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을 쓰기 위해 자료를 조사하면서, 매경프리미엄의 양유창 기자가 쓴 <‘킹덤 시즌2’가 차별화된 좀비물인 5가지 이유>라는 글을 재미있게 읽게 되었다. 그는 킹덤의 열풍 이유를 다섯 가지로 제시하는데 좀비물과 정치사극의 결합, 좀비가 되는 원인을 제시한 신선한 설정, 작은 것이 세상을 뒤흔드는 권력 전복, 수직으로 내리꽂는 강렬함, 매회 긴장감을 유발하는 주요 인물들의 퇴장을 꼽는다. 다섯 가지 이유를 읽는 내내 납득과 공감의 끄덕임을 멈출 수 없었다. 양유창 기자의 정리와 함께 두 번째로 만나게 된 것은 김형식 작가가 쓴 책 <좀비학>이다. 그는 현 사회를 ‘좀비사회’로 명명하고 이 사회를 세 가지 층위로 나누어 인간개념의 철학적 인식변화, 세계적 시스템의 변화, 정치와 사회의 변화를 주도하는 ‘좀비-되기’로의 존재론을 이야기한다. ‘좀비’를 존재론과 정치학적 시선으로 탐구하는 책의 접근방법이 매우 흥미로웠다. 이에, 이 글에서는 양유창 기자의 킹덤 관련 기사와 김형석 작가의 <좀비학>의 중요 개념과 내용을 빌려, 본인의 시선에서 <킹덤>을 분석하는 논의를 전개한 후, 한국교회가 이 드라마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메시지를 건져내 보려 한다. |

넷플릭스 신규 구독자 유치에 큰 공을 세운 작품, <킹덤-시즌 3>의 공개를 앞두고 (나를 포함한) 수많은 구독자들의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조선 후기를 배경으로 하는 <킹덤>은 왕위 계승을 향한 사신들의 권력적 굶주림과 나라의 기근(백성의 굶주림)이 결국 ‘좀비’를 만드는, 정치 사극 좀비물이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그야말로 ‘핫한’ 킹덤의 인기는 ‘K-좀비’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 ‘갓’을 전 세계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미국 유명 주간지 옵저버는 킹덤을 ‘왕자의 게임의 정치적 음모와 기생충의 계급 갈등을 좀비와 함께 섞어 놓은 드라마’라고 평했는데 킹덤의 인기가 정치와 계급이라는 사회적 이슈를 좀비 아포칼립스와의 개연성을 통해 탄탄하게 엮어놓은 지점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을 주지하는 평가가 아닐까 싶다. <부산행>, <서울역>, <반도>, <창궐>, <살아있다> 등 다양한 좀비물 중 유독 <킹덤>의 인기가 뜨거운 이유는 무엇일까.

#속도감
우선, <킹덤>을 포함한 한국적 좀비 즉 K-좀비의 특징으로 가장 처음 거론되는 것이 바로 ‘속도감’이다. 기존에 이상한 신음 소리와 함께 느릿느릿 걸으며 인간을 공격했던 기존의 좀비와 다르게 K-좀비 장르 안에서의 좀비들은 빠르게 질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은 비단 좀비만의 특성이 아니다. <킹덤>의 촬영 방식이나 플롯의 전개 까지도 ‘속도감’을 포함한다. 킹덤의 촬영 방식은 부감(높은 위치에서 피사체를 내려다보며 촬영하는 기법)과 인물 가까이 촬영하는 초근접 촬영을 빠르게 넘나든다. 조선시대 궁궐의 전경과 백성들이 좀비가 되는 모습의 높고 가까움의 대비를 통해 줄거리의 속력을 더 빠르게 당기는 것이다. 플롯도 마찬가지다. 전개에 불필요한 장면을 아예 담지 않는 시원시원한 스토리도 속도감을 증가시킨다. 이 속도감으로 인해 더 많은 백성들이, 더 빨리 좀비로 변한다.
