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의 문화 읽기영화 <끝없음에 관하여>를 보고 - "폐허 같은 삶의 단면들"

조회수 596


🎥 필름포럼 주보라 프로그래머 Pick Movie


여기, 아주 선명하게 ’멜랑콜리’를 마주하게 해주는 영화가 있다. 본능적인 눈물만 짜낼 뿐인 뻔한 스토리를 늘어놓는 영화가 아니다. 그저 삶의 단면, 단면을 미술관에 작품 걸듯 성실하게 걸어둔다. 관객은 1시간 16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 동안 그 미술관을 거닐 듯 차분히 그 단면들을 정면으로 마주 보면 된다. 많은 말을 쏟아내기 보다는 오히려 많은 말을 삼킨 이 느린 미술의 영화는 잠이 잘 오게 할 것 같지만, 오히려 정신을 번쩍 깨우고 선명하게 영혼과 삶을 탐구하게 만든다. 갑작스레 우리는 오늘을, 어제를, 요즘을 돌아본다. 사색할 여지도 없었고, 누군가를 위해 혹은 나 자신을 위해 눈물 흘릴 필요도 없었고, 그저 일하고, 먹고, 자고, 우리를 웃기게 하는 영상과 우리를 화나게 하는 뉴스에만 반응하며 그렇게 우리는 반수면 상태로 살고 있는가, 자문을 던지게 하는 영화. <끝없음에 관하여>다.


코로나19는 우리로 하여금 ‘죽음’을 더 가까이에서 느끼게 해 주었지만, 동시에 우리는 여러 ‘죽음’들을 목격하며 서서히 ‘죽음’에 둔감하게 되었다. 코로나19는 우리의 ‘믿음’을 돌아보게 해 주었지만, 동시에 우리는 ‘믿음’의 불길이 약해져 불씨가 되고 또 그조차도 꺼져버리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코로나19는 분열되고 개인화된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타인에 대한 그리움을 알려주었지만, 동시에 타인과 거리를 두고 단절되어도 된다는 명분을 주었다. 이러한 시대의 풍경은 영화 <끝없음에 관하여>의 아주 기이한 풍경들과 분명 닮아있다.

하얗게 질리고 시리도록 차가운 <끝없음에 관하여> 속 여러 인물들은 우울과 상처, 공허와 두려움, 단절과 외로움을 겪는다. 폐허가 된 도시 위를 떠다니는 커플의 명화와 같은 모습은 결국 우리의 삶의 풍경 그 자체이다. 아름답거나 평온한 순간이 스치나, 모든 삶이 허망하고 슬프다. 인간이 애써 발버둥침에도 삶은 그저 폐허와 같음을 깨닫는 순간에 우리는 신의 부재를 발견한다. <끝없음에 관하여>의 풍경을 스크린 밖에서 바라보는 우리처럼, 우리의 삶을 프레임 밖에서 바라보는 절대자의 눈에 우리의 삶은 얼마나 애처로울까.


<끝없음에 관하여>를 통해 한없이 가라앉는 기분을 느껴보길 권한다. 그 낯선 우울감이 우리의 삶을 멀리서 바라보게 해 주고 우리를 흔들어 깨운다. 세상의 풍요를 행복과 동일하게 여기던 착각이 멈추고,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주시는 이에게 달려가 안기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소망임을 되새기게 한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이다. 사람이 내 안에 머물러 있고, 내가 그 안에 머물러 있으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요15:5) 교만과 풍족에서 물러나 폐허 같은 삶을 직시할 때 겸손한 무력감과 오직 예수에 대한 소망이 채워질 것이다. 그렇기에 <끝없음에 관하여>가 가진 멜랑콜리를 우리는 공감하고 이해하며 보아야 하고, 또 공감하고 이해하며 볼 수 있다.



글. 주보라 프로그래머 (필름포럼)

2 0
2020년 이전 칼럼을 보고 싶다면?

한국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변화하는 문화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방향을 제언하는 다양한 콘텐츠를 온라인에서 나눕니다.

문화매거진 <오늘>

살아있는 감성과 예술적 영성을 통해 아름다운 삶의 문화를 꽃피워가는 문화매거진 <오늘>(2002~2014)입니다.

시대를 읽고 교회의 미래를 열어갑니다

뉴스레터 구독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뉴스레터 발송을 위한 최소한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이용합니다. 수집된 정보는 발송 외 다른 목적으로 이용되지 않으며, 서비스가 종료되거나 구독을 해지할 경우 즉시 파기됩니다.

광고성 정보 수신

제휴 콘텐츠 정보 등의 광고성 정보를 수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