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분석 [요즘뜨는것들]내가 되고 싶은 ‘어른’, 우리가 바라는 ‘선배’,

2023-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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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연된 ‘어른’

국내 정치권에서 ‘청년 나이’의 기준을 19~34세에서 39세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저출생·고령화로 인한 여러 사회 문제들이 증가하고, 청년들의 결혼 혹은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가는 시기가 점점 지연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의 3~40대라면 어릴 적 한 번쯤, “내가 서른 살 정도 되면 자녀도 있고, 안정적인 직장도 있고, 내 집 마련도 했겠지”라는 막연한 상상들을 해봤을 것이다. 필자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 시절은 모두가 인생의 정답을 그렇게 내려두었었고, 실제로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했기 때문이다. 아마 그때 우리 사회는 ‘성숙한 어른’이 되는 기준을 ‘안정감’과 ‘성공’에만 두었던 것 같다. 하지만 청년으로 성장해 가면서, 불확실한 경기 전망과 사회적 가치관의 급변을 경험하게 됐고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내가 알던 어른’이 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운 도전이었다는 것을, 또 나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보통의 어른이 되는 과정을 떠올려보자. 좋은 대학을 위한 12년의 공부, 취업을 위한 대학 생활, 결혼을 위한 내 집 마련, 내 집 마련을 위한 직장 생활. 그렇게 앞만 보고 열심히 살아가다 보면, 곧 자녀를 훌륭한 어른으로 키워내야 한다는 부담감에 온 인생을 아이 양육에만 갈아 넣게 되는 삶. 심지어 과거에는 이 모든 과정을 20에서 30대 초반까지 다 해치워왔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시대 청년들은 그 ‘성숙한 어른’이 되려는 도전에 나서는 것을 두려워한다. 두려움을 넘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미리 예상하고 외면해 버린다. 여기에는 경제불황으로 인한 고용 불안정과 비정규직의 증가, 점차 심화되는 임금 격차 등의 이유도 있지만, 더 나아가 사회적으로 ‘삶의 행복’이라는 기준이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연일 보도되는 기사들은 ‘청년들이 어른이 되기를 유예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정말 그럴까? 우리는 어른이 되기를 포기한 걸까?

 

30대 중반에 여전히 꿈 찾아가고 있는 나, 어떤데?

사실, 청년들이 어른이 되기를 포기했다고 바라보는 견해는 기성세대에서만 갖는 기우일지도 모른다. 다만 우리는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약속해 온 ‘성숙한 어른’의 개념을 조금 달리 보기로 했을 뿐이다. 즉, ‘30대 중반인데, 자녀가 있기는커녕 결혼도 하지 않은 사람들’, ‘안정적인 직장을 갖기보다, 하고 싶은 일을 향해 끊임없이 도전해 나가는 사람들’을 마치 ‘어른이 되지 못한 미성숙한 존재’로 바라보는 것을 멈추기로 한 것이다. 더불어 ‘지연된 어른’의 원인을 자꾸만 ‘늦어진 결혼과 출산’, ‘비혼·비출산’, ‘니트족·프리터족의 출현’1)에서만 찾는 일도 멈춰야 한다. 엄밀하게 보면, 이런 현상들은 결국 고용환경의 악화, 사회 불안, 가치관의 변화 등으로 나타난 결과이지, 원인은 아니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한 정치인은 저출생 문제에 대해 다루면서, “TV 프로그램인 <나 혼자 산다> 때문에 시청자들에게 혼자 사는 것이 더 행복한 삶으로 인식된 게 심각한 원인”이라는 식의 언급을 했었다. 이는 사회 문제의 원인과 결과를 자기 입맛대로 뒤죽박죽 갖다 붙인 안 좋은 예라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저 견해가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오늘날 청년들은 그 어느 때보다 미디어에서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나이는 단지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그저 글과 목소리로만 주창하던 과거와는 확실히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제는 ‘적령기’라는 것이 딱히 없음을 몸소 보여주는 어른들이 각종 미디어에 출현하고 있다. 

<지구마불 세계여행 한 장면 (출처: 유튜브 채널 TEO)>

이 시대 청년들은, 특히 ‘유튜브’ 플랫폼으로부터 다양한 모양으로 살아가는 어른들의 삶을 마주한다. 하던 일을 관두고 이 나라 저 나라를 여행하며 더 큰 세상을 경험하고 있는 여행 유튜버, (비교적) 늦은 나이에 새로운 것을 도전하며 잘할 수 있음을 증명해 내는 일상 유튜버, 청년들과 활발히 소통하며 인생의 선배가 되어주는 어르신 유튜버들까지. 모두가 과거 전통적 개념의 ‘어른’에만 매어있는 것이 아닌,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것을 새롭게 도전하고 꾸준히 해내는 ‘어른’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콘텐츠들은 누군가에게는 허영심이나 부러움을 자극한다는 부정적인 영향도 주겠지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청년들이 진짜 멋진 어른의 모습을 찾아가는 여정에 좋은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내가 되고 싶은 ‘어른’

