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다윗(David) | 감독 필 커닝햄·브렌트 도스 | 109분 | 전체 관람가 | 2026년 7월 10일 국내 개봉 |
요즘 극장에 가면 기독교 관련 영화가 상영관 한 자리를 당당하게 차지하고 있는, 예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풍경을 만나게 된다. 그 시작은 <킹 오브 킹스>(2025)였다. 찰스 디킨스가 자녀들에게 예수님의 생애를 들려주는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낸 이 애니메이션은 북미에서 먼저 공개되어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신앙 영화’라는 평과 함께 흥행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2025년 여름에 한국에서 개봉한 <킹오브킹스>는 ‘한국인이 만든 성경 애니메이션’으로 회자되며 131만 명의 관객을 모았다. 뒤이어 같은 해 12월 말 개봉한 <신의 악단>은 북한이 만든 ‘가짜 찬양단’이라는 낯선 소재를 들고 나왔다. <신의 악단>은 저예산의 한계와 종교 영화라는 이중의 불리함을 안고 출발했지만, 입소문의 힘으로 143만 명에 가까운 관객을 불러 모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이렇게 기독교 영화가 연이어 큰 관심을 받는 흐름 속에서 <다윗(David)>이 등장했다. 2025년 12월 미국에서 개봉하여 첫 주말에만 2,200만 달러가 넘는 수익을 올리며 ‘역대 종교 애니메이션 최고 개봉 성적’이라는 기록을 세운 <다윗>은 2026년 7월 10일 한국에서 개봉했다. 성경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 중 한명인 다윗이 왕이 되기까지의 여정. 그 익숙한 이야기를 통해 <다윗>은 어떤 메시지를 담아냈을까.
단순한 영웅담을 넘어, 진짜 신앙의 이야기로
<다윗>은 누구나 아는 성경 인물인 다윗의 성장 이야기를 중심에 둔다. 당연히 골리앗과의 전투가 핵심 장면으로 등장하지만, 영화의 무게중심은 그 장면에 있지 않다. 이야기는 평범한 목동 소년 다윗이 선지자 사무엘을 통해 “네가 왕이 될 것”이라는 낯선 말을 듣는 순간에서 시작한다.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 소년에게 갑자기 ‘하나님이 준비하신 왕’이라는 이름표가 붙는다. 하지만 기름 부음은 곧바로 영광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다윗은 물맷돌 하나로 골리앗을 쓰러뜨려 민족의 영웅이 되지만, 그 위대한 승리 이후 그의 삶은 오히려 더 복잡해진다. 사울의 두려움과 질투가 폭발하면서, 왕궁의 음악가이자 영웅이었던 그는 하루아침에 쫓기는 신세가 된다. 영화의 후반부는 광야와 타지를 떠돌던 다윗이 노래와 믿음을 붙들고 다시 일어나, 마침내 공동체 앞에서 진짜 왕으로 인정받기까지의 긴 길을 따라간다.

영화는 골리앗을 쓰러뜨리는 장면을 클라이맥스로 삼아 승리의 영광에 머무는 길을 택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이후에 찾아온 좌절과 오해, 도망의 시간이 러닝타임에서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영화는 위대한 승리의 순간만 비추는 대신 사울에게 쫓기는 광야의 시간에 오랫동안 머무르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라’는 성경의 메시지를 한층 선명하게 드러낸다.
<다윗>은 ‘믿으면 거인을 이긴다’는 단순한 영웅담이 아니다. 오히려 ‘부르심 이후에도 기다림의 시간은 길 수 있다’는 현실적인 신앙 고백을 담아낸다. 바로 그 지점이 인생의 한복판을 지나고 있는 이들의 마음을 건드린다. 젊은 날 뜨겁게 헌신하기로 결심했고, 하나님이 열어주신 길이라 믿고 걸어왔지만, 삶의 문제는 오히려 점점 더 복잡해지기만 했던 시간. 다윗의 모습은 우리 안에 있는 그 기억을 조용히 불러낸다. <다윗>은 그 간극을 미화하지 않고 화면 위에 그대로 올려놓는다.
