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의 문화 읽기144년간 지어진 돌로 된 성경, 사그라다 파밀리아

2026-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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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객은 급하지 않으시다.

2026년 6월 10일,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Temple Expiatori de la Sagrada Família, 성가족 성당)에 교황 레오 14세가 방문해 성당에서 가장 높은 ‘예수 그리스도 탑’을 축복하는 모습이 전 세계에 전해졌다. 이로써 성당이 사실상 완공된 6월 10일은, 1926년 성당을 설계한 안토니 가우디가 세상을 떠난 지 100년이 되는 날이기도 했다. 전차에 치인 그는 허름한 행색으로 인해 노숙자로 여겨져 제때 치료받지 못하고 눈을 감았고, 생전에 완공을 보지 못한 성당의 지하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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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í i Cornet, 1852. 6. 25.~1926. 6. 10.)

 

가우디는 살아 있을 때 “공사가 왜 이렇게 느리냐?”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내 고객은 급하지 않으시다.”라고 답하곤 했다. 그의 고객은 바로 ‘하나님’이었다. 1882년 첫 삽을 뜬 뒤 사실상 완공에 이르기까지 무려 144년이 걸렸다. 그사이에 두 번의 세계대전과 스페인 내전, 독재와 민주화, 코로나 팬데믹과 같은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이 지나갔고 교황도 열한 번이나 바뀌었으니, “급하지 않다”라던 그의 말은 농담이 아니라 진담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이야기는 ‘드디어 완성’이라는 한마디로 끝나지 않는다. 그 144년의 세월 안에는 한 사람의 삶과 믿음, 미술과 건축의 역사, 그리고 오늘날 도시가 떠안은 골치 아픈 고민이 함께 담겨 있기 때문이다.



자연에서 배운 건축가

가우디는 1852년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구리 세공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관절이 아파 친구들과 맘껏 뛰어놀지 못했던 그는 혼자 자연을 들여다보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 때 나무가 가지를 뻗는 모양이나 뼈와 조개껍데기의 곡선 같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관찰한 시선이 훗날 그의 건축의 바탕이 되었다. 가우디의 건물에는 곧은 직선이나 네모반듯한 벽이 거의 없다. 대신 부드러운 곡선과 나선, 나무처럼 위로 갈라지는 기둥이 가득하다. 일반적으로 큰 건물은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벽을 두껍게 하거나 바깥에 버팀대를 세우지만, 가우디는 기둥과 아치의 구조 자체를 활용해 무게를 분산하는 방법을 주로 사용하였다. 가우디는 당시 카탈루냐에서 유행하던 ‘모데르니즘’1)의 영향을 받았으며, 여기에 자연과 수학, 기독교의 상징들을 한데 엮어 자신만의 스타일을 발전시켰다. 그리고 그가 남긴 구엘 공원과 카사 밀라, 카사 바트요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그의 독창적인 건축은 이제 인류 전체가 기억하고 감탄하는 예술로 인정받고 있다.
1) 모데르니즘(Modernisme)는 19세기 말~20세기 초 카탈루냐에서 전개된 예술 및 건축 운동으로 카탈루냐의 지역 정체성과 민족주의, 전통 회귀의 성격을 함께 지닌다. 이는 직선적이고 역사주의적인 기존 양식에서 벗어나, 곡선, 비대칭, 자연주의적 장식, 색채의 풍부함을 강조하였다. 이는 단순한 건축 양식이 아니라 문학, 미술, 공예까지 포괄하는 문화운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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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그라다 파밀리아 바깥에 장식된 과일 모양 조각 Photo by Poniol60

 

나이가 들수록 가우디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공사에만 매달렸다. 1914년부터는 다른 작업을 거의 다 중단한 채 공사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의 옷차림은 점점 허름해졌으며 생활도 매우 검소해져서 사람들은 그가 자신을 지우는 듯했다고 전한다. “내 고객은 급하지 않으시다.”라던 그의 대답은 변명이 아니었다. 자기 눈으로 완성을 보지 못해도 괜찮다는 그 마음은,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남기는 일보다 더 큰 것을 바라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로움이었다.

