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리뷰 [오트밀]"신의 부재가 아닌, 신의 위로를 말하는 더 글로리" - 넷플릭스 <더 글로리>를 보고

2023-01-06
조회수 1645


“오늘부터 내 꿈은 너야. 우리 꼭 또 보자, 박연진.”

2022년의 거의 마지막 날인 12월 30일에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가 공개됐다. 배우 송혜교와 작가 김은숙의 만남이라는 점, 그리고 로맨스물이 아닌 학교 폭력에 대한 스릴러 복수극이라는 점으로 공개 전부터 큰 관심을 받았던 작품이었다. 현재는 1~8화까지인 시즌1이 공개되었고, 3월에 시즌 2가 공개될 예정이라고 한다. 

<더 글로리>는 가정 형편은 불우해도 건축가를 꿈꾸며 열심히 학교생활을 하던 고등학생 ‘문동은’(송혜교)이 힘과 재력으로 동급생을 괴롭히는 ‘박연진’(임지연) 패거리들에게 잔인한 폭력을 당하게 되어 타의로 자퇴를 하게 되고, 그들을 향한 복수에 온 인생을 걸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학교폭력’ 그리고 ‘사적복수’ 

<더 글로리>는 피해자인 동은이 가해자인 연진에게, 마치 애틋한 연인에게나 보낼법한 편지글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동은은 연진에게 괴롭힘을 당하기 시작한 날부터 지금까지, 즉 15년이란 시간이 흐를 때까지 단 하루도 그날의 기억을 잊지 못한 것이다. 동은에게 있어서 어른이 되고 직업을 갖고, 삶을 영위하는 것은 그저 복수를 향해 가는 여정일 뿐이다. 그의 꿈과 모든 인생의 목적은 온통 연진을 향한 '사적 복수'를 향해 흐르고 있다. 

언제부턴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사적 복수와 함께 자주 등장하는 소재가 있는데, 바로 ‘학교 폭력’이다. 사실 대중문화에서 사적 복수를 소재로 한다는 것은, 비록 ‘흥미 유발’은 보장되겠지만, 사회 전반에 자극적이고 불법적인 악영향을 끼친다는 관점에서 보면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여기에 학교 폭력이라는 서사가 더해지면 웬일인지 시청자들에게 설득력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그런 일이면 복수를 해도 된다고..' 

재작년에는 sbs에서 방영한 <모범택시>가, 작년에는 tiving오리지널 <돼지의 왕>과 wave오리지널 <약한영웅>이 그랬다. 학교 폭력과 사적 복수 조합에 꼭 등장하는 단골 흐름도 있다. 

‘학교에서 폭력을 당함’ → ‘동급생들의 방관과 외면’ → ‘용기 내서 학교나 사법기관에 신고’ → ‘담당 교사들의 회유와 협박 혹은 무시’ → ‘간혹 부모님들의 외면 혹은 상처 주는 말’ → ‘우울감과 무력감 (혹은 자살시도)’ → ‘원망과 분노’ → ‘사적복수 계획’ → ‘가해자의 파멸’ → ‘범죄자가 된 피해자’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범죄 문제들 중, 유난히 학교 폭력은 쉽게 접근하기도, 완전히 해결하기도 어렵게 느껴진다. 교육기관사법기관 그리고 가정이 긴밀하게 연계되어 역동적으로 발생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해자든 가해자든 대부분의 학교 폭력 유경험자들은 이 사건이 ‘원칙대로’, ‘법대로’ 원만하게 해결되기가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러한 내용의 드라마를 마주할 때, “왜 위험하고 자극적인 사적 복수라는 소재를 택했느냐?”를 따지며 부정적으로 반응하기 전에, 결국 이러한 문제는 어른들과 공권력에 대한 아이들의 불신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깨닫고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사회적 약자’를 바라보는 사회의 분위기

극 중 폭력을 당하던 ‘동은’은 가해자들에게 묻는다. “나한테 왜 이러는데?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데?” 그러자 가해 주동자인 ‘연진’은 이렇게 답한다.

“아 지겨워 진짜, 니들은 왜 다 그걸 묻냐? 난 이래도 아무 일이 없고, 넌 그래도 아무 일이 없으니까.. 지금도 봐. 네가 경찰서 가서 그 난리까지 떨었는데, 넌 또 여기에 와 있고.. 뭐가 달라졌니? 아무도 널 보호하지 않는다는 소리야 동은아. 경찰도, 학교도, 니 부모조차도. 그걸 다섯 글자로 하면 뭐다? 사.회.적.약.자.”

‘사회적 약자’ 혹은 ‘사회 취약계층’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에 해당하는 사람들에 대해 사회가 책임지고 복지로써 돌보겠다는 약속과, 더 나아가 한 사회가 공동체로서 이들이 사회에 잘 적응해나갈 수 있도록 배려하겠다는 다짐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이는, 언제까지나 사회적 ‘책임’의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들 혹은 사회 분위기 안에서만 실현되는 의미일 뿐이다. 그렇지 않은 곳에서 사회적 약자란, 그저 ‘함부로 대해도 되는 자들’ 정도로 통용된다. 

