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분석 [요즘뜨는것들]'오픈런' ; 현대판 구별짓기 소비

2022-04-28
조회수 2141


#일찍 일어나는 새가 오픈런한다.

“이거 제발 사지 마세요. 저만 알고 싶거든요.” 이는 흔히 온라인상에서 볼 수 있는 재치 있는 구매후기 글이다. 높은 만족도를 역설적으로 표현한 말이랄까. 그런데 최근에는 진짜로 저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왜냐, 온라인상에서 한 번 입소문을 타면 구매자들이 금세 몰려 구하기 어려운 물건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때부터는 ‘오픈런’ 혹은 ‘피켓팅’을 하지 않으면 손에 넣을 수 없게 된다. 

‘오픈런(Open Run)’이란 본래 뮤지컬이나 연극 등의 공연에서 쓰이는 용어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매장 문이 열리자마자 달려가서 구매하는 것’을 일컫는 말로 다르게 사용 되고 있다. ‘피켓팅’도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쓰이는 용어인데, ‘피가 튀는 전쟁 같은 티켓팅’을 의미하는 말로,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예매를 하는데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사실 오픈런은 주로 명품 매장을 찾는 소비자들에 한정되어 사용 되는 말이었고, 피켓팅은 주로 명절에 열차표를, 혹은 인기 가수의 공연 관람권을 예매할 때나 쓰였었다. 하지만 요즘은 식당이나 온라인 마켓 등 일상적인 소비 용어로 더 넓게 쓰이고 있다.

<제주도에 유명한 돈까스 집에 사람들이 오픈런을 하며 기다리고 있다>


MZ세대 중에서 원하는 것을 갖기(먹기) 위해 오픈런이나 피켓팅의 경험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맛집으로 소문난 음식점엔 웨이팅이 기본이고, 한정판 상품이나 새로 출시될 스마트폰을 구매 하려면 광란의 클릭을 통한 사전예약이 필수다. 이와 관련된 흥미로운 신조어들도 생겨나고 있다. 한 유투버의 소개로 유명해진 장인한과의 약과를 구매하는 것을 ‘약켓팅’이라 불리고, 프리미엄 식문화의 급부상으로 줄 서서 먹게 된 ‘오마카세’ 예약은 ‘스강신청(스시+수강신청)’이라 불린다. 이렇듯 요즘 세대는 단지 소비하는 것을 넘어서, 남들은 쉬이 구할 수 없는 것을 누구보다 먼저 ‘득템’하는 것에 진심인 세대이다.

<장인한과 약과 약켓팅 성공 인증/ 나이키 스니커즈 드로우 성공 인증/ 띠부띠부씰 '뮤', '뮤츠'의 희소성>


#뛰는 득템력 위에 나는 헝거마케팅 있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며, 최신 트렌드를 빠르게 익히고, 남과 다르면서도 이색적인 경험을 추구한다는 MZ세대는 자연스레 ‘득템력’을 기르며 살아가게 된다. 득템력이란, 경제적 지불 능력만으로는 얻기 어려운, 트렌디하면서도 희소성 있는 상품을 얻는 소비자의 능력을 일컫는다. 그런데 사실, 득템력의 기저에는 ‘남이 갖기 어려운’ 물건을 획득했다는 기쁨보다는, ‘남들도 다 갖는’ 물건을 갖지 못했다는 불안감이나 초조함이 더 크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MZ세대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상황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여드는 장소나 상품, 서비스를 꼭 이용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세대”라고 설명한 바 있다. 실제로 대다수의 사람들은 득템 이후 이를 SNS에 ‘인증’을 하곤 하는데, 이러한 모습은 오늘날 득템이 ‘과시’와 ‘차별화’의 기준이 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득템하고, 만족하고, 과시하는 소비습관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사실, 소비시장의 트렌드를 이끄는 것은 대중이지만, 소비 심리를 자극하며 새로운 소비 패턴을 만들어가는 힘은 결국 기업에 있다. 득템력 안에도 기업들의 ‘헝거마케팅(Hunger Marketing)’이 교묘하게 숨어있다. 여기서 헝거마케팅이란 ‘희소 마케팅’ 혹은 ‘한정판 마케팅’이라고도 불리는데, 한정된 물량만 만들어 판매해서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더욱 자극시키는 기법을 뜻한다. 최근에도 포켓몬 빵을 쉽게 구할 수 없고, 심지어 ‘뮤’나 ‘뮤츠’가 있는 띠부띠부씰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소비자들을 더 갈망하게 만들지 않았던가. 상품의 한정성을 강조하고 물량을 조절하는 기업의 정교한 마케팅이 득템력을 유희하는 소비세대와 만나 그들의 소비욕구를 증대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헝거마케팅과 득템력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자극하고 있다.


