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리뷰 [오트밀]디즈니 플러스 <무빙> 리뷰 - "쓸모 있는 인간성, 쓸모없는 전쟁"

2023-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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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세대에 통한 '온정주의', '가족주의' 


드디어 한국에서도 ‘히어로물’이라 불릴만한 작품이 탄생했다. 2015년 다음웹툰(현 카카오웹툰)에 공개된 동명 원작 웹툰 ‘무빙’을 디즈니 플러스가 드라마로 제작한 것이다. 이로써 국내 OTT 플랫폼 중에서는 비교적 저조한 가입자 수를 보유하고 있던 디즈니 플러스의 이용자수가 70% 이상으로 크게 늘었다. 매주 ‘무요일(무빙의 새 회차가 공개되는 수요일)’을 기다리던 시청자들은, 벌써부터 ‘강풀 유니버스’로 이어지는 다음 시즌이 제작되기를 간절히 염원하고 있다. 

<좌: 웹툰 '무빙' / 우: 디즈니 플러스 드라마 '무빙'>

다양한 초능력을 가진 인물들을 하나의 세계관으로 엮어낸 강풀의 서사는, 대부분 ‘우리 시대 속 착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되어 있다. <무빙>도 마찬가지였다. 초반에 빌런이라 불리던 ‘프랭크(류승범)’나 ‘북한 기력자들’마저도 누군가의 명령 하에 움직일 수밖에 없었던, 그러나 인간성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인물들로 그려냈다. 사실 ‘민용준 차장(문성근)’을 제외하고는 이 작품엔 극악무도한 캐릭터는 없다. 실제로 이러한 특성 때문에, 강풀의 작품 속 인물들은 다소 ‘평평하고 납작하다’는 평가도 뒤따른다. 또한 <무빙>이 담고 있는 특유의 ‘온정주의’나 ‘가족주의’는 요즘 대중문화 콘텐츠가 가진 감성과는 그 결이 다른 편이다. “가족을 위해 무조건적으로 자신을 희생하는” 서사는 이제 웬만해서 대중들에게 잘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무빙>의 이러한 점이 오히려 대중들, 그중에서도 특히 청년 세대에게 완벽히 통했다는 점이다. 


쓸모 있는 능력, 쓸모없는 인간애

모든 대중문화 작품에는 장르라는 게 있다. <무빙>은 그 장르를 10가지 정도로 소개한다. ‘액션, 스릴러, 슈퍼히어로, 첩보, 로맨스, 휴먼, 학원, 초능력, 고어, 시대물’. 물론 이 드라마가 공개되기 전, 대중들은 ‘잡탕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지만, 드라마 공개 후 회차가 거듭될수록 결국 시청자들은 이 모든 장르를 한꺼번에 맛볼 수 있게 됐다. 

게다가 <무빙>은 1980년대부터 2018년까지의 한국 근현대사 배경과 실제 사건들을 모티브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판타지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에게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1987년 ‘칼기 폭파 사건’, 90년 ‘범죄와의 전쟁’, 94년 ‘북한 지도자 김일성 사망’, 96년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03년 ‘청계청 복원 반대 시위’ 등 분단의 역사라는 한국의 특수한 상황과, 소시민으로 살아가면서 겪었을 법한 사건들을 ‘가족’과 ‘인간성’이라는 주제와 버무려 잘 그려냈다. 

총 20부작으로 이루어진 <무빙>은 크게 세 파트로 그 서사가 나뉜다. 1부에 해당하는 1-7화는 2018년 정원고등학교를 배경으로, 국정원 소속이었던 초능력자들의 자녀들이 유전받은 능력을 숨기며 살아가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2부에 해당하는 8-14화는 국정원 블랙요원으로 살았던 부모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초능력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국가의 ‘전쟁 용병’이 되어야만 했던 그들은 철저히 ‘쓸모’에 의해 수집되고 이용당했다. 서로 다른 삶, 다른 능력으로 살아왔던 초능력자들은 국익을 위한다는 명목하에 하나의 목적과 사상으로 지배받아야 했으며, 임무 앞에서는 개인의 자유나 선택, 감정 따위는 잔인하게 거세당해야만 했다. 결국 블랙요원들은 사랑하는 가족의 곁을 지키지도 못하면서, 오로지 남이 주입해 준 이데올로기에 의해 움직여야 한다는 현실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각성’하게 된다. 그들은 더 이상 능력을 사용하지 않고 숨어 살기로 결심한다. 


