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리뷰(오트밀)"냉면으로 교회읽기" -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냉면랩소디>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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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코로나19 방역마스크와 기후위기 속 무더위의 콜라보는 동남아에서만 경험하던 고온다습한 찜통더위를 한반도에서 경험하게 했다. 코로나 이전처럼 시원한 나라로 더위를 피할 수 없는 현실에, 대다수가 에어컨 빵빵한 집과 호텔에서 넷플릭스나 보며 휴가를 보냈거나, 뒤늦게 보내고 있을 것이다. 필자도 마찬가지였는데, 특별히 이번 휴가 때 감상한 넷플릭스 콘텐츠 한 편을 추천하고 싶다. 바로, <냉면랩소디>! 타국 여행을 통해 새로운 음식을 접할 기회도, 친구들과 삼삼오오 만나 맛 집을 찾는 기쁨도 사라진지 벌써 두 해째를 지나다 보니, ‘집콕’을 즐기는 콘텐츠로 먹방과 쿡방이 영화, OTT, Youtube 할 것 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러고 보니, 이때껏 음식은 만남이자 위로였고, 발견되는 소소한 기쁨이었음을 제한된 일상 속에서 절감한다. 2화로 구성된 음식다큐<냉면랩소디>는 여름이면 즐겨먹는 냉면의 의미, 역사와 함께 음식 일반이 갖게 하는 다양한 사유 속으로 우리를 이끈다. 그럼, 냉면 속으로….

 

# 냉면의 전통과 역사 _ 평양냉면과 진주냉면, 함흥냉면과 부산밀면 (1부. 냉면시대)

음식을 통해 지나온 시대를 상기할 수 있다면, 그 음식이 갖는 의미는 단지 한 번의 끼니를 즐겁게 해주는 어떤 것. 그 이상이 된다. 그런 면에서, 냉면랩소디는 냉면을 ‘이야기’와 ‘철학’으로 건져낸다. 먼저, 냉면을 이야기로 만드는 것은 바로 냉면의 역사이다. 

“이 땅에 냉면 역사를 이야기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게 6.25 전쟁이에요” 

6.25 전쟁으로 대규모 함경도 피난민들이 서울로 떠나와 평양냉면집을 차리면서 평양냉면이, 6.25 전쟁 중 흥남철수작전으로 함경도 출신 피난민들이 월남해 연 식당, 상호 ‘함흥’으로부터 함흥냉면이 인기를 끌게 되었기 때문이다. 부산 밀면도 흥남철수 당시 내려온 실향민의 대규모 피란촌에서 만들어졌다. 음식평론가 황광해 씨는 실향민에게 냉면은 ‘추억을 먹는 범위를 넘어서서 고향으로의 귀환’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니까, 6.25 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으로부터 만들어진 냉면과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민초(民草)다. 물론 이 다큐멘터리에는 고종이 즐겨 먹었다던 배와 꿀로 단맛을 강하게 낸 냉면이 소개되지만, 무엇보다 냉면이 한국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음식이 된 이유는 굴국 많은 근현대사의 민초들과 맥을 같이 하기 때문이다. 서민들이 쉽게 만날 수 있는 곡물, 메밀을 가지고 고향을 기억하며 소중히 만들고, 또 귀중히 먹어 몸에 스민 음식. 그것은 고난과 생명, 그 속의 추억과 기쁨이 얽히고설킨 철학이다.

 

# 냉면의 변혁 _ 새로운 레시피의 지역냉면 재현(2부. 냉면열정)

얼마 전 작고한 요리연구가 임지호 셰프는 새로운 레시피를 만들어내는 것을 ‘새 길을 닦고 여는’ 작업으로 표현한다. 

“우리는 먹는 일에 보수적입니다. 익숙함만 찾으려 해요. 가보지 않은 길은 위험도 따르지만 반전이 숨겨져 있어요. 여기까지 걸어온 길과 가지 않았던 길이 만나 새 길을 여는 자연의 변증법이에요.”