다시 K-좀비의 질주로 돌아오자. <좀비학>에서 김형식은 좀비의 유형을 그 시대 좀비 영화를 기준으로, 1930년대 노예 좀비, 1960년대 시체 좀비, 2000년대 뛰는 좀비로 나눈다. 특히 뛰는 좀비는 빠른 속도로 세계를 질주하며 전염속도가 빠르다는 특징을 가지며, 말을 하거나, 사랑에 빠지거나, 욕망하는 존재로 확장되는데 김형석은 이를 ‘더 이상 죽음이나 시체의 은유, 혹은 절대적 타자라는 대상에 머무르지 않는, 주체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인간화된 존재’로 설명한다. 그러니까, <킹덤>은 이 주체적 존재, 빠르게 질주하는 좀비를 통해 굶주림을 채우려는 주체성을 담지한 인간상을 제시한다. 불합리한 현실 속에서 최소한의 생존을 위협받는 무고한 백성들이 부패한 권력층으로 인해 오히려 주체적 존재인 좀비가 됨으로써, 끝나지 않는 폭력의 상호 전염 속에서 공멸을 향해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치달을 수 있음을 강력하게 경고하는 것이다. 즉, <킹덤>의 좀비는 전면에 등장된 억압받는 타자로서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 불평등이 만연한 현실을 비판함과 동시에 그들이 겪는 고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포스트 좀비’이자, ‘뛰는 좀비’ 볼 수 있다. 촬영 방식과 플롯의 전개뿐 아니라, 무능한 권력층에 대항하여 세계를 파멸로 빠르게 몰고 가는 뛰는 좀비, 포스트 좀비의 질주가 <킹덤>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내용이 형식을 결정한다!
<킹덤>의 특이한 점 하나는 한 시리즈의 한 회차의 러닝타임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킹덤의 시즌1, 2의 회 차당 러닝 타임은 짧게는 36분부터 길게는 56분까지 유연하다. 가장 짧고 긴 회차의 러닝 타임은 20분 정도의 차이를 가지는데 이것은 일반 드라마로는 상상할 수 없는 ‘자유로운 형식’이다. 말 그대로 내용이 형식을 결정했다. 넷플릭스라는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플랫폼의 장점이기도 하지만, 이같이 한 회차에서 그려내고자 하는 이야기를 콤팩트하게 담는 데에 집중한 것이 다수에게 인기를 얻은 비결 중 하나라고 생각된다. 이 방식은 전술했던 ‘속도감’에도 충분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한 번에 한 시리즈 전편이 공개되어 영화와 같은 컨디션으로 감상할 수 있는 조건이 중요 내용만을 담은 킹덤을 더욱 빠른 전개로 이끈 것이다. 만약 <킹덤>의 제작진이 기존의 드라마 러닝타임 1시간이라는 형식과 틀을 벗어나지 않고 제작했다면 지금의 인기가 가능했을까. 어려웠으리라 생각한다. 이러한 구조적 틀의 탈피는 드라마 형식뿐 아니라, 내용에도 스며있다. ‘혈통과 계급’이 조선이라는 나라가 강조하는 공고한 구조 곧 형식이라 한다면, 혈통, 계급, 지위를 두고 싸우는 조선의 권력가들의 체제는 역병으로 인해 무너져버린다. 역병은 혈통을 가리지 않는다. 좀비가 된 사람들은 양반이든, 노비든, 임금이든 모두가 인간의 살과 피를 갈구하며 사방을 뛰어다닌다. ‘혈통’이 기준이 된 체제가 싸그리 파괴되는 시즌2의 마지막 장면을 보며 시청자들은 새로운 나라 조선을 기대하게 된다. 파괴 속 희망이다.
이것은 <좀비학>의 김형식이 오늘날 사회를 ‘시스템적 좀비사회’로 진단한 것과 맥락상 맞닿아 있다. 그는 신자유주의를 오늘의 사회를 좀비 사회로 만드는 주요인으로 지적한다. 신자유주의 체제는 ‘개인 간의 무한한 경쟁을 찬양하고, 경쟁의 결과로 할당되는 포함과 배제, 불평등한 분배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법칙으로 만든다. 신자유주의는 소수의 성공 신화를 전시하여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에 이를 수 있다는 환상을 조장하는 한편, 실패한 자들은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치부한다. 성공과 실패는 개인의 책임으로 한정되고, 사회는 책임에서 면피된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실패는 이것이 허상에 불과하며, 공정한 경쟁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드러냈다. 아무리 노력해도 성공할 수 없으며, 개인의 책임 이면에서 작동하는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는 것이다. ‘헬조선’이니, ‘노오력’과 같은 신조어는 이런 현실에 대한 자조적인 징후다(26).‘ 조선이 강조하던 ’혈통‘과는 다른 이름을 한 새로운 형식인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 우리는 좀비가 되어간다. 드라마 <킹덤>은 형식보다, 체제보다, 내용과 삶의 현장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드라마다.

