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지 않는 아이들, 저하되는 문해력
최근 한국교원단체 총연합회가 전국 초중고 교사를 대상으로 ‘학생 문해력 실태 교원 인식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교사의 90% 이상이 학생들의 문해력이 과거에 비해 심각하게 떨어졌다고 응답했다. 청소년들의 문해력이 부족해져 당황한 사례들을 보면, 주로 한자가 섞인 단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데 있었다. 교사들이 답한 실제 사례로,
“왕복이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부자리를 별자리로 생각하고 있더라”, “중학생들이 ‘수도’라는 말을 잘 모르더라”, “고3 학생이 풍력이 무엇이냐 물어보더라”, “중식을 보고 오늘 점심에 자장면이 나오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등이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수업을 진행할 때 ‘개념’이 아니라 단어의 뜻을 하나하나 가르치며 진도를 나가야 해 힘들다고 토로하는 교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시대 심각한 사회문제로 꼽히고 있는 다음세대 문해력 저하의 원인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교사들은 ‘스마트폰, 게임 등 디지털 매체에 대한 과도한 사용(36.5%)’을 1위로, ‘부족한 독서량(29.2%)’, ‘어휘력 부족(17.1%)’을 각각 2위, 3위로 꼽았다. 요즘 시대는 뉴미디어의 급속한 발달로 인해, 자신이 원하는 시공간에서 원하는 내용의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볼 수 있게 됐다. 거기에다 호흡이 긴 영상물들 보다는 ‘숏폼’처럼 짧고 강렬한 콘텐츠를 더 찾는 추세다. 이러한 미디어 시청행태는 다음세대로 하여금 글을 접하거나 혹은 이해를 위해 시간을 들이려는 습관을 분명 방해하고 있다.
그런데 이토록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른 문해력 저하, 다음세대가 미디어 시청행태를 바꾸면 해결될 일일까? 사실 여기는 훨씬 더 근원적인 문제가 숨겨져 있다. 뉴미디어가 발달하기도 훨씬 전, 이미 대한민국 공교육에서는 문해력에 초점을 둔 인문학적 교육이 사라지고 있었다. 학생들로 하여금 대학 진학만을 위한 수능제일주의, 높은 내신등급만을 위한 시험 준비에만 몰두하게 만들다 보니, 자연스럽게 독서활동을 불필요하게 느끼게 만든 것이다. 사회 분위기 전체가 이렇게 굳어져버렸는데, 교사나 학부모 혹은 학생 누구 하나가 먼저 나서서 바꾸려 한다고 금세 변화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힙한 취미가 된 독서, ‘텍스트힙’
(이미지 출처: 문화체육관광부)
모두가 알다시피 최근 몇 년간 국내 출판산업은 지속적으로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3 국민독서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2년 9월부터 2023년 8월까지 성인 가운데 일반 도서를 단 한 권이라도 읽거나 들은 사람의 비율인 종합독서율이 43%에 그쳤었다. 모두가 종이책을 찾지 않아 출판사가 문을 닫기도 했고, 그렇다고 전자책(e-book)을 찾는 사람이 더 많아진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읽고 쓰는 것’은 비주류의 취미생활이 돼버렸다.
그런데 올해 6월에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에 자그마치 15만 명이라는 사상 최대 인파가 몰렸다. 심지어 참여자 중 대다수가 2030 젊은 세대로, 전체관람객의 73%를 차지했다. 온라인 서점인 예스24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집계한 결과, 청소년 도서 구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46.3%나 증가했다고 한다.
책 읽는 것과 공부는 상관없다고 여기는 시대, 영상에 빠져 더 이상 책을 찾지 않는 세대가 왜 갑자기 책을 찾게 된 것일까?
