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준호 감독이 돌아왔다. 세계 유수의 영화제, 칸과 아카데미를 석권한 영화 <기생충> 후 5년만이다. 이제 봉준호는 한국을 넘어 헐리우드 자본으로 글로벌 영화 시장을 주도하는 감독이 되었다. 그의 신작 <미키17>은 한국에서 개봉 첫 주만에 관객 100만을 돌파했고, 북미에서도 한국인 감독 최초로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며 놀라운 성과를 냈다. 전작 <기생충>에 비해 아쉽다는 평들이 있는가 하면, 대중적 재미를 잡았다는 의견도 많다. ‘봉준호’라는 이름이 주는 기대감이 워낙 크기에 이런저런 의견들이 오간 듯하다.
영화 <미키17>은 ‘미키 반스’(로버트 패틴슨)의 17번째 복제인간인 미키17과, 아직 죽지도 않았는데 복제된 미키18이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종의 우주 소동극이다. 영화는 2054년의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시대적 배경으로 삼는다. 기후재앙으로 인해 지구는 인간이 정상적으로 거주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고, 사람들은 새 행성을 개척해 지구를 떠나려고 한다. 정치인 ‘마샬’(마크 러팔로)은 얼음행성 니폴하임 개척단을 모집하고, 거액의 빚에 허덕이며 삶의 출구를 찾던 주인공 미키 반스는 ‘익스펜더블’에 지원해 니폴하임 개척단의 일원으로 참여하게 된다. 익스펜더블이란 소모품이란 의미로, 각종 위험한 일에 소모품처럼 사용되다가 죽는 직업이다. 이후 기억을 유지한 채 다시 ‘프린트’되어 생명을 이어가는 복제인간이기도 하다. 미키라는 이름 뒤의 숫자는 그가 몇 번째 복제인간인지를 가리킨다.

미키 17과 미키 18.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제공
죽음으로 사람을 살리는 복제인간, 소모품인가 영웅인가? 현대 사회의 착취 구조를 비추다
여러 번 죽었다 매번 새로운 몸을 입고 깨어나는 복제인간 미키. 그는 반복해서 비슷한 질문을 받는다. “죽는 건 어떤 기분이야?” 하지만 미키들은 제대로 죽음을 경험해본 적이 없다. 기억을 그대로 가진 채 새로운 몸으로 다시 프린트 되기 때문이다. 반복적으로 맞이하는 죽음 앞에서 미키들은 늘 고통스럽고 끔찍한 감정을 느낀다. 그에게 죽지 않는 삶은 축복일까?
<미키17>은 죽음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넘어, 현대 사회의 착취 문제에 천착한다. 우아하고 교양 있어 보이는 마샬 부부는 ‘순수 혈통’을 내세우며 자신을 특권층으로 여긴다. 반면, 최하층 계급인 미키17는 죽어도 상관 없는 소모품일 뿐이다. 마샬 부부와 연구진, 개척단의 많은 사람들은 복제인간 미키를 대가 없이 언제나 재생 가능한 자원이며, 무슨 짓을 해도 괜찮은 존재로 여긴다. 복제 기술은 죽음을 극복하는 혁신이 아니라 착취와 폭력을 정당화하는 면죄부가 된다.
‘복제인간’ 이슈가 제기하는 생명경시의 문제는 비단 미래의 일만이 아니다. 미키의 반복되는 죽음과 고통은 오늘날 현실에서 소외 받는 이들의 삶과 겹쳐진다. 우리가 혜택을 누리는 백신과 치료약, 인류 문명의 눈부신 발전과 과학기술의 편리함 뒤에는 누군가의 고통과 희생이 있다. 하지만 이들의 귀중한 헌신은 쉽게 잊히거나 보호받지 못한 채 위험에 그대로 노출된다. 오늘날 복제되지 않은 수많은 미키들의 현실이다.
미키가 반복되는 고통 속에서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나샤’(나오미 아키에)의 사랑 때문이었다. 그녀는 미키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끝까지 함께했다. 나샤는 모든 미키들을 깊이 이해하며 때로는 이성을 잃을 정도로 그를 사랑하고 지지한다. 그녀는 미키가 몇 번이나 다시 프린트되어도 상관없이, 함께한 시간과 기억을 공유하는 모든 미키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한다. 어쩌면 미키는 나샤 덕분에 그 험한 일들을 견딜 수 있었는지 모른다. 나샤의 사랑은 우리에게 인간 존재의 존엄성을 되새기고, 임마누엘이신 주님처럼 함께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보여준다.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제공
순수란 무엇이며,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마샬 부부의 목표는 니플하임 행성에서 새롭게 인류의 문명을 시작하고, ‘순혈’의 우월한 종족의 씨를 뿌려 우주에 창궐하는 것이었다. 순혈주의자 마샬 부부가 추구하는 “순수한 하얀 행성”에 미키 같은 존재는 도구이자 하찮은 것일 뿐이었다. 그들은 미키를 음식물 찌꺼기나 시체 등을 혼합해 재활용한 몸을 입은 불결하고 미천한 존재, 죽어도 죽지 않고 살아 있어도 늘 죽음에 내몰리는 호모 사케르로 바라본다.
