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분석 [요즘뜨는것들]다시 뜨는 캡슐뽑기 (가챠샵 인기 이유)

2025-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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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초등학교 앞 문방구에는 캡슐뽑기(장난감 자동판매) 기계가 꼭 한 두 개씩 자리 잡고 있었다. 적게는 100원에서 많게는 500원까지, 동전을 넣고 돌리면 ‘찰캉찰캉’ 소리와 함께 캡슐이 나왔고 그 안에는 수류탄이나 폭죽, 방구탄, 끈끈이 등 저품질의 장난감이 들어있었다. 딱히 좋은 장난감도 아닌데 아이들은 자신이 원하던 게 나올까 하는 ‘혹시나’라는 기대감을 안고 동전을 넣고 돌려댔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며 캡슐뽑기 기계를 찾는 아이들이 줄어들었고, 오래된 슈퍼마켓 한 구석에 먼지에 뒤덮인 채 방치되었다. 그랬던 캡슐뽑기가 최근 ‘가챠샵’이라는 이름으로 청년 세대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그것도 사람들이 가장 몰리는 요즘 핫플(성수동, 홍대, 강남 등) 한 중앙에 대형 가게들로 부활하기 시작했다.

가챠란 ‘찰캉찰캉’의 소리를 뜻하는 일본어로, 동전을 넣고 기계를 돌릴 때 나는 철 소리를 빗대어 붙여진 이름이다. 최근 캡슐뽑기가 하나의 놀이 문화로 여겨지게 된 것은 일본에서 다시 유행했기 때문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들을 피규어로 만들어 랜덤 뽑기 방식으로 뽑을 수 있는데, 여기에 일명 ‘덕후’들이 몰리게 된 것이다. 이 가챠샵의 인기는 한국에까지 퍼져 ‘레어템(뽑기 어려운 희귀한 아이템)’을 구하러 일본으로 ‘가챠 순례 여행’까지 떠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에는 K-POP 아이돌 굿즈까지 가챠샵에서 뽑을 수 있게 되어 팬덤 문화를 자극하는 놀이가 되었다. 한때는 코인노래방과 인형 뽑기 전문가게, 셀프 포토부스(인생네컷)가 가득했던 핫플 거리가 요즘은 가챠샵으로 채워지고 있다. 어린아이들이나 좋아할 법한 캡슐뽑기에 왜 이토록 청년들이 열광하게 된 것일까? 

첫 번째 이유로는, ‘손맛’을 들 수 있다. 과거에나 향유했던 것들이 다시금 트렌드가 되어 떠오르게 된 것은 가챠샵뿐만이 아니다. 이미 몇 해 전부터 청년들 사이에서는 ‘필름카메라’, ‘바이닐 LP판’, ‘셀프 포토부스’, ‘포켓몬빵 스티커 모으기’ 등이 재유행을 하고 있었다. 초고도화된 디지털 시대에서 오히려 아날로그 감성을 추구미로 여기는 청년들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물성을 느낄 수 있는 것들을 더욱 생경하면서도 멋스러운 것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직접 손으로 작동시키며 시각과 청각, 촉각 등을 자극하는 손맛을 느끼게 해주는 것에 더 큰 만족감을 느낀다. 캡슐뽑기 기계도 마찬가지다. 손으로 동전을 넣어 돌릴 때 나는 찰캉찰캉 소리, 덜컹하고 캡슐이 나오면 내용물을 열어 확인하고 소장할 수 있는 이 행위는 물성의 매력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지난 글 참조 '아날로그 감성에 빠진 MZ세대')


다음 이유로는, 지금껏 음지에만 있던, 이른바 ‘덕후’ 문화가 점차 양지로 나오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얼마 전 아이돌 팬덤 문화 중 하나인 ‘응원봉’을 가지고 2-30대 여성들이 시위문화로 재생산하여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모습을 목도했다. 가챠샵 평소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귀여운 캐릭터를 좋아하던 2030 세대 여성들의 소비를 중심으로 퍼져나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가챠샵 이용자의 70%가 2030 세대 여성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취향을 담은 ‘덕질 문화’를 음지에만 두지 않고 대중문화로 끌고 나와 재생산하고 이끌어가는 힘이 있다. 캐릭터 피규어나 아이돌 굿즈뿐만이 아니다. 캡슐뽑기를 통해 인테리어 소품을 모으는 마니아층도 늘어나고 있다. 일본의 가구 브랜드인 ‘가리모쿠’나 ‘아르텍’의 미니어처 가구를 뽑기 위해 찾아가는 청년들도 꽤 많다고 한다.

