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리뷰 [오트밀]넷플릭스 드라마 <작은아씨들>을 보고 - "끊고, 잇고, 예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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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씨들> 원작에서 내게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은 주인공 ‘조’가 과연 ‘로리’의 구애를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로맨스를 이야기 엔진으로 쓰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오히려 이 작품은 조와 조의 자매들의 인생을 면밀히 탐구하는데, 그 탐구의 주제는 세 가지로 나뉜다. 그것은 ‘돈’과 ‘여성의 삶’ 그리고 ‘예술 또는 예술가라는 직업’이다. 수많은 이들의 동경을 부르는 작품 위의 낭만적 가난보다 실제 가난은 훨씬 참혹하겠지만, 가난 안에서 자매들은 예술가로서 행위하며 여성의 삶을 살아낸다. 

드라마 <작은 아씨들>은 원작과는 다른 내용이 담겼지만 가난한 집의 자매들의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에서 그 틀은 유사하다. 이에, 원작의 세 가지 구분을 통해 드라마 <작은 아씨들>을 읽어보려 한다. 


# 돈 : 가장 낮고 어두운 곳에서 가장 높고 밝은 곳으로?

세 자매를 둘러싼 가난의 굴레가 배경이 되는 이 드라마에서, 자연스럽게 자본은 주인공이다.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것. 견고하지만 실체가 없는 것. 시스템 그 자체이지만, 시스템의 작동 방식을 따르지 않는 것” 이것은 드라마 속에서 자본의 거대한 힘으로 묶여진 집단인 정란회를 묘사하는 내레이션이지만 곧 자본에 대한 묘사가 된다. 작가에게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은 우리를 지배하고 조종하는 힘, 그로 인해 사람을 사람답게 살지 못하게 하는 힘이다. 진화영의 대사처럼 말이다. “사람이 자유의지로 사는 줄 알잖아요. 사실은 돈의 지배를 받아요. 우리를 반으로 자르면 안에서 커다란 돈벌레가 나올걸요. 돈에 조종당하지 않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식이 있는데도 돈 때문에 목숨을 끊는 엄마를 보면서, 지독하게 고통스러우면서도 어쩌면 세상의 모든 것이 정말로 웃기다고 느낀 화영. 화영이 남긴 20억 원 현금을 막내 수학여행비를 들고 도망간 엄마가 남긴 열무김치 통에 힘겹게 옮겨 담아 숨기던 인주. 옥탑방에서 언니들처럼 가난하게 사는 것보다 부잣집에서 하녀로 살고 싶다며 친구의 그림을 대신 그려주는 인혜(인혜의 모습은 이집트에서 노역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 이 세상엔 열심히, 진실하게만 살아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것들. 가령 ‘부’와 같은 것이 있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 우리는 무력감에 빠진다. 그 때, 우린 도대체 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게 되는데 누군가의 말처럼 삶은 고달픈 데다가 불공평하기까지 한 것이다. 드라마에서 화영의 입을 빌어 ‘악마’로 지칭되며, 사람을 지배하고, 조종하고, 사람답지 못하게 살게 하는 돈. 이 ‘돈의 구조’에 얽힌 삶은 [가난은 무능이며, 돈 없음은 바로 죽음과 직결되고, 빈곤은 곧 불행]이라는 공식을 사실화시킨다. 그러나, 이 공식은 정말 진실인가? 우리는 다시 또 물어야 한다. 드라마 <작은 아씨들>의 정란회 레토릭처럼 “가장 낮고 어두운 곳에서 가장 높고 밝은 곳으로”의 캐치프레이즈를 외치며 타인의 고통과 목숨을 그저 발판 삼아 위로, 위로, 밝은 곳으로, 신비한 곳으로, 오르는 인생과 시스템은 정말 괜찮은가?   