왕관과 사명 사이에서
스크린 속 다윗은 야망과 두려움 사이에서 흔들리는 평범한 한 인간으로 그려진다. 이 흔들림은 그가 사울과 나란히 놓일 때 더 선명해진다. 영화 속 사울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못했던 지난날을 뒤늦게 떠올리며 자기 왕권이 무너져 가고 있음을 느끼는 인물이다. 그는 여전히 왕관을 움켜쥐고 있지만, 그 내면은 죄책감과 두려움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다. 반면 다윗에게는 아직 왕관이 없다. 대신 그는 결정적인 순간마다 자신을 부르신 분이 누구인지를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물론 그가 늘 옳은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그가 두려움 속에서 서툴게 반응하는 장면들을 감추지 않는다. 하지만 흔들리던 다윗은 이내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온다.
여기서 영화는 질문한다. ‘왕관을 썼느냐 쓰지 못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금 나는 누구 앞에 서 있는가?’

우리는 각자 삶의 자리에서 여러 역할과 직분을 감당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모든 자리에서 모두가 주목하는 화려한 왕관을 얻으려고, 혹은 겨우 움켜쥔 왕관을 놓치지 않으려고 발버둥친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왕관의 유무나 그 화려함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 선 나에게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일이 아닐까.
다윗의 노래
성경의 다윗은 시편의 저자로서 오랫동안 교회의 예배와 찬양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영화는 찬양의 사람이었던 다윗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끌어와 이야기의 중심 장치로 ‘찬양'을 활용한다. 다윗은 처음에 사울의 고통을 달래는 왕궁 음악가로 등장하고, 이후 전쟁터에서도 광야에서도 계속 찬양한다.
어둠에 휩싸인 사울의 방에서 수금을 타면서 찬양하늰 장면에서 다윗의 찬양은 단순히 영화의 분위기를 전환하는 배경음악의 역할에 머무르지 않는다. 찬양을 통해 불안과 분노로 가득 찼던 왕의 마음이 가라앉고, 그 방을 짓누르던 공기가 서서히 달라진다.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움에서 하나님께로 돌려놓는 방향키로 다윗의 찬양이 기능하는 것이다. 영화 속 다른 찬양들 역시 각 장면의 감정을 강화하는 기능에만 머무르지 않으며, 그 순간에 다윗이 무엇을 어떻게 믿고 있는지 그리고 소망하는지를 들려준다.

그리스도인에게 이러한 구조는 조금도 낯설지 않다. 고단한 일상을 지나 찾아온 예배당에서 찬양할 때, 그 노래는 단순한 감정 해소가 아니라 흐트러진 삶을 다시 정리하며 하나님 앞에 서는 시간이 된다. 영화 속 다윗도 그렇다. 승리의 순간에도, 주저앉고 싶은 순간에도, 그는 찬양으로 자신의 삶을 하나님 앞에 내어놓고 그분의 뜻 안에서 다시 엮어간다.
태피스트리, 엉킨 실 뒤에 그려지는 한 폭의 그림
이 영화의 신학을 한 단어로 요약한다면, ‘태피스트리(tapestry)’라고 할 수 있다. 날실과 씨실을 엮어 그림이나 무늬를 표현하는 직물 공예인 태피스트리는 그 뒷면만 보면 실이 뒤엉킨 것처럼 보인다. 매듭이 튀어나오고, 색이 갑자기 바뀌고, 어디가 앞이고 뒤인지도 헷갈린다. 하지만 완성된 후 뒤집어 보면 그 모든 실이 하나의 그림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영화는 다윗의 삶을 태피스트리로 보여준다. 골리앗을 이긴 날의 환호, 사울의 미움과 쫓김, 광야의 외로움, 또 다른 전쟁과 두려움, 그리고 마침내 왕으로 인정받는 순간까지. 하나하나 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어지러운 파편들이다.