# 조연 및 좀비 연기자들의 열연
<킹덤>의 작품성을 높이는 결정적인 원인에는 조연과 좀비 연기자들의 열연이 큰 몫을 한다. 시즌 1, 2회에서 극을 끌어가는 주요 인물은 세자 이창(주지훈), 서비(배두나), 조학주(류승룡)로 정리된다. 그러나, 그 외의 주변 인물들의 연기 또한 훌륭해 속도감 있는 <킹덤>의 흐름을 돕는다. 안현대감 역을 맞은 허준호를 비롯하여, 무영 역의 김상호, 조범팔 역의 전석호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외의 배우들의 열연이 시너지를 내어, 주요인물만 밝혀주는 드라마에서 벗어나 조선시대 역병과 기근, 권력의 암투 속에서 모두 좀비가 되어가는 서사를 온 인물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무엇보다 좀비 연기자들의 열연은 주목할 만 한데, 그저 단순하게 움직이는 서양의 좀비와는 다르게, 킹덤의 좀비들에게는 독특한 움직임과 캐릭터, 여기에 배우들의 연기력이 더해진다. 실제로 K-좀비 붐을 일으킨 <킹덤>의 좀비는 뛰어난 안무가들이 배우들을 훈련시킨 결과다. 몽유병을 모티브로, 손과 팔을 쓰지 않고 머리와 가슴이 먼저 앞으로 나아가며 속도감을 자아내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킹덤의 좀비 연기자들을 통해, 킹덤에 수시로 등장하는 좀비씬이 완성되었다.
이 같이 음식의 소금과 같이 적은 분량에 최선을 다하여, 극을 살리는 조연과 좀비 연기자들의 열연은 <킹덤>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와도 결을 같이 하는 듯하다. 시즌1에서 세자 이창이 결연하게 내뱉는 마지막 대사는 “누가 큰 백성이고, 누가 작은 백성인가?” 인데, 이 드라마가 말하는 것처럼 신분에 고하가 없듯, 주연이라고, 조연이라고, 좀비 역할이라고 높낮이와 경중을 측정해 대강 연기하지 않는 킹덤의 연기자들의 노고가 킹덤을 <킹덤> 되게 했다. 양유창 기자가 언급한 ‘작은 것이 세상을 뒤흔드는 권력 전복’과도 맞닿아 있는데,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비밀은 작고 하찮은 인물들을 통해 밝혀지고, 대단하다고 여겨졌던 인물들은 어이없이 퇴장해 버린다.’ 역병의 원인도, 그것을 밝히는 사람도, 왕이 되는 사람조차도 작고 하찮은 존재라는 의도적 설정은 시청자들의 생각과 마음을 뒤흔들고, 나아가 현실을 보게 한다. 좀비를 다룬 이 드라마의 가치가 현 상태의 세계에 머무르지 않고 정치와 사회의 변화를 주도하는 주체로서 존재하게 하는 것이다. 김형식은 이것을 ‘도래할 좀비사회’로 명명한다. 좀비는(혹은 좀비를 통해서) ‘배제되고 박탈당한 대상의 자리에서 벗어나 권리를 위해 투쟁하고 다른 사회를 건설하고자 한다.’ 드라마 <킹덤>에서 원치 않는 감염으로 좀비가 된 이들을 통해 혈통과 신분과 계급에 묶여 있던 조선사회가 다른 의미로의 저항과 탈주를 경험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 교회가 <킹덤>을 읽는 방법
상당수의 기독교인들이 좀비물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성스러운 인간이 흉측한 괴물이 되어, 같은 인간의 피와 살을 탐한다는 단순한 공포심이나, 좀비물을 오컬트 필름(초자연적 현상이나 유령, 악마 등을 다루는 작품)으로 구분하여 ‘영적으로 좋지 않다’ 혹은 ‘영성이 훼손된다’는 신앙적 이유가 거부감을 작동시키는 심리적 불안일 것이다. 물론, 그런 컨텐츠가 존재한다. 잔혹한 이미지와 스산한 음악으로 왜곡된 상상력을 자극해서 마음 깊숙이 두려움을 심는 것 이상의 목적을 가지지 않는 영상물. 그러나, 분명한 목적과 서사를 가진 작품은 말 그대로 ‘작품’으로 읽어내려는 시도를 해야만 한다. 인간의 공포와 불안의 정동을 읽어내는 결정적 척도로써, 작품성을 인정받는 오컬트 필름이나 좀비물의 감각과 서사는 현실의 생활세계에 가져다주는 정치적, 심리적, 관계적 갱신 경험과 신앙적 질문을 숙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러한 지점에서 교회는 좀비정치사극, <킹덤>의 시리즈를 읽는 방법을 발견할 수 있다. 먼저, 킹덤의 무력한 백성이 무능한 권력층으로 인해 주체적 존재인 포스트 좀비가 되는 서사를 통해서 그리스도인 된 우리는 개개인이 진정 자신의 삶의 고유한 주체로 살아왔는지를 반추하게 된다. 