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 꽃이 피었습니다신학생들이 함께 본 넷플릭스 <지옥> 그리고 '신의 의도'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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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 임주은 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 연구원)
  • 패널 : 배인병 전도사 (장안교회 전도사), 장해림 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 연구원)



임주은 : 안녕하세요! 저희가 오랜만에 ‘수다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코너로 모였는데요. 먼저 오늘 함께 수다 꽃을 피우실 분들을 소개합니다. 저는 문화선교연구원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고, 장신대에서 기독교와 문화를 공부하고 있는 임주은입니다.

 

장해림 : 네, 저도 문화선교연구원에서 교회와 대중문화를 함께 연구하고 있고, 장신대에서 기독교와 문화를 공부하고 있어요!

 

배인병 : 안녕하세요. 저는 신대원 3학년 졸업반이기도 하고 동대문에 있는 장안교회 전도사입니다. 약 20일 뒤면 아빠가 될 예정이라서 기대와 설렘을 가지고 살고 있어요.

 

임주은 : 오늘 우리가 함께 수다 꽃을 피워볼 콘텐츠는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인데요. 아무래도 국내·외에서 드라마 <오징어게임>과 같은 기대를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공개하자마자 첫날 세계 1위를 기록했다고 하더라고요. 여러 언론에서도 <지옥>을 이야기할 때, 꼭 <오징어게임>의 흥행과 연관 지어 설명하는 경우도 많았고요.

그런데 드라마 내용 자체를 즐기기엔 조금 무겁기도 하고, 또 후속편이 나와야 알 수 있는 어려운 부분들도 있다 보니까, 대중들이 쉽고 재미있게 즐기기에는 조금은 어려운 콘텐츠였었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드라마 안에 함께 나누면 좋을만한 사회적·종교적 소재들이 많았기 때문에 정말 유의미한 콘텐츠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오늘 이 자리를 준비해보았습니다!

 

Q. 여러분들은, 드라마 <지옥> 어떻게 보셨나요? 

장해림 : <지옥>이 평소에 제가 관심 있는 ‘종교’ 그리고 ‘죽음’을 다룬다는 것을 알고 하루 만에 정주행 했어요. 개인적으로는 이 드라마가 ‘종교의 발원, 지속성과 그 이유’ 혹은 ‘현대 시대에서의 종교의 영향력’에 대한 주제를 굉장히 잘 다루고 있는 것 같아요.

 

배인병 :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직관적이었다면, <지옥>은 비교적 철학적이고 사회적이고 종교적인 질문들을 던지고 있는 작품인 것 같아요. 특별히 이 드라마는 인류사를 압축적으로 잘 보여주었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역사 속에서, ‘불안과 공포’는 때론 인간을 발전시켜 ‘예술’이나 ‘종교’등을 탄생시키도록 해주었죠. 하지만 동시에 ‘불안과 공포’를 악용한다면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양상으로도 변할 수 있다는 양면성을 잘 그려준 작품이었어요.


임주은 : 전 이 드라마를 보면서, 저 또한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새진리회 성도 혹은 화살촉 혹은 이들을 믿으려고 하는 시민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첫 장면에서 “왜? 왜 죽였고, 왜 죽었지? 저 죽음은 어떤 법칙에 의해 벌어진 거지?”라는 질문을 계속 던지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시연당한 자가 ‘죄인’일 가능성에 대해 나오니까 그때부터 불안이 해소되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거예요. 그런데 후반부로 갈수록 다시 그 법칙들이 흔들리니까 다른 원인을 찾으려고 애썼어요. 이런 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인간이 얼마나 ‘질병’이나 ‘재난’ 혹은 ‘죽음’ 등에 대해 인과관계를 설명하고 이해하고 싶어 하는 욕구를 가졌는지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다랄까요..ㅎㅎ

 

Q. 여러분이 생각하는 드라마 <지옥>속 명장면을 하나씩 꼽아주세요.

배인병 : 제일 인상 깊었던 장면은 극 중 배영재 PD와 부인이 아이를 대신해서 죽는 장면이었어요. 아무래도 그 장면이 영화를 끌어온 법칙이 깨지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드는 순간이었잖아요.