(사진출처: 노컷뉴스)
2024년 청년 트렌드 중 ‘텍스트힙’이라는 게 있다. 이는 ‘글’을 뜻하는 text와 ‘멋짐’을 뜻하는 ‘Hip’이 합쳐진 합성신조어로, 독서 또는 일기 쓰기 등을 취미로 갖는 사람을 멋지다고 생각하는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텍스트힙이 청년 트렌드로 이어진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요즘 세대가 과거를 향유하는 물질성, 즉 아날로그 감성에 매력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는 그들이 뉴미디어의 발달로 비주류가 된 텍스트 기반의 콘텐츠를 동경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대다수가 영상 콘텐츠를 선호할 때, 독서를 하거나 일기를 쓰는 사람이 더 ‘개성’ 있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물론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인해 책을 찾는 젊은 층이 더 많아져 텍스트힙 열풍이 강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트렌드는 노벨문학상 수상 전부터 대중문화에 불던 바람이었다. 고즈넉한 헌책방이 젊은 세대가 찾는 힙한 명소가 되었고, 그들은 SNS에 자신이 읽는 책을 인증샷과 함께 소개하는 것을 유행으로 여겼다.
사실 어떻게 보면, 텍스트힙 열풍의 원인은 매우 얄팍하고 단순해 보이기도 한다. 몇몇 청년들은 ‘읽고 쓰는 것’ 그 자체보다는 ‘읽고 쓰는 나’를 보여주는 것을 더 선호하며, 헌책방을 레트로 감성이 담겨있는 공간으로 여겨 그저 경험의 욕구만을 채우려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독서를 어렵거나 지루한 문화가 아닌, 멋지고 흥미로운 트렌드로 인식한다면 다행이다. 조금씩 독서에 대한 편견과 진입장벽이 낮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흐름을 타고, 우리 사회는 다음세대로 하여금 독서 활동을 더욱 친근하게 느낄 수 있는 문화를 다시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읽는다는 것은 세계를 이해하는 것
올해 초, 청년들 사이에서 텍스트힙이 트렌드로 막 떠오르기 시작할 때 독서 장르는 굉장히 한정적이었다. 베스트셀러 책들을 살펴보면, 주로 돈을 벌기 위한 경제·경영 관련 서적이거나, 자기 계발을 위한 심리학·철학 분야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한강 작가의 소설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청년들은 점차 소설이라는 문학 장르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특별히 한강 작가의 문학 작품이 이 시대에 인정을 받은 것은, 소설의 내용이 우리 실제 삶이나 역사와 깊게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꼭 나 자신이 경험한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동시대에 누군가는 겪고 있을 혹은 역사 속에서 누군가는 겪었을 경험을 글을 통해 공유받게 된다. 사람들은 텍스트를 바라보지만 그 너머에 있는 세계를 이해하고, 지금의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책을 통해 역사를, 현시대를 그리고 인간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그렇기 때문에 문해력 문제는 단순히 학생들의 독서량을 늘린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한자를 가르쳐 단어의 뜻을 많이 익히게 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다. 한 학생이 어떤 작품을 받아들일 때, 시험을 위해 기계적으로 주입하는 것이 아닌, 텍스트 너머에 있는 ‘저자의 삶’과 ‘화자의 상황’, 그리고 현재 글을 읽는 ‘나 자신의 세계’를 잘 이해할 수 있어야만 문해력은 성장한다. 아무리 책을 많이 읽고 단어를 잘 안다고 해도, 좁은 세계관으로 내 삶만 바라본다면 글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역사가 어떻게 흘러왔으며,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어떤 모습인지에 관심 가질 때,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상상력과 공감은 더욱 풍성해질 수 있다.
#성경 읽기도 문해력으로 접근하기
독서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면서, 교회 내에 다음세대 사이에서도 성경을 읽는 행위에 대한 흥미가 저하되고 있었다. 안 그래도 성경책은 어렵고 지루하다는 편견이 있는데, 읽기 습관이나 문해력까지 저하되니 더 심각한 상황이 된 것이다. 그렇기에 대중문화에서 텍스트힙 열풍이 불 때, 교회도 이 흐름을 끌고 들어올 수 있도록 관심하고 노력해야 한다. 과거처럼 교회학교 학생들에게 성경을 ‘N독 이상 하는 것’을 강요하는 방식은 옳지 않다. 무조건 많이, 오래 읽게 하는 것보다 성경의 세계관을 잘 이해하고 읽도록 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가뜩이나 요즘 청소년들은 학원에 가느라 시간이 없어도 너무 없다.)