그동안의 교회의 존재양식이 타인의 주체성을 확보하는 방식이었는지, 아니면 폭력과 배제로써 주체성을 축소시켜왔는지 곰곰이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형식보다 내용을 택한 구조적 자유와 체제를 탈피하고자 하는 드라마의 방향성은 성서적 가치와 배치되는 사회의 현 체제에 ‘시체 좀비’와 같이 힘 없이 가담하고 있는 교회의 현주소를 정직하게 바라보게 한다. 성서가 선포하는 사회경제적 함의에 따라, 소외된 인간, 극심한 양극화, 무한경쟁과 배제와 불평등을 부추기는 논리에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 가담할 것인가. 킹덤은 교회의 선택을 묻는다.
무엇보다 조연들의 열연이 비춰내는 작은 자리의 무게와 주요인물들의 퇴장은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25:40)’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가르침을 되짚게 한다.
주어진 시대와 문화적 현상을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게(마10:16) 수용하고 변혁할 책임이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다. 막연한 배제의 태도로, 그 수용과 변혁의 변주 기회를 놓치지 않길 바란다. <킹덤> 시리즈3는 교회와 그리스도인에게 또 어떤 사유를 하게 할까. 2주 후가 기다려진다.
정수인 전도사 (문화선교연구원 기획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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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기 위해 자료를 조사하면서, 매경프리미엄의 양유창 기자가 쓴 <‘킹덤 시즌2’가 차별화된 좀비물인 5가지 이유>라는 글을 재미있게 읽게 되었다. 그는 킹덤의 열풍 이유를 다섯 가지로 제시하는데 좀비물과 정치사극의 결합, 좀비가 되는 원인을 제시한 신선한 설정, 작은 것이 세상을 뒤흔드는 권력 전복, 수직으로 내리꽂는 강렬함, 매회 긴장감을 유발하는 주요 인물들의 퇴장을 꼽는다. 다섯 가지 이유를 읽는 내내 납득과 공감의 끄덕임을 멈출 수 없었다. 양유창 기자의 정리와 함께 두 번째로 만나게 된 것은 김형식 작가가 쓴 책 <좀비학>이다. 그는 현 사회를 ‘좀비사회’로 명명하고 이 사회를 세 가지 층위로 나누어 인간개념의 철학적 인식변화, 세계적 시스템의 변화, 정치와 사회의 변화를 주도하는 ‘좀비-되기’로의 존재론을 이야기한다. ‘좀비’를 존재론과 정치학적 시선으로 탐구하는 책의 접근방법이 매우 흥미로웠다. 이에, 이 글에서는 양유창 기자의 킹덤 관련 기사와 김형석 작가의 <좀비학>의 중요 개념과 내용을 빌려, 본인의 시선에서 <킹덤>을 분석하는 논의를 전개한 후, 한국교회가 이 드라마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메시지를 건져내 보려 한다.
넷플릭스 신규 구독자 유치에 큰 공을 세운 작품, <킹덤-시즌 3>의 공개를 앞두고 (나를 포함한) 수많은 구독자들의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조선 후기를 배경으로 하는 <킹덤>은 왕위 계승을 향한 사신들의 권력적 굶주림과 나라의 기근(백성의 굶주림)이 결국 ‘좀비’를 만드는, 정치 사극 좀비물이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그야말로 ‘핫한’ 킹덤의 인기는 ‘K-좀비’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 ‘갓’을 전 세계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미국 유명 주간지 옵저버는 킹덤을 ‘왕자의 게임의 정치적 음모와 기생충의 계급 갈등을 좀비와 함께 섞어 놓은 드라마’라고 평했는데 킹덤의 인기가 정치와 계급이라는 사회적 이슈를 좀비 아포칼립스와의 개연성을 통해 탄탄하게 엮어놓은 지점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을 주지하는 평가가 아닐까 싶다. <부산행>, <서울역>, <반도>, <창궐>, <살아있다> 등 다양한 좀비물 중 유독 <킹덤>의 인기가 뜨거운 이유는 무엇일까.