<냉면 열정>에서는 가장 신비롭고 만들기 어려운 음식, 냉면에 빠진 사람들의 뜨거운 열정을 보여준다. 냉면이 민족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음식이긴 하지만 모두 같은 맛과 모양을 하지 않는다. 2부 냉면열정에서는 긴 전통을 가진 평양, 진주, 함흥냉면을 뛰어넘어, 시대와 지역에 따라 변형된 냉면들이 소개된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슴슴하고 밍밍한 평양냉면, 소담하게 화려한 함흥냉면과 진주냉면이 아닌 ‘냉면’을 ‘냉면’이라 할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면, 본래의 냉면은 무엇인가? 유구한 전통을 가진 냉면의 맛과 레시피만을 냉면이라고 해야 하는가? 음식이란 것의 가장 흥미로운 매력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동일하게 ‘냉면’이라는 이름을 가진 음식을 가보지 않은 어색한 길로 만드는 것이 허락된다는 점. 재창조된 냉면은 산낙지, 해장, 무, 돼지 냉면 등 깜찍할 정도로 새로운 옷을 입는다. 임지호 셰프의 말대로 여기까지 걸어온 길과 가지 않았던 길이 만나 새 길이 열리는 법칙이 음식을 통해 재현된다. 오이, 달걀, 생채, 미나리, 가오리, 고기 고명이 수북이 쌓인 대구식 비빔냉면을 보고 ‘새로운 장르’라고 말하는 백종원 대표의 표현처럼, 냉면이 ‘냉면’의 이름으로 변주되어, 또 다른 ‘장르’가 되어가는 것이다.


# 냉면 : 무미의 가치, 빼기의 가치

냉면랩소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평양냉면을 소개하는 한 음식평론가의 묘사였다. ‘무미(無味)의 美(미)’. 무언가 더해서 강한 맛을 내기는 쉽지만, 맛을 내지 않는 맛을 내기란 굉장히 어렵다는 말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맛없는 맛’을 내기 위한 과정이 쉽지 않다는 말은 굉장히 모순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실제로 재료를 빼야 맛이 살아나는 ‘별 맛이 나지 않는 맛’을 위해 평양냉면은 매일 아침 온도와 습도를 확인한 후에야 반죽에 들어갈 수 있다. 불과 0.5초 차이로 익는 정도가 달라지는 예민한 메밀 반죽에 ‘깨끗하고 차가운’ 육수를 더해야 완성된다.

무엇보다 ‘먹을 때는 모르지만 어느 순간 갑자기 생각나는 맛’, 재료를 더하기보단 빼야 그 맛이 살아난다는 평양냉면의 묘사는 미니멀리즘, 여백의 미, 담백한 멋이 말 그대로 ‘힙한’ 감수성이 된 현대인의 취향을 오롯이 느끼게 해 준다. 짠맛, 단맛, 쓴맛, 신맛 등 어느 맛에도 치우치지 않는 ‘유연한 싱거움’이 사람을 균형 있게 운용되게 만드는 것이다. 복잡하고 자극적인 콘텐츠와 색채, 소음과 정보 속에서 스스로 탈각되어, 녹음과 템플스테이와 같은 ‘없음’을 찾는 이 시대의 문화감수성에 평양냉면은 소위 시그니처가 되었다.

 

# 냉면으로 기독교 읽기

<냉면랩소디>가 풀어준 냉면의 역사와 가치는 교회 안에서 자란 나에게 ‘교회’를 떠오르게 했다. 냉면의 전통과 역사를 다룬 1부는 기독교의 역사와 전통을 계승해 온 교회를, 냉면의 변주라고 말할 수 있는 2부는 새롭게 세워지는 교회의 다양성에 대해서, 평양냉면의 ‘무미’라는 가치를 통해서는 교회가 지향해야 할 모습들을 고민하게 한다.