 

장해림 : 그런데 저는 그 장면에서, 극 중 ‘천사’와 ‘지옥의 사자들’의 법칙에 허점이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고지를 받은 건 ‘아기’인데, 대신 부모가 죽었음에도, 사자들은 자신들이 시연을 한 대상이 누구인지 확인도 안 하고 다시 돌아갔잖아요. 그 지점에서 ‘고지’와 ‘시연’이라는 것이 어쩌면 굉장히 허술한 것이고, 어떤 법칙이라기보다 우연한 ‘자연재해’와 다를 바가 없겠다고 생각하게 된 장면이었어요.


임주은 : 저는 첫 번째 희생자가 발생한 후에, ‘화살촉 BJ’가 피해자 ‘주명훈’의 죄명이 무엇인가에 대한 의구심을 주장하자, 선동당한 시민들이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그를 조사해달라고 신고하는 장면이 제일 와닿았어요. 경찰들이 이렇게 답하더라고요. “아니, 피해자의 범죄를 수사하라니요. 그는 피해잔데요.” 

개인적으로는 이 장면이, 오랜 역사 속에서 인간이 ‘갑작스러운 사고나 죽음, 질병’ 등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죄의 결과’, ‘신의 심판’으로 연결지으면서 서로를 비난해 온 오랜 역사를 잘 표현해준 장면이었다고 생각해요. 사실 그렇잖아요. 그 사람들은 위로가 필요한, 안타까운 희생자들일 뿐인데.. 그런데 한순간에 그들을 가해자로 보는 시선이 있어왔던 거죠. 

아마 동양의 ‘권선징악’이나 ‘인과응보’ 사상, 무속신앙의 ‘천벌’ 사상이 버무려진 아주 오래된 고정관념이 아닐까요? 그런데 종교, 특히 기독교에서는 이러한 고정관념에 왜곡된 성경 해석이 더 강력한 신념을 더해주었다고 생각해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병자=죄인’에 해당하는 구절들만 가지고 왜곡된 해석을 하는 거죠...


장해림 : 저는 극 중 두 번째 희생자인 박정자가 시연을 당한 후, 이를 본 사람들이 엎드려 경배하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직접 눈으로 본 사람들이 엄청난 공포를 느끼는 장면. 저는 이 장면이 마치 종교의 기원을 보여주는 것 같다고 느꼈어요. 자신의 능력밖에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존재를 직면했을 때 두려움을 느끼고, 그것을 곧 경외감으로 승화시켜 경배하게 되는 과정을 본 듯했거든요.


 

Q. 극 중에서 ‘신의 의도’라는 용어가 자주 나오는데요. 신학 공부를 하고 있고, 또 교회에서는 사역을 감당하는 입장에서, 극 중에서와 같이 ‘신의 의도’에 대해 말하고 인식되는 것에 대해 어떻게 봤는지 궁금해요. 또한 실제 여러분들의 삶 속에서는 ‘신의 의도’를 어떻게 정립하고 있는지도 나눠주세요.

 

배인병 : 극 중에서는 특정 현상들에 대해 새진리회의 의장 ‘정진수’에 의해 '신의 의도'라는 개념이 입혀졌어요. 드라마는 이 설정을 통해 특정 인물이나 단체가 신의 의도를 부여하고 해석을 독점했을 때 나타나는 문제들을 굉장히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어요. 더 나아가 자신들이 신의 행위를 돕고 있다는 정당성을 갖게 되면, 마치 극 중 ‘화살촉’ 집단이 사회에서 벌이는 테러리즘과 같이 변질되어버리고 만다는 점도요.