그렇다면 요즘 청년들이 말하는, 이른바 ‘성숙한 어른’의 모습이란 무엇일까? 3가지 정도로 요약해 볼 수 있겠다. 
첫 번째, 자신이 좋아하고 원하는 일을 잘 알고, 그렇게 살려는 어른.
두 번째, 무언가를 성실하고 꾸준하게 실천해 내는 어른.
마지막으로는, 섬세한 언어와 감수성으로 타인에게 함부로 상처 주지 않으려 노력하는 어른

사실, 기존에 존경받던 어른의 모습과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하지만 ‘내가 되고 싶은 어른’의 기준이 '성공'과 '안정감' 보다는 ‘개인의 행복’과 ‘사회를 향한 선한 영향력’에 있다는 점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청년들이 성인이 되자마자 하고 싶은 일은, 대부분 ‘어릴 땐 하지 못했던 것들’이다. 단순히 청소년에게 법적으로 금지된 음주 등의 행위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어린 시절 기억 속에, 부모님의 허락 없이는 쉽게 하지 못했던 것들이 있다. 그런데 성인이 된 후에는 자신의 능력과 책임하에 못해본 것들을 마음껏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나는 어른이다' 밈 짤>

요즘 온라인에서는 이러한 사람들에 대해 ‘멋진 어른’이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나는 이제 1.5L짜리 우유에 ‘제티’를 여러 개 넣고 대용량 초코우유를 만드는 멋진 어른이 됐다”, “어른이 됐다는 건.. 구슬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부모님께 조르지 않고, 마음껏 사 먹을 수 있다는 것..”이라는 밈들이 생성되어 떠돌아다닌다. 이는 물론 우스갯소리긴 하지만, 그만큼 아주 소소한 것이라도 자신이 하고 싶던 일을 자유롭게 해낼 수 있는 게 정말 멋진 어른의 모습이라는 의미가 반영된 것이 아닐까. 

<MBC '나혼자 산다' 507회 방영분>

최근 MBC 예능 <나 혼자 산다>에서 김대호 아나운서가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지난여름에 방영된 호캉스 장면을 본 시청자들은 “김대호 아나운서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를 알고 최선을 다해 즐기는 멋진 어른”이라는 찬사를 보냈다. 그는 자신의 집 마당에 유아용 풀장을 설치한 후 신나게 물놀이를 하다가 과일과 백숙도 먹었다. 사실 그리 대단하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은, 심지어 때로는 비위생적이고 엉뚱해 보이기까지 한 장면이지만, 이를 지켜보던 출연자 및 시청자들은 그를 부러워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들을 그대로 실행에 옮기는 모습 때문이었다. 그가 마흔인데 혼자 살든 말든, 그의 집 환경이 어떻든 말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즐겁고 행복해하는 어른이 되어 다행일 뿐이다. 

<가수 '션'의 인스타그램>

코로나19 이후 ‘갓생’에 대한 필요성과 실천이 늘어났다. 갓생의 방점은 ‘훌륭한 삶’이 아닌, ‘하루하루 세운 소소한 규칙들을 자기 주도적으로 성실하게 지켜내는 일상’에 찍혀 있다. 가수 션은 자신의 SNS에 마라톤 인증샷을 공개한다. 그가 2020년부터 꾸준하고 성실하게 마라톤에 참여하고, 또 아침저녁으로 뛰는 이유는 ‘기부’를 위해서다. 독립유공자의 헌신과 희생을 기억하기 위해 후손들에게 집을 지어주려는 것. 또 최근에는 루게릭 환우들을 위해 달렸다. 이 선한 영향력을 시작으로 많은 연예인들이 그와 함께 마라톤에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본 청년들 역시 그 꾸준함 그리고 선한 의도에 도전을 받곤 한다. tvN 예능 <유퀴즈>에서 ‘86세 플랭크맨’으로 소개된 김영달 할아버지는 80세가 넘어가면서부터 건강을 위해 플랭크를 시작했다. 처음엔 10초로 시작했지만 일주일에 1초씩 늘리면서 이제는 플랭크 덕분에 건강을 유지한다고 고백하면서 시청자들에게 큰 귀감이 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요즘 방송가에서는 타인을 낮게 여기며 재미를 추구하는 이들보다,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 최대한 노력하고 배려하는 방송인들이 인기를 끈다. 개그 프로에서부터 교양 프로까지 어디에 나와도, 누구와 있어도 시청자들에게 편안함과 재미를 선사해 주는 개그맨 장도연은 “누구 하나 언짢은 사람 없는, 상처받지 않는 개그를 하고 싶다”라고 자신의 소신을 밝혔었다. 그는 최근, 한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무지로 인해 상처받는 사람이 생겨나지 않도록' 매일 아침 종이신문을 구독해 읽고 있다고 말함으로써, 대중에게 감동을 안겨주었다. 과거에는 '방송계의 어른'이라고, 또 '재미를 위한다고' 함부로 상대방을 까 내리고 무시하는 방식이 잘 통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 그런 태도는 시청자들로 하여금 불편함을 느끼게 한다. 즉 그런 어른들의 모습은 사랑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우리가 바라는 ‘선배’

