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즈니+ <운명전쟁49>와 논란
지난 3월, 디즈니+ 예능 <운명전쟁49> 내용을 둘러싸고 논란이 있었다. <운명전쟁49>는 신점, 타로, 사주, 관상 등 다양한 영역의 샤머니즘 종사자 49인이 모여 ‘누가 더 정확히 맞추는지’를 겨루는 서바이벌 포맷의 OTT 예능이다. 경쟁 예능이 치열해지는 환경 속에서 차별화를 시도하며 무속이라는 주제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2회에서 비판에 직면했다.
프로그램의 첫 번째 미션은 ‘촉의 전쟁’으로, 제한된 정보만으로 고인의 사인을 맞추는 것이었다. 미션을 맞추기 위해 동굴 같은 형태의 촬영 공간에 울려 퍼지는 방울 소리, 그들의 ‘신’과 대화하는 음성, 이를 지켜보는 심사위원들의 과한 리액션 속에서 고인의 죽음은 애도가 아니라 예능적 긴장과 재미 요소로 소비되었다. 대중은 순직 소방관과 경찰관의 공적 희생과 죽음을 모독했다며 비판했고 유족과 소방, 경찰 단체들은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했다. 제작진은 사과와 함께 재편집을 결정했다. 건진법사 등 무속인의 정치 개입으로 인해 정치적, 사회적 혼란을 겪고 있는 상황이라 더욱 여론의 비판이 거셌다.
<운명전쟁49>은 비일상적이고 신비로운 영역의 것을 다루며 시청자들에게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면서도 낯설고도 기묘한 체험을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그 공간이 대중에게 개방되어 윤리적 금기와 사회적 책임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상품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지점이 과열되어 결국 <운명전쟁49>는 선을 넘어 버렸다. 상담의 측면에서 접근하고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이호선 교수(숭실사이버대)도 한 회 만에 하차하면서 한 개인이 그 경계를 조절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SNS에 토로하기도 했다.
당시 사안은 무속을 둘러싼 심리와 기대가 과도하게 오락화되면서 빚어진 부작용이자 동시에 무속이 일상화, 대중화된 현실을 배경으로 한다. 또한 오늘날 우리 사회가 무속을 어떤 방식으로 소비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라 할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샤머니즘을 대하는 태도 변화
한국 사회에서 사주, 비결, 신점 등 샤머니즘은 오랫동안 주변부 문화로 취급되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트렌드의 중심에 서고 있다. 조선 시대 유교 문화권에서 무속은 공식적으로 배제되었고 무당은 천민 신분으로 취급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제가 무속을 민족 문화와 관련된 것으로 여기며 ‘미개한 미신’으로 낙인 찍고 탄압했다. 박정희 정부 역시 무속을 근대화와 국가 발전을 저해하는 구습으로 비판했다. 1977년 개봉한 영화 <이어도>에서 이러한 무속인에 대한 시선의 일부를 확인할 수 있다. 당시 구시대를 상징하는 섬의 관광지 개발을 모색하던 중 무당은 신이 화를 낸다며 반대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현대화를 막으면서 변화되지 않고 그 상태에 머물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가 변화하면서 무속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조금씩 달라졌다. 전두환 정권은 12.12 이후 군사 쿠테타에 의한 국민적 불만과 비판적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해, 민족문화 계승이라는 명분 아래 무속을 활성화했다. 1990년대와 2000년대를 거치며 대중문화 산업이 성장하면서 무속은 그 흐름에 함께했다. 사주와 타로 카페 등이 젊은이들의 놀이 문화가 되었고, <무릎팍도사>, <무엇이든 물어보살> 같은 무속인 컨셉 예능으로 상담 및 조언하는 포맷이 인기를 얻었다.