저는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도 ‘신의 의도’라는 개념을 여기저기에 부여하고, 그 해석을 독점하려는 사람(단체)들에 대해서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인간의 한계 속에서 신의 의도는 당연히 다 알 수도, 해석할 수도 없잖아요. 오히려 ‘해석자의 의도’가 덧붙여질 뿐이죠.. 그런 의미에서, 함부로 신의 의도를 덧붙이려고 하지 않는 것, 인간의 해석을 담으려 하지 않는 것. 그게 제가 가지고 있는 신학적인 입장이에요. 만약 내 주변에 고지를 받은 사람이 있다면..., 악이라든지 재난이라든지 사건을 겪은 이들에게 찾아가는 것, 공감하고 다가가 위로해주는 행동. 그것이 그저 신의 의도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닐까요?

 

임주은 : 저도 공감해요. 모태신앙 혹은 오랜 신자의 경우, 아주 어릴 때부터 하나님에 대한 무수한 수식어에 대해 들으며 성장하잖아요. 그 중에서도 특히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이미지로 모든 현상과 문제를 푸는 것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신의 의도’에 대해 설명하려는 욕구가 클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이 사건은 왜 하나님이 내게 주신거지?”, “하나님은 왜 내게 복을 주지 않으시지?”, “왜 하나님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시지?”라는 질문을 계속해서 갖게 되고, 이에 답해보면서 ‘신의 의도’를 체화하는 신앙적 태도를 갖게 되는 거죠.그런데 ‘연상호’ 감독이 한 인터뷰에서 <지옥>의 장르를 ‘코스믹 호러(우주적 공포)’1)라고 밝힌 바 있더라고요. 저는 오늘날 대중문화에서 코스믹 호러 장르가 많이 만들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해요. 함부로 모든 일에 신의 의도를 부여하려 하고, 그것에서 파생된 인간의 의지까지도 신의 의도로 치환해버리는 인간의 행동들.. 신의 의도 안에 속해 있으면, 인간이 인간을 심판하고, 인간의 법을 벗어나며 행동해도 된다는 신성권을 부여하는 오늘날의 현상들. 그런데 인간이 알 수 없는 우주의 막강한 존재로부터 습격을 받을 때 그것들은 붕괴되기 마련이죠. 그런 의미에서 ‘연상호’ 감독 또한, 우리가 우주적 공포 앞에서 왜곡된 신의 의도와 권력을 걷어내고, 인간의 인간됨을 이야기해보자고 요청하는 것이 아닐까? 라고도 생각해봤어요.

1)우주적 공포(宇宙的恐怖, 영어: cosmic horror 코스믹 호러[*])란 미국의 소설가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가 자신의 괴기물에서 발전시켜 제시한 문예철학이다. 하나의 주의로서는 우주주의(영어: cosmicism 코스미시즘[*])라고 한다. 러브크래프트의 공포관을 요약하면 이 우주에는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신적 존재같은 것이 없으며, 인간은 은하간 수준의 거대한 규모에서 인간은 딱히 유의미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러브크래프트식 괴기물에서는 인간이 자신과는 비교할 수 없이 거대한 우주를 대면하고 자신의 무의미함을 받아들이지 못해 공포에 질리고 미쳐 버리는 것이다.  즉슨 우주의 공허에 대한 두려움이 바로 우주적 공포다.

 

장해림 : 저도 ‘신의 의도’에 대해서는 두 분과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어요. 해석자(인간)의 권력과 의도가 들어가는 신의 의도는 폭력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아예 ‘신의 의도가 없다’라고만 생각하는 것도.. 불가지론에 빠지기 쉽다는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요? 참 어렵고 애매모호한 것 같아요. 저는 그래서 ‘예수님’이라는 인물에 대해 생각해봤어요.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분명 신의 의도를 전달하시잖아요. 그런데 그 전달하는 방식에 있어서 공포심을 자극하지는 않으셨죠. 그분은 초청과 대화, 비유와 질문이라는 방식을 통해 인간에게 신의 뜻을 고민해볼 수 있도록, 살아갈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해주셨던 분이라고 생각해요.


