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의 문화 읽기영화 <아바타2: 물의길> 리뷰 - "편 가르기를 하지 않는 세상"

2022-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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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 가르기를 하지 않는 세상 : 사회적 약자에게 바치는 영화
아바타2: 물의 길 | 제임스 카메론 |  액션,어드벤처,SF,스릴러 |  2022 |  12세 |  192분

 

영화의 배경

2022년 마지막 한 달을 보내면서 영화계에서 화두는 다시 ‘아바타’와 ‘제임스 카메론’이다. 13년 전에도 그랬었는데 13년 후인 지금도 그렇다. 세계 역대 흥행 기록에서 2위를 차지하고 있는 전편에 이은 속편이 개봉했기 때문이고, 또한 이 영화를 연출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영상기술 기반의 혁신적 미학을 추구하여, 단지 보는 영화에서 체험하는 영화로 거듭나게 한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영화가 시청각 매체에서 체험까지도 가능한 매체라는 점을 보여주어 영화 역사의 새로운 시대를 연 건 카메론 감독이 처음이다. 역사적인 의미가 적지 않은 사건으로서의 감독이다.

발달한 영상 기술과 미학을 고려할 때 전편에 이어 속편에서도 3D로 감상해야 감독이 추구하는 새로운 차원의 영화 세계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2009년 이후 13년 만에 개봉하는 속편이기에 전편과의 연관 관계에 관해 궁금해하는 관객들이 많다. 사실 영화 앞부분에 어느 정도 설명되어 있어 반드시 전편을 보아야 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전편을 모르고 감상하면 등장인물들의 상호관계와 이야기 배경에 관해 많은 부분을 놓칠 수 있고 또 이야기를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실마리를 찾지 못할 수도 있다. 최소한 판도라 행성의 생태 환경이나 인간과 나비족의 갈등 그리고 유독 제이크 설리 가족에 집착하는 전쟁 상황 등의 배경 정도는 숙지하고 있어야 영화의 세계에서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을 것이다. 전편을 볼 여유가 없는 분들은 인터넷이나 유튜브에서 친절한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제임스 카메론'과 '물'

먼저 영화 이야기로 들어가기 전, 카메론 감독의 물에 대한 애착 관계를 언급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감독의 물과의 인연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카메론 감독의 흥행 이력에 가장 큰 흠집을 낸 영화는 두 작품인데, 하나는 감독 데뷔작인 <피라나 2>(1981)이고 다른 하나는 1989년 개봉한 <어비스(Abyss)>다. 전자는 바닷속 식인 고기가 인간을 공격한다는 이야기이다. 전편의 유명세에 비추어 흥행을 기대했으나, 오히려 ‘유명 감독의 최악의 데뷔작’이라는 오명이 붙게 되었다. 후자 <어비스>는 바닷속 괴생물체에 의해 지구를 위협하는 인류가 공격받아 전멸의 위기를 다룬 이야기다. 비록 흥행에는 참패했으나 호평까지 인색했던 건 아니었다.

1997년 작 <타이타닉>은 세계 역대 흥행 기록 3번째를 기록한 작품이다. 바다 위에 떠 있는 거대한 인류 문명의 상징물이 얼음에 좌초해 침몰하는 내용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대서양을 횡단하는 거대한 배는 인류의 자존심을 상징하기 위해 채택한 것이니만큼 타이타닉호의 침몰은 인류에게 참으로 암울한 기운을 드리운 사건이었다. 그러나 절망 한가운데서도 희망을 보게 연출한 건 감독의 능력이 아닐 수 없다.이들 영화만 보더라도 물에 대한 감독의 생각과 애착을 충분히 엿볼 수 있는데, 더욱 놀라운 건 직접 심해 탐험 길에 나서서 그것을 다큐멘터리로 만든 것이다. <딥씨 챌린지>(2014)는 제임스 카메론이 제작하고 직접 출연하여 심해 탐험 과정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해저 세계를 생생하게 담아 보여주는 걸 목표로 삼은 만큼 매혹적인 심해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이처럼 바닷속 세계에 관심이 많은 감독이다 보니 <아바타: 물의 길>은 그동안 인간 탐욕의 흔적으로 심각한 몸살을 앓고 있는 바다의 분노와 그리고 그가 탐색한 해저 세계의 신비를 영화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맘껏 펼쳐 보여준 것이라 볼 수 있다. 바닷속 세계를 체험한다는 것만으로도 3D 영화로 감상할 가치가 충분하다.