영화계에서는 <파묘>가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과거 <이어도>와 달리 <파묘>에서 무당은 무서운 존재이면서도 타인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이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서도 비슷하게 그려진다. 그 외에도 신년 특집 방송의 관상 및 사주 코너가 일상화되고 소설 『혼모노』가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하고, 연애 예능 <신들린 연애>나 <운명전쟁49> 등 실제 무속인이 등장하는 프로그램이 제작되는가 하면, 유튜브와 모바일 사주/타로 앱 등이 인기를 얻으며 무속은 대중이 더욱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되었다. 무속을 전면적으로 다루지 않더라도 가볍게는 행운을 부르는 네잎클로버 키링, 액막이 명태 인테리어 소품, AI 무당까지 등장할 정도로 샤머니즘은 ‘미신’이나 ‘금기’로 취급되던 것에서 벗어나 흥미롭고 신기한 ‘콘텐츠’로 소비되고 있다.
#왜 샤머니즘과 무속이 일상화, 대중화되는가
현재 대한경신연합회(국내 최대 규모 무속인 단체) 회원 기준 국내 무속인은 약 30만 명으로 추산된다. 혹자는 최근 늘어나는 수요를 반영하여 약 80만 명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2022년 통계청 조사에서도 ‘점술 및 유사 서비스업’ 사업체가 약 9,391개, 종사자가 1만 명 이상으로 몇 년 새 지속적으로 관련 산업이 커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1) 여기에 정식 사업체 등록하지 않은 경우까지 더하면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1)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03729
이처럼 무속 및 샤머니즘이 확산되는 이유로 몇 가지를 살펴볼 수 있다. 첫째는 문화적 차원이다. 오늘날 무속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사회적 배경에서 자란 청년들은 이러한 콘텐츠를 재밌게 즐기고 있다. 과학적이고도 탈신화화된 세계관에서 이러한 무속과 샤머니즘은 믿음의 대상이라기보다 문화적 경험의 대상이 되고 있다. 더욱이 K-콘텐츠에서 무속은 강렬한 이미지와 독특한 분위기를 만드는 상징적 문화 코드와 서사로 활용되며, 세계 시장에서 한국만의 차별화된 정체성을 확보하는 한국적 요소로 사용되고 있다.
두 번째는 영적 차원이다. 종교학자 미르체아 엘리아데는 인간을 ‘호모 렐리기오수스’(Homo Religiosus; 종교적 인간)로 바라보며, 초월적 의미를 끊임없이 찾으려는 인간의 본성을 설명한다. 현대인들이 세속화된 현실을 살고 있지만 여전히 ‘성스러운 시공간’을 갈망하고 의미의 해석을 원한다는 것이다. 문화심리학자 한민은 현대인이 신뢰를 갈망하는 존재(호모 피델리우스; Homo Fidelius)로서 끊임없이 종교적 신념 체계와 해석을 찾는다고 주장한다. 후기 세속화 시대에 제도 종교에 속하지 않지만 영적 의미를 추구하는 SBNR(Spiritual But Not Religious) 경향도 확산되고 있다.
여기에 간과하지 말아야 할 요소가 있다. 바로 사회구조적 차원이다. 요새 사람들이 경험하는 구조적 불안이 중요한 배경으로 작동하고 있다. 오늘날, 과거보다 더 많은 가능성과 정보, 자원들을 누릴 수 있지만 동시에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운 환경 속에 놓여 있다. 경제적 양극화, 고용 불안정성, 인구 구조의 변화, 기술 발전, 특히 AI로 인한 미래에 대한 불안 등은 개인의 삶을 장기적으로 계획하기 어렵게 만든다. 사람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질문 앞에서 더욱 헤매게 된다.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사람들은 안정감을 쫓고, 삶의 방향을 설명해 줄 의미 체계에 대한 욕구 역시 강해진다.
과거 한국 교회는 이러한 역할을 감당했다.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전개된 산업화의 흐름 가운데 농촌 공동체가 해체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이동했으며 사회경제적 변화가 빠르게 전개되었다. 정체성의 뿌리가 흔들리고 급격한 변화에 불안한 사람들에게 한국교회는 종교 기관 이상이었다.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에게 마음을 터놓고 교류할 수 있는 새로운 이웃과 공동체가 되었고, 삶의 불안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의미와 희망을 전해주는 신앙 체계였다.