<사전예약으로 치열하게 구매하는 '아이폰' / 돈이 있어도 구할 수 없는 '다이슨 에어랩'>

 

#리셀만 잘하면 천 냥 빚도 가린다.

그런데 헝거마케팅과 득템력이 힘을 합쳐 키워낸 또 다른 시장이 있다. 바로 ‘리셀테크’ 시장이다. ‘리셀(re-sell)’이란 한정판 제품 등 인기 있는 상품을 구매한 뒤에 비싸게 되파는 행위를 뜻한다. 그런데, 최근 MZ세대 사이에서는 이 리셀 행위 자체가 하나의 재테크로 여겨지고 있다. 도대체 시세 차익이 얼마나 남길래, 되파는 것으로만 재테크가 가능한 것일까? 

리셀테크에서 가장 큰 시장 중 하나인 나이키 스니커즈를 예로 들어보자. 유명인과 콜라보레이션한 한정판 스니커즈의 경우, 구매했던 정가보다 6-7배나 더 비싼 가격으로 되팔 수 있다. ‘추첨’을 통해서 구매권한을 부여하는 ‘드로우(draw)’ 방식으로 판매를 하고 있다 보니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하도 스니커즈 리셀 시장이 커지다 보니 ‘스니크 테크’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그밖에 ‘샤테크(샤넬+재테크)’, ‘롤테크(롤렉스+재테크)’등의 합성어들이 있다.)

<파지약과는 약과중 더 맛있다고 유명해서 훨씬 더 비싼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명품뿐만이 아니다. 요즘 한창 인기인 포켓몬 빵을 모으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중고마켓에서 ‘띠부띠부씰(빵 안에 들어있는 포켓몬 스티커)’을 매매·교환하는 것이 큰 인기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탓에 귀해진 띠부띠부씰이 비싼 값에 거래되는 것이다. 심지어 159종의 스티커를 모두 모은 완성본은 당근마켓에서 약 80만 원 정도에 팔렸다고 한다. 또한, 위에서 언급했던 장인한과의 약과는 중고나라에서 5배에 달하는 가격에 팔리고 있었다. 비싼 가격과 상관없이 너도 나도 사려고 줄을 서자, 특정 매장에서는 포켓몬빵이나 장인한과 약과를 다른 제품과 세트로 묶어 팔기도 한다.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인질극'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웃지 못할 헤프닝도 생기고 있다. 

 

#문제는 구별짓기 소비다.

사실 오픈런이나 피켓팅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득템 하는 것은 정정당당한 노력의 결과다. 하지만 점차 이러한 소비패턴이 일상화되어감에 따라, 여러 사회문제들이 뒤따르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한정판 굿즈를 얻기 위해 수십 잔의 커피를 주문한 뒤 마시지도 않고 버리고 간 경우라든지, 띠부띠부씰을 뽑기 위해 뜯자마자 빵은 버리고 스티커만 가져가는 경우들이 있었다. 배보다 배꼽이 커져버린 한정판 마케팅은, 때로는 소비자들로 하여금 타인과 환경을 배려하지 못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이미지 출처: BizFact / 이코노미스트>

더 나아가, 디지털 소외계층을 더욱 극대화시켰다는 문제도 생각해보아야한다. 손님들이 너무 많이 몰려 ‘테이블링 앱’과 같은 온라인 예약을 통해서만 손님을 받는 식당들이 늘어나고 있다. 디지털 친화적인 세대에게는 익숙한 방식이지만, 그렇지 못한 세대에게는 꽤 불편하게 여겨질 수 있는 일이다. 이는 한창 코로나19가 확산될 시기에 재고가 부족했던 마스크 구매 방식에서도, 얼마 전 ‘코로나 잔여 백신’ 피켓팅 때에도 동일하게 제기됐던 문제들이다. 시대가 바뀌어감에 따라 모두가 디지털 활용 능력을 배우고 적응해나가야 하는 것도 맞지만, 특정 장애를 가진 이들이나 노년층 등 디지털 활용에 어려움을 겪는 계층에 대해서도 배려할 줄 아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출처: 아이지에이윅스>

마지막으로, 우리는 득템력이 현대판 ‘구별짓기’ 소비로 이어지는 현상에 대해서 심각하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는 취향과 소비가 곧 신분을 가르는 지표가 된다고 말한 바 있다. 즉 계급에 따라 차별적인 소비양식이 생겨나면서 계급 간 구별짓기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값비싼 명품을 구매하는 것이 곧 ‘내가 타인보다 더 우월하다’는 것을 의미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돈만 있으면 누구나, 언제든 손에 넣을 수 있는 물건으로는 부족하다. 남이 갖기 어려운 것을 구매하는 득템력이, 나를 증명하고 타인과 나를 차별화시키는 지표가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 구별짓기는 SNS가 판별해준다. 