 


돌로 된 성경, 기도하는 빛의 숲

가우디는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돌로 된 성경’이라고 칭했다. 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림과 조각으로 성경 이야기를 들려주던 중세의 성당처럼, 가우디도 이 건물이 그 자체로 성경의 내용을 전하기를 바랬다. 이러한 가우디의 마음은 성당 구석 구석마다 조각된 성경 속 이야기들을 통해 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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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안으로 들어서면 기둥들이 위로 올라가며 나뭇가지처럼 갈라지고 천장이 별 모양으로 펼쳐진다. 가우디는 숲을 만들고 싶었다. 돌로 빚은 숲에 시간에 따라 다채로운 빛이 스며들고 그 빛이 물들인 공간에 사람들이 머물러 빛 아래에서 기도하는 것, 바로 그 모습이 가우디가 꿈꾼 성당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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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바깥에는 저마다 예수의 생애를 한 장면씩 담고 있는 큰 정문이 세 개 있다. 동쪽 ‘탄생의 문’이 예수의 태어남과 생명의 기쁨으로 가득하다면, 서쪽 ‘수난의 문’은 날카로운 각과 빈 공간으로 십자가의 고통을 표현하고 있으며, 아직 완성되지 않은 남쪽 ‘영광의 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리를 보여줄 예정이다. 성당에 세워진 탑은 모두 열여덟 개로, 열두 사도와 네 복음서 저자, 성모 마리아, 그리고 맨 위의 예수 그리스도를 각각 상징한다. 그중 가장 높은 ‘예수 그리스도의 탑’은 더 높이 올릴 수 있었음에도 그 높이를 172.5m로 제한했는데, 이는 가우디가 사람이 만든 건물이 하나님이 만든 자연보다 높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여 일부러 그 높이를 바르셀로나의 몬주익 언덕보다 살짝 낮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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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고딕 성당이 하늘 높이 솟은 모습과 스테인드글라스로 쏟아져 들어오는 빛으로 신앙을 표현했다면, 가우디는 자연의 형태를 빌려 신앙을 표현했다. 그래서 현대의 비평가들은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고딕 성당의 후예인 동시에 그 전통을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발전시킨 결과물이라고 평가한다.



공사기간, 144년+a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국가나 교회가 막대한 자금을 동원하여 세운 건물이 아니다. 이 성당은 종교 서적 출판사 사장이었던 조제프 마리아 보카벨랴(Josep Maria Bocabella, 1815~1892)의 계획에서 출발하여 시민들의 헌금과 관광객들의 입장료만으로 지어졌다. 그러다 보니 공사는 늘 불안정하게 진행되었다. 전쟁이나 경제 위기, 팬데믹으로 관광객과 기부가 끊길 때마다 공사는 중단되었고, 완공 날짜도 계속 연기되었다.

1936년 스페인 내전 중에는 가우디가 남긴 모형과 도면이 거의 다 불타기도 했다. 이로 인해 후배 건축가들은 불에 타고 남은 조각과 사진, 제자들의 기억을 짜맞춰 가우디의 생각을 짐작하면서 공사를 이어가야 했다. 그래서 오늘날 성당 곳곳에는 가우디가 직접 그려낸 부분과 후대에 ‘가우디라면 이렇게 했을 것’이라며 채운 부분이 공존한다. 또한 기술의 발전으로 컴퓨터 설계와 인공지능 같은 새로운 도구가 도입되면서 공사 속도는 빨라졌지만, ‘가우디가 알지도 못한 기술로 지은 것이 정말 가우디의 작품인가?’라는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탑 꼭대기에 십자가가 올려졌지만, 영광의 문 완성과 내부 마감은 아직 진행중이기에 성당의 완전한 완공은 2030년대에야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남쪽 ‘영광의 문’을 도면대로 짓기 위해서는 수십 년 전에 해당 부지에 세워진 건물들을 철거해야 하는데 해당 건물 주민들의 반발로 협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은 성당 완공까지 남겨진 과제가 작지 않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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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진정한 의미는 ‘완성된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넘어,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끝없는 과정’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144년 동안 포기하지 않고 완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그 모습은  이어지는 어려움과 장애물에도 포기하지 않고, 거룩함을 향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 우리의 신앙 여정과 닮은 구석이 많기 때문이다.