가챠샵 인기의 마지막 이유는 ‘소소한 것에서 오는 큰 기쁨’ 때문이다. 최근 청년들은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서 경험할 수 있는 작은 성취감을 추구하는 특성을 띤다. ‘인형 뽑기’의 경우는 꽤 많은 돈을 들여야만 성공할 확률이 있는 놀이였지만, 캡슐토이는 비교적 부담가지 않는 가격에서 무조건적인 보상으로 주어진다는 이점이 있다. ‘아이돌 포토카드’를 다 모으기 위해 상품을 구매한다던가, ‘포켓몬 스티커’를 뽑기 위해 빵을 먹는다던가 했던 것처럼 캡슐뽑기에도 레어템에 대한 기대감이 들어있다. 반대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제품이 나와 실망하는 경우도 꽤 많다. 하지만 청년들은 이런 기대와 환호, 실망까지도 하나의 놀이과정으로 여기고 즐긴다. 이처럼 캡슐뽑기 놀이는 30대에겐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만드는 추억으로, 20대에겐 트렌디한 놀이 문화로,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는 좋아하는 캐릭터 혹은 아이돌 상품을 모을 수 있는 기회로 여겨지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얼마 전 동네를 걷는데 재미있는 광경을 목격했다. 집 앞 오래된 슈퍼마켓에 먼지 쌓인 캡슐뽑기 기계가 갑자기 전면으로 나오게 된 것이 아닌가. 동네 초등학생들도 갑자기 캡슐뽑기 기계를 찾기 시작했을 것이고, 주인 분도 그 인기를 눈치채셨던 것이다. 요즘 가챠샵에서 인기 있는 캐릭터 피규어 뽑기는 아니고, 과거 저품질의 장난감이 들어있는 기계였지만 이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다. 마침 나도 거리에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는 가챠샵의 인기가 얼만큼인지 궁금했던 터라, 이번 성경학교 때 캡슐뽑기 기계를 구입해 사용해 보았다. 예산이 부족해 캡슐 뽑기 안에는 저품질의 장난감이 대부분이었기에 아이들이 실망할 것이라고 염려했었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아이들은 물론 청·장년 교사들까지도 뽑기 기계 앞에서 즐거워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손맛의 매력을 느끼고 싶어 하며, 작고 소소한 놀이와 성취감에서 큰 기쁨을 얻기도 한다는 것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요즘 청년들이 놀이로 발전시키는 문화들을 살펴보면 이해 안 되는 게 투성이긴 하다.
“도대체 왜 그게 유행이라는 거야?”

혹은 너무나도 빠르게 변해서 알아차리기 어려울 때도 있다.
“유행이 또 바뀌었어? 지난번엔 인생네컷이라며..”

 

하지만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청년세대가 갖는 생각과 특성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어떤 큰 대의와 성공, 고품질의 보상이 아니라 하더라도 일상의 작은 것들로부터 기쁨을 느낄 줄 아는 것 같다. 자신의 소소한 취향이 반영된 것들을 놀이로 재생산해갈 줄 안다. 기술의 발전에만 휩쓸려가기보다 예스러움에서 매력을 느끼고 개성과 멋스러움을 추구한다. 불안의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다양한 문화를 만들며, 그 불안을 건강하게 해소해 나가는 모습을 보이는 듯하다. 교회 안에서도 청년세대가 향유하는 대중문화에 대해 연구하고, 이를 함께 즐길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보면 어떨까? 더 나아가 소통의 창구를 열어, 요즘 그들의 취향을 반영할 수 있는 놀이들을 함께 찾아보고, 재생산해나갈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글. 임주은 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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