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의 문화 읽기"착한 이들은 말없이 죽는다" - 영화 <다음 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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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앳된 고등학교 3학년, 소희가 어느 날 저수지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 얼마 전에는 일하던 콜센터에서 실적 1위를 달성했다며 자랑까지 했던 터였다. “이제 나 사무직 여직원이다”라며 장난스레 웃던 소희, 식당에서 자기 친구를 험담하는 성인 남성에게 “한 번 쳐보라”며 대거리하던 소희가 이제는 차가운 시신이 되어 누워있다.

경찰의 탐문이 시작되자 주변 사람들은 말했다. 몰랐다고. 진작 알았으면 좋았겠다고. 만나서 얘기를 나눌 때도 애가 참 말이 없었다고. 걔가 정말 그럴 애가 아니었다고 말이다. 소희가 근무했던 콜센터의 본사 직원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묻는다. “그렇게 힘들었다면 일을 그만두면 되는 거 아닌가요?” 한 아이의 죽음을 둘러싼 어른들의 무책임한 반응 앞에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말 소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것일까? 이제 갓 시작된 삶을 서둘러 마치기로 한 그 결정을 누군가 미리 알고 막을 수는 없었던 것일까?

영화에서 소희의 말을 ‘들은’ 유일한 사람은 형사 유진뿐이다. 유진도 처음에는 소희의 죽음을 평범한 변사 사건으로 치부하고 형식적으로 조사에 임했다. 하지만 이내 이 죽음 뒤에 가려져 있던 뿌리 깊은 부조리와 무책임, 그리고 폭력을 발견하게 된다. 이 거대한 ‘악’은 마치 잡초와 같다. 땅 위에 드러난 부분은 소박하지만, 막상 파보면 가느다란 뿌리가 얽히고설킨 채로 땅속을 온통 뒤덮고 있어서 땅 전체를 들어내지 않고는 도저히 뽑아낼 수 없는 잡초 말이다. 유진은 소희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찾아가서 이 아이의 죽음에 책임을 지라고 항의하지만, 그들은 “내가 무슨 힘이 있습니까?”라고 반문할 뿐이다. 영화는 교육부와 노동부, 학교와 기업, 집단과 개인을 촘촘히 엮어 사로잡고 있는 거대한 악의 실체를 담담히 고발한다.

영화는 학교, 기업, 심지어 공공기관조차도 서로 간의 경쟁과 그 경쟁에서 비롯된 보상 또는 처벌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현실을 조명한다. 각각의 실적은 수치화되어 도표와 그래프로 표현되고, 인센티브라는 구체적인 결과로 주어진다. 이 과정에서 숫자로 표현될 수 없는 사람의 마음과 존엄성, 직장 동료들과의 관계, 일터에서 겪게 되는 크고 작은 경험 등은 의미가 없어진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 팀장의 죽음이나 그 죽음에 동요하는 직원들의 마음은 오히려 실적을 깎아 먹는 방해요소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진다. 여기에는 더 이상 교육도, 노동도, 사람도 없다. 남는 것은 오직 인센티브 뿐이다. 그런데 심지어 그마저도 속이고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다. 소희는 분노하며 항의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돈을 밝힌다”는 모욕이었다.

냉정하기 짝이 없는 악은, 다른 한편 친절한 얼굴을 내세워 다가온다. “우리 팀의 실적이 깎이면 다른 팀에 피해를 준다”며 “다른 동료들을 생각하라”라고 부드럽게 타이른다. 언뜻 들으면 다른 이들을 배려하는 것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상은 약자들이 서로를 탓하고 서로에게 죄책감을 느끼도록 만드는 교묘한 말장난일 뿐이다. 기댈 곳이라고는 서로밖에 없는 이들이 이제 서로 견제하고 원망하는 사이가 된다. 이들은 진실에 침묵하겠다는 각서에 서명하고, 다시 자리로 돌아가 묵묵히 주어진 일을 감당하는 수밖에 없다. 애초에 팀장이 죽음을 선택한 것도 어린 팀원들에게 ‘못할 짓’을 했다는 미안함과 죄책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위하는 그 마음이 또 약점이 되어 다시 그 못할 짓을 하는 자리로 떠밀린다.

착한 이들은 이렇게 말없이 죽는다. 아니, 사실 그들은 이미 살아 있을 때 끊임없이 말해왔다. 회사에 투서를 내고, 화내고, 항의하고, 심지어 주먹까지 휘둘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그들의 말을 듣지 못했다. 고통받는 이들의 ‘말’은 언어가 되지 못하고 튕겨져 나간다. 고통을 호소하는 목소리는 “사회생활이 다 그렇지”, “조금만 버티면 돼” 같은 무심한 말들에 가로막혀 바닥에 떨어져 나뒹군다. 고통을 견디지 못한 소희가 비명을 지르듯 손목을 긋지만, 부모조차도 그 마지막 호소를 외면한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찾아간 담임 선생님은 “너를 믿는다”는 말로 가까스로 끌어올린 취업률을 떨어뜨리지 말라고 종용한다.