그러나 요즘 상황은 이전과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제도 종교 전반의 영향력이 약화되고 특히 교회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낮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마지막 이유를 말할 수 있다. 바로 종교 환경의 변화와 기존 제도 종교의 약화세이다. 종교학자들은 무속의 확산 배경으로 무종교인의 증가와 제도 종교의 영향력 약화를 꼽곤 한다.2) 기성 종교가 더 이상 안정과 의미를 제공하지 못한다고 느낄 때 다른 종교와 세계관들 중에 선택하게 되기 때문이다. 성해영 교수(서울대 종교학과)는 무속 신앙 확산 배경으로 기성 종교의 약화를 꼽으며, “기성 종교의 위로와 치유 기능은 명상과 현대 의학으로, 규범과 윤리는 법과 도로 대체되면서 역할이 축소되고 있다”고 하였다. “기성 종교가 강하면 무속은 그 안에 녹아들지만 기성 종교의 영향이 약해지면 우리 삶에 녹아든 무속의 본모습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3) 한민 박사 역시 현대인들이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는 종교라고 느낄 때 다른 해석과 신념 체계를 찾는다고 보았다. 더욱이 한국교회에 실망하는 부분이 늘어나면서 무속과 샤머니즘이 기성 종교를 완벽히 대체하는 건 아니지만 생활 속 종교로 유행하고 있다는 것이다.4)
종교사회학자 피터 버거는 근대 사회에서 종교가 하나의 선택 가능한 체계가 되는 다원성 구조로 변화한다고 설명했다. 종교 다원화 상황에서 개인은 더 이상 특정 종교 전통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종교와 세계관들 중 선택하고 결정하게 된다.5)
2) 지난 3월 27일 발표한 한국갤럽조사에 따르면 한국사회에서 무종교인은 60%에 달한다.
3) 이성원 외, 『방치된 믿음』(서울: 바다출판사, 2025), 전자책.
4) 한민, 『숭배하는 자들, 호모 피델리스』(서울: 저녁달, 2025), 전자책.
5) https://firstthings.com/the-good-of-religious-pluralism/
사람들은 여전히 삶의 의미와 영적 해석을 찾지만 더 이상 교회나 제도 종교 안에서만 찾아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이러한 환경에서 무속은 비교적 접근성 높은 영적 해석 체계로 작동한다. 제도 종교에 참여하면서 응당 감당해야 하는 역할과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운 채, 진로나 결혼, 사업과 건강 같은 삶의 중요한 문턱에서 사람들은 외부의 명료한 목소리로 즉각적인 답을 얻는다. 사회 변동이 커지면서 경쟁과 불확실성 위에서 복잡한 현실을 단순하게 정리해 심적 통제감을 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무속의 확산은 불확실한 시대 속에서 사람들이 안정감을 찾고 미래를 이해하려는 방식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6)
6) https://tbs.seoul.kr/news/bunya.do?method=daum_html2&typ_800=9&seq_800=10266868
# 무속의 확산 속 교회의 과제
진로와 취업, 연애와 결혼, 자녀 교육과 노후 준비, 건강 문제 등 미래가 불투명할수록 ‘어떻게 해야 하는지’ 즉각적인 답을 내려주는 무속의 목소리는 매력적으로 들릴 수 있다. 심지어 교회 안에서조차 개인 예언이나 무속에 휩쓸리는 안타까운 사례들도 적지 않다.7)
7) 2022년 한국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기독교인의 23%가 타로와 토정비결, 관상, 손금을 포함한 점, 사주, 운세에 의지한 경험이 있다. 천주교 신자(39%)나 불교 신자(62%)에 비하면 낮은 수치이고, 개신교인 중 ‘어쩌다 한번’(19%) 본 것이 대부분이지만 20대 기독교인의 절반 가까이(49%)가 점을 보고, 타로 카드 점을 이용한다(55%)는 결과가 나왔다. 대부분 전반적 인생사나 운세, 일상생활로 점을 본다는 응답이 52%에 달하고 연령대가 낮을수록 취업이나 시험, 진로 관련한 이유가 높았다.
