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의 문화 읽기인포데믹 시대, 미디어 리터러시에 대하여 : "고장난 나침반은 흔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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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 위기에 처한 태평양 북서부 연안 지역의 나무 문어를 구하자’는 웹사이트가 있다. 일부러 사람들을 속이려고 만든 자료다. 당연히 ‘나무 문어’라는 건 없다. 그런데도 한 연구에 따르면 이 사이트에 접속한 중학생들은 여기에 담긴 자료를 적극적으로 이해하려고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면서 정작 해당 사이트의 사실 여부는 의심하지 않았다고 한다. 리터러시 전문가 조병영 교수의 ‘읽는 인간 리터러시를 경험하라’에 나오는 얘기다. 성인이라면 잘 아는 문어에 대한 이야기이니까 속지 않거나 의심해 볼 수 있지만, 만일 자신이 잘 모르는 분야였다면 어땠을까. 오늘도 여러 곳에서 무수한 정보들이 쏟아지는데, 우리는 얼마나 그 정보에 대해 경중과 진위를 가리며 받아들이고 있을까.

 

디지털이 삶의 중심이 된 지금,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권위가 흔들리고, 서로 간에 불신의 골이 깊어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 사람이 얼마나 해당 분야를 잘 아는 전문가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편집이 세련됐는가, 구독자 수가 많은가에 권위를 부여한다. 간단하게라도 촬영과 편집, 업로드를 할 수만 있다면 누구나 대중에게 자신을 드러낼 기회가 주어진다. 개방성의 측면에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정보 제공자가 자료를 조작하거나 왜곡된 가치관으로 대중을 선동할 때, 피해의 규모는 전방위적이어서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크다. 코로나19와 백신에 대한 괴소문은 물론이고, 개인의 사생활이 알 권리라고 포장된 관음증이라는 괴물의 먹잇감이 되어 난도질당하는 사례가 도처에 범람한다. 그 속에서 우리는 때론 피해자가 되고 때론 가해자가 된다.

 

몇 해 전, 알고 지내던 청년이 저명한 해외 신학자 한 사람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 평소 그 청년이 가진 고민의 결을 알기에 도움이 될 만한 신학자일 텐데, 굳이 저런 글을 올릴 필요가 있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청년이 쓴 글은 신학을 전공한 입장에서 볼 때, 그 신학자에 대한 책을 최소한 몇 권 이상 읽지 않고서는 쓸 수 없는 글이었다. 직접 만났을 때, 어떻게 그 신학자에 대해 알았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 신학자의 책을 읽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그 신학자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누군가가 썼던 글이나 강의를 그대로 ‘Ctrl+C(복사하기)’ ‘Ctrl+V(붙여넣기)’를 해, 내 것인 양 포장했던 것이다. 단 한 권이라도 그 신학자의 글을 직접 읽었더라면, 그 청년은 그런 글을 결코 올리지 않았을 거다.

 

모든 살아있는 것은 변한다. 과거에는 맞았던 것이 현재는 틀릴 수 있다. 그때는 유효했는데, 지금은 시효가 만료돼 쓰지 않는 것도 있다. 사람이든 사건이든 역사의 변천 속에서 평가조차 달라질 수 있다. 우린 모두 이전보다 성숙한 사람으로 변화할 수도 있고, 옆길로 새거나 뒷걸음질하며 변질할 수도 있는 존재들이다. 스스로 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질까 조심해야 한다.(고전 10:12) 오직 사랑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기 위해 범사에 깨어 있어야 하는 시대다.(엡 4:15) 같은 공간에 올라온 글과 말이라 할지라도 깊이와 넓이는 같지 않다. 우리를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길을 열어주는 글이 있고, 복음의 의미를 더 풍성하게 깨닫게 해주는 말이 있다. 정방향을 가리키기 위해서 나침반의 바늘은 흔들려야 정상이다. 고장난 나침반이 돼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보는 연말이 되기를 바란다.



*이 글은 국민일보에 실린 글을 동시게재 한 것입니다.

성현 목사 (필름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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