마샬 부부가 ‘크리퍼’라고 이름 붙인 행성의 원주민들에게 식민지적 적대감을 드러내는 것과 달리, 기이하게 생긴 크리퍼들은 위협적이기는커녕 죽을뻔한 미키17을 살려준다. 복제인간 미키17은 크리퍼와 평화적인 소통과 공존을 시도한다. 다른 이들처럼 죽음 앞에서 두려워하는 한 인간이었던 미키18은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자신의 몸을 던져 독재자의 폭주를 막아낸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누구를 가장 순수한 존재, 인간다운 존재라 볼 수 있는가? 질문을 던진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행 10:15)며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 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때로 서로를 정죄하며 편을 가르고 배척하곤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천 년 전에 이 땅에 화평으로 오셨다.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며 하나님과 하나 되게 하셨다(엡 2:14~18). 구약의 율법을 폐하시며 죄인인 우리를 의롭다고 하셨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와 다른 입장에서 갈등 중에 있는 바로 그 사람을 위해 죽으셨음을 기억하고 그리스도를 섬기듯 그를 사랑하고 화합할 것을 요청한다. 유대인들이 본질이라 여기던 율법은 실상 비본질적인 것이며, 자신의 옳음으로 타인을 정죄하지 않은 자가 복이 있다는 것이다. 만물을 하나님께서 선하게 지으셨으니 그에 대한 믿음을 따라,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이야말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이다(롬 14:13~23).
미래가 현재 우리들에게 주는 메시지
봉준호 감독과 출연진들은 <미키17>의 등장인물이 특정 정치인들을 연상하게 한다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면서, 이 영화의 대본은 2021년에 완성되고 2022년에 모든 촬영이 끝났다고 선을 긋는다. 각 나라마다 자기들의 정치 경험을 투영해 마샬을 바라본다는 점이 흥미롭다면서 말이다.
결국, <미키17>은 우리 시대가 가장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사회적 문제들을 비추는 거울과 같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묻는다.
‘과학기술의 발전 속에서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순수하다는 것은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은 결국 우리가 어떤 가치 위에 서 있으며, 삶의 목적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돌아보게 만든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나라의 가치이다.
<미키17>를 통해 생각하는 신앙인의 책임
신학자 리처드 니버는 신앙인이 무엇을 하기에 앞서 먼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묻고 해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키17>이 던지는 질문 앞에서, 우리는 현실을 해석하고 신앙인의 역할을 고민하며 응답해야 한다.
죽지 않는 삶, 영생에 대한 인간의 끝없는 욕망은 결국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도전이다. 우리는 과학기술의 발전 속에서 신앙인의 역할과 책임을 다시 고민해야 한다. 영화 <미키17>은 복제인간 등으로 구현되는 과학기술의 발전 속에서 신앙인들이 하나님의 창조섭리의 관점을 포함해 여러 지점에서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깨어 있어야 함을 일깨워준다.
자신의 죽음으로 인류를 구하는 복제인간, 인간 아닌 인간 미키를 통해 이천 년 전에 죽음으로 모든 사람에게 삶을 주신 참 인간이자 참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고전 15:22)를 떠올린다면 과한 상상일까?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마 25:40)고 말씀하시고, 디트리히 본회퍼는 거저 받은 은혜를 값싼 것으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고 했는데, 우리는 이 땅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미천하게 대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값싼 것으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돌아보아야 한다.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를 통해, 어느 누구도 배제하지 않으며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착취와 폭력으로부터 자유롭고 평화롭게 공존하는 공동체를 만드는 일이야말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함께 풀어야 할 숙제임을 알게 된다. 우리는 미래를 향한 윤리적이고 책임 있는 태도를 형성해야 하며, 모두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주변의 고통과 희생을 잊지 않고 연대하는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다. <미키17>은 다가올 미래를 상상하면서 현재 우리의 신앙적 책임을 깊이 돌아보게 만드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김지혜 책임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
봉준호 감독이 돌아왔다. 세계 유수의 영화제, 칸과 아카데미를 석권한 영화 <기생충> 후 5년만이다. 이제 봉준호는 한국을 넘어 헐리우드 자본으로 글로벌 영화 시장을 주도하는 감독이 되었다. 그의 신작 <미키17>은 한국에서 개봉 첫 주만에 관객 100만을 돌파했고, 북미에서도 한국인 감독 최초로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며 놀라운 성과를 냈다. 전작 <기생충>에 비해 아쉽다는 평들이 있는가 하면, 대중적 재미를 잡았다는 의견도 많다. ‘봉준호’라는 이름이 주는 기대감이 워낙 크기에 이런저런 의견들이 오간 듯하다.
