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의 문화 읽기도서 추천 <가치 있는 삶 (미로슬라브 볼프)> - "중요하지 않은 것을 좇으며 살기에 삶은 너무나 소중하다."

2023-12-06
조회수 479

<가치 있는 삶> | 미로슬라브 볼프 외 지음 | 흐름출판 | 2023


믿음을 오해할 때, 소홀해지기 쉬운 말 중에 하나는 ‘삶’이다. 믿음이 있어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향해 기도할 수 있고, 막막해 보여도 걸음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며 가던 길을 완주할 수 있다. 믿음이 디딤돌이자 기폭제가 될 때, 관습이라는 중력과 자기애라는 한계를 넘어 우리는 하늘을 향해 높이 뛰어오를 수 있다. 그러나 제아무리 높이 오른 몸짓이라 해도 결국엔 다시 땅으로 돌아와야 한다. 우리에겐 시간의 제약과 환경에 영향을 받는 삶의 자리가 있다. 도약 못지않게 착지와 이후의 걸음 역시 믿음이 필요하다. 도약에는 용기와 담대함이라는 믿음의 근력이 필요하다면, 착지 이후엔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가늠할 줄 아는 방향에 대한 감각과 오늘 하루의 성실한 걸음이 켜켜이 쌓여 마침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희망의 감각이 필요하다. 예일대학교에서 진행한 강의를 바탕으로 엮은 책 <가치 있는 삶 – 무엇을 선택하고 이룰 것인가>는 바로 이 방향에 대한 감각과 희망을 쉬운 언어로 풀되, 빙산의 밑동처럼 깊이 있는 신학적 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쉬운 언어로 기술됐다는 것은 이 책의 일차 독자가 누구냐? 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평소 믿음에 대해 접해보지 않았을 학생들과 교회 안에서 체득된 믿음을 어떤 방식으로 공공의 영역에서 풀어낼지 모르는 기독 학생들이 그 대상이다. 기독교 교리에 대한 동의를 전제로 시작하지 않는다. 누구나 살아내야 하는 ‘삶’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다양한 사람들의 실례를 든다. 순차적으로 읽어나가는 가운데 – 실제로도 그렇게 읽도록 요청한다 – 가치 있는 삶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스스로 묻고 그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안내한다. 매 장마다 ‘삶에 적용하기’라는 질문이 빼곡히 채워져 있는데, 정리 차원의 닫힌 질문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응시할 수 있는 열린 질문들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단순한 자기계발서가 아님은 미로슬라브 볼프를 비롯한 세 명의 저자가 모두 신학적 글쓰기에 능한 저자라는 사실이다. 우선 미로슬라브 볼프(Miroslav Volf)는 예일대 신학과 교수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배제와 포용>, <행동하는 기독교> 등 공적 신앙에 기반한 주제의식이 돋보이는 글을 썼고, 마태 크러스몬(Matthew Croasmun)은 예일대 인문대학 교수로서 미로슬라브 볼프와 공동 집필한 <세상에 생명을 주는 신학>을 비롯한 <죄의 출현> 등의 저자이며, 라이언 매커널리린츠(Ryan McAnnally-Linz)는 예일대학교 신앙문화센터 부소장으로 짐 월리스(Jim Wallis)가 창간한 기독교의 사회책임을 강조한 <소저너스> 등에 필진으로 참여한 저자다. 즉, 저자들이 인식하고 있는 문제의식을 삶이라는 구체적 현장에서 어떻게 구현해 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신학적 관점의 인생 로드맵인 셈이다.

 

그렇다면 제목이자 이 책에서 줄곧 놓치지 않는 주제인 ‘가치있는 삶’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현대인들이 갈망하는 ‘길고 행복하고 건강한 삶’이라는 진리처럼 보이는 가치를 흔드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전통과 역사 속에서 인류를 더 나은 삶으로 인도했던 사상들은 ‘길고 행복하고 건강하기만’ 한 삶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의 삶이 좋은 예다. 아홉 살 때 어머니가 사망한 이후 심각한 우울증을 앓았던 링컨은 대통령 임기 중에는 “지옥보다 더한 곳이 있다면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이라며 노예해방이라는 양보할 수 없는 가치를 위해 끔찍한 전쟁을 치러야 했다. 자신의 재능과 에너지를 행복을 찾는 데 사용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그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불행을 좇지는 않았다. 그러나 불행으로부터 달아나지도 않았으며, 미래에 닥칠 불행을 두려워하며 책임을 회피하지도 않았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존경하는 링컨의 성품은 그의 우울과 깊이 관련돼 있다. 죽음이 주는 절망과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슬픔을 경험했기에 그는 불완전할지 모르나 깊고, 강하고, 변함없는 연민과 정직함을 갖출 수 있었다. 이처럼 ‘장수’와 ‘행복’과 ‘건강’만을 추구해야 할 유일한 가치로 여기는 신화를 벗겨낼 때, 우리는 삶의 진실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다.

 

여기에 현대문화가 지속적으로 주입하고 있는 ‘자기만족’과 ‘자기 위안’이라는 기준이 우리를 왜 혼란스럽게 만드는지 원인을 보여주며, 각자의 선택을 넘어선 책임감의 궁극적 원천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소위 ‘꼰대’가 되느냐? 지혜로운 ‘멘토’가 되느냐? 의 갈림길에 서게 되는 데, 이 책은 동•서양의 사상가들과 역사, 여러 인물들의 내면과 행적을 통해 혼자만의 동굴에서 나와 숲을 향하도록 사려 깊은 언어와 논리로 설득한다. 그러면서도 저자 세 사람의 출발점이 기독교 신앙임을 처음부터 밝히며 중립적인 입장에서 써 내려간 ‘좋은 삶을 사는 지침서’가 아님을 분명히 한다. 미로슬라브 볼프의 또 다른 저서인 <광장에 선 기독교>에서 말한 적으로서 파괴하며 싸우는 것이 아니라 친구로서 생산적으로 토론하는 방식의 실전 편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 책은 삶의 이정표를 찾고 싶은 청년들은 물론 인생의 전환점에서 자신이 살아온 삶의 속도와 방향을 돌아보고, 남은 생을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중년층 이상의 성인들에게도 유용한 책이 될 것이다. 또한 예배와 봉사처럼 신앙의 기본에 해당하는 원리에만 사역의 초점을 맞춰 삶의 현장 속에서 어떤 언어로 소통하고, 어떻게 신앙적 가치를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신학생과 목회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글. 성현 목사 (필름포럼 대표, 창조의정원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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