#속도감
우선, <킹덤>을 포함한 한국적 좀비 즉 K-좀비의 특징으로 가장 처음 거론되는 것이 바로 ‘속도감’이다. 기존에 이상한 신음 소리와 함께 느릿느릿 걸으며 인간을 공격했던 기존의 좀비와 다르게 K-좀비 장르 안에서의 좀비들은 빠르게 질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은 비단 좀비만의 특성이 아니다. <킹덤>의 촬영 방식이나 플롯의 전개 까지도 ‘속도감’을 포함한다. 킹덤의 촬영 방식은 부감(높은 위치에서 피사체를 내려다보며 촬영하는 기법)과 인물 가까이 촬영하는 초근접 촬영을 빠르게 넘나든다. 조선시대 궁궐의 전경과 백성들이 좀비가 되는 모습의 높고 가까움의 대비를 통해 줄거리의 속력을 더 빠르게 당기는 것이다. 플롯도 마찬가지다. 전개에 불필요한 장면을 아예 담지 않는 시원시원한 스토리도 속도감을 증가시킨다. 이 속도감으로 인해 더 많은 백성들이, 더 빨리 좀비로 변한다.
다시 K-좀비의 질주로 돌아오자. <좀비학>에서 김형식은 좀비의 유형을 그 시대 좀비 영화를 기준으로, 1930년대 노예 좀비, 1960년대 시체 좀비, 2000년대 뛰는 좀비로 나눈다. 특히 뛰는 좀비는 빠른 속도로 세계를 질주하며 전염속도가 빠르다는 특징을 가지며, 말을 하거나, 사랑에 빠지거나, 욕망하는 존재로 확장되는데 김형석은 이를 ‘더 이상 죽음이나 시체의 은유, 혹은 절대적 타자라는 대상에 머무르지 않는, 주체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인간화된 존재’로 설명한다. 그러니까, <킹덤>은 이 주체적 존재, 빠르게 질주하는 좀비를 통해 굶주림을 채우려는 주체성을 담지한 인간상을 제시한다. 불합리한 현실 속에서 최소한의 생존을 위협받는 무고한 백성들이 부패한 권력층으로 인해 오히려 주체적 존재인 좀비가 됨으로써, 끝나지 않는 폭력의 상호 전염 속에서 공멸을 향해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치달을 수 있음을 강력하게 경고하는 것이다. 즉, <킹덤>의 좀비는 전면에 등장된 억압받는 타자로서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 불평등이 만연한 현실을 비판함과 동시에 그들이 겪는 고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포스트 좀비’이자, ‘뛰는 좀비’ 볼 수 있다. 촬영 방식과 플롯의 전개뿐 아니라, 무능한 권력층에 대항하여 세계를 파멸로 빠르게 몰고 가는 뛰는 좀비, 포스트 좀비의 질주가 <킹덤>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내용이 형식을 결정한다!