영화 <미키17>은 ‘미키 반스’(로버트 패틴슨)의 17번째 복제인간인 미키17과, 아직 죽지도 않았는데 복제된 미키18이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종의 우주 소동극이다. 영화는 2054년의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시대적 배경으로 삼는다. 기후재앙으로 인해 지구는 인간이 정상적으로 거주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고, 사람들은 새 행성을 개척해 지구를 떠나려고 한다. 정치인 ‘마샬’(마크 러팔로)은 얼음행성 니폴하임 개척단을 모집하고, 거액의 빚에 허덕이며 삶의 출구를 찾던 주인공 미키 반스는 ‘익스펜더블’에 지원해 니폴하임 개척단의 일원으로 참여하게 된다. 익스펜더블이란 소모품이란 의미로, 각종 위험한 일에 소모품처럼 사용되다가 죽는 직업이다. 이후 기억을 유지한 채 다시 ‘프린트’되어 생명을 이어가는 복제인간이기도 하다. 미키라는 이름 뒤의 숫자는 그가 몇 번째 복제인간인지를 가리킨다.
미키 17과 미키 18.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제공
죽음으로 사람을 살리는 복제인간, 소모품인가 영웅인가? 현대 사회의 착취 구조를 비추다
여러 번 죽었다 매번 새로운 몸을 입고 깨어나는 복제인간 미키. 그는 반복해서 비슷한 질문을 받는다. “죽는 건 어떤 기분이야?” 하지만 미키들은 제대로 죽음을 경험해본 적이 없다. 기억을 그대로 가진 채 새로운 몸으로 다시 프린트 되기 때문이다. 반복적으로 맞이하는 죽음 앞에서 미키들은 늘 고통스럽고 끔찍한 감정을 느낀다. 그에게 죽지 않는 삶은 축복일까?
<미키17>은 죽음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넘어, 현대 사회의 착취 문제에 천착한다. 우아하고 교양 있어 보이는 마샬 부부는 ‘순수 혈통’을 내세우며 자신을 특권층으로 여긴다. 반면, 최하층 계급인 미키17는 죽어도 상관 없는 소모품일 뿐이다. 마샬 부부와 연구진, 개척단의 많은 사람들은 복제인간 미키를 대가 없이 언제나 재생 가능한 자원이며, 무슨 짓을 해도 괜찮은 존재로 여긴다. 복제 기술은 죽음을 극복하는 혁신이 아니라 착취와 폭력을 정당화하는 면죄부가 된다.
‘복제인간’ 이슈가 제기하는 생명경시의 문제는 비단 미래의 일만이 아니다. 미키의 반복되는 죽음과 고통은 오늘날 현실에서 소외 받는 이들의 삶과 겹쳐진다. 우리가 혜택을 누리는 백신과 치료약, 인류 문명의 눈부신 발전과 과학기술의 편리함 뒤에는 누군가의 고통과 희생이 있다. 하지만 이들의 귀중한 헌신은 쉽게 잊히거나 보호받지 못한 채 위험에 그대로 노출된다. 오늘날 복제되지 않은 수많은 미키들의 현실이다.
미키가 반복되는 고통 속에서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나샤’(나오미 아키에)의 사랑 때문이었다. 그녀는 미키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끝까지 함께했다. 나샤는 모든 미키들을 깊이 이해하며 때로는 이성을 잃을 정도로 그를 사랑하고 지지한다. 그녀는 미키가 몇 번이나 다시 프린트되어도 상관없이, 함께한 시간과 기억을 공유하는 모든 미키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한다. 어쩌면 미키는 나샤 덕분에 그 험한 일들을 견딜 수 있었는지 모른다. 나샤의 사랑은 우리에게 인간 존재의 존엄성을 되새기고, 임마누엘이신 주님처럼 함께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보여준다.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제공
순수란 무엇이며,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마샬 부부의 목표는 니플하임 행성에서 새롭게 인류의 문명을 시작하고, ‘순혈’의 우월한 종족의 씨를 뿌려 우주에 창궐하는 것이었다. 순혈주의자 마샬 부부가 추구하는 “순수한 하얀 행성”에 미키 같은 존재는 도구이자 하찮은 것일 뿐이었다. 그들은 미키를 음식물 찌꺼기나 시체 등을 혼합해 재활용한 몸을 입은 불결하고 미천한 존재, 죽어도 죽지 않고 살아 있어도 늘 죽음에 내몰리는 호모 사케르로 바라본다.
