탄생시켰다. 여기에 원작이 첫 선을 보였던 1942년의 영국과 연극으로 만들어진 2023년의 한국이라는 시공(時空)의 간격이 느껴지지 않도록 세밀히 디자인된 무대(유튜브 촬영 스튜디오)와 다양한 영상 기법들이 동원돼 한 사람의 회심의 과정과 악마의 몰락이라는 교차된 운명을 효과적으로 대비시키며 믿음의 여정 이면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영적 전쟁의 실체를 상상력이라는 문화의 언어로 보게 만든다. 악마를 통해서조차 구원의 은혜를 맛보게 한다. 직접 체험하시길 권한다.
대학로 TOM 2관에서 2023년 2월 4일까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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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성현 목사 (필름포럼 대표, 창조의정원교회 담임)
‘악마를 본 적 있나요?’
손사래를 치며 말할 것이다. ‘악마가 눈에 보이나요?’ 다시 물어본다. ‘정말 악마를 본 적이 없다고 생각하나요?’ 잠시 멈칫할 것이다. 그리고 말할 것이다. ‘악마를 본 적이 있어요.’
그렇다. 악마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악마는 보인다. 전쟁의 광기 속에서, 약자를 짓밟는 강자들의 탐욕 속에서, 진실을 은폐하는 거짓의 담합 속에서. 옳은 줄 알면서도 어긋난 길을 가려는 마음의 유혹 속에서. 은밀하게 때론 대담하게 나라와 관계와 한 사람을 망가뜨리려 악마는 오늘도 일하고 있다. 사람들은 악으로만 설명될 수 있는 일에서 악을 빼놓은 채 ‘도대체 왜?’라는 질문을 한다. 심지어 그 화살을 신에게 돌리기까지 하면서 말이다.
그 악마가 21세기 대학로 한복판에서 출몰했다. 1942년 출간돼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사랑을 받아온 C.S. 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를 원작으로 한 연극 <스크루테이프>(연출 : 이석준, 제작 : 야긴과보아스 미니스트리)를 통해서다. 시대상을 반영해 ‘편지’ 대신 악마 조카 웜우드에게 ‘인터넷 라이브 방송’으로 메시지를 전한다. 스크루테이프(악마)도 하나가 아니라 셋이다. 덕분에 원작이라는 활자에 갇히지 않고, 입체적인 모습으로 걸어 나와 관객에게 말을 건네는 악마를 만날 수 있다.
악마는 ‘환자’로 불리는 한 사람이 무신론자에서 회심을 거쳐 영적 성숙에 이르는 길목마다 방해물과 덫을 놓는다. 목표는 하나다. ‘원수’(예수 그리스도)에게 환자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들의 계략은 낯설지 않고, 친숙하다. 일상 안에서 구체적인 방법론을 가지고 협박 대신 매력으로 환자를 유인한다. 번번이 이들의 전략은 실패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유효한 다음 술책을 의논한다. 신자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가까워질수록 악마들의 사이는 갈라지고, 서로를 힐난한다. 마침내 이들의 실패가 자명해지는 순간, 영적 전쟁의 끝은 폐허가 아닌,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 찬 승리의 축제임을 깨닫게 된다.
신학자 알리스터 맥그라스는 기독교 서사뿐만 아니라 그 서사를 변증적으로 해석하는 이들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기독교 서사 안에는 모든 종류의 인간 상황을 다룰 본질적 능력이 있는데, 청중의 구체적 상황을 염두에 두고서 기독교 서사를 번역하고 옮기는 일은 결국 그 서사를 해석하는 사람의 임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책 ‘포스트모던 시대, 어떻게 예수를 들려줄 것인가’ 에서). 연극 <스크루테이프>는 바로 이 해석자의 역할을 훌륭히 해낸다. 문학가이자 변증가였던 루이스 특유의 논리적이면서도 풍부한 상상력에 기반한 31통의 편지를 프롤로그와 6개의 에피소드, 에필로그로 농축해서 연극이라는 생동감 넘치는 언어로 재탄생시켰다. 여기에 원작이 첫 선을 보였던 1942년의 영국과 연극으로 만들어진 2023년의 한국이라는 시공(時空)의 간격이 느껴지지 않도록 세밀히 디자인된 무대(유튜브 촬영 스튜디오)와 다양한 영상 기법들이 동원돼 한 사람의 회심의 과정과 악마의 몰락이라는 교차된 운명을 효과적으로 대비시키며 믿음의 여정 이면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영적 전쟁의 실체를 상상력이라는 문화의 언어로 보게 만든다. 악마를 통해서조차 구원의 은혜를 맛보게 한다. 직접 체험하시길 권한다.
대학로 TOM 2관에서 2023년 2월 4일까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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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성현 목사 (필름포럼 대표, 창조의정원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