그리고 질문 끝에, 700억의 돈 때문에 판결의 자리에 섰던 인주의 말처럼 사실 ‘돈’이 성실한 삶의 보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과 돈에 대해 갖게 되는 기쁨과 욕심이 사랑과 생명의 상실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면, 그 때 내 삶에서 돈의 악한 구조를 들춰내고, 거둬내고, 끊어내야만 자본주의 패러다임에 지배당하지 않는다. 토대를 들추는 용기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 여성의 삶 : 야심과 외로움이 주초가 되는 삶

<작은 아씨들>원작에서 주인공 조의 인상적인 대사가 있다. “여자에게는 미모만이 아니라, 야심도 재능도 있어요. 난 ‘여자는 사랑이 제일이야’ 란 말이 제일 지긋지긋해요. 그런데 동시에 너무 외로워요.” 어느 시대든, 주체적 삶을 살려고 하는 여성들의 지향이자 딜레마가 잘 함축된 대사다. 드라마 <작은 아씨들>도 이러한 여성의 삶과 갈등을 놓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여성 간의 연대의 주초를 훌륭히 그렸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세 자매 중, 첫째 인주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는 것이 삶의 목표다. 동료의 억울한 누명에 대해 소리칠 줄 알고, 기꺼이 슬픔에 함께 울어주는 사람. 그녀에게 가난은 자신과 가족들을 위협하는 적이다. 둘째 인경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는 ‘정의’. 가난은 자신을 강하게 만들어주었기에 어떠한 상황에서도 기자로서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막내 인혜는 타고난 능력을 가지고, 이기적이더라도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성취해 내고자 한다. 인혜에게 가난은 그녀의 삶을 막아서는 방해물이다.   

누군가를 보호하고, 신념을 지키고, 삶을 성취하는 세 자매는 극 중에서 자주 슬프고, 흔들리고, 외로워 보인다. 강인한 자세로, 야심으로, 재능으로, 신념으로, 가난한 삶을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걸어내지만 보호받고, 미모를 지키고, 웃음을 강요받고, 그냥 남성에게 삶을 맡기라는 세상의 집요한 요청에 타협하고 싶은 마음과의 싸움이 이들을 더 고단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 고단함은 자매들을 서로에게 이어내, 서사 내내 영웅적 면모를 보여주게 한다. 무엇보다 이 세 여성의 ‘진취성’은 자신들의 가난하고 고단한 생활을 떨치는 자존심에서 비롯되었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자신들 안에 고이게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영웅적이다. 인주는 자기 가족을 넘어 화영을 보호하고, 인경은 그의 신념을 맡겨진 뉴스거리를 넘어 어그러진 구조와 그것에 부역하는 이들을 돌이키는 데에 사용하며, 인혜는 심리적으로 취약한 효린을 보듬는다. 뿐만 아니라 악인으로 그려지는 고실장, 장마리 기자, 원상아 이 세 여성들과의 대화에서 세 자매는 내내 안타까움을 던진다. 너의 뿌리를 내리라고, 행복과 정의는 돈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고, 스스로 할 수 있다고, 괜찮다고, 희망을 가지라고.  여성들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서 비롯되고, 여성들의 힘은 스스로에게서 비롯된 삶이 부딪히는 외로움과 고단함 속, ‘서로를 붙드는 연결’에서 키워진다는 사실을 이 드라마는 강력히 전한다. 그러니까, 먼저. 나를 포함한 여성들은 부디 욕망에 충실했으면 좋겠다. “남들이 싫어할 것 아는데, 그냥 내가 입고 싶어서 입는 거야” 라며 여자아이들이 입을 법한 샤스커트를 입는 인주, “사랑이란 거, 주면 꼭 받아야 되는 거야? 받기 싫으면 안 받아도 되는 거 아니야?” 당당히 말하는 인혜, 술이라도 마시며 하고 싶은 말을 떳떳이 말하는 인경처럼. 바로 여기서부터 서로를 붙들고, 변화를 맞이할 힘이 생길 테니까.