마샬 부부가 ‘크리퍼’라고 이름 붙인 행성의 원주민들에게 식민지적 적대감을 드러내는 것과 달리, 기이하게 생긴 크리퍼들은 위협적이기는커녕 죽을뻔한 미키17을 살려준다. 복제인간 미키17은 크리퍼와 평화적인 소통과 공존을 시도한다. 다른 이들처럼 죽음 앞에서 두려워하는 한 인간이었던 미키18은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자신의 몸을 던져 독재자의 폭주를 막아낸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누구를 가장 순수한 존재, 인간다운 존재라 볼 수 있는가? 질문을 던진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행 10:15)며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 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때로 서로를 정죄하며 편을 가르고 배척하곤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천 년 전에 이 땅에 화평으로 오셨다.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며 하나님과 하나 되게 하셨다(엡 2:14~18). 구약의 율법을 폐하시며 죄인인 우리를 의롭다고 하셨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와 다른 입장에서 갈등 중에 있는 바로 그 사람을 위해 죽으셨음을 기억하고 그리스도를 섬기듯 그를 사랑하고 화합할 것을 요청한다. 유대인들이 본질이라 여기던 율법은 실상 비본질적인 것이며, 자신의 옳음으로 타인을 정죄하지 않은 자가 복이 있다는 것이다. 만물을 하나님께서 선하게 지으셨으니 그에 대한 믿음을 따라,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이야말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이다(롬 14:13~23).
미래가 현재 우리들에게 주는 메시지
봉준호 감독과 출연진들은 <미키17>의 등장인물이 특정 정치인들을 연상하게 한다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면서, 이 영화의 대본은 2021년에 완성되고 2022년에 모든 촬영이 끝났다고 선을 긋는다. 각 나라마다 자기들의 정치 경험을 투영해 마샬을 바라본다는 점이 흥미롭다면서 말이다.
결국, <미키17>은 우리 시대가 가장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사회적 문제들을 비추는 거울과 같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묻는다.
‘과학기술의 발전 속에서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순수하다는 것은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은 결국 우리가 어떤 가치 위에 서 있으며, 삶의 목적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돌아보게 만든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나라의 가치이다.
<미키17>를 통해 생각하는 신앙인의 책임
신학자 리처드 니버는 신앙인이 무엇을 하기에 앞서 먼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묻고 해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키17>이 던지는 질문 앞에서, 우리는 현실을 해석하고 신앙인의 역할을 고민하며 응답해야 한다.
죽지 않는 삶, 영생에 대한 인간의 끝없는 욕망은 결국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도전이다. 우리는 과학기술의 발전 속에서 신앙인의 역할과 책임을 다시 고민해야 한다. 영화 <미키17>은 복제인간 등으로 구현되는 과학기술의 발전 속에서 신앙인들이 하나님의 창조섭리의 관점을 포함해 여러 지점에서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깨어 있어야 함을 일깨워준다.
자신의 죽음으로 인류를 구하는 복제인간, 인간 아닌 인간 미키를 통해 이천 년 전에 죽음으로 모든 사람에게 삶을 주신 참 인간이자 참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고전 15:22)를 떠올린다면 과한 상상일까?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마 25:40)고 말씀하시고, 디트리히 본회퍼는 거저 받은 은혜를 값싼 것으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고 했는데, 우리는 이 땅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미천하게 대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값싼 것으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돌아보아야 한다.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를 통해, 어느 누구도 배제하지 않으며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착취와 폭력으로부터 자유롭고 평화롭게 공존하는 공동체를 만드는 일이야말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함께 풀어야 할 숙제임을 알게 된다. 우리는 미래를 향한 윤리적이고 책임 있는 태도를 형성해야 하며, 모두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주변의 고통과 희생을 잊지 않고 연대하는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다. <미키17>은 다가올 미래를 상상하면서 현재 우리의 신앙적 책임을 깊이 돌아보게 만드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김지혜 책임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