히어로의 탄생, 각성

그러나 끊이지 않는 남·북간의 전시상황, 그리고 인간을 쓸모로 판단하는 이 시대가 기어코 초능력자들의 자녀를 찾아내고 만다. 한물간 부모세대보다 더 우월한 능력을 가졌을 거라 예상한 국정원은 그 능력을 찾아내고 이용하기 위해 더 악랄하고 교묘한 방법을 사용한다. 바로 아이들을 극한의 상황으로 밀어 넣어 초능력이 발현되도록 각성시키려는 속셈이다. 

하지만 초능력자들이 각성하게 된 계기는 결코 극한의 상황이 아니었다. 오히려 사랑하는 가족·친구·이웃을 지켜야 한다는 인간애가 폭발하는 순간이었다. 지금껏 남한, 북한, 미국 모두가 임무 앞에서 초능력자들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시키기 위해 요원들의 인간성을 거세시키려 해 왔으나, 실은 영웅이 되기 위한 진정한 조건은 ‘사랑’과 ‘공감’의 능력이었다. 반면 전통적 이데올로기로 만들어온 전쟁이야말로 초능력자들로 하여금 그 능력을 포기하게 만드는 원인이었다. 

3부에 해당하는 15-20화에서는 가족을 위해, 사랑하는 이를 위해, 친구와 이웃을 지키기 위해 각성한 히어로들이 모두 정원고등학교에 모인다. 이 전투에서 북한 기력자들은, 그저 남한에서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는 주인공들을 해치려는 ‘빌런’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무빙>은 조금씩 그들도 우리와 다름없는 인간임을 가르쳐준다. 

그들에게도 지키고 싶은 가족들이 있으며, 정을 나눈 친구들이 있기에 인간성을 포기하지 않은 존재들임을 보여준다. 만약 <무빙>이 이러한 서사를 담고 있지 않았다면, 시청자인 우리 역시 전쟁 이데올로기에 갇혀 그들을 ‘적’으로밖에 간주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남한에서는 ‘쓸모’에 대해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이들이 있었다면, 북한에서는 ‘생존’에 대해 분투하는 자들이 있었음을 알게 됐다. “너는 나의 쓸모야”라는 말에 힘을 얻고, “죽지 말고 살자”라는 말에 위로받고 각성하는 영웅들의 모습을 통해서 말이다. 


우리를 각성시켜 줄 이야기

<무빙>은 맥락 없는 무조건적 희생이나, 단순한 온정주의적 신파를 담고 있지 않는다.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우리가 꼭 회복해야만 하는 인간성을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에 녹여 하나씩 하나씩 쌓아가며 보여준다. 그래서 시청자들로 하여금 탄탄한 설득력을 느끼게 해준다. 평소에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는 말씀을 가장 좋아한다는 강풀 작가는 ‘사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인에 대한 공감’이라고 생각하며, ‘착한 사람들이 이기는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고 한다. 그렇기에 그는 메인 초능력자들뿐 아니라, ‘전쟁의 쓸모’가 없어서, 남들보다 지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부적격 판정’을 받았던 인물들까지도 영웅이 될 수 있음을 놓치지 않고 보여준 듯하다.  

우리는 이런 작품을 기다렸다. “왜 우리는 계속해서 전쟁을 해야 하는가?”, “소시민으로서 우리는 어떤 개인 개인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볼 수 있으면서도, 이토록 스케일이 크고 재미있고 설레면서 짠내 나고 감동적인 히어로물을 말이다. 강풀이 말아주는 이 착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잘 소화시키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성을 최대치로 끌어올려보자. 우리가 가진 것 중 가장 쓸모 있는 사랑과 공감의 능력을 말이다.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전히 우리 주변에 서려있는 크고 작은 전쟁들이 끝날 수 있도록 뭐라도 해보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사람의 진짜 능력은 공감 능력이야. 그게 가장 중요한 능력이야. 다른 사람 마음 아프게 하는 게 그게 무슨 영웅이야."


*이미지 출처: 디즈니 플러스 


글. 임주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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