영화는 그 모든 순간을 한 폭의 그림으로 엮어내며 관객에게 묻는다. "지금 내 삶에서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 그 시간도, 어쩌면 큰 그림을 위해 엮이고 있는 실은 아닐까?"
영화는 약자가 강자를 이기고 넘어서는 기적의 순간만이 아니라 그 뒤에 찾아온 좌절의 세월까지 한 그림 안에 담아낸다. 하나님은 다윗의 영광스러운 승리만이 아니라 그의 눈물과 혼란, 기다림의 시간까지 계획하시고, 하나의 완성된 그림을 향해 엮어가신다. 살아온 날이 제법 쌓인 사람에게 이 메시지는 꽤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직장에서 겪은 애매한 실패, 분명 옳은 선택이라 믿었는데 손해만 본 것 같던 기억, 가정 안에서 생긴 오해와 거리감. 그런 것들이 태피스트리 앞에서 다시 질문으로 바뀐다. 이 순간 역시 하나님의 그림에 사용된 실이었을까. 영화는 정답을 쥐여주지 않는다. 다만 그 질문을 되새기게 한다.
소명과 현실 사이, 그 긴 기다림
그래서 이 영화가 끝까지 붙들고 가는 메시지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믿음’이다. 다윗은 사무엘에게 기름 부음을 받고 골리앗을 쓰러뜨린 뒤에도 곧바로 왕이 되지 않았다. 그는 숱한 어려움을 겪었고 오래도록 광야를 떠돌았다. 영화는 그 시간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그 광야에서 그의 믿음은 “아무 문제 없다”라는 낙관이 아니라 “문제는 산더미 같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나의 하나님이시다”라는 고백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으니, 마음에 확신을 주셨으니, 이제는 좋은 기회와 안정이 당연히 따라와야 한다고 기대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뜨거운 소명 뒤에 메마른 광야가 시작되는 경우가 더 많다. <다윗>은 애니메이션답지 않은 담담한 시선으로 지나치게 낭만적인 신앙을 기대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시지만 그 부르심의 열매가 당장의 성공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주고, 그 기나긴 기다림마저 이미 하나님의 태피스트리 안에 들어와 있다고 말한다. 그 믿음 속에서 광야의 시간은 부르심이 틀렸다는 증거가 아니라 아직 완성되지 않은 그림의 일부가 된다.

맺으며
<다윗>은 잘 만든 기독교 애니메이션이다. 영상의 완성도가 높고, 이야기의 전개와 음악의 짜임새도 탄탄하다. 다윗의 목소리를 맡은 박보검은 대사만이 아니라 극 중에서 노래까지 직접 소화하며 인물의 감정을 이어간다. 물론 아쉬움도 있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잘 알고 있는 다윗의 일생을 소재로 하다 보니 극의 긴장감을 위한 각색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성경의 내용을 충실히 담아내지 못하였으며, 사건과 인물의 행위에 대한 특정한 해석을 지나치게 강조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해외 평단에서는 후반부의 각색이 다윗 이야기의 어두운 면을 지나치게 부드럽게 만들었다는 지적, 상업적인 성공을 좇는 과정에서 기독교적 메시지가 너무 희석되었다는 비판도 있다. 그럼에도 <다윗>은 단순히 ‘골리앗을 쓰러뜨린 영웅 다윗’이 아니라 ‘부르심과 현실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간 다윗’을 보여주면서, 한 사람의 신앙인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또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한다. 그래서 <다윗>을 보고 나온 사람들은 이 영화를 ‘어른을 위한 신앙 애니메이션’이라 말하기도 한다.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승승장구하는 화려한 다윗의 모습만을 기대하고 영화관을 찾았다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태피스트리의 신앙을 기억하며, 광야로 향하는 다윗의 뒷모습을 그의 찬양과 함께 따라간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복잡한 세상 속을 살아가는 오늘의 신앙인에게 이 영화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삶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고, 한 걸음 뒤에서 하나님께서 각자의 삶에 만들어 가시는 기대하게 하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