오랫동안 교회는 다음세대 아이들에게 성경에 대한 왜곡된 ‘읽기 방법’을 가르쳐왔다. 전하고 싶은 메시지에 성경 본문을 끼워 넣는다거나, 혹은 관계나 시험으로 힘들어할 때 용기를 얻을만한 말씀 구절만 전해주곤 했다. 물론 아예 나쁜 방식이라 할 순 없겠지만, 이는 앞 뒤 문맥은 생략함으로써 성경에 대한 바른 이해를 하지 못하게 만들어버린다. 성경이야말로 문학작품처럼, 글 너머에 있는 ‘저자의 삶’, ‘화자의 상황’ 그리고 현재 글을 읽는 ‘독자 자신의 세계’를 폭넓게 이해하는 준비가 필요하다. 상상력과 공감을 발휘하는 주체적 읽기가 가능할 때, 성경 속 진정한 하나님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사회에서는 세계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땅들의 문화와 미래 경제를 이해하기 위해 종교에 접근하고 있다. 세계를 더 넓게 이해하기 위해 성경책의 세계관을 공부하는 것이 트렌드가 되기도 한다. 물론 신앙이 전제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비그리스도인들이 더 넓은 세계관을 이해하기 위해 성경에 접근하는 추세는 참으로 흥미로운 현상이라 할 수 있겠다. 신앙이 없는 사람들도 성경을 읽을 때, 당시 역사와 문화, 인물에 대한 이해 그리고 앞 뒤 문맥을 충분히 이해하고 접근하려 한다. 교회학교에서부터 아이들에게 성경에 대한 문해력을 기를 수 있게 가르치는 것, 다양하고 입체적으로 읽힐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을 느끼게 해주는 문화가 교회에 자리 잡기를 노력해야 한다.
글. 임주은 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
#책 읽지 않는 아이들, 저하되는 문해력
최근 한국교원단체 총연합회가 전국 초중고 교사를 대상으로 ‘학생 문해력 실태 교원 인식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교사의 90% 이상이 학생들의 문해력이 과거에 비해 심각하게 떨어졌다고 응답했다. 청소년들의 문해력이 부족해져 당황한 사례들을 보면, 주로 한자가 섞인 단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데 있었다. 교사들이 답한 실제 사례로,
등이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수업을 진행할 때 ‘개념’이 아니라 단어의 뜻을 하나하나 가르치며 진도를 나가야 해 힘들다고 토로하는 교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시대 심각한 사회문제로 꼽히고 있는 다음세대 문해력 저하의 원인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교사들은 ‘스마트폰, 게임 등 디지털 매체에 대한 과도한 사용(36.5%)’을 1위로, ‘부족한 독서량(29.2%)’, ‘어휘력 부족(17.1%)’을 각각 2위, 3위로 꼽았다. 요즘 시대는 뉴미디어의 급속한 발달로 인해, 자신이 원하는 시공간에서 원하는 내용의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볼 수 있게 됐다. 거기에다 호흡이 긴 영상물들 보다는 ‘숏폼’처럼 짧고 강렬한 콘텐츠를 더 찾는 추세다. 이러한 미디어 시청행태는 다음세대로 하여금 글을 접하거나 혹은 이해를 위해 시간을 들이려는 습관을 분명 방해하고 있다.
