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올림픽, 승패보다는 서사
세계인의 축제인 제33회 파리 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그런데 이번 올림픽은 시작하기도 전부터 곳곳에서 잡음이 터져 나왔었다. 유럽 내 시위 문제로 인한 치안 문제부터 시작해서 폭염 가운데 ‘친환경 올림픽’을 고집하면서 나오게 되는 우려의 목소리들, 심지어 개회식 때 대한민국 선수단 입장에서 북한을 호명해 버린 사건까지. 참으로 시끄럽게 시작한 올림픽이지만, 우리나라 선수들이 사격, 양궁, 펜싱, 배드민턴 등에서 큰 활약을 펼치자 국민들은 금세 경기에 푹 빠져 몰입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요즘 청년 세대가 올림픽에 몰입하는 모습이 과거와는 사뭇 달라졌음을 보여주었다.
청년층이 주로 이용하는 SNS 속 올림픽 소식들을 보면, 경기의 승패를 떠나 그 이면에 담겨있는 서사를 발견하는 데 더 큰 흥미를 느끼는 듯하다. 여자펜싱 사브르 선수 ‘올하 하를란’과 양국 선수 ‘마다예’가 국내 온라인에서 바이럴 되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둘의 공통점은 대한민국 선수들과 맞붙은 상대 팀 선수였다는 점이다. ‘하를란’은 우크라이나 선수인데, 지난 세계선수권대회 개인전에서 러시아 출신 선수와 맞붙어 승리를 거두었다. 그런데 경기 종료 후 상대 선수가 악수를 청했음에도 이를 거부한 채 피스트를 벗어나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 그렇게 행동한 이유에는 상대 선수가 자국을 침공한 라시아의 국가대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규정상 의무로 명시된 악수였기에, 하를란은 안타깝게도 실격패로 처리됐다. 그런 그가 이번 올림픽에서 우리 상대팀으로 만나 두 번이나 맞붙게 됐고, 두 번 모두 우리에게 뼈아픈 패배를 안겨다 주었다. 하지만 한국 누리꾼들은 우리가 하를란에게 패배한 것에 집중하기보다, 그가 올림픽에 오기까지 겪었을 심적 고통과 더 나아가 양심적 행동에 공감하고 찬사를 보내며 승리를 축하해 주었다.
또 다른 선수 ‘마다예’는 차드의 양궁 국가대표다. 차드는 아프리카에 있는 공화국으로, 과거 프랑스의 식민지였고 현재는 기아문제가 매우 심각한 국가이다. 마다예는 2008년부터 독학으로 양궁 연습을 해왔는데, 국가의 지원이나 훈련 기회가 부족하여 이번 파리올림픽을 처음으로 출전자격을 얻어서 나오게 된 것이다. 그는 공식 후원사가 없어 가슴보호대와 유니폼도 없었다. 그런데 양궁 남자 개인전 경기 때 우리나라 김우진 선수와 맞붙으며 6:0으로 패배하게 됐다. 심지어 한 라운드에서는 1점밖에 쏘지 못한 해프닝도 있었다. 하지만 누리꾼들은 오히려 ‘1점’이라는 결과보다 그가 올림픽에 출전하기까지의 과정과 절실함에 집중했다. 마다예의 서사를 알게 된 국민들은 오히려 그가 쏜 1점이라는 결과를 높이 사며 SNS에 응원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마다예는 그런 한국 누리꾼에게 화답하며 “Thank you Corea”라는 게시물을 업로드하기도 했다. 이러한 두 사례는 청년 세대가 올림픽을 바라보는 관점과 응원하는 태도가 과거와 크게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1등만 기억했던 세상
어느 개그 프로에서 한 개그맨이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을 외치며 사회를 풍자하는 유행어를 만든 적이 있다. 물론 지금도 크게 달라진 건 없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순위와 결과에 훨씬 집착하는 사회 분위기가 짙었다. 한 예로 체조 국가대표 선수인 여서정 선수와 그의 아버지인 과거 체조 올림픽 메달리스트 여홍철 선수의 이야기를 들 수 있다. 여홍철 선수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체조 사상 최초로 첫 은메달을 따냈다. 하지만 인터뷰에서 그는 “1등을 목표로 했다.. 죄송하다”며 아쉬움과 슬픔의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25년이 흐른 지난 도쿄 올림픽에서 그의 딸 여서정은 동메달을 따냈지만 마음껏 기뻐하며 행복해했다. 국민들도 ‘여서정 기술’을 선보였다며 그를 추켜세웠다. 그 밖에도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도 메달 기대주였는데 아쉽게 따지 못했거나, 은·동메달을 딴 선수들이 “나에겐 아직도 기회가 많다. 4년 뒤 LA올림픽을 기대해 달라”는 당당한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사실 올림픽 국가대표로 출전하게 된 것 자체가 세계 최고의 실력을 갖췄다는 증거임에도 4년 동안의 노력이 하나의 결과로만 보여지기 때문에 선수들도 국민들도 올림픽에 대한 중압감이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과거에는 ‘금메달’이 아니면 잘 알아봐 주지 않았고, 선수 스스로도 그 외에 메달이나 순위는 아쉬워하며 국민들에게 용서를 구했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졌고, 올림픽을 응원하는 관중들의 시선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꼭 우리 나라 국가대표가 아니더라도 세계 여러 나라와 선수들에 대한 관심을 보이기도 하고, 메달 색상이나 유무가 아닌 한 선수가 성장해 온 과정이나 그의 인성에 더 큰 반응을 보내기도 한다.