글. 정일석 연구원 (장로회신학대학교 역사신학 Ph.D)
| 다윗(David) | 감독 필 커닝햄·브렌트 도스 | 109분 | 전체 관람가 | 2026년 7월 10일 국내 개봉 |
요즘 극장에 가면 기독교 관련 영화가 상영관 한 자리를 당당하게 차지하고 있는, 예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풍경을 만나게 된다. 그 시작은 <킹 오브 킹스>(2025)였다. 찰스 디킨스가 자녀들에게 예수님의 생애를 들려주는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낸 이 애니메이션은 북미에서 먼저 공개되어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신앙 영화’라는 평과 함께 흥행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2025년 여름에 한국에서 개봉한 <킹오브킹스>는 ‘한국인이 만든 성경 애니메이션’으로 회자되며 131만 명의 관객을 모았다. 뒤이어 같은 해 12월 말 개봉한 <신의 악단>은 북한이 만든 ‘가짜 찬양단’이라는 낯선 소재를 들고 나왔다. <신의 악단>은 저예산의 한계와 종교 영화라는 이중의 불리함을 안고 출발했지만, 입소문의 힘으로 143만 명에 가까운 관객을 불러 모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이렇게 기독교 영화가 연이어 큰 관심을 받는 흐름 속에서 <다윗(David)>이 등장했다. 2025년 12월 미국에서 개봉하여 첫 주말에만 2,200만 달러가 넘는 수익을 올리며 ‘역대 종교 애니메이션 최고 개봉 성적’이라는 기록을 세운 <다윗>은 2026년 7월 10일 한국에서 개봉했다. 성경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 중 한명인 다윗이 왕이 되기까지의 여정. 그 익숙한 이야기를 통해 <다윗>은 어떤 메시지를 담아냈을까.
단순한 영웅담을 넘어, 진짜 신앙의 이야기로
<다윗>은 누구나 아는 성경 인물인 다윗의 성장 이야기를 중심에 둔다. 당연히 골리앗과의 전투가 핵심 장면으로 등장하지만, 영화의 무게중심은 그 장면에 있지 않다. 이야기는 평범한 목동 소년 다윗이 선지자 사무엘을 통해 “네가 왕이 될 것”이라는 낯선 말을 듣는 순간에서 시작한다.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 소년에게 갑자기 ‘하나님이 준비하신 왕’이라는 이름표가 붙는다. 하지만 기름 부음은 곧바로 영광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다윗은 물맷돌 하나로 골리앗을 쓰러뜨려 민족의 영웅이 되지만, 그 위대한 승리 이후 그의 삶은 오히려 더 복잡해진다. 사울의 두려움과 질투가 폭발하면서, 왕궁의 음악가이자 영웅이었던 그는 하루아침에 쫓기는 신세가 된다. 영화의 후반부는 광야와 타지를 떠돌던 다윗이 노래와 믿음을 붙들고 다시 일어나, 마침내 공동체 앞에서 진짜 왕으로 인정받기까지의 긴 길을 따라간다.
영화는 골리앗을 쓰러뜨리는 장면을 클라이맥스로 삼아 승리의 영광에 머무는 길을 택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이후에 찾아온 좌절과 오해, 도망의 시간이 러닝타임에서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영화는 위대한 승리의 순간만 비추는 대신 사울에게 쫓기는 광야의 시간에 오랫동안 머무르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라’는 성경의 메시지를 한층 선명하게 드러낸다.
<다윗>은 ‘믿으면 거인을 이긴다’는 단순한 영웅담이 아니다. 오히려 ‘부르심 이후에도 기다림의 시간은 길 수 있다’는 현실적인 신앙 고백을 담아낸다. 바로 그 지점이 인생의 한복판을 지나고 있는 이들의 마음을 건드린다. 젊은 날 뜨겁게 헌신하기로 결심했고, 하나님이 열어주신 길이라 믿고 걸어왔지만, 삶의 문제는 오히려 점점 더 복잡해지기만 했던 시간. 다윗의 모습은 우리 안에 있는 그 기억을 조용히 불러낸다. <다윗>은 그 간극을 미화하지 않고 화면 위에 그대로 올려놓는다.