<킹덤>의 특이한 점 하나는 한 시리즈의 한 회차의 러닝타임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킹덤의 시즌1, 2의 회 차당 러닝 타임은 짧게는 36분부터 길게는 56분까지 유연하다. 가장 짧고 긴 회차의 러닝 타임은 20분 정도의 차이를 가지는데 이것은 일반 드라마로는 상상할 수 없는 ‘자유로운 형식’이다. 말 그대로 내용이 형식을 결정했다. 넷플릭스라는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플랫폼의 장점이기도 하지만, 이같이 한 회차에서 그려내고자 하는 이야기를 콤팩트하게 담는 데에 집중한 것이 다수에게 인기를 얻은 비결 중 하나라고 생각된다. 이 방식은 전술했던 ‘속도감’에도 충분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한 번에 한 시리즈 전편이 공개되어 영화와 같은 컨디션으로 감상할 수 있는 조건이 중요 내용만을 담은 킹덤을 더욱 빠른 전개로 이끈 것이다. 만약 <킹덤>의 제작진이 기존의 드라마 러닝타임 1시간이라는 형식과 틀을 벗어나지 않고 제작했다면 지금의 인기가 가능했을까. 어려웠으리라 생각한다. 이러한 구조적 틀의 탈피는 드라마 형식뿐 아니라, 내용에도 스며있다. ‘혈통과 계급’이 조선이라는 나라가 강조하는 공고한 구조 곧 형식이라 한다면, 혈통, 계급, 지위를 두고 싸우는 조선의 권력가들의 체제는 역병으로 인해 무너져버린다. 역병은 혈통을 가리지 않는다. 좀비가 된 사람들은 양반이든, 노비든, 임금이든 모두가 인간의 살과 피를 갈구하며 사방을 뛰어다닌다. ‘혈통’이 기준이 된 체제가 싸그리 파괴되는 시즌2의 마지막 장면을 보며 시청자들은 새로운 나라 조선을 기대하게 된다. 파괴 속 희망이다.
이것은 <좀비학>의 김형식이 오늘날 사회를 ‘시스템적 좀비사회’로 진단한 것과 맥락상 맞닿아 있다. 그는 신자유주의를 오늘의 사회를 좀비 사회로 만드는 주요인으로 지적한다. 신자유주의 체제는 ‘개인 간의 무한한 경쟁을 찬양하고, 경쟁의 결과로 할당되는 포함과 배제, 불평등한 분배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법칙으로 만든다. 신자유주의는 소수의 성공 신화를 전시하여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에 이를 수 있다는 환상을 조장하는 한편, 실패한 자들은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치부한다. 성공과 실패는 개인의 책임으로 한정되고, 사회는 책임에서 면피된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실패는 이것이 허상에 불과하며, 공정한 경쟁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드러냈다. 아무리 노력해도 성공할 수 없으며, 개인의 책임 이면에서 작동하는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는 것이다. ‘헬조선’이니, ‘노오력’과 같은 신조어는 이런 현실에 대한 자조적인 징후다(26).‘ 조선이 강조하던 ’혈통‘과는 다른 이름을 한 새로운 형식인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 우리는 좀비가 되어간다. 드라마 <킹덤>은 형식보다, 체제보다, 내용과 삶의 현장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드라마다.
# 조연 및 좀비 연기자들의 열연
<킹덤>의 작품성을 높이는 결정적인 원인에는 조연과 좀비 연기자들의 열연이 큰 몫을 한다. 시즌 1, 2회에서 극을 끌어가는 주요 인물은 세자 이창(주지훈), 서비(배두나), 조학주(류승룡)로 정리된다. 그러나, 그 외의 주변 인물들의 연기 또한 훌륭해 속도감 있는 <킹덤>의 흐름을 돕는다. 안현대감 역을 맞은 허준호를 비롯하여, 무영 역의 김상호, 조범팔 역의 전석호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외의 배우들의 열연이 시너지를 내어, 주요인물만 밝혀주는 드라마에서 벗어나 조선시대 역병과 기근, 권력의 암투 속에서 모두 좀비가 되어가는 서사를 온 인물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무엇보다 좀비 연기자들의 열연은 주목할 만 한데, 그저 단순하게 움직이는 서양의 좀비와는 다르게, 킹덤의 좀비들에게는 독특한 움직임과 캐릭터, 여기에 배우들의 연기력이 더해진다. 실제로 K-좀비 붐을 일으킨 <킹덤>의 좀비는 뛰어난 안무가들이 배우들을 훈련시킨 결과다. 몽유병을 모티브로, 손과 팔을 쓰지 않고 머리와 가슴이 먼저 앞으로 나아가며 속도감을 자아내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킹덤의 좀비 연기자들을 통해, 킹덤에 수시로 등장하는 좀비씬이 완성되었다.