 

Q. ‘지옥’이라는 관념은 <지옥>을 보는 시청자들로 하여금 생각해보게 만드는 것 중에 하나였어요. 드라마 속에 나타난 ‘천국과 지옥’이라는 개념, 그리고 실제 우리 삶 속에서 종교가 말하는 ‘천국과 지옥’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면 어떨까요?

 

장해림 : ‘연상호’ 감독은 이상 현상이 일어나는 세상 속에서 인간의 행동들을 통해 비극적이고 참혹한 현실을 보게 함으로써, 형이상학적인 ‘지옥’을 더 생생하게 연출하고 있어요. 지옥은 아주 멀~~리, 사후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어쩌면 진짜 지옥은 ‘화살촉’ 집단을 필두로 한 인간의 폭력과 불법이 성행하는 상황 자체가 지옥과 다름없다고 고발하는 거 같아요. 

 

임주은 : 맞아요. <지옥>의 모티브가 된 작품인 애니메이션 <지옥: 두 개의 삶>을 봤는데요. ‘연상호’ 감독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이생의 삶을 천국 혹은 지옥으로 만들 수 있다’고 말하려는 것 같았어요. 우스갯소리지만, 간혹 종교인들 중에 이 드라마를 보고 나서 “그것 봐, 지옥 있잖아”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잖아요ㅎㅎ 그런데 이 드라마는 단순히 ‘천국과 지옥’의 존재 자체에 질문을 던지기보다,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천국인가, 지옥인가?’에 대한 질문을 계속해서 던지려고 하는 것 같더라고요. 이를 통해 대중들은 내세도 분명 중요하지만, 그것만 바라보면서 현생에서의 삶을 오히려 죄로 물들이는 것에 경계해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거죠.

 

배인병 : 저는, 인류가 ‘극락(極樂)’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낸 이유는 결국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봤어요. 드라마 속에서도 그렇잖아요. ‘인간의 죽음 이후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생에서 이해되지 않는 죽음의 원인이 무엇일까?’ 등을 알고자 ‘정진수’ 혹은 여러 사람들이 ‘지옥’이라는 관념을 만들고 계속해서 이미지를 입혔던 거죠. 그리고 그에 관한 욕구를 가진 사람들이 새진리회의 교리를 받아들인 거고요.


임주은 : 맞아요. 그런 의미에서 ‘지옥’이라는 개념이야말로 거의 모든 종교가 적극 활용(?)하고 있는 이미지가 아닐까요? 특히 '기독교' 혹은 기독교 교리를 표방한 '이단'들에게는 ‘지옥’이 구원의 문제와도 깊은 연관이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상상되고 말해지는 것 같아요. 그러다보면 인간의 경험과 한계 속에서 그려내고 만들어지는 현상이 어쩔 수 없이 생겨나는 거죠. 왜곡되어 입혀지는 신의 의도와 비슷한 맥락으로요.

저는 인간의 본성상 ‘천국과 지옥’, ‘선인과 악인’ 등에 대해 이분법적으로 확실한 구획을 짓는 것에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고 생각했어요. 나의 종교행위의 결과로 둘 중 하나에 무조건 속하게 될 거라는 이분법적 신념이, 왜곡된 천국과 지옥의 이미지를 훨씬 더 강화시키게 된다고 봐요. 드라마 <지옥>은 바로 이 지점에서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천국과 지옥의 공포를 자극하는 것이, 왜곡하는 것이, 폭력을 가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Q. ‘연상호’ 감독은, <지옥> 이전에도 여러 작품들 속에서 ‘갑작스러운 재난 앞에 선 인간의 태도’에 대해 이야기를 해왔는데요. 이러한 스토리를 담은 대중문화 작품들이 오늘날 현대 사회에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배인병 : 극한의 재난 앞에서 인간은 무엇을 믿게 될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렵고 난해한 것보다 조금 더 쉽고, 명확하게 말해주는 것, 예를 들면 극 중에서 ‘화살촉’ BJ가 보여주는 유튜브 방송처럼, 자극적이고 직관적인 것에 더 열광하게 될 것 같아요. 또한 그렇게 함으로써 다수가 선택한 곳에 소속됐다는 안정감을 느끼는 게 대중의 심리가 아닐까요. 그런데 ‘연상호’ 감독의 작품들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그것들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들을 하나씩 제시하며 마무리 짓더라고요. 영화 <부산행>, <반도> 그리고 드라마 <지옥>에서는 그 가능성으로 ‘가족’을 제시하는 것 같았어요. 결국 ‘코스믹 호러’라는 장르를 통해 인간에 대해 부정적인 부분을 강조하는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인간의 자율성을 긍정하고 휴머니즘적으로 마무리를 짓고 있어요. 실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그러한 가능성을 말하게 되기를 더 극적으로 강조하는 게 아닐까요?