거룩한 공간인가, 화려한 관광지인가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둘러싼 가장 뜨거운 논란은 신앙이나 예술의 문제가 아니라 ‘오버투어리즘’이다. 성당 주변에는 이미 하루에도 수만 명이 몰리고 있으며, 이곳을 찾는 관광객만 하루 5만 명이 넘게 오간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길마다 관광객을 실은 버스가 줄지어 서 있고, 에어비앤비 같은 단기 임대 숙소가 늘면서 골목마다 사람이 가득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동네 주민들은 소음과 매연, 거주비 폭등을 견디다 못해 거리로 나서면서 “우리 동네가 무너지기 직전 같다.”라고 하소연한다. 누군가에게는 평생 한 번 볼까 말까 한 거룩하고 아름다운 공간이, 바로 옆에 사는 사람에게는 일상의 삶을 짓누르는 짐이 되고 있는 역설적 상황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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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과 시 당국에서 광장을 넓히고 사진 촬영을 위한 별도의 공간을 만드는 등의 대책을 내놓기는 했지만, 이러한 대책이 관광객 수 자체를 줄이기보다 최소한의 관리에 그친다는 비판도 많다. 지난 2010년 교황이 다녀간 뒤에 성당을 찾는 사람이 크게 늘었던 것을 떠올리면, 이번 완공 미사가 불러일으킨 전 세계적 관심은 관광객의 폭증으로 이어져 지역 주민의 부담을 한층 키울 것으로 보인다.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사람들이 모여서 기도하기 위해 지어진 성당이 도시를 대표하는 관광 상품이 되어 버린 현실 속에는, 거룩함(聖)과 속됨(俗), 동네 사람들과 거대한 자본이 뒤엉켜 충돌하는 이 세상의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성당 너머의 도시를 바라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며 복음을 경험하는 아름다운 통로이지만, 정작 그 화려함으로 인해 그안에 담긴 메시지가 묻혀버릴 수도 있는 위태로움을 함께 안고 있다. 도시 한복판에 서 있으면서도, 도시를 움직이는 돈의 논리에 완전히 휩쓸리지 않기 위해 애써야 하는 어려운 자리에 놓여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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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도시를 외면하지 않는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포로로 끌려간 백성을 향해 ‘너희가 사로잡혀 간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라’(렘 29:7)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다. 도시 한복판에 자리한 이 시대의 교회도 그 도시의 평안함을 구해야 한다. 이는 평안을 잃어가고 있었던 도시, 바르셀로나를 위해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처음 계획한 이들이 품고 있었던 마음이기도 했다. 도시는 사람의 욕심이 모인 곳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이 그 도시의 사람을 구원하시는 무대로 삼으시는 곳이기 때문이다.

교회의 역사 속에서도 도시는 언제나 중요한 하나님의 도구이자 무대였다. 16세기 종교개혁이 시작되어 빠르게 확산한 배경에도 도시가 있었다. 루터가 가르쳤던 비텐베르크 대학처럼, 도시에 세워진 대학들은 새로운 사상과 인재를 길러내는 요람이자 개혁의 중심지가 되었다. 독자적인 통치권을 부여받은 자유도시의 정치 세력들은 종교개혁을 후원하면서 로마가톨릭으로부터 보호한 강력한 울타리가 되어 주었다. 사람과 정보와 힘이 모이는 도시는 사람들의 믿음을 흔드는 동시에 새롭게 할 수 있는 가능성을 품은 공간이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도시를 통해 세상을 바꾸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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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 종교개혁의 중심지, 독일 비텐베르크

 

그렇다면 오늘날 기독교인에게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어떤 의미인가? 이 건축물을 일생에 한번은 가봐야 할 ‘세계 3대 성당’이나 ‘가우디의 걸작’만으로 생각하고, 시간에 쫓기며 SNS용 사진 한 장 찍고 나오는 것만으로는 아쉬울 수밖에 없다. 거대하고 아름다운 성당을 바라보면서 이 시대 교회가 회복해야 할 거룩함이란 무엇인지 되물으며, 교회가 지역 공동체에서 공존하며,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길을 고민할 때, 비로소 우리는 도시를 향해 하나님이 보내신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다. 172.5m 예수 그리스도의 탑 꼭대기에 빛나는 십자가를 올린 사드리아 파밀리아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질문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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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너는 무엇을 위해, 누구와 함께, 그 빛 아래 서 있는가."



글. 정일석 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 장로회신학대학교 역사신학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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