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리뷰 [오트밀]넷플릭스 <지금 우리 학교는>을 통해 본 '학교' 그리고 '교회' 이야기

2022-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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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로 한국 좀비들에 익숙해진 무렵, 넷플릭스에서 또 하나의 K좀비 콘텐츠 <지금 우리 학교는(이하 지우학)>이 공개되었다. 2022년 1월 공개된 이후 현재까지도 <오징어게임> 이후 전 세계 넷플릭스 이용자의 뜨거운 관심과 선택을 받고 있다. 원래 <지우학>은 한국 웹툰시장(Webtoon)에서 이미 커다란 인기를 얻었던 작품이었다. 당시 탄탄한 소재와 스토리를 가졌다는 평가를 얻고, 이후 많은 언어로 연재 되었다. 하지만 제작자와 감독은 <킹덤>과 <부산행>이 나오기도 전 업계의 상황에서 선택한 좀비라는 주제가 얼마나 상업적 성공하기 힘든지, 그리고 이미 인기 있던 작품을 실사화하는 위험성이 얼마나 큰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학원물과 좀비물의 결합을 가진 작품을 각색하여 사회에 던지고 싶은 메시지를 포기할 수 없었다고 한다. <지우학>의 캐릭터들의 대사와 상황 전개는 좀비의 비현실에 대비되어 오히려 현실감을 느끼게 한다. 좀비가 주는 자극과 흥분을 넘어, 한국 사회에 그리고 해외 시청자들에게 공감이 될 메시지가 무엇인지 읽어보았다.


<사진출처 : Netflix 공식 페이스북>

 

#청소년관람불가

<지우학>시리즈의 좀비는 신선하다. 자칫 좀비 클리셰에 늘어질 수 있지만, ‘학교 폭력’에 기인한 좀비는 우리를 다른 시선으로 안내한다. 죽은 시체가 ‘생존력’을 갖게 되는 역설을 ‘학교 폭력’으로 풀어냈기 때문이다. 가해자의 ‘폭압적인 욕망’은 피해자의 극심한 ‘고통’으로 전가된다. 그리고 고통은 절규하는 좀비 집단으로 확산된다. 어쩌면 뉴스 미디어로 듣게 된 학교 폭력에 대한 정보 전달보다, 온몸에 피 범벅이 된 좀비로부터 탈출하려는 미장센이야 말로 폭력의 피해자들의 ‘고통’을 제대로 느끼게 한다.

<지우학>은 십 대들이 주인공이지만 십 대가 보지 못한다. 청소년의 이야기를 청소년이 관람할 수 없다는 등급은, 사실상 <지우학>의 목적은 ‘성인’에 있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지금껏 대부분의 학원물은 서로 간의 ‘우정’과 ‘성장’을 중심으로 순한 맛을 보여줬다. 제작 연출자는 원작 웹툰이 가진 솔직함과 잔혹함이 청소년의 ‘현실’을 더 잘 드러낸다고 판단했다. 그런 면에서 <지우학>은 청소년을 ‘잘 알고 있다’ 말하는 어른들의 '성급함'에 제동을 걸었다. 그러면서도 청소년의 미성숙함을 미화하지도 않는다. 그렇기에 악행을 스스럼없이 저지르는 학생에게 어떠한 정당한 서사를 주지 않는다. 타인의 인생을 밟고 지냈던 가해자 학생이나, 저주의 말을 함부로 내뱉는 학생 역시 좀비가 된 모습은 서글픔을 느끼게 한다. 아직 다양한 것을 그려볼 수 있는 시기, 실패와 실수의 용납으로 성장의 기회를 얻는 시기이지만, 지나가는 ‘성장통’이라며 무관심에 방치된 아이들이 보인다. 가해자이건 피해자이건 청소년들이 ‘관람’한 세계는 ‘일그러진 힘’의 세계였다.

 

<사진출처 : Netflix 공식 페이스북>


#우리 모두가 죽다

해외 시청자들은 <지우학>을 “All of us Dead”라는 제목으로 알고 있다. ‘학교’가 죽었다 라거나 ‘청소년’이 죽었다가 아닌 ‘우리 모두가 죽다’ 라는 제목은 <지우학>의 궁극의 메시지와 잘 부합한다. <지우학>에서는 아이들의 장면과 어른들의 장면이 교차되는 전개가 자주 나온다. 등장하는 어른들은 사회 각 분야를 대표하는 고위급 인사들과 교장, 그리고 많은 교사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주고받는 말과 사건을 끌고 나가는 방식은 비윤리적이고 폭력적이다. 그나마 아이들 편에서 도우려는 어른들은 힘이 너무 미약하다.