https://www.kidok.com/news/articleView.html?idxno=214413
무속이 확산되는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인은 이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태도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무조건 비난하거나 훈계하기보다는 이것이 내면의 불안을 덜어내고자 하는 우상 숭배의 일환이며 기독교의 교리와 차이가 있음을 교육해야 한다.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한다’는 신앙은 얼핏 무속적 사고와 닮아 있는 것처럼 보이고, 무속의 점사와 기독교의 예정론/섭리론이 인간의 삶과 미래를 다룬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신학적 전제는 무속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점사는 미래가 일정 부분 이미 정해져 있고, 정해진 미래가 영적 존재나 상징 체계를 통해 접근 가능하다고 여긴다. 그리고 이를 미리 알고 전달, 해석하는 매개자(무당, 박수)를 통해 위험을 피하거나 복을 당길 수 있는 한편, ‘신’을 노하게 하면 화를 입을 수 있다며 두려워한다.
그러나 기독교는 오래 참으시며 아들을 우리에게 내어주시기까지 한 하나님의 깊으신 사랑에 근거한다. 또한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하나님의 계시가 특정 개인의 점술 능력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성경을 통해 이미 주어졌다는 데 있다. 히브리서는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해 부분적으로 말씀하셨지만 마지막 날에는 아들을 통하여 말씀하신다고 하셨다(히 1:1-2). 기독교 신앙에서 하나님의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구원의 메시지이다.
예정론 역시 인생의 사건이 미리 결정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구원의 근거와 기준이 하나님께 있으며, 그로 인해 겸손과 감사의 필요성을 일깨워주는 교리이다. 칼 바르트는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의 선택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났으며 인간을 향해 ‘예’라고 말씀하신다고 하였다. 또한 기독교 섭리론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를 보존, 통치하시며 모든 일을 하나님의 궁극적 선을 향해 이끄심 안에 있다. 더욱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생명과 사망 가운데 주셔서 책임 있는 선택을 하도록 하셨다(신 30:15-20).
오늘날 한국 사회는 전 세대가 각기 다른 지점의 고민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회복해야 할 신앙의 본질은 불안을 해소하는 정보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묻는 과정에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보다 깊어지는 신뢰와 순종이다. 점사는 사건의 방향을 알고자 하지만 기도는 나의 존재의 방향을 바꾼다. 내 삶의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미리 아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며 오늘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다.
교회는 성도들의 삶에 보다 구체적으로 응답해야 한다. 불안과 경쟁을 부추기는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을 수 있도록 깊이 있는 상담과 영성 지도가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도 홀로 고립되지 않도록 사회적 책임 구조가 마련되어야 한다.
여기에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 무속은 신비한 영적 체험에 매몰될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 그러나 종교학자들은 건강한 종교가 영성과 지성, 그리고 윤리의 세 차원이 균형을 이룬다고 말한다. 기독교 신앙 또한 종교적, 감정적 체험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기도 하나 신앙은 감정의 고양이나 신비 체험에 머무르지 않고 인격을 갈고 닦는 수행과 영적 훈련,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확장, 사랑의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 폐쇄적인 기복주의에서 벗어나 투명성, 사회적 책임, 겸손한 태도를 갖출 때 무너진 신뢰가 회복되기 시작할 것이다.
아무리 교회를 떠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해도, 사람들, 특히 그리스도인의 내면에는 하나님을 향한 영적 갈망들이 있다. ‘교회를 떠나는 것이지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는 이른바 ‘가나안 교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교회는 오늘날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한 영혼들을 위한 장이 되어야 한다(시 42:1).
김지혜 책임연구원(문화선교연구원, 장신대 객원교수)
* '목회와신학' 5월호에 실린 글을 수정 보완하였습니다.