그런데 이토록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른 문해력 저하, 다음세대가 미디어 시청행태를 바꾸면 해결될 일일까? 사실 여기는 훨씬 더 근원적인 문제가 숨겨져 있다. 뉴미디어가 발달하기도 훨씬 전, 이미 대한민국 공교육에서는 문해력에 초점을 둔 인문학적 교육이 사라지고 있었다. 학생들로 하여금 대학 진학만을 위한 수능제일주의, 높은 내신등급만을 위한 시험 준비에만 몰두하게 만들다 보니, 자연스럽게 독서활동을 불필요하게 느끼게 만든 것이다. 사회 분위기 전체가 이렇게 굳어져버렸는데, 교사나 학부모 혹은 학생 누구 하나가 먼저 나서서 바꾸려 한다고 금세 변화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힙한 취미가 된 독서, ‘텍스트힙’
(이미지 출처: 문화체육관광부)
모두가 알다시피 최근 몇 년간 국내 출판산업은 지속적으로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3 국민독서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2년 9월부터 2023년 8월까지 성인 가운데 일반 도서를 단 한 권이라도 읽거나 들은 사람의 비율인 종합독서율이 43%에 그쳤었다. 모두가 종이책을 찾지 않아 출판사가 문을 닫기도 했고, 그렇다고 전자책(e-book)을 찾는 사람이 더 많아진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읽고 쓰는 것’은 비주류의 취미생활이 돼버렸다.
그런데 올해 6월에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에 자그마치 15만 명이라는 사상 최대 인파가 몰렸다. 심지어 참여자 중 대다수가 2030 젊은 세대로, 전체관람객의 73%를 차지했다. 온라인 서점인 예스24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집계한 결과, 청소년 도서 구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46.3%나 증가했다고 한다.
책 읽는 것과 공부는 상관없다고 여기는 시대, 영상에 빠져 더 이상 책을 찾지 않는 세대가 왜 갑자기 책을 찾게 된 것일까?
(사진출처: 노컷뉴스)
2024년 청년 트렌드 중 ‘텍스트힙’이라는 게 있다. 이는 ‘글’을 뜻하는 text와 ‘멋짐’을 뜻하는 ‘Hip’이 합쳐진 합성신조어로, 독서 또는 일기 쓰기 등을 취미로 갖는 사람을 멋지다고 생각하는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텍스트힙이 청년 트렌드로 이어진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요즘 세대가 과거를 향유하는 물질성, 즉 아날로그 감성에 매력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는 그들이 뉴미디어의 발달로 비주류가 된 텍스트 기반의 콘텐츠를 동경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대다수가 영상 콘텐츠를 선호할 때, 독서를 하거나 일기를 쓰는 사람이 더 ‘개성’ 있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물론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인해 책을 찾는 젊은 층이 더 많아져 텍스트힙 열풍이 강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트렌드는 노벨문학상 수상 전부터 대중문화에 불던 바람이었다. 고즈넉한 헌책방이 젊은 세대가 찾는 힙한 명소가 되었고, 그들은 SNS에 자신이 읽는 책을 인증샷과 함께 소개하는 것을 유행으로 여겼다.
사실 어떻게 보면, 텍스트힙 열풍의 원인은 매우 얄팍하고 단순해 보이기도 한다. 몇몇 청년들은 ‘읽고 쓰는 것’ 그 자체보다는 ‘읽고 쓰는 나’를 보여주는 것을 더 선호하며, 헌책방을 레트로 감성이 담겨있는 공간으로 여겨 그저 경험의 욕구만을 채우려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독서를 어렵거나 지루한 문화가 아닌, 멋지고 흥미로운 트렌드로 인식한다면 다행이다. 조금씩 독서에 대한 편견과 진입장벽이 낮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흐름을 타고, 우리 사회는 다음세대로 하여금 독서 활동을 더욱 친근하게 느낄 수 있는 문화를 다시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읽는다는 것은 세계를 이해하는 것