왕관과 사명 사이에서
스크린 속 다윗은 야망과 두려움 사이에서 흔들리는 평범한 한 인간으로 그려진다. 이 흔들림은 그가 사울과 나란히 놓일 때 더 선명해진다. 영화 속 사울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못했던 지난날을 뒤늦게 떠올리며 자기 왕권이 무너져 가고 있음을 느끼는 인물이다. 그는 여전히 왕관을 움켜쥐고 있지만, 그 내면은 죄책감과 두려움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다. 반면 다윗에게는 아직 왕관이 없다. 대신 그는 결정적인 순간마다 자신을 부르신 분이 누구인지를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물론 그가 늘 옳은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그가 두려움 속에서 서툴게 반응하는 장면들을 감추지 않는다. 하지만 흔들리던 다윗은 이내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온다.
여기서 영화는 질문한다. ‘왕관을 썼느냐 쓰지 못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금 나는 누구 앞에 서 있는가?’
우리는 각자 삶의 자리에서 여러 역할과 직분을 감당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모든 자리에서 모두가 주목하는 화려한 왕관을 얻으려고, 혹은 겨우 움켜쥔 왕관을 놓치지 않으려고 발버둥친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왕관의 유무나 그 화려함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 선 나에게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일이 아닐까.
다윗의 노래
성경의 다윗은 시편의 저자로서 오랫동안 교회의 예배와 찬양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영화는 찬양의 사람이었던 다윗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끌어와 이야기의 중심 장치로 ‘찬양'을 활용한다. 다윗은 처음에 사울의 고통을 달래는 왕궁 음악가로 등장하고, 이후 전쟁터에서도 광야에서도 계속 찬양한다.
어둠에 휩싸인 사울의 방에서 수금을 타면서 찬양하늰 장면에서 다윗의 찬양은 단순히 영화의 분위기를 전환하는 배경음악의 역할에 머무르지 않는다. 찬양을 통해 불안과 분노로 가득 찼던 왕의 마음이 가라앉고, 그 방을 짓누르던 공기가 서서히 달라진다.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움에서 하나님께로 돌려놓는 방향키로 다윗의 찬양이 기능하는 것이다. 영화 속 다른 찬양들 역시 각 장면의 감정을 강화하는 기능에만 머무르지 않으며, 그 순간에 다윗이 무엇을 어떻게 믿고 있는지 그리고 소망하는지를 들려준다.
그리스도인에게 이러한 구조는 조금도 낯설지 않다. 고단한 일상을 지나 찾아온 예배당에서 찬양할 때, 그 노래는 단순한 감정 해소가 아니라 흐트러진 삶을 다시 정리하며 하나님 앞에 서는 시간이 된다. 영화 속 다윗도 그렇다. 승리의 순간에도, 주저앉고 싶은 순간에도, 그는 찬양으로 자신의 삶을 하나님 앞에 내어놓고 그분의 뜻 안에서 다시 엮어간다.
태피스트리, 엉킨 실 뒤에 그려지는 한 폭의 그림
이 영화의 신학을 한 단어로 요약한다면, ‘태피스트리(tapestry)’라고 할 수 있다. 날실과 씨실을 엮어 그림이나 무늬를 표현하는 직물 공예인 태피스트리는 그 뒷면만 보면 실이 뒤엉킨 것처럼 보인다. 매듭이 튀어나오고, 색이 갑자기 바뀌고, 어디가 앞이고 뒤인지도 헷갈린다. 하지만 완성된 후 뒤집어 보면 그 모든 실이 하나의 그림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영화는 다윗의 삶을 태피스트리로 보여준다. 골리앗을 이긴 날의 환호, 사울의 미움과 쫓김, 광야의 외로움, 또 다른 전쟁과 두려움, 그리고 마침내 왕으로 인정받는 순간까지. 하나하나 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어지러운 파편들이다.