 

영화 이야기

이번 영화에서 특징은 이야기가 단순하지 않은 것이다. 전형적인 가족 이야기일 뿐 서사가 부족하다고 평가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것은 일부만 맞는 말이다. 사실 크게 보면 가족과 가족의 생존을 위한 노력을 담은 전형적인 가족 드라마인 건 분명하다. 사춘기 아이들의 일탈과 부모로서 겪는 고충을 표현하는 방식도 기존 가족 드라마 공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미 제목에서 암시하였지만, 이 영화에서 관객은 감독이 지구촌 소수자들을 염두에 두고 제작한 흔적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난민, 인종 차별,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 가족을 잃은 자의 상실감, 약자들의 연대 등 다양하다. 사회적 약자들이 다수와 섞여 살면서 겪는 고민과 애환을 담았고, 그들과 함께 사는 삶의 모습도 담았다. 설리의 둘째 아들이 부족의 금기에 해당함을 알면서도 무리에서 배척되어 홀로 떠도는 ‘툴쿤’과 소통하려고 노력하는 장면은 매우 감동적이다. 마지막 전투 장면에서 보인 툴쿤의 활약을 생각한다면 사회적 약자들의 반란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지구에서와는 비교할 수 없지만, 배척과 포용의 문제가 판도라 행성에서도 작용하고 있었다. 여기에 더해 전편에 이어서 탐욕으로 빚어진 전쟁 문제와 무차별적인 생태계 파괴 등의 문제도 심도 있게 다뤄진다. 지구 생존을 빌미로 자연을 착취하여 그것을 통해 삶을 영위하려는 인간의 탐욕을 얼마나 공감적으로 잘 표현했는지 인간 자체가 싫어질 정도다. 최소한 이와 관련해서 공감을 얻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또한 감독이 단순히 영상기술의 진화를 위해서만 노력한 것이 아니라 인류의 지속적인 생존을 위한 문제와도 씨름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영화에는 서사가 빈약하다는 비난은 적어도 이번 영화에서는 근거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비난한다면, 이는 영화를 영화로 보지 않고 오히려 영화를 통해 소설을 읽으려는 사람들의 평에 불과하다.

이야기는 판도라 행성에서 인간을 쫓아낸 후 15년이 지난 시점부터 시작한다. 판도라 행성 연구를 위해 남아 있는 인간들을 볼 수 있고, 아바타로 다시 태어난 제이크 설리에게는 가족이 생겼다. 2남 2녀다. 그 가운데 ‘키리’는 전편에서 사망한 그레이스 박사의 유전자로 태어난 딸인데, 설리는 그녀를 가족으로 입양했다. 그리고 비록 가족은 아니지만, 가족처럼 지내는 캐릭터로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스파이더’는 전편에서 죽은 쿼리치 대령의 아들이다. 지구인의 모습을 하고 나비족과 섞여 살면서 나비족과 거의 다를 바 없는 일상을 보내는데, 아이들로부터 ‘몽키 보이’란 별명으로 불린다. 가족 서사 부분은 앞서 언급했듯이, 가족 드라마에서 매우 흔한 장면들로 연출되었는데, 의도적인지는 몰라도 자녀를 키우는 일에선 나비족도 인간과 비교해서 별다른 점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동안 지구 환경은 더욱 악화된 터라 판도라 행성을 향한 인간의 욕망은 더욱 강렬해졌다. 생존을 위한 마지막 보루를 찾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전편에서 제이크 설리가 이끄는 나비족을 상대로 벌인 싸움에서 굴욕적으로 패배한 후 강력한 복수심에 의해 추동된 침략 방법은 한층 더 잔혹해졌다. 특히 제이크 설리와 그의 가족을 좇는 쿼리치 대령과 부대원 역시 나비족 아바타로 거듭나 판도라 행성에서 자유롭게 유영한다. 나비족이 되어 나비족을 쫓는 것이다. 이로써 나비족이 직면한 위기는 한층 더 고조되었다.

