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의 문화 읽기주보라 프로그래머's PICK 영화 <녹턴> - "삶에 대한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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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대한 노래

<녹턴>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피아니스트 ‘은성호’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러시아의 콘서트홀에서 안내자의 손을 잡고 걸어 나와 오케스트라 앞에 다소 어색하게 선 그가 인사를 하고 자신의 이름을 말할 때까지는, 그런 줄만 알았다. 그러나 영화는 곧바로 그의 화려한 연주를 보여주지 않는다. 심지어 러닝타임 내내 그의 연주에 그다지 주목하지 않는 듯 보인다. <녹턴>은 ‘서번트 피아니스트 은성호’보다 그를 둘러싼 가족들에 대하여 더 많은 시간을 쏟아 이야기한다.

‘은성호’의 연주를 보여주지 않은 채로 콘서트홀의 장면이 끝나버리고 바로 이어지는 첫 장면의 배경은 2008년, 과거이다. 2008년의 ‘성호’는 엄마인 ‘민서’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멋있게 피아노를 치고 악단과 협연을 하는 ‘성호’지만 지하철에서, 길에서, 일상의 모든 장소에서 늘 골치 아픈 일을 저지르곤 한다. ‘민서’는 마치 매니저처럼 그런 아들을 챙기고 모든 일상을 함께 한다.

‘성호’에게는 동생 ‘건기’가 있다. 고등학생인 ‘건기’는 ‘성호’와 마찬가지로 피아노를 잘 치며 콩쿠르에도 나간다. 그는 카메라 앞에서 웃으며 볼멘소리를 한다. 늘 ‘성호’만 신경 쓰는 엄마를 다소 원망하는 말들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집안일을 하는 엄마 옆에서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녹턴’을 연주한다.

“성호는 그렇게 슬픈 느낌을 못내. 건기 연주가 훨씬 마음을 움직여요. 건기랑 통해요.”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연약함

또 영화의 시간은 2015년으로 간다. 2015년의 ‘건기’는 다른 사람이 되어있다. 집에서 나와 따로 살며 휴대폰 판매점에서, 또 여기저기에서 일하며 돈을 번다. 늘 형에게만 시간과 에너지를, 나아가 삶 전체를 쏟는 엄마에 대한 불만은 더 굳게 뿌리내렸다. 오랜만에 집을 찾아가 형과 엄마를 만나도 분노만 커질 뿐이다. ‘건기’는 혼자 알아서 잘 살겠다고 다짐한다. 그는 해외로 떠나 가이드 일을 한다.

우리는 시간을 넘나들 수 없는 존재다. 그러나 영화는 특별한 방식으로 시간을 넘나 든다. <녹턴>을 통해 관객은 2008년의 고등학생 ‘건기’를 보고, 동시에 그와 대조되는 2015년의 ‘건기’를 본다. 고등학생 ‘건기’는 가족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이토록 차곡차곡 쌓여갈 것을 알았을까. 형과 엄마를 떠나는 선택을 할 것을 알았을까.

<녹턴>은 한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과 그의 가족의 삶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우리가 깊이 공감할, 삶에 대한 노래를 들려준다. 우리의 삶은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 없다. 현재가 미래에 도달하여 과거로 불리울 때 과연 어떻게 변해있을지 알 수 없다. 우리는 각각의 시간 속에서 겨우 보이는 것들을 더듬거리며 그렇게 살아가고 나아간다.

‘성호’에게 모든 삶을 걸었던 엄마 ‘민서’와 그런 엄마를 원망했던 ‘건기’는 시간이 지난 후 조금은 또 달라졌다. <녹턴>의 말미에 등장하는 ‘성호’와 ‘건기’의 동행은 그래서 큰 울림을 준다. 어디로 흘러갈지 도무지 알 수 없어 어렵기만 한 우리의 삶이 놀라운 아름다움을 획득하는 순간이다.

한 편의 영화처럼 우리의 삶도 흘러간다. 타인의 마음을 참 몰라주는 ‘성호’지만, ‘성호’에게만 애정을 쏟고 집착하는 ‘민서’지만, 외로움과 분노로 가족을 피해버린 ‘건기’지만, 영화의 크레딧이 올라갈 때 그들은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나아갔다. 시간 그밖에 존재하는 절대자가 바라볼 때에 우리의 삶도 그러하리라.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연약함 속에서 단지 기도로 삶의 흘러감 속에 모든 걸 내맡길 뿐이다. 조금은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길 소망하며.


글. 주보라 프로그래머 (필름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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