코로나19 이후로 우리는 ‘<교회>란 무엇인가?, <예배>란 무엇인가?’ 하는 근원적 질문에 더욱 골몰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간 교회와 예배가 가져왔던 의미와 실천적 틀거리가 뒤틀려버리는 현실 속에서 ‘도전’이라 여겨졌던 것은 ‘필수’가 되었고, ‘현상 유지’는 ‘불가능’이 되어 버린 듯하다. 그야말로 수많은 변혁자, 저항자들, 특히 성도들의 피, 땀, 눈물의 역사와 전통 아래 세워진 기독교가 이제 다시 갱신해야 할 시간에 이른 것이다. 우리에겐 시대와 역사 ‘안’에서, 올곧이 기독교의 ‘고연한 맛’을 내는 평양냉면과 같은 교회, 동시에 변화하는 시대를 외면하지 않고 삶의 자리를 담아내는 지역 냉면 같은 교회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렇게 지켜내고 바꾸는 과정에서 교회가 추구할 가치는 무엇이어야 할까? 무엇보다 갱신 앞에서 교회가 기억해야 할 것은, 평양냉면 같은 ‘무미의 미’, ‘빼기의 가치’ 아닐까 싶다. 대면할 수 없는 현실에서 예배 현장은 오히려 화려해지고 있다. 더 많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원래 가지고 있던 건물에 스튜디오를 만들고, 더 많은 장비, 더 유려한 프로듀싱, 더 손색없는 음색, 더 프로페셔널한 진행력을 더하는 것이 교회의 ‘기본기’가 되어버린 상황이다. 이러한 ‘더함’이 교회의 필수요건이 된 상황이 못내 씁쓸하다.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묻고 싶은 것이다. 우린 계속 더, 더, 더, 더해야만 할까? 모든 교회의 생존과 갱신의 방식이 동일해야 하는가? 더함으로써 혹여나 교회의 맛을 잃고 있는 건 아닌가? ‘교회’가 무엇인가? ‘예배’는 무엇인가?

 

예수의 정신을 따르는 기독교의 성서는 ‘죽어야 사는(마16:24)’ 진리를 반복한다. 고난과 죽음이 승리가 되고, 비움이 채움이 되고, (십자가)지움이 자유가 되는 진리다. 교회는 이 진리를 살아내는 이들의 모임이고, 예배란 그 진리를 확인하고 반응하는 장소다. 이 모순된 진리는 꼭 평양냉면의 ‘무미의 미’와 닮아있다. 슴슴하고 밍밍하고 뭉숭한 ‘맛없음의 맛’에서 고결한 ‘있는 그대로의 맛’이 흘러나오는 것처럼 ‘죽어야 사는 진리’ 안에는 예수의 정신이 진액처럼 들어차 있다. 전통과 역사의 길을 이어내는 걸음과 시대적 변화를 담아내는 걸음이 만나 함께 걸어야 할 유일한 길은 바로 이것이다. 죽고, 빼고, 비워내 영 밍밍하고 슴슴한 예수의 정신 말이다. 그리고 그걸 실현하는 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다름 아닌 ‘있는 그 자리’다. 

평양냉면 노포의 일꾼들은 길게는 58년, 50년, 40년, 23 년동안 그 자리를 지킨다. '고명꾼', '앞잡이', '발대꾼', '반죽꾼'의 이름으로… 각자가 살아내는 그 자리에서 ‘무미의 미’를 위해 애써온 이들의 삶과 땀이 ‘맛없음’을 맛(味)으로, 아름다움(美)으로, 실현시켰다. 예수의 정신을 실현하기 위해 우리 기독교인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는가. 교회는 무얼 하고 있는가. 여름의 열기가 아직 남아있는 이 계절, 평양냉면 한 사발 먹으며 무미의 미를 음미해보면 어떨까.


정수인 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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