사회의 각 분야를 대표하는 어른들이 슈퍼 히어로가 되길 바라지는 않는다. 적어도 아이들을 경제적 형편으로 편 가르거나, 능력으로 줄 세우거나, 권위와 폭언으로 아이들을 누르지 않는 어른을 찾을 뿐이다. 아이들이 좀비 바이러스를 직접적으로 입은 피해 역시, 뒤틀린 사고와 삶을 가진 교사로부터 시작되었다. 자신 내면을 조절하거나 해결을 위한 방법을 찾지 못한 채 복수를 위해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며 바이러스를 퍼뜨린다.

<사진출처 : Netflix 공식 페이스북>

‘이재규’ 감독은 학교 세계를 한국 사회의 모집단이라 본다. 그렇기에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계급 문제’와 ‘폭력 문제’를 본다면, 학교에서의 폭발된 갈등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또한 학교 폭력은 비단 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면서 교사, 교장, 목사, 국회의원, 군인 등 학교를 다녔던 그들 또한 성인이 되어서도 체화된 폭력 시스템을 바꾸지 못한 채, 사회의 부조리한 시스템을 형성하고 자신의 분야를 굳건히 구축한다고 보았다. 학교를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에 상당 부분 동의된다. 많은 학교가 해로운 시스템으로 작용되고 있으며 아이들은 그것을 흡수하고 농축시키며 어른이 된다. 그렇게 사회 각 분야에 침투된 이들은 유익균보다 독성 가득한 유해균을 증식시키기 수월하다. 물론 인재를 양성하며 사회화를 교육하는 학교의 역할을 전부 매도할 수만은 없다. 그러나 ‘야만적 힘’의 구조와 ‘작은 폭력’을 용인하는 학교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우리 ‘모두’는 ‘폭력의 계보’에 연결될 수밖에 없다.

  

#새로운 길을 가는 아이들

“우리 왜 버렸어요?”

“아무 부탁 안 할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에게 아무 협조도 부탁하지 마세요.“

“학생이 그렇잖아 어른도 아니고 애들도 아니고”

 

<사진출처 : Netflix>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다’라는 진부한 표현은 오늘날 공교육 현실과 괴리가 크다. 주인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오락가락하는 뒤집어지는 정책만이라도 줄여주면 좋겠다. 학령 인구가 감소가 되고 있다는 통계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문을 닫는 학교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기사들도 많다. 우려의 목소리, '아이들이 사라지기에 대한민국의 미래가 암울할 것이다' 라는 말이 어딘가 모르게 찜찜하다. 어른들의 염려에 담긴 여러 함의를 둘째 치고서, 아이들이 여전히 ‘자원’으로 셈 되어 지고 있다는 사실에 힘이 빠진다. 어른들이 꿈꾸고 걱정하는 ‘미래’란 무엇일까? 수능 입시에 실패하면 죽고 싶은 심정을 느끼는 아이들에 대해 죄책을 느끼지 못하는 어른들은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사진출처 : Netflix>

<지우학>은 사회가 아이들을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는 상징들을 곳곳에 녹여냈다. 어른이 만든 시스템에서 발생한 사고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거나 건져내 줄 성인이 없음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그리고 아이들은 위와 같은 대사들로 자신 스스로를 지켜내기로 선택한다.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의 저자인 김누리 교수는 자신의 책에서 한국의 공교육 현실이 가진 결핍을 이야기한다. 한국 사회의 교육은 너무나 오랜 시간 미성숙한 엘리트들이 지배하여 뿌리를 만지는 작업이 쉽지 않다고 말이다. 일각에서는 김누리 교수가 교육 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에 교육 유토피아관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어른들이 공교육에 대한 비판과 정책을 엎치락 뒤치락 하며 이야기 하는 동안 아이들의 비명은 자체 음소거 되고 있다.