# 예술 : 삶의 방식 

드라마 <작은아씨들>을 뭉근히 이끌어가는 무드와 소재는 “예술”이다. 미술과 연극을 전공한 원상아, 그림에 타고난 재능을 가진 인혜와 효린, 그리고 공간의 색감과 반복 같은 남다른 미장센이 극 전체를 미술 자체로 느끼게 했다. 그리고 극이 주는 이 예술적 느낌은 극의 내용과도 맞닿아 있다. <작은아씨들>이 드라마라는 작품(이 자체도 예술이지만)에 예술을 뭉근히 스며넣었듯, 이 작품에서 내가 독해한 예술은 ‘그저 일상을 사는 방식’이다. 그리고 그 방식은 두 가지로 가름할 수 있지 않을까.

엄마 난 엄마를 생각하면 언제나 슬펐어요/ 엄마의 불행과 슬픔이 마음 깊이 느껴져서요 / 하지만 이제는 그 마음을 끊고 싶어요 / 그냥 내 삶을 살고 싶어요 /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바람이 불면 바람을 맞고, 그렇게 살아보려고 해요 / ‘예술가’가 되어서요 / 나를 찾지 마세요 엄마 / 그래도 사랑해요

위의 내용은 살인자인 부모를 떠나면서, 엄마 원상아에게 쓴 효린의 편지 내용이다. 예술가가 되고 싶은 효린의 삶의 방식은 엄마에게 느껴지는 부정적 감정들을 ‘끊고’ 자기의 삶’을 사는 것. 비와 바람이라는 고난을 정직히 맞고 견뎌내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삶이다. 효린의 편지가 보여주는 예술가의 ‘주체성’은 인혜의 조언에도 나타난다. “효린아, 아버지가 살인자란 사실이 절대로 네 인생을 지배하게 두지 마.” 자신의 수학여행비를 가지고 도망간 책임감 없는 엄마와의 분리가 이미 이뤄진 인혜의 선배다운 조언이다. 이와는 반대로, 예술적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은 묶여있는 이들이다. 특히 난실에 있는 아버지의 거대한 난초 나무에 얽혀 어머니의 죽음이 스스로의 인생을 지배하도록 둔 상아. 그런 상아에게 사랑으로 지배당한 재상. 자본과 인맥이라는 구시대적 힘 아래 자신들을 묶어놓았던 원령 학교의 여러 인물들. 

무엇보다 예술적 삶은, 일상에서 의미를 찾아낸다. 엄마 그리고 오빠들과 찍은 원상아의 어릴 적 사진, 인혜가 가난한 언니들에게 받았던 용돈과 염려와 행복.. 그 사랑의 얼굴들, 인경이 친구 종호와 함께 있을 때 느꼈던 평안함, 인주가 화영과 일할 때 얻었던 아껴줌과 사랑. 마지막 회가 그려준, 놓쳤지만 발견되고야 만 일상의 소박한 의미들은 실로 예술적이다. 음악감독인 김문정 씨는 한 인터뷰에서 ‘예술’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찻잔을 가리키며) 이렇게 아주 평범한 걸 보더라도 특별하고 의미 있는 존재로 누군가에게 전달하는 게 예술가의 역할이자 사명이라고 생각해요.”

모든 이에게 일상은 흐른다. 이 흐름 속에서 주체적으로 의미를 찾는 것. 덮여서 보이지 않는 의미를 풍파를 견디며 들춰내는 것이 예술적 삶이라면 그리스도인은 누구보다 예술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더 많은 그리스도인이 예수께서 가르치신 가치와 원리로, <작은 아씨들>의 세 자매처럼, 기존의 틀을 깬 예술가, 개인적인 아픔을 이겨낸 예술가, 시대의 외압에도 굴복하지 않았던 예술가, 편견을 예술로 이겨낸 예술가, 고독을 예술의 재료로 승화시킨 예술가, 외부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는 초연함과 열정을 지닌 예술가1)로서 살 수 있길 바란다. 


*각주
1) <조성준(2021). 예술가의 일. 서울: 작가정신>의 챕터명 인용.


글. 정수인 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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