위의 장면은, 청소년들의 범죄와 그 안에 드러난 대화를 통해 지금 우리 사회가 얼마나 사회적 약자를 바라보는 관점과 태도가 추락해 있는지를 보여준다. 실제로, 몇 해 전부터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 ‘나라의 도움을 받아 공공임대 주거지에 사는’ 친구들을 향해 혐오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는 뉴스 기사들이 자주 보도되었다. 이러한 사례들은, 아직 아이들이 어리고 뭘 몰라서 저지르는 ‘실수’가 아닌, 부모의 성품과 행동을 그대로 답습하는 아동들이 떡잎부터 혐오자로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몇 년 후, 이러한 아이들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기능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얼마나 슬프고 끔찍한 지 모른다. 

‘동은’이 겪는 부모의 부재, 가난, 고통을 철저하게 악용하고 짓밟는 ‘연진’과 패거리들의 사고방식은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의 고통, 그리고 신의 외면

<더 글로리>는 주로 상반된 속성의 소재들을 메타포로 활용한다. ‘신’과 ‘인간’, ‘천사의 나팔꽃’과 ‘악마의 나팔꽃’, 그리고 바둑의 ‘흑돌’과 ‘백돌’이다. 드라마는 상반된 이미지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과거의 폭력극과 현재의 복수극에 신은 누구 편에 서 있는가”를 계속 고민하게 만든다. 물론 이 드라마 속에서 신이라 함은, ‘기독교의 신’, ‘불교의 신’, ‘무당의 신’ 등 다양하게 등장하고 있지만, 동은은 유독 하나님에 대해 원망과 적대적인 마음을 담아 질문을 던지곤 한다.기독교라는 종교가 넷플릭스의 인기 소재가 되어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사적 복수를 다루는 콘텐츠들이라면 어김없이 기독교의 하나님을 ‘외면하는 신’으로 등장시키곤 한다. 가령, 교회에서 가르치는 ‘원수 사랑’의 교리가 얼마나 악용이 되고 있는지를 보여주거나, 혹은 범죄 가해자들이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등장한다.

<더 글로리>에서도 학교 폭력 가해자 중 한 명(사라)이 마약 중독자이면서, ‘나름’ 신실한 ‘목회자 자녀’로 등장해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피해자인 동은에게 “주님께서 이미 지난날 자신의 과오를 용서하셨다”고 당당하게 선언한다. 지금껏 많은 영화나 드라마가 그러했듯, 이 드라마 역시 마치 영화 <밀양>의 한 장면을 오마주 하고 있는 듯하다. 또한 드라마는, 동은이 가장 처참한 고통을 당하는 장면에서 뒤에 흐릿하게 십자가 모형을 보여줌으로써, “지금 여기 가장 심각한 고통을 겪는 인간이 있는데, 신의 얼굴은 어디를 향해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연진의 폭력으로부터 탈출하려고 문밖의 빛을 향해 기어가는 동은. 하지만 이내 다시 잡히고 만다>

아마 몇몇 기독교인들은 <더 글로리>를 보며, “걸핏하면 기독교를 걸고넘어진다”며 불편한 감정을 느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필자는 이 드라마가 말하고 있는 ‘신의 부재’가 오히려 ‘신을 향한 갈망’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우리 사회에서 잘 해결되지 않는 고통의 문제에 대해, '신적인 위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신도, 공권력도 믿을 수 없는 동은은 오롯이 자기의 힘으로 사적 복수를 이행한다. 그는 이 복수의 끝에서 '더 글로리', 즉 ‘영광’을 얻을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동은은 무신론적인 발언을 서슴없이 내뱉으며, 신은 자기를 돕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그럼에도 동은의 행동을 보면 마치 신의 얼굴이 그를 향해 있는 듯하다. 동은과 그의 조력자인 '현남'과 '여정'이 각각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보고 있자면, 그들 간에 따뜻한 위로가 있고, 그로 인한 치유가 일어난다. 그들의 행동에는 아주 작은 것들을 향해서도 배려를 드러내고 있다. 그들의 표정과 눈빛에는 서로를 향해 구원을 빌어주고 있는 듯하다. 결국 작가는 가장 큰 고통을 겪은 피해자들의 연대야말로, 서로를 포용하는 관계야말로 신의 위로와 가깝다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리고 집에는 집 

극 중 동은은 복수를 위해 연진의 남편 ‘하도영’에게 접근하려고 바둑을 배우기 시작한다. 또한 바둑은 ‘여정’과 만남의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여정이 동은에게 바둑을 가르쳐줄 때 이런 말을 한다. 

“바둑을 한 마디로 정의하면 집이 더 많은 사람이 이기는 싸움이에요. 그래서 끝에서부터 끝으로, 자기 집을 잘 지으면서, 남의 집을 부수면서, 서서히 조여 들어와야 해요. 침묵 속에서, 맹렬하게.” 