#디즈니+ <운명전쟁49>와 논란
지난 3월, 디즈니+ 예능 <운명전쟁49> 내용을 둘러싸고 논란이 있었다. <운명전쟁49>는 신점, 타로, 사주, 관상 등 다양한 영역의 샤머니즘 종사자 49인이 모여 ‘누가 더 정확히 맞추는지’를 겨루는 서바이벌 포맷의 OTT 예능이다. 경쟁 예능이 치열해지는 환경 속에서 차별화를 시도하며 무속이라는 주제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2회에서 비판에 직면했다.
프로그램의 첫 번째 미션은 ‘촉의 전쟁’으로, 제한된 정보만으로 고인의 사인을 맞추는 것이었다. 미션을 맞추기 위해 동굴 같은 형태의 촬영 공간에 울려 퍼지는 방울 소리, 그들의 ‘신’과 대화하는 음성, 이를 지켜보는 심사위원들의 과한 리액션 속에서 고인의 죽음은 애도가 아니라 예능적 긴장과 재미 요소로 소비되었다. 대중은 순직 소방관과 경찰관의 공적 희생과 죽음을 모독했다며 비판했고 유족과 소방, 경찰 단체들은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했다. 제작진은 사과와 함께 재편집을 결정했다. 건진법사 등 무속인의 정치 개입으로 인해 정치적, 사회적 혼란을 겪고 있는 상황이라 더욱 여론의 비판이 거셌다.
<운명전쟁49>은 비일상적이고 신비로운 영역의 것을 다루며 시청자들에게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면서도 낯설고도 기묘한 체험을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그 공간이 대중에게 개방되어 윤리적 금기와 사회적 책임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상품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지점이 과열되어 결국 <운명전쟁49>는 선을 넘어 버렸다. 상담의 측면에서 접근하고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이호선 교수(숭실사이버대)도 한 회 만에 하차하면서 한 개인이 그 경계를 조절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SNS에 토로하기도 했다.
당시 사안은 무속을 둘러싼 심리와 기대가 과도하게 오락화되면서 빚어진 부작용이자 동시에 무속이 일상화, 대중화된 현실을 배경으로 한다. 또한 오늘날 우리 사회가 무속을 어떤 방식으로 소비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라 할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샤머니즘을 대하는 태도 변화
한국 사회에서 사주, 비결, 신점 등 샤머니즘은 오랫동안 주변부 문화로 취급되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트렌드의 중심에 서고 있다. 조선 시대 유교 문화권에서 무속은 공식적으로 배제되었고 무당은 천민 신분으로 취급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제가 무속을 민족 문화와 관련된 것으로 여기며 ‘미개한 미신’으로 낙인 찍고 탄압했다. 박정희 정부 역시 무속을 근대화와 국가 발전을 저해하는 구습으로 비판했다. 1977년 개봉한 영화 <이어도>에서 이러한 무속인에 대한 시선의 일부를 확인할 수 있다. 당시 구시대를 상징하는 섬의 관광지 개발을 모색하던 중 무당은 신이 화를 낸다며 반대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현대화를 막으면서 변화되지 않고 그 상태에 머물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가 변화하면서 무속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조금씩 달라졌다. 전두환 정권은 12.12 이후 군사 쿠테타에 의한 국민적 불만과 비판적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해, 민족문화 계승이라는 명분 아래 무속을 활성화했다. 1990년대와 2000년대를 거치며 대중문화 산업이 성장하면서 무속은 그 흐름에 함께했다. 사주와 타로 카페 등이 젊은이들의 놀이 문화가 되었고, <무릎팍도사>, <무엇이든 물어보살> 같은 무속인 컨셉 예능으로 상담 및 조언하는 포맷이 인기를 얻었다.