이 같이 음식의 소금과 같이 적은 분량에 최선을 다하여, 극을 살리는 조연과 좀비 연기자들의 열연은 <킹덤>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와도 결을 같이 하는 듯하다. 시즌1에서 세자 이창이 결연하게 내뱉는 마지막 대사는 “누가 큰 백성이고, 누가 작은 백성인가?” 인데, 이 드라마가 말하는 것처럼 신분에 고하가 없듯, 주연이라고, 조연이라고, 좀비 역할이라고 높낮이와 경중을 측정해 대강 연기하지 않는 킹덤의 연기자들의 노고가 킹덤을 <킹덤> 되게 했다. 양유창 기자가 언급한 ‘작은 것이 세상을 뒤흔드는 권력 전복’과도 맞닿아 있는데,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비밀은 작고 하찮은 인물들을 통해 밝혀지고, 대단하다고 여겨졌던 인물들은 어이없이 퇴장해 버린다.’ 역병의 원인도, 그것을 밝히는 사람도, 왕이 되는 사람조차도 작고 하찮은 존재라는 의도적 설정은 시청자들의 생각과 마음을 뒤흔들고, 나아가 현실을 보게 한다. 좀비를 다룬 이 드라마의 가치가 현 상태의 세계에 머무르지 않고 정치와 사회의 변화를 주도하는 주체로서 존재하게 하는 것이다. 김형식은 이것을 ‘도래할 좀비사회’로 명명한다. 좀비는(혹은 좀비를 통해서) ‘배제되고 박탈당한 대상의 자리에서 벗어나 권리를 위해 투쟁하고 다른 사회를 건설하고자 한다.’ 드라마 <킹덤>에서 원치 않는 감염으로 좀비가 된 이들을 통해 혈통과 신분과 계급에 묶여 있던 조선사회가 다른 의미로의 저항과 탈주를 경험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 교회가 <킹덤>을 읽는 방법
상당수의 기독교인들이 좀비물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성스러운 인간이 흉측한 괴물이 되어, 같은 인간의 피와 살을 탐한다는 단순한 공포심이나, 좀비물을 오컬트 필름(초자연적 현상이나 유령, 악마 등을 다루는 작품)으로 구분하여 ‘영적으로 좋지 않다’ 혹은 ‘영성이 훼손된다’는 신앙적 이유가 거부감을 작동시키는 심리적 불안일 것이다. 물론, 그런 컨텐츠가 존재한다. 잔혹한 이미지와 스산한 음악으로 왜곡된 상상력을 자극해서 마음 깊숙이 두려움을 심는 것 이상의 목적을 가지지 않는 영상물. 그러나, 분명한 목적과 서사를 가진 작품은 말 그대로 ‘작품’으로 읽어내려는 시도를 해야만 한다. 인간의 공포와 불안의 정동을 읽어내는 결정적 척도로써, 작품성을 인정받는 오컬트 필름이나 좀비물의 감각과 서사는 현실의 생활세계에 가져다주는 정치적, 심리적, 관계적 갱신 경험과 신앙적 질문을 숙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러한 지점에서 교회는 좀비정치사극, <킹덤>의 시리즈를 읽는 방법을 발견할 수 있다. 먼저, 킹덤의 무력한 백성이 무능한 권력층으로 인해 주체적 존재인 포스트 좀비가 되는 서사를 통해서 그리스도인 된 우리는 개개인이 진정 자신의 삶의 고유한 주체로 살아왔는지를 반추하게 된다. 그동안의 교회의 존재양식이 타인의 주체성을 확보하는 방식이었는지, 아니면 폭력과 배제로써 주체성을 축소시켜왔는지 곰곰이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형식보다 내용을 택한 구조적 자유와 체제를 탈피하고자 하는 드라마의 방향성은 성서적 가치와 배치되는 사회의 현 체제에 ‘시체 좀비’와 같이 힘 없이 가담하고 있는 교회의 현주소를 정직하게 바라보게 한다. 성서가 선포하는 사회경제적 함의에 따라, 소외된 인간, 극심한 양극화, 무한경쟁과 배제와 불평등을 부추기는 논리에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 가담할 것인가. 킹덤은 교회의 선택을 묻는다.
무엇보다 조연들의 열연이 비춰내는 작은 자리의 무게와 주요인물들의 퇴장은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25:40)’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가르침을 되짚게 한다.
주어진 시대와 문화적 현상을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게(마10:16) 수용하고 변혁할 책임이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다. 막연한 배제의 태도로, 그 수용과 변혁의 변주 기회를 놓치지 않길 바란다. <킹덤> 시리즈3는 교회와 그리스도인에게 또 어떤 사유를 하게 할까. 2주 후가 기다려진다.
정수인 전도사 (문화선교연구원 기획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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