이는 가해자 연진을 향한 동은의 복수 방법을 연상시킨다. 실제 건물의 의미인 ‘집’도, 혹은 가족이나 안식처의 의미인 ‘집’도 없던 동은은 난다 긴다 하는 집의 자녀들에게 철저히 그나마 남아 있는 집인 ‘몸’까지 파괴당했다. 가해자들은 동은의 집인 몸에 찾아와 부서뜨리기도 하고, 무너뜨리기도 하고, 심지어는 불에 태우기까지 한다. 그렇게 동은의 집은 완전히 사라지지도 않고 폐허가 된 채 모든 상처를 끌어안고 어른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동은은 연진이 안식처라고 생각하는 집을 완전하게 파괴하는 복수를 꿈꾼다. 연진이 쌓아 올린 세계를 하나씩 파괴하려는 계획이다. 그런데 사실 연진에게 집으로 여겨지는 ‘남편과 딸’, ‘직업’ 그리고 ‘친구들’은 애초부터 가짜였다. 거짓과 속임수로 연명하고 있는 가족, 돈으로 남의 능력을 빼앗아 유지하고 있는 직업, 그리고 철저하게 이익 관계로 얽혀 서로 존중하지 않는 친구들까지. 

인간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집을 짓는다. 그 집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집이 아닌, 자신이 안전하게 들어가 살 공간이다. 그렇기에 그 집은 영혼의 건강함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동은은 겉보기엔 무너지고 태워져 온전하지 못한 집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은 폭력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잃지 않고 지켜온 공간이었다. 물론 건강한 상태라고 할 순 없지만, 적어도 거짓으로 쌓아 올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연진은 처음부터 거짓으로 쌓아 올린 집이기 때문에, 비록 으리으리하게 보일 순 있으나 자신의 몸 하나 누일 공간도 없는 것이다.

<조력자 현남과 동은>

동은은 폐허가 된 집에 자신도 모르게 현남과 여정이 들어오는 것을 막지 못한다. 그들은 감히 동은에게 “너에게도 잘못이 있어서 폭력을 당한 건 아니니?”, “왜 아직도 과거를 잊지 못하고 복수에 집착하니?”, “나와 함께 모든 걸 잊고 새로 시작하자” 따위의 전형적이고도 가벼운 위로는 건네지 않는다. 왜냐면, 그들은 모양은 다르나 각각의 상처를 경험한 피해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무겁게 위로를 건넨다. 동은에게 어떤 위로가 필요한지, 동은에게 어떤 존재가 되어줘야 할 지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게 그들은 조금씩 폐허가 된 동은의 집을 어루만진다. 


세상 모든 동은이들을 위한 드라마

“아니, 그래서 이 드라마 결론이 뭐야?”
“사적 복수에 찬성하자는 건가?”

아직 시즌2가 나오지 않아 결말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모르겠으나, 아마 이 드라마는 단순히 사적 복수를 합리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김은숙 작가는 한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학교 폭력은 자주 등장하는 화두이고, 피해자분들의 글들을 읽어보면 가장 상처를 많이 받는 말,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너는 아무 잘못이 없어?’라는 말이었다. 그래서 ‘어 나는 아무 잘못이 없어’를 사명처럼 이해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세상 어딘가에서 지금도 동은이와 같은 일을 겪는 아이가 있다는 것. 학교, 가정, 사법기관을 신뢰하지 못하고 홀로 영혼이 파괴되고 있는 피해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시청자들이 깨달을 수 있다면 그걸로 다행이다. 더 나아가 세상의 모든 동은이들이 ‘내 잘못이 아니구나’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그걸로 이 드라마의 의도는 잘 전달된 것이다.

<동은을 눈물로 위로하는 여정>

특별히 영혼의 구원을 이야기하는 기독교에서는,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 혹은 공동체에서 크고 작은 구원들을 경험하라 수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큰 불행을 맞닥뜨렸다 해도 피해자의 입장에서 함께 공감해주고 위로해줄 수 있는 관계들이 필요하다. 학교 폭력이라는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피해·가해자의 부모와 교사들의 언행이나, 학교와 사법기관 등의 제도 등 사회 전역에서 피해자를 향한 관점과 태도에 변화가 일어날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피해자들을 향한 올바른 기독교적 관점과 태도를 갖출 수 있어야 한다. 

<더 글로리>는 학교 폭력 문제에 기독교를 걸고넘어진 게 아니라, 가장 큰 고통을 겪고 있는 자 앞에서 하나님의 얼굴은 어디를 향해 있는가에 대해 질문을 던진 것이라 여겨진다. 그리고 이 질문에 하나님이 답해주시길 기다리기보다는,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들이 답해줄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으며, 어디를 향해 바라보고 있는지를 곰곰히 생각해보는 것. 그것이 이 고질적인 사회적 문제에 대해 교회가 가져야 할 과제이다. 



글. 임주은 연구원(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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