그렇게 좀비로부터, 어른들의 무책임함으로부터 ‘생존한 아이들’은, 배웠다. 자신들을 쉽게 버리고, 우선 되지 않은 현실에서 자신을 스스로 지켜나가야 한다는 냉혹한 현실을 배웠다. 어른은 모든 것을 훤히 알고 있는 '머리'와 많은 경험을 한 '몸'을 가진 채 꿈쩍하지 않는다. ‘절비’가 되어 인간이 되지도, 좀비가 되지도 않은 반장은 자신과 비슷한 이들을 위해 훌쩍 떠난다. 그녀가 보여준 책임감은 아이들에게 모닥불 같은 '작지만 따뜻한 희망’이 되어주었다. 이런 어른도, 저런 좀비도 되지 않으려 ‘새로운 선택’을 한 절비 학생의 '용기'만이 꿈쩍하지 않는 시대에 균열을 낼 수 있다.

 

<사진출처 : Netflix 공식 페이스북 >

# 지금 우리 주일학교는

<지우학>은 전반적으로 종교를 비판적으로 본다. 아이들의 집단 폭행과 어른들의 무관심과 폭력이 종교의 상징들 아래서 일어난다. 교사 이병찬은 오랫동안 집단 따돌림을 당한 아들을 위해 무당을 찾아가 부적을 얻기도 한다. 비참한 상황에 놓인 자신과 가족이 더 이상 구원 받을 길이 없다고 생각되자 좀비 바이러스를 퍼뜨린다. 바이러스로 광폭화 된 아들의 머리를 성경책으로 내리치기도 한다. 그는 신에게도,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버림을 받고 절망과 분노를 느낀다. 그가 철저한 고립으로 벗어날 방법으로 선택한 것은 ‘또 다른 폭력’이었다. 이병찬 선생처럼 우리 주변에는 도무지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고립의 사람들이 많이 존재한다. 

코로나19의 하루 확진자 10만 명의 시대다. 등교 중지, 부분 등교처럼 주일 학교 역시 온·오프라인 예배의 혼란에 놓여있다. 마음껏 찬양하기도, 재잘 재잘 대화하기도 어려운 환경 속에서 아이들이 경직된다고 생각하니 그저 안타깝다. 코로나 이전에도 불안하고 외로웠던 아이들은 단절로 인해 더욱 큰 상실감과 고립감에 빠져있다. 그래서 대다수 학생들이 현실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은 스마트폰 세상이며 게임이다. 문제는 조건반사적으로 상대방을 죽이면서 얻어지는 승리감에 장시간 노출되는 것이다. 감정을 주고받으며 관계를 맺고, 평범한 친구를 만들어가는 소소하고 따뜻한 일상은 언제쯤 찾아올까.

 

<사진출처 : Netflix 공식 페이스북 >

현재 우리는 단절과 분리의 시간 속에서 '공생'과 '공존'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 배우고 있다. 그런 면에서 교회는 공동의 의미를 잘 보여줄 수 있는 공동체이다. 강한 권력을 가진 나라가 관심을 가질 만큼 그리스도인들이 살아낸 공동의 문화는 특별하고 성숙했다. 사회가 가진 병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며, 하나님의 나라가 원하는 ‘참 인간’과 ‘책임적인 삶’을 제시하며 복음을 전했다. '지금 우리 교회'를 생각한다. 학교 폭력 뿐만 아니라, 범죄의 사각지대에서 일어나는 비극적인 상황과 밀착되어 공감하고 협력하는 교회를  찾기가 쉽지 않다.

입시와 합격이라는 압력은 청소년 그리스도인들도 동일하게 느낀다. 합격을 못했어도, 실수에 부끄러울 때도, 솔직한 심정을 꺼낼 수 있는 곳이 교회인지 생각해본다. 경쟁과 권력의 문화에 사는 아이들에게 성경 지식 전달 위주의 교육은 어딘지 아쉽다. 경건생활만으로 신앙인의 척도를 가르치는 접근 역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복음에는 타인의 마음과 깊이 공명할 수 있는 가치가 담겨있다. 교회 교육은 그러한 가치를 일깨워주는데 무게를 둘 필요가 있다. 아이들은 교회의 어른들에게서 평화의 감수성을 익힌다. 폭력과 고통의 현실에 서있는 자들을 위해 물러나지 않는 어른들에게서 책임과 용기를 배울 것이다. 이러한 살아있는 교육은 아이들이 스스로 판단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할 것이다. 그리고 한국 사회가 가진 위험을 외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손을 내미는 성숙한 어른으로 자라게 할 것이다.


글. 장해림 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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