설리는 그들이 자기를 쫓는다는 걸 알고는 자기로 인한 부족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또 최소한 가족의 생존을 보호하기 위한 아버지의 역할을 이행하기 위해 부족의 책임자 역할을 내려놓고 숲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야말로 난민 신세가 된 것이다. 그가 숲을 떠나 이른 곳은 ‘멧케이나 부족’이 사는 곳이다. 이들은 산호초를 기반으로 한 부족 중 하나였다.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지내는 터라 손은 지느러미처럼 생겼고 꼬리도 나비족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달했다. 한마디로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는 물 부족에 최적화된 상태다. 비록 낯선 부족이라도 환대하는 부족장의 호의로 설리 가족은 멧케이나 부족이 사는 구역에서 정착을 시작한다.

전편과 마찬가지로 지구 환경의 악화로 판도라 행성에 자원을 탐색하기 위해 온 인간은 탐욕과 복수심에 이끌려 전쟁을 불사하는데, 전편에서는 신비의 금속인 언옵테늄을 얻고자 숲을 파괴하였으나, 이번 영화에서 탐욕의 대상은 바닷속 동물 툴쿤이었다. 그들을 쫓는 모습은 포경선을 연상케 한다. 특히 그들이 겨냥하는 건 툴쿤의 뇌에서 추출한 암리타라는 물질인데 지구에서는 안티에이징의 묘약으로 알려져 고가로 팔리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들을 결정적으로 무너지게 한 건 툴쿤의 공격이었다는 점에서 탐욕의 대상이 오히려 저주가 되는 사례다.

 

영화의 의미

자원의 고갈은 물론이고 환경오염 문제로 인한 생태계 파괴는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지구촌의 위기로 생존을 위해 인간이 선택할 길은 우주탐사라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감독은 그것의 당위성과 필연성을 전제하고 영화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가 의문을 제기하는 건 인류 역사가 개척과정에서 보여왔던 침략과 도발의 길을 반복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하는 것이다. 이 질문을 통해 감독은 자원 전쟁, 영토 전쟁, 무역 전쟁, 돈의 전쟁 등 양상을 달리하며 진행된 인간의 이기적 욕망에 바탕을 둔 각종 전쟁 등이 새로운 터전에서도 반복할 위험은 얼마든지 있음을 경고한다. 인간이 조화와 균형 있는 삶을 추구하지 않는 한, 결국 우주 시대라는 것도 지구촌 종말의 시기를 지연하는 임기응변의 대책일 뿐 위기를 극복하는 근본적인 대책을 위한 혜안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말이다.새로운 시대를 누가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답하면서 감독은 가족을 기대 지평 위에 올려놓는다. 달리 말해서 인류의 시작이 가족에서 시작했듯이, 새로운 행성 시대 역시 가족에서 시작할 수 있다는 것, 곧 서로 사랑하며, 서로 돕고, 서로 세우는 삶이 있는 가족에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적 영화 보기

영화를 통해 감독이 제시한 화두를 기독교적으로 생각해본다면 아마 모르긴 해도 다음의 질문으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세상 가운데 현존하는 하나님 나라가 인간의 이기적 욕망의 대상으로 전락한 현실에서 그리스도인에게 기대할 수 있는 올바른 반응은 무엇일까?’

지구촌 생명의 지속을 위한 노력에서 관건은 지구에서든 다른 행성에서든 창조와 함께 현존하는 하나님 나라와의 관계를 바르게 갖는 일이다. 현존하는 하나님 나라는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거듭 침노하는 현실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다. 대의적 명분으로는 인류의 성장과 번영 그리고 보존을 위한 자원을 얻기 위함이겠지만, 실상은 자기 욕망을 극대화하기 위함이기에 그렇다. 이익을 위해 편 가르기를 거침없이 행한 것이다. 이것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임을 우리는 영화를 통해 새삼 확인할 수 있다.

창조를 위임받은 우리는 위 질문에 적합한 대답을 줄 의무가 있다. 영화에서 말하는 조화와 균형을 달리 표현한다면, 편 가르기를 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다. 서로 소통하면서 서로를 받아주고, 서로 사랑하면서 공존의 길을 함께 모색하고, 서로를 세워주는 노력을 기울이면서 평화가 정착하기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대안이 아닐지 싶다. 감독은 이걸 가족에게서 보았으나, 우리는 이걸 교회 공동체에서 본다.




글. 최성수 신학박사
영화와 영성 신앙의 관계를 고민하며 글을 기고하고 있다.
현재는 '서로 세우는 교회(온라인)'에서 섬기고 있으며,
CBS대전 <영화 속에서 만나는 주님>에 출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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