그렇다면 달라진 ‘어른’의 모습을 추구하는 요즘 세대에게, 기성세대는 과연 좋은 어른이 되어줄 수 있을까? 그들에게 선배가 되어줄 수 있을까? 확실히 과거에 비해, 어른으로 존재한다는 것, 또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신뢰감을 준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시대가 됐다. 진심으로 걱정하며 조언해주려 해도 ‘남의 말’을 잘 듣기를 하나... 조금만 훈계하려 해도 ‘꼰대’라는 말로 역풍을 맞기 일쑤가 아니던가. 그래서 오늘날, 어른이 된다는 것은 단순하고 쉬워진 것 같으면서도 훨씬 어렵고 복잡해졌다. 

책 <트렌드 모니터 2024>에는 20~50대를 대상으로 “어떤 사람이 ‘어른’인가?”에 대해 조사한 결과가 실려있다. 이는 요즘 사람들이 어른의 척도를 ‘경제적 부유(10.7%)’, ‘사회적 성공(15.4%)’, ‘지식(30.1%)’에만 두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보다는 ‘공공의 이익으로 말과 행동을 할 수 있는 사람(65.7%)’, ‘자신의 유능함보단 타인의 장점을 드러내 줄 수 있는 사람(68.9%)’,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하기보다 자신의 경험을 얘기해 줄 수 있는 사람(72.9%)’, ‘자신만 드러내기보다 상황에 필요한 역할을 잘 찾아가는 사람(73.1%)’을 어른의 이상향으로 여겨진다. 이를 통해 우리는 요즘 청년들도 여전히 ‘선배’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청년들은 좋은 어른이 되고 싶어하고, 또 그렇기 때문에 좋은 선배를 만나고 싶어 한다. 오히려 정해진 답은 없는 시대이기 때문에 더더욱 각자의 삶의 방식으로 멋지게 존재해주는 선배 어른의 말을 듣고싶어 한다. "정답은 없지만, 나는 이렇게 걸어왔어", "그러니까 너도 남들과 다르다고 너무 조급해하지 마", "잘 하고 있어"라고 말이다. 

 

우리가 만들어 나갈 ‘교회’

필자 역시, 또래 사역자들로부터 얻는 위로와 공감보다 좋은 선배 사역자를 만났을 때 오는 감동과 도전이 더 크다는 것을 느낀다. 교회에도 ‘신앙의 선배상’ 그리고 ‘존경받는 목회자상’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하나님께 순종하며 목회했더니, 자녀들이 좋은 대학에 가고 교회가 크게 부흥했다"는 식의 간증은 오히려 후배들에게 좌절감만 더할 뿐이다. 사회에서 '성공'과 '안정감'이라는 어른의 척도, 더 나아가 인생의 적령기라는 개념이 희미해진 것처럼, '건강한 교회', '성공한 신앙인'이라는 척도나 교회 부흥이라는 개념 역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젊은 목회자들 혹은 교회 내 청년 신앙인들은, 더 이상 과거에 '우리가 알던 교회'로 만들어나가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몸소 느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와 같은 부흥 방식과 인프라를 추구하기보다는, 새로운 교회의 모습과 다양한 목회 방식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 세대의 이러한 시도는 여전히 교회를 뜨겁게 사랑하기 때문에, 염려하고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과거의 교회 모습'만을 정답이라 말하며, 젊은 목회자들의 노력을 인정해주지 않는 비판의 목소리도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왜 다른 형식의 교회를 생각하느냐", "왜 목회의 성공과 안정감을 비전으로 삼지 않느냐"고 말이다. 

이 세상에는 여전히 좋은 어른이 되고 싶은 청년들, 좋은 교회를 만들어 나가고 싶은 신앙의 후배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 모습에 선한 영향력을 받고 닮아가려 애쓴다. 그렇게 우리 사회는 '새로운 어른상', 그리고 '새로운 교회상'의 문화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이 움직임에 좋은 선배님들이 참여해주고, 고민을 함께 해주고, 격려해줄 수 있을 때 우리는 더 나은 사회와 교회를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하나님의 도우심과 계획 안에서 말이다. 


*각주

1) 니트족은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의 줄임말로, 15~34세 인구 가운데 미혼으로 학교에 다니지 않으면서 가사일도 하지 않는 사람을 뜻한다.  프리터족은 'Free+Arbeit'를 줄인 말로 90년대 초반 일본에서 경제불황으로 인해 직장없이 갖가지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청년층에게 붙여진 신조어다. 



임주은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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