이는 현상과 결과 자체만 바라보기보다 그 이면에 있는 서사를 상상하고 공감할 줄 아는 요즘 청년 세대와 맞닿아 있다. 대중문화 콘텐츠를 대할 때도 이러한 태도가 나타나는데, TV예능 프로그램인 ‘미스터트롯’과 같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나 ‘환승연애’, ‘나는 솔로’와 같은 리얼리티 연애 프로그램을 시청할 때 그렇다. 시청자들은 출연자들의 뛰어난 실력이나 외모에 반응하기도 하지만, 점차 시간이 갈수록 한 인물이 성장해 가는 서사나, 공동체 안에서 관계성으로 보여주는 성품에 더 크게 열광하며 응원을 보낸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동을 느끼게 하는 성장형 캐릭터 혹은 두루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개념형 캐릭터가 뜨는 것이다.
#다양한 서사에 공감하는 세대
하나의 올림픽으로 만났지만, 그 현장에 모인 사람들은 1만 500여 명이며 206개국이라는 다양한 문화권에서 모여들었다. 올림픽에 오기까지 모든 선수들에게는 각자의 이야기가 있으며, 그 안에는 성공과 실패 두 가지만 존재하진 않는다. 비록 역사에는 메달리스트만 기록될 수도 있지만, 올림픽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조금 더 다양한 사람과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전쟁, 가난, 종교 등 지구촌이 겪고 있는 각종 사건들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하며, 경기 외에 한 개인이 가져온 서사를 함께 바라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올림픽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게 된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다 같은 교육을 받으며 어른이 된다 하더라도 각자가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일은 다 다를 수밖에 없다. 결과론적으로만 보면 성공과 실패로 나뉠 수도 있는 인생이지만, 그 안에 담긴 서사는 개개인이 꾸준히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누구의 이야기도 가장 화려한 곳에서 혹은 가장 비참한 곳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갈 뿐이다. 그렇기에 요즘은 역사의 기록된 위인이나 잘 나가는 인물들의 성공신화가 무조건 이 시대 청년들의 꿈에 자양분이 되지는 않는다. 메마른 시대에 감동과 위로를 주는 이야기, 정의와 옳은 가치를 실현시킬 수 있는 이야기, 자신의 삶과 공감으로 맞닿을 수 있는 서사를 가진 인물에게 더 큰 자극을 받고 있다.
올림픽이라는 축제 분위기와 승패를 가리는 경기 중에서도, 전쟁 중에 있는 나라의 어려움에 대해, 가난 속에서 치열하게 꿈을 키워온 사람에 대해 집중하는 이들이 있었다. 이러한 요즘 세대의 특성에 맞게 교회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도 더욱 풍성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가끔 신앙에도 성공 혹은 실패라는 이분법적인 서사만 있음을 느낄 때가 있다. 성경 속 인물들의 훌륭한 점만 편집해 다룰 때나 혹은 하나님께 순종해서 복을 받았다는 위주의 간증들만 선포될 때 그렇다. 그런데 교회 안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기에 모두의 이야기가 늘 온전하거나 은혜로울 수만은 없지 않은가.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고 모든 이들의 학업과 사업, 연애와 결혼 등이 잘되는 것이 아니듯.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신다고 모두가 건강하게 여생을 마감하는 것이 아니듯 말이다. 잘 꾸며지고 포장된 ‘복’의 이야기보다 깨어지고 아프고 좌절한 현실의 서사들이 나누어지고 공감과 위로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의 진가를 발휘하는 그런 교회가 되기를 기도한다.