올해 초, 청년들 사이에서 텍스트힙이 트렌드로 막 떠오르기 시작할 때 독서 장르는 굉장히 한정적이었다. 베스트셀러 책들을 살펴보면, 주로 돈을 벌기 위한 경제·경영 관련 서적이거나, 자기 계발을 위한 심리학·철학 분야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한강 작가의 소설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청년들은 점차 소설이라는 문학 장르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특별히 한강 작가의 문학 작품이 이 시대에 인정을 받은 것은, 소설의 내용이 우리 실제 삶이나 역사와 깊게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꼭 나 자신이 경험한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동시대에 누군가는 겪고 있을 혹은 역사 속에서 누군가는 겪었을 경험을 글을 통해 공유받게 된다. 사람들은 텍스트를 바라보지만 그 너머에 있는 세계를 이해하고, 지금의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책을 통해 역사를, 현시대를 그리고 인간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그렇기 때문에 문해력 문제는 단순히 학생들의 독서량을 늘린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한자를 가르쳐 단어의 뜻을 많이 익히게 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다. 한 학생이 어떤 작품을 받아들일 때, 시험을 위해 기계적으로 주입하는 것이 아닌, 텍스트 너머에 있는 ‘저자의 삶’과 ‘화자의 상황’, 그리고 현재 글을 읽는 ‘나 자신의 세계’를 잘 이해할 수 있어야만 문해력은 성장한다. 아무리 책을 많이 읽고 단어를 잘 안다고 해도, 좁은 세계관으로 내 삶만 바라본다면 글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역사가 어떻게 흘러왔으며,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어떤 모습인지에 관심 가질 때,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상상력과 공감은 더욱 풍성해질 수 있다.
#성경 읽기도 문해력으로 접근하기
독서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면서, 교회 내에 다음세대 사이에서도 성경을 읽는 행위에 대한 흥미가 저하되고 있었다. 안 그래도 성경책은 어렵고 지루하다는 편견이 있는데, 읽기 습관이나 문해력까지 저하되니 더 심각한 상황이 된 것이다. 그렇기에 대중문화에서 텍스트힙 열풍이 불 때, 교회도 이 흐름을 끌고 들어올 수 있도록 관심하고 노력해야 한다. 과거처럼 교회학교 학생들에게 성경을 ‘N독 이상 하는 것’을 강요하는 방식은 옳지 않다. 무조건 많이, 오래 읽게 하는 것보다 성경의 세계관을 잘 이해하고 읽도록 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가뜩이나 요즘 청소년들은 학원에 가느라 시간이 없어도 너무 없다.)
오랫동안 교회는 다음세대 아이들에게 성경에 대한 왜곡된 ‘읽기 방법’을 가르쳐왔다. 전하고 싶은 메시지에 성경 본문을 끼워 넣는다거나, 혹은 관계나 시험으로 힘들어할 때 용기를 얻을만한 말씀 구절만 전해주곤 했다. 물론 아예 나쁜 방식이라 할 순 없겠지만, 이는 앞 뒤 문맥은 생략함으로써 성경에 대한 바른 이해를 하지 못하게 만들어버린다. 성경이야말로 문학작품처럼, 글 너머에 있는 ‘저자의 삶’, ‘화자의 상황’ 그리고 현재 글을 읽는 ‘독자 자신의 세계’를 폭넓게 이해하는 준비가 필요하다. 상상력과 공감을 발휘하는 주체적 읽기가 가능할 때, 성경 속 진정한 하나님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사회에서는 세계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땅들의 문화와 미래 경제를 이해하기 위해 종교에 접근하고 있다. 세계를 더 넓게 이해하기 위해 성경책의 세계관을 공부하는 것이 트렌드가 되기도 한다. 물론 신앙이 전제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비그리스도인들이 더 넓은 세계관을 이해하기 위해 성경에 접근하는 추세는 참으로 흥미로운 현상이라 할 수 있겠다. 신앙이 없는 사람들도 성경을 읽을 때, 당시 역사와 문화, 인물에 대한 이해 그리고 앞 뒤 문맥을 충분히 이해하고 접근하려 한다. 교회학교에서부터 아이들에게 성경에 대한 문해력을 기를 수 있게 가르치는 것, 다양하고 입체적으로 읽힐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을 느끼게 해주는 문화가 교회에 자리 잡기를 노력해야 한다.
글. 임주은 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