 

장해림 : 저도 예전에는 인간이, 예측 불가한 극한의 상황을 맞닥뜨리면 야만성이나 집단 이기심을 드러내는 존재라고 생각해왔어요. 그런데 ‘레베카 솔닛’의 책 「이 폐허를 응시하라」를 읽고 생각이 많이 달라졌어요. 저자에 의하면, ‘실제 갑작스러운 재난과 전쟁의 현장 한가운데에는, 인간의 임기응변력과 공동체적 연대를 통해 새로운 희망이 피어난다’고 말하고 있거든요. 대중매체와 언론 대부분이 재난에 대해 일반적으로 그려내는 얼굴은, ‘아비규환, 생지옥, 폭동’ 등과 같은 재앙으로 묘사하기 마련인데요. 하지만 실제로 시민들은 참사 현장에서 경쟁하기보다 협력하고, 상호부조의 정신으로 스스로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발현된다는 거죠.

 

임주은 : 두 분 말씀처럼, ‘연상호’ 감독의 작품은 재난 속의 인간의 부정적 측면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긍정적인 희망(?)도 보여주는 극적인 장치를 사용하는 것 같아요.
저는 <지옥> 속에 드러나는 재난을 보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실제 삶 속에서 저런 비슷한 일들이 무엇이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 봤어요. 제가 꼽은 대표적인 사건으로는, ‘IMF 사태’와 ‘코로나19 대유행’인데요. 물론 IMF때 국민 모두가 힘을 합쳐 ‘금 모으기 운동’을 하며 나라를 살렸다는 미담들도 있고 희망이 보이는 사례들도 많았어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은 소외된 계층 가운데서도 극소수는 변두리로 밀려나 더 이상 자신이 사회적 존재에 포함될 수 없다는 박탈감과 분노를 표출한 범죄 양상도 있었잖아요.
지금 코로나19 상황도, 계속해서 희망을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집단적으로 일어나는 반인류애적 감정들도 가득한 것 같아요. 어쩔 수 없이 모두가 힘들고 예민해지고 분노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비난할 대상도 쉽게 찾기 마련이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갑작스러운 재난 가운데 그 사회 속에서 교회의 역할이 더 빛을 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시 경제를 살립시다!”, “다시 교회를 회복시킵시다!”라는 외침도 중요하지만, 이웃들이 가진 분노와 노여움에 대해 함께 공감해주고, 위로해주는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인 것 같아요. 동시에 이럴 때일수록 극중 <지옥>에서처럼 자극적이고 직관적인 가십·뉴스들에 선동당하거나 선동하는 일도 지양해야 할 것 같아요. 교회가 직접적으로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하고 힘이 되어주는 것은 힘들더라도, 적어도 서로가 서로를 적으로 만들며 변두리로 몰아가는 행위에는 함께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Q. 마지막으로 ‘수다꽃이 피었습니다’ 코너의 단골 질문이죠. <지옥>이라는 대중문화 콘텐츠를 통해 오늘날 한국교회의 모습을 비춰본다면, 어떤 메시지를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배인병 : 분명 ‘죄’, ‘죄책’, ‘심판에 대한 두려움’ 등은 기독교 신앙에서 동력이 되기도 해왔어요. 하지만 결국 우리 기독교는 하나님의 최후의 사랑의 승리를 말하는 종교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지옥>이, 교회가 죄인을 찾아내고 판단하고, 손가락질하는 선동에서 벗어나서, 그들에게도 어떻게 복음과 사랑을 말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함을 느끼게 해 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또한 그리스도인들이 아무리 신의 의도를 말하고, 신의 행위에 동참하고 있다고 믿는다 하더라도, 정작 우리가 신의 의도와 더 멀어지고 있지는 않는지.. 늘 고민해보고 성찰해야 한다고 느꼈어요.