영화 <다음 소희>는 2017년 실제로 콜센터 해지방어팀에서 현장실습을 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 고등학생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영화 속에서 본사와 하청업체가 사과는커녕 도리어 자기가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장면, 그리고 교육부와 노동부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장면 역시 실제로 있었던 일들에 기초하고 있다. 더 서글픈 사실은 소희처럼 현장실습을 나갔다가 숨지거나 다친 학생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점이다.


같은 해 제주 서귀포산업과학고등학교 3학년이던 고 이민호 군은 한 음료제조업체에서 현장실습 도중 프레스기에 몸이 눌리는 사고를 당하고 끝내 숨졌다. 해당 업체에는 안전사고를 대비하기 위한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고, 현장실습생을 지도하기 위한 담당자도 배치되어 있지 않았다.(관련기사) 2021년 10월에는 전남 여수의 한 요트업체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특성화고 학생 고 홍정운 군이 사망했다. 해당 요트업체는 잠수자격증도 없는 홍 군에게 요트 바닥에 붙은 따개비 제거 작업을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업무를 지시한 요트업체 사장은 잠수작업에 필요한 안전교육도 시행하지 않았고, 2인1조 잠수 원칙도 지키지 않았으며, 홍 군의 체중에 맞지도 않는 잠수장비를 지급했다. 무엇보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잠수작업은 미성년자가 할 수 없도록 금지된 직종이다.(관련기사) 2022년 6월 경기도 고양시의 한 농장에서는 현장실습생으로 파견된 한농대 2학년생 한 명이 상토혼합기(흙을 부수어 비료와 섞는 기계) 안에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를 계기로 해당 대학의 현장실습생들이 졸업을 저당잡힌 채 과로와 저임금 노동에 시달려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관련기사) 이처럼 대외적으로 알려진 사건들 외에도, 학생들은 교육받으러 나간 현장에서 온갖 사고를 당하고 있다. 지게차에 끼어 다리가 부러지고, 컨베이어 벨트에 몸이 끼이고, 프레스에 손가락이 으스러지는 일터에 학생들이 무방비하게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관련기사)

문제는 이런 사고들이 반복해서 일어나는데도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2017년 콜센터 현장실습생의 자살 이후 교육부를 중심으로 현장실습제도의 보완 및 개선을 위한 방안이 쏟아져 나왔으나 현장실습생들의 사망을 막지는 못했다. 심지어 2021년에는 현장교사와 실습생을 매칭시키기 위한 사업비가 감액되는 등, 과연 학생들이 안전하게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제대로 조성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관련기사) 게다가 현장실습생 안전사고의 책임자들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사례가 많다는 사실도 우리를 낙심시킨다. 혼자서라도 진실을 밝히고 소희의 죽음에 책임을 묻고 싶었던 유진이 그저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영화가 끝맺는 이유다.


이런 영화의 결말은 일견 무력해 보인다. 유진은 거대한 악을 일망타진하는 영웅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그저 어른으로서 아이들을 지켜야 할 책임을 다하고자 분투하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유진에게 소희는 그저 스쳐지나가는 한 사람, 하나의 케이스에 불과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이제껏 들려지지 않았던 신음에 귀 기울이고, 드러나지 못했던 아픔을 발견하고자 했다. 이 세상에 잠시라도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순간이 있다면 그것은 언제일까. 평범한 이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책임을 다하고, 자신의 행동으로 영향받게 될 작은 이들을 한 번 더 생각하며, 차마 악 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이들의 아픔에 반응하고 응답하는 바로 그 순간이 아닐까. 유진은 또 다른 소희인 태준에게 이렇게 말한다. “또 욱하게 되면 누구한테라도 말해. 나한테라도. 그래도 괜찮아. 경찰한테 말해도 돼.” 영화는 이 장면을 통해 누구라도 이 아이들의 말을 들어준다면, 이 아이들을 대신해서 화내주는 어른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현실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겠냐고 묻는다. 답답한 현실을 해소해줄 ‘사이다’를 기대하기보다는, 우리 모두가 속죄하는 마음으로 ‘다음소희’를 지켜줘야 한다고 말이다.



글. 박나래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과 기독교와 문화 석사 졸업 후, 동 대학원 박사 과정 중에 있다.
인간기술공생네트워크(HTSN) 간사로 일하고 있으며,
어떻게 하면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배운 걸 남 주며 살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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