영화는 그 모든 순간을 한 폭의 그림으로 엮어내며 관객에게 묻는다. "지금 내 삶에서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 그 시간도, 어쩌면 큰 그림을 위해 엮이고 있는 실은 아닐까?"
영화는 약자가 강자를 이기고 넘어서는 기적의 순간만이 아니라 그 뒤에 찾아온 좌절의 세월까지 한 그림 안에 담아낸다. 하나님은 다윗의 영광스러운 승리만이 아니라 그의 눈물과 혼란, 기다림의 시간까지 계획하시고, 하나의 완성된 그림을 향해 엮어가신다. 살아온 날이 제법 쌓인 사람에게 이 메시지는 꽤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직장에서 겪은 애매한 실패, 분명 옳은 선택이라 믿었는데 손해만 본 것 같던 기억, 가정 안에서 생긴 오해와 거리감. 그런 것들이 태피스트리 앞에서 다시 질문으로 바뀐다. 이 순간 역시 하나님의 그림에 사용된 실이었을까. 영화는 정답을 쥐여주지 않는다. 다만 그 질문을 되새기게 한다.
소명과 현실 사이, 그 긴 기다림
그래서 이 영화가 끝까지 붙들고 가는 메시지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믿음’이다. 다윗은 사무엘에게 기름 부음을 받고 골리앗을 쓰러뜨린 뒤에도 곧바로 왕이 되지 않았다. 그는 숱한 어려움을 겪었고 오래도록 광야를 떠돌았다. 영화는 그 시간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그 광야에서 그의 믿음은 “아무 문제 없다”라는 낙관이 아니라 “문제는 산더미 같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나의 하나님이시다”라는 고백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으니, 마음에 확신을 주셨으니, 이제는 좋은 기회와 안정이 당연히 따라와야 한다고 기대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뜨거운 소명 뒤에 메마른 광야가 시작되는 경우가 더 많다. <다윗>은 애니메이션답지 않은 담담한 시선으로 지나치게 낭만적인 신앙을 기대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시지만 그 부르심의 열매가 당장의 성공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주고, 그 기나긴 기다림마저 이미 하나님의 태피스트리 안에 들어와 있다고 말한다. 그 믿음 속에서 광야의 시간은 부르심이 틀렸다는 증거가 아니라 아직 완성되지 않은 그림의 일부가 된다.
맺으며
<다윗>은 잘 만든 기독교 애니메이션이다. 영상의 완성도가 높고, 이야기의 전개와 음악의 짜임새도 탄탄하다. 다윗의 목소리를 맡은 박보검은 대사만이 아니라 극 중에서 노래까지 직접 소화하며 인물의 감정을 이어간다. 물론 아쉬움도 있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잘 알고 있는 다윗의 일생을 소재로 하다 보니 극의 긴장감을 위한 각색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성경의 내용을 충실히 담아내지 못하였으며, 사건과 인물의 행위에 대한 특정한 해석을 지나치게 강조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해외 평단에서는 후반부의 각색이 다윗 이야기의 어두운 면을 지나치게 부드럽게 만들었다는 지적, 상업적인 성공을 좇는 과정에서 기독교적 메시지가 너무 희석되었다는 비판도 있다. 그럼에도 <다윗>은 단순히 ‘골리앗을 쓰러뜨린 영웅 다윗’이 아니라 ‘부르심과 현실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간 다윗’을 보여주면서, 한 사람의 신앙인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또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한다. 그래서 <다윗>을 보고 나온 사람들은 이 영화를 ‘어른을 위한 신앙 애니메이션’이라 말하기도 한다.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승승장구하는 화려한 다윗의 모습만을 기대하고 영화관을 찾았다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태피스트리의 신앙을 기억하며, 광야로 향하는 다윗의 뒷모습을 그의 찬양과 함께 따라간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복잡한 세상 속을 살아가는 오늘의 신앙인에게 이 영화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삶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고, 한 걸음 뒤에서 하나님께서 각자의 삶에 만들어 가시는 기대하게 하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
글. 정일석 연구원 (장로회신학대학교 역사신학 Ph.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