영화계에서는 <파묘>가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과거 <이어도>와 달리 <파묘>에서 무당은 무서운 존재이면서도 타인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이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서도 비슷하게 그려진다. 그 외에도 신년 특집 방송의 관상 및 사주 코너가 일상화되고 소설 『혼모노』가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하고, 연애 예능 <신들린 연애>나 <운명전쟁49> 등 실제 무속인이 등장하는 프로그램이 제작되는가 하면, 유튜브와 모바일 사주/타로 앱 등이 인기를 얻으며 무속은 대중이 더욱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되었다. 무속을 전면적으로 다루지 않더라도 가볍게는 행운을 부르는 네잎클로버 키링, 액막이 명태 인테리어 소품, AI 무당까지 등장할 정도로 샤머니즘은 ‘미신’이나 ‘금기’로 취급되던 것에서 벗어나 흥미롭고 신기한 ‘콘텐츠’로 소비되고 있다.
#왜 샤머니즘과 무속이 일상화, 대중화되는가
현재 대한경신연합회(국내 최대 규모 무속인 단체) 회원 기준 국내 무속인은 약 30만 명으로 추산된다. 혹자는 최근 늘어나는 수요를 반영하여 약 80만 명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2022년 통계청 조사에서도 ‘점술 및 유사 서비스업’ 사업체가 약 9,391개, 종사자가 1만 명 이상으로 몇 년 새 지속적으로 관련 산업이 커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1) 여기에 정식 사업체 등록하지 않은 경우까지 더하면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1)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03729
이처럼 무속 및 샤머니즘이 확산되는 이유로 몇 가지를 살펴볼 수 있다. 첫째는 문화적 차원이다. 오늘날 무속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사회적 배경에서 자란 청년들은 이러한 콘텐츠를 재밌게 즐기고 있다. 과학적이고도 탈신화화된 세계관에서 이러한 무속과 샤머니즘은 믿음의 대상이라기보다 문화적 경험의 대상이 되고 있다. 더욱이 K-콘텐츠에서 무속은 강렬한 이미지와 독특한 분위기를 만드는 상징적 문화 코드와 서사로 활용되며, 세계 시장에서 한국만의 차별화된 정체성을 확보하는 한국적 요소로 사용되고 있다.
두 번째는 영적 차원이다. 종교학자 미르체아 엘리아데는 인간을 ‘호모 렐리기오수스’(Homo Religiosus; 종교적 인간)로 바라보며, 초월적 의미를 끊임없이 찾으려는 인간의 본성을 설명한다. 현대인들이 세속화된 현실을 살고 있지만 여전히 ‘성스러운 시공간’을 갈망하고 의미의 해석을 원한다는 것이다. 문화심리학자 한민은 현대인이 신뢰를 갈망하는 존재(호모 피델리우스; Homo Fidelius)로서 끊임없이 종교적 신념 체계와 해석을 찾는다고 주장한다. 후기 세속화 시대에 제도 종교에 속하지 않지만 영적 의미를 추구하는 SBNR(Spiritual But Not Religious) 경향도 확산되고 있다.
여기에 간과하지 말아야 할 요소가 있다. 바로 사회구조적 차원이다. 요새 사람들이 경험하는 구조적 불안이 중요한 배경으로 작동하고 있다. 오늘날, 과거보다 더 많은 가능성과 정보, 자원들을 누릴 수 있지만 동시에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운 환경 속에 놓여 있다. 경제적 양극화, 고용 불안정성, 인구 구조의 변화, 기술 발전, 특히 AI로 인한 미래에 대한 불안 등은 개인의 삶을 장기적으로 계획하기 어렵게 만든다. 사람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질문 앞에서 더욱 헤매게 된다.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사람들은 안정감을 쫓고, 삶의 방향을 설명해 줄 의미 체계에 대한 욕구 역시 강해진다.
과거 한국 교회는 이러한 역할을 감당했다.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전개된 산업화의 흐름 가운데 농촌 공동체가 해체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이동했으며 사회경제적 변화가 빠르게 전개되었다. 정체성의 뿌리가 흔들리고 급격한 변화에 불안한 사람들에게 한국교회는 종교 기관 이상이었다.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에게 마음을 터놓고 교류할 수 있는 새로운 이웃과 공동체가 되었고, 삶의 불안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의미와 희망을 전해주는 신앙 체계였다.