 

임주은 : 맞아요. 인간은 기본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과 사건·사고들’에 ‘신의 의도’를 갖다 붙이기를 원하잖아요. 이는 신을 믿던 믿지 않던 모든 이들이 가지고 있는 욕망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가장 넘어지기 쉬운 집단이 ‘종교 지도자들’이 아닐까 생각해봤어요. 대체적으로 종교 지도자들은 신과 가까이 있다고 여겨지고, 또 신의 의도에 대한 해석권을 부여받았다고 여겨져 왔잖아요. 그리고 대중은 특정 종교 지도자들에게 세상을 읽어내고 통솔하고 싶은 욕망을 투영하기도 하죠.

게다가 위계적이고 폐쇄적인 시스템을 가진 종교라면 이러한 현상이 더욱 강화될 거예요. 지금까지 많은 이단들이 생겨나고, 지속되어 온 이유도 여기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지옥>을 보면서, 진정한 교회 그리고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의 의도’를 빗대어 왜곡되게 판단하는 것을 ‘중지’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많은 사람들이 더 확실한 법칙, 시원한 설명에 유혹될 수밖에 없죠. 그래서 계속해서 그 유혹과 싸우는 것이 그리스도인이 살아내야 할 영역 중 하나가 아닐까요? 이렇게 말하고 보니 신앙생활이 정말 어렵긴 하네요..(쓴웃음)

 

장해림 : <지옥>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각 중세적 인간상, 근대적 인간상을 보여주고 있어요. 실제로 시대마다 이해되는 인간상이 다양하잖아요. 그리고 각 시대마다 인간에 대한 이해는 신에 대한 이해와도 비슷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한국 기독교가 여전히 중세적 인간 이해에 머물러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봤어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포스트모던 시대, 그리고 더 나아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 속에 있잖아요. 이런 상황 가운데 대중은 신과 인간에 대해 더 복잡다단한 질문이 생겨날 수 있다고 봐요. 그런데 반면, 교회는 과거에 정해놓은 몇 개의 교리들로만 정답을 내리고 응답한다면 그 설득력을 잃을 수밖에 없어요.

하나님께서는 시대마다 사람들을 통해 영적 비전을 선포하셨고, 예수님께서는 중심부와 변두리를 아우르며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나가면서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셨어요. 지금 우리 시대의 교회들도 그와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대와 대중의 질문에 계속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복음은 상황과 맥락을 벗어나지 않고서도 현대인들에게 여전히 유효한 것이라는 걸 알려주는 일을 하는 거죠.

 

임주은 : 네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수다 꽃이 피었습니다’가 다루어왔던 콘텐츠 중 가장 심오하고.. 무겁기도 하고 어렵기도 한 콘텐츠가 아니었나 싶은데요. 그만큼 나눌 말도 많아서 더 길게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아요. 저희가 이렇게 드라마 <지옥>에 드러난 ‘인간’에 대한 이야기, ‘종교’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신앙적·신학적’ 고민들에 대해 함께 나눠봤는데요. 오늘날의 상황 가운데서 대중문화를 더 흥미롭게, 유익하게 읽어내고자 하는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도움이 되는 시간이었길 바라면서.. 안녕히 계세요!

*이미지 출처: Netflix 공식 페이스북 게시물


참여자: 배인병, 임주은, 장해림

편집자: 임주은, 장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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