이러한 ‘현대판 구별짓기’ 소비는 청년들로 하여금, 잠시라도 돈으로 나뉘는 신분사회에서 벗어나는 듯한 기분을 안겨준다. 하지만 동시에 반복적으로 불안과 배고픔의 상태로 밀어 넣기도 한다.

 

#“너네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 지 해, 왜냐면 난 부럽지가 않어.”

사실 필자의 삶도 이 글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근래 삶을 되돌아보니 헝거마케팅에 현혹되고 득템력을 자랑했던 순간들이 찬란하게 떠오른다. IT기기를 구매할 때마다 피를 튀기는 ‘사전예약’에 참여했고, 재고가 부족한 물건을 사기 위해 메일 알림을 켜놓고 하루 매분 매초를 들여다본 경험도 있다. 재고가 풀리면, 그때는 내가 원하던 색상과 상관없이 일단 구매 버튼을 누르고 본다. 요즘은 매주 ‘약켓팅’을 시도하고 있지만 어김없이 실패한다. 그렇게 어쩌다 득템에 성공할 때면 인증샷과 함께 SNS에 구매 성공 간증을 남길 때도 있었다. 

물론 필요한 물건들을 구매한 것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는다. 하지만 점차 소비패턴이 달라지면서, 가끔은 나 자신이 헝거마케팅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다는 찝찝한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특별히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면, 이러한 소비패턴에 대해 회한에 빠지기 마련이다. 때로는 하나님보다 구매 행위를 더 갈망하는 것 자체가 우상숭배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오늘날 청년들이 달라진 소비문화 속에서 ‘구별짓기’를 포기하고 ‘구별되어 살아가기’를 선택하는 삶이란 쉽지 않은 일이다. ‘포모 증후군’과 ‘헝거마케팅’의 총력전에 당해낼 재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는 이런 청년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떻게 말해줄 수 있을까? 사순절과 같은 특별한 절기에만 한정해서, 일시적으로 구매 행위 일체를 멈춰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될까? 물론 그 원리를 충분히 아는 이들에게는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비문화가 계속해서 변화하듯 신앙 훈련도 조금씩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청년들의 소비행위에 담긴 문화적 속성을 분석하고 파악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그들의 소비경험에 대한 대화가 많이 오고 가야 한다. 소비로 인해 정체성을 채우고 과시하는 청년들의 삶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는 것이다. 소통의 장 안에서, 그들의 소비의 촉발이 불안이 되지 않도록, 소비의 목적이 구별짓기가 되지 않도록 소통하고 권면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오늘날의 소비는 단순히 돈을 주고 물건을 구매하는 행위를 넘어선다. 상품에 대한 희소성과 더불어 구매 방식, SNS에 공유하고 타인의 공감을 받는 모든 과정이 소비라고 불린다. 최근 MZ세대 사이에서는 ‘타인에게 가치 있게 보이는’ 소비도 중요하게 여겨진다고 한다. 실제로 이들은 ‘지속가능성’이나 ‘정치적 올바름’과 같은 가치에 기꺼이 소비하는 특성을 갖는다. 교회는 이러한 점에 주목하며, 청년들로 하여금 자기중심적인 소비를 지양하고, 더욱 건강하게 소비 행위를 해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특별히 타자 중심적인 소비에 동참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실천의 장을 마련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바야흐로 과시와 불안의 시대. 교회 안에서조차 서로를 비교하고, 심지어 경건의 정도까지 세세하게 나누어 구별 짓는 시대. 이런 시대에 ‘장기하’라는 뮤지션은 ‘부럽지가 않어’라는 노래를 발표했다. 

“너네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해
 난 괜찮어 왜냐면 나는 부럽지가 않어
 한 개도 부럽지가 않어

 너한테 십만 원이 있고 나한테 백만 원이 있어
 그러면 상당히 너는 내가 부럽겠지 짜증나겠지
 근데 입장을 한번 바꿔서 우리가 생각을 해보자고

 나는 과연 니 덕분에 행복할까?
 내가 더 많이 가져서 만족할까?

 아니지. 세상에는 천만 원을 가진 놈도 있지
 난 그놈을 부러워하는 거야 짜증나는 거야

 근데 세상에는 말이야 부러움이란 거를 모르는 놈도 있거든
 그게 누구냐면 바로 나야.”

소비와 물질로 치환할 수 없는 정체성을 가진 이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타자 중심적인 건강한 소비를 꿈꾸는 이들. 그래서 비교하는 것을 포기하고, 부러움이라는 것을 모르는 그런 우리가 되기를 꿈꿔본다.



글. 임주은 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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