글. 임주은 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
#파리올림픽, 승패보다는 서사
세계인의 축제인 제33회 파리 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그런데 이번 올림픽은 시작하기도 전부터 곳곳에서 잡음이 터져 나왔었다. 유럽 내 시위 문제로 인한 치안 문제부터 시작해서 폭염 가운데 ‘친환경 올림픽’을 고집하면서 나오게 되는 우려의 목소리들, 심지어 개회식 때 대한민국 선수단 입장에서 북한을 호명해 버린 사건까지. 참으로 시끄럽게 시작한 올림픽이지만, 우리나라 선수들이 사격, 양궁, 펜싱, 배드민턴 등에서 큰 활약을 펼치자 국민들은 금세 경기에 푹 빠져 몰입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요즘 청년 세대가 올림픽에 몰입하는 모습이 과거와는 사뭇 달라졌음을 보여주었다.
청년층이 주로 이용하는 SNS 속 올림픽 소식들을 보면, 경기의 승패를 떠나 그 이면에 담겨있는 서사를 발견하는 데 더 큰 흥미를 느끼는 듯하다. 여자펜싱 사브르 선수 ‘올하 하를란’과 양국 선수 ‘마다예’가 국내 온라인에서 바이럴 되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둘의 공통점은 대한민국 선수들과 맞붙은 상대 팀 선수였다는 점이다. ‘하를란’은 우크라이나 선수인데, 지난 세계선수권대회 개인전에서 러시아 출신 선수와 맞붙어 승리를 거두었다. 그런데 경기 종료 후 상대 선수가 악수를 청했음에도 이를 거부한 채 피스트를 벗어나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 그렇게 행동한 이유에는 상대 선수가 자국을 침공한 라시아의 국가대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규정상 의무로 명시된 악수였기에, 하를란은 안타깝게도 실격패로 처리됐다. 그런 그가 이번 올림픽에서 우리 상대팀으로 만나 두 번이나 맞붙게 됐고, 두 번 모두 우리에게 뼈아픈 패배를 안겨다 주었다. 하지만 한국 누리꾼들은 우리가 하를란에게 패배한 것에 집중하기보다, 그가 올림픽에 오기까지 겪었을 심적 고통과 더 나아가 양심적 행동에 공감하고 찬사를 보내며 승리를 축하해 주었다.
또 다른 선수 ‘마다예’는 차드의 양궁 국가대표다. 차드는 아프리카에 있는 공화국으로, 과거 프랑스의 식민지였고 현재는 기아문제가 매우 심각한 국가이다. 마다예는 2008년부터 독학으로 양궁 연습을 해왔는데, 국가의 지원이나 훈련 기회가 부족하여 이번 파리올림픽을 처음으로 출전자격을 얻어서 나오게 된 것이다. 그는 공식 후원사가 없어 가슴보호대와 유니폼도 없었다. 그런데 양궁 남자 개인전 경기 때 우리나라 김우진 선수와 맞붙으며 6:0으로 패배하게 됐다. 심지어 한 라운드에서는 1점밖에 쏘지 못한 해프닝도 있었다. 하지만 누리꾼들은 오히려 ‘1점’이라는 결과보다 그가 올림픽에 출전하기까지의 과정과 절실함에 집중했다. 마다예의 서사를 알게 된 국민들은 오히려 그가 쏜 1점이라는 결과를 높이 사며 SNS에 응원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마다예는 그런 한국 누리꾼에게 화답하며 “Thank you Corea”라는 게시물을 업로드하기도 했다. 이러한 두 사례는 청년 세대가 올림픽을 바라보는 관점과 응원하는 태도가 과거와 크게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1등만 기억했던 세상
어느 개그 프로에서 한 개그맨이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을 외치며 사회를 풍자하는 유행어를 만든 적이 있다. 물론 지금도 크게 달라진 건 없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순위와 결과에 훨씬 집착하는 사회 분위기가 짙었다. 한 예로 체조 국가대표 선수인 여서정 선수와 그의 아버지인 과거 체조 올림픽 메달리스트 여홍철 선수의 이야기를 들 수 있다. 여홍철 선수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체조 사상 최초로 첫 은메달을 따냈다. 하지만 인터뷰에서 그는 “1등을 목표로 했다.. 죄송하다”며 아쉬움과 슬픔의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25년이 흐른 지난 도쿄 올림픽에서 그의 딸 여서정은 동메달을 따냈지만 마음껏 기뻐하며 행복해했다. 국민들도 ‘여서정 기술’을 선보였다며 그를 추켜세웠다. 그 밖에도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도 메달 기대주였는데 아쉽게 따지 못했거나, 은·동메달을 딴 선수들이 “나에겐 아직도 기회가 많다. 4년 뒤 LA올림픽을 기대해 달라”는 당당한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사실 올림픽 국가대표로 출전하게 된 것 자체가 세계 최고의 실력을 갖췄다는 증거임에도 4년 동안의 노력이 하나의 결과로만 보여지기 때문에 선수들도 국민들도 올림픽에 대한 중압감이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과거에는 ‘금메달’이 아니면 잘 알아봐 주지 않았고, 선수 스스로도 그 외에 메달이나 순위는 아쉬워하며 국민들에게 용서를 구했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졌고, 올림픽을 응원하는 관중들의 시선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꼭 우리 나라 국가대표가 아니더라도 세계 여러 나라와 선수들에 대한 관심을 보이기도 하고, 메달 색상이나 유무가 아닌 한 선수가 성장해 온 과정이나 그의 인성에 더 큰 반응을 보내기도 한다.