그러나 요즘 상황은 이전과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제도 종교 전반의 영향력이 약화되고 특히 교회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낮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마지막 이유를 말할 수 있다. 바로 종교 환경의 변화와 기존 제도 종교의 약화세이다. 종교학자들은 무속의 확산 배경으로 무종교인의 증가와 제도 종교의 영향력 약화를 꼽곤 한다.2) 기성 종교가 더 이상 안정과 의미를 제공하지 못한다고 느낄 때 다른 종교와 세계관들 중에 선택하게 되기 때문이다. 성해영 교수(서울대 종교학과)는 무속 신앙 확산 배경으로 기성 종교의 약화를 꼽으며, “기성 종교의 위로와 치유 기능은 명상과 현대 의학으로, 규범과 윤리는 법과 도로 대체되면서 역할이 축소되고 있다”고 하였다. “기성 종교가 강하면 무속은 그 안에 녹아들지만 기성 종교의 영향이 약해지면 우리 삶에 녹아든 무속의 본모습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3) 한민 박사 역시 현대인들이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는 종교라고 느낄 때 다른 해석과 신념 체계를 찾는다고 보았다. 더욱이 한국교회에 실망하는 부분이 늘어나면서 무속과 샤머니즘이 기성 종교를 완벽히 대체하는 건 아니지만 생활 속 종교로 유행하고 있다는 것이다.4)
종교사회학자 피터 버거는 근대 사회에서 종교가 하나의 선택 가능한 체계가 되는 다원성 구조로 변화한다고 설명했다. 종교 다원화 상황에서 개인은 더 이상 특정 종교 전통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종교와 세계관들 중 선택하고 결정하게 된다.5)
2) 지난 3월 27일 발표한 한국갤럽조사에 따르면 한국사회에서 무종교인은 60%에 달한다.
3) 이성원 외, 『방치된 믿음』(서울: 바다출판사, 2025), 전자책.
4) 한민, 『숭배하는 자들, 호모 피델리스』(서울: 저녁달, 2025), 전자책.
5) https://firstthings.com/the-good-of-religious-pluralism/
사람들은 여전히 삶의 의미와 영적 해석을 찾지만 더 이상 교회나 제도 종교 안에서만 찾아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이러한 환경에서 무속은 비교적 접근성 높은 영적 해석 체계로 작동한다. 제도 종교에 참여하면서 응당 감당해야 하는 역할과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운 채, 진로나 결혼, 사업과 건강 같은 삶의 중요한 문턱에서 사람들은 외부의 명료한 목소리로 즉각적인 답을 얻는다. 사회 변동이 커지면서 경쟁과 불확실성 위에서 복잡한 현실을 단순하게 정리해 심적 통제감을 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무속의 확산은 불확실한 시대 속에서 사람들이 안정감을 찾고 미래를 이해하려는 방식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6)
6) https://tbs.seoul.kr/news/bunya.do?method=daum_html2&typ_800=9&seq_800=10266868
# 무속의 확산 속 교회의 과제
진로와 취업, 연애와 결혼, 자녀 교육과 노후 준비, 건강 문제 등 미래가 불투명할수록 ‘어떻게 해야 하는지’ 즉각적인 답을 내려주는 무속의 목소리는 매력적으로 들릴 수 있다. 심지어 교회 안에서조차 개인 예언이나 무속에 휩쓸리는 안타까운 사례들도 적지 않다.7)
7) 2022년 한국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기독교인의 23%가 타로와 토정비결, 관상, 손금을 포함한 점, 사주, 운세에 의지한 경험이 있다. 천주교 신자(39%)나 불교 신자(62%)에 비하면 낮은 수치이고, 개신교인 중 ‘어쩌다 한번’(19%) 본 것이 대부분이지만 20대 기독교인의 절반 가까이(49%)가 점을 보고, 타로 카드 점을 이용한다(55%)는 결과가 나왔다. 대부분 전반적 인생사나 운세, 일상생활로 점을 본다는 응답이 52%에 달하고 연령대가 낮을수록 취업이나 시험, 진로 관련한 이유가 높았다.