이는 현상과 결과 자체만 바라보기보다 그 이면에 있는 서사를 상상하고 공감할 줄 아는 요즘 청년 세대와 맞닿아 있다. 대중문화 콘텐츠를 대할 때도 이러한 태도가 나타나는데, TV예능 프로그램인 ‘미스터트롯’과 같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나 ‘환승연애’, ‘나는 솔로’와 같은 리얼리티 연애 프로그램을 시청할 때 그렇다. 시청자들은 출연자들의 뛰어난 실력이나 외모에 반응하기도 하지만, 점차 시간이 갈수록 한 인물이 성장해 가는 서사나, 공동체 안에서 관계성으로 보여주는 성품에 더 크게 열광하며 응원을 보낸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동을 느끼게 하는 성장형 캐릭터 혹은 두루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개념형 캐릭터가 뜨는 것이다.
#다양한 서사에 공감하는 세대
하나의 올림픽으로 만났지만, 그 현장에 모인 사람들은 1만 500여 명이며 206개국이라는 다양한 문화권에서 모여들었다. 올림픽에 오기까지 모든 선수들에게는 각자의 이야기가 있으며, 그 안에는 성공과 실패 두 가지만 존재하진 않는다. 비록 역사에는 메달리스트만 기록될 수도 있지만, 올림픽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조금 더 다양한 사람과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전쟁, 가난, 종교 등 지구촌이 겪고 있는 각종 사건들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하며, 경기 외에 한 개인이 가져온 서사를 함께 바라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올림픽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게 된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다 같은 교육을 받으며 어른이 된다 하더라도 각자가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일은 다 다를 수밖에 없다. 결과론적으로만 보면 성공과 실패로 나뉠 수도 있는 인생이지만, 그 안에 담긴 서사는 개개인이 꾸준히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누구의 이야기도 가장 화려한 곳에서 혹은 가장 비참한 곳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갈 뿐이다. 그렇기에 요즘은 역사의 기록된 위인이나 잘 나가는 인물들의 성공신화가 무조건 이 시대 청년들의 꿈에 자양분이 되지는 않는다. 메마른 시대에 감동과 위로를 주는 이야기, 정의와 옳은 가치를 실현시킬 수 있는 이야기, 자신의 삶과 공감으로 맞닿을 수 있는 서사를 가진 인물에게 더 큰 자극을 받고 있다.
올림픽이라는 축제 분위기와 승패를 가리는 경기 중에서도, 전쟁 중에 있는 나라의 어려움에 대해, 가난 속에서 치열하게 꿈을 키워온 사람에 대해 집중하는 이들이 있었다. 이러한 요즘 세대의 특성에 맞게 교회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도 더욱 풍성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가끔 신앙에도 성공 혹은 실패라는 이분법적인 서사만 있음을 느낄 때가 있다. 성경 속 인물들의 훌륭한 점만 편집해 다룰 때나 혹은 하나님께 순종해서 복을 받았다는 위주의 간증들만 선포될 때 그렇다. 그런데 교회 안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기에 모두의 이야기가 늘 온전하거나 은혜로울 수만은 없지 않은가.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고 모든 이들의 학업과 사업, 연애와 결혼 등이 잘되는 것이 아니듯.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신다고 모두가 건강하게 여생을 마감하는 것이 아니듯 말이다. 잘 꾸며지고 포장된 ‘복’의 이야기보다 깨어지고 아프고 좌절한 현실의 서사들이 나누어지고 공감과 위로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의 진가를 발휘하는 그런 교회가 되기를 기도한다.
글. 임주은 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