https://www.kidok.com/news/articleView.html?idxno=214413
무속이 확산되는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인은 이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태도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무조건 비난하거나 훈계하기보다는 이것이 내면의 불안을 덜어내고자 하는 우상 숭배의 일환이며 기독교의 교리와 차이가 있음을 교육해야 한다.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한다’는 신앙은 얼핏 무속적 사고와 닮아 있는 것처럼 보이고, 무속의 점사와 기독교의 예정론/섭리론이 인간의 삶과 미래를 다룬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신학적 전제는 무속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점사는 미래가 일정 부분 이미 정해져 있고, 정해진 미래가 영적 존재나 상징 체계를 통해 접근 가능하다고 여긴다. 그리고 이를 미리 알고 전달, 해석하는 매개자(무당, 박수)를 통해 위험을 피하거나 복을 당길 수 있는 한편, ‘신’을 노하게 하면 화를 입을 수 있다며 두려워한다.
그러나 기독교는 오래 참으시며 아들을 우리에게 내어주시기까지 한 하나님의 깊으신 사랑에 근거한다. 또한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하나님의 계시가 특정 개인의 점술 능력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성경을 통해 이미 주어졌다는 데 있다. 히브리서는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해 부분적으로 말씀하셨지만 마지막 날에는 아들을 통하여 말씀하신다고 하셨다(히 1:1-2). 기독교 신앙에서 하나님의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구원의 메시지이다.
예정론 역시 인생의 사건이 미리 결정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구원의 근거와 기준이 하나님께 있으며, 그로 인해 겸손과 감사의 필요성을 일깨워주는 교리이다. 칼 바르트는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의 선택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났으며 인간을 향해 ‘예’라고 말씀하신다고 하였다. 또한 기독교 섭리론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를 보존, 통치하시며 모든 일을 하나님의 궁극적 선을 향해 이끄심 안에 있다. 더욱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생명과 사망 가운데 주셔서 책임 있는 선택을 하도록 하셨다(신 30:15-20).
오늘날 한국 사회는 전 세대가 각기 다른 지점의 고민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회복해야 할 신앙의 본질은 불안을 해소하는 정보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묻는 과정에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보다 깊어지는 신뢰와 순종이다. 점사는 사건의 방향을 알고자 하지만 기도는 나의 존재의 방향을 바꾼다. 내 삶의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미리 아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며 오늘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다.
교회는 성도들의 삶에 보다 구체적으로 응답해야 한다. 불안과 경쟁을 부추기는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을 수 있도록 깊이 있는 상담과 영성 지도가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도 홀로 고립되지 않도록 사회적 책임 구조가 마련되어야 한다.
여기에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 무속은 신비한 영적 체험에 매몰될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 그러나 종교학자들은 건강한 종교가 영성과 지성, 그리고 윤리의 세 차원이 균형을 이룬다고 말한다. 기독교 신앙 또한 종교적, 감정적 체험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기도 하나 신앙은 감정의 고양이나 신비 체험에 머무르지 않고 인격을 갈고 닦는 수행과 영적 훈련,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확장, 사랑의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 폐쇄적인 기복주의에서 벗어나 투명성, 사회적 책임, 겸손한 태도를 갖출 때 무너진 신뢰가 회복되기 시작할 것이다.
아무리 교회를 떠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해도, 사람들, 특히 그리스도인의 내면에는 하나님을 향한 영적 갈망들이 있다. ‘교회를 떠나는 것이지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는 이른바 ‘가나안 교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교회는 오늘날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한 영혼들을 위한 장이 되어야 한다(시 42:1).
김지혜 책임연구원(문화선교연구원, 장신대 객원교수)
* '목회와신학' 5월호에 실린 글을 수정 보완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