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리뷰 [오트밀]"아기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중요한 것들" - Netflix 다큐 <베이비스 : 눈부신 첫해>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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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 나로부터 생명을 가진 작은 존재가 등장했다. 손톱보다 더 작은 세포 단계의 존재를 확인하고서 9개월 조금 안되는 기간 동안, 생명을 품는 것이 얼마나 버겁고 고되고 무거운지, 어찌나 설레고 기다려지고 신비로운지 경험했다. 낳는 과정은 말해 뭐하나. 세상에 이런 고통이 있느냐고 불특정 다수의 어머니가 된 모든 여성을 향해 울부짖고 소리치고 고마워하며 존경했다. 살려달라고 제발 아기를 빼주면 안 되겠냐고 의료진에게 애원하다가 분을 내다가 드디어 아기가 빠졌다! 모순, 모순, 모순…. 이중적 사고와 감정의 소용돌이를 지나 드디어 나의 아기가 나온 것이다. 감격과 감동의 순간을 만났지만 이내 다시 버겁고 고되고 무거운 ‘아기 돌봄과 기르기’가 시작되었다.

< 이미지출처 : Netflix >

아기는 100일이 지나면서, 조금씩 사람다워졌다. 다만, 육아에 대한 고민이 늘었다. 발달과 애착, 독립성과 관계성 등 때가 되면 되겠지 싶다가도, 문득 염려되기도 하는 요상한 양육자의 자리에 나도 서게 되었다. 그 즈음 아기님 낮잠 시간, 넷플릭스를 기웃거리다 만나게 된 <베이비스, 눈부신 첫해>. 이 다큐멘터리는 36명의 저명한 과학자가 1년 넘게 15명의 아기를 촬영한 결과를 보여주는데, 1년간의 각종 실험은 인간의 탄생과 그 시작에 대한 갖가지 오해들을 수정할 만한 새로운 과학적 성과를 내놓는다. 출생 후, 첫해를 살아내고 있는 아기를 양육하는 입장에서 모든 회차가 흥미로웠지만 내게 '세상에!'를 외치게 한, 내 감정이 특별히 반응했던 몇 가지 꼭지를 함께 나눠보고자 한다.


# 관계를 향하여 태어나는 아기!

아기가 태어난 지 5개월 무렵이었을까. 남편이 장난을 친다며 갑자기 나를 간지럽히기 시작했다. 짜증과 함께 괴로움을 온몸과 얼굴로 표현하던 찰나. 이제 막 기기 시작한 아기는 내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악을 쓰며 내게로 기어와 남편과 내 사이를 비집고 앉아 울어댔다. 꼭 나를 적에게서 구하러 온 기사처럼. 우리는 아기의 반응을 보며, 이 작은 아기가 정말 관계에 대해 인지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괴롭히고 아파하는 관계를 본 적이 없었을 텐데. 아니, 저 존재는 우릴 엄마 아빠로 인지하지도 못하는 것 같은데, 그게 가능한가. 이제 막 태어나 관계에 대해 배운 적 없는 이 아기가 보인 행동은 무엇이었을까. <베이비스>에 그 답변이 들어있다.

 

< 이미지출처 : Netflix >

영국 햄프셔의 Portsmouth 대학의 Vasudevi Reddy교수는 아기는 관계 맺을 준비가 되어 태어난다는 사실을 실험을 통해 밝힌다. 사람들을 웃기려 하고, 처음 보는 타인 앞에서 수줍은 미소를 띠고, 장난을 건네는 생후 12개월 전 아기들의 행위는 관계와 타인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하는 관계 형성의 시도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예컨대 도덕성,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구분하는 능력, 내가 좋아하는 것과 타인이 좋아하는 것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능력, 타인을 대하는 사회적 판단, 자신이 공유하고자 하는 정보와 장소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지적 행위 등이 모두 선천적이며, 단순하지 않다는 실험 결과가 전달된다. 여러 과학자들은 이 기본적 관계 능력은 아기가 자라며, 타인을 이해하고 그들과 공유하게 되는 세상의 첫 걸음이 되기 때문에 결코 단순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이 첫걸음을 통해 아기는 타인과 협동하고 신념과 마음을 나누는 데에 까지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아기를 ‘무력한 생명, 제로 상태의 인간, 모든 걸 가르쳐야 하는 존재’로 여겨왔던 나는 얼마나 오만하고 어리석었던가. 아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것을 가지고 태어난다. 우리의 할 일은 관계 맺을 좋은 어른이 되는 것 아닐까.

 “아기들은 다른 사람이 서로 상호작용하는 걸 보고, 행동과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부모는 처음부터 아기를 사회생활의 일원으로 생각해야죠. 아기들은 우리와 대화하고 싶어 합니다. 아기들은 자기가 하는 일에 동참해 주고, 자신을 한 인간으로 대접해 주는 파트너가 있어야 한 인격체로 자랄 수 있죠.” (파트2, <관계형성> 중.)

 

# 나의 작은 선생님, 아기!

아기에게 선천적인 것은 ‘관계 형성’에 한정되지 않는다. 실험을 통해, <베이비스>의 과학자들은 아기가 보이는 것을 잡으려고 손을 뻗는 것, 뒤집고, 기는 행위 등의 신체발달이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는 월령에 따라 일어나는 발달단계라는 사실을 넘어선다. 즉, 중력이 없던 자궁 안에서 자유롭게 손을 뻗고 뒤집고 기기도 했던 ‘이미 가지고 있던 능력’이 중력을 만나 발휘되지 않다가 자신의 머리 무게를 이길만한 충분한 근력과 힘이 생기게 되면 ‘다시’ 움직이게 된다는 이야기다. 나아가, 신체발달을 포함해 아기들의 반사 행위, 수면 중 움찔거림과 같은 행위까지도 모든 것이 아기의 뇌가 스스로 근육과 연결부위들을 파악하고 조직화하는 의미 있는 움직임인 것을 강조한다.

내 아기는 이제 250일을 지나고 있다. 아기가 중력을 이기기 위해 충분한 근력과 힘을 기르려는 매일의 노력을 보며 나는 성실함을 배운다. 아기는 “당연히 되는 일은 없다”라는 단순하고 참인 명제를 몸소 보여주는 내 작은 선생님이다. 고개를 들고, 어깨를 들고, 기고, 앉고, 서고, 걷는 이 일련의 움직임을 위해 아기들은 ‘저건 본능이 아니면 할 수 없다’고 할 만큼 계속해서, 포기하지 않고, 자신을 짓누르는 중력을 거역하려 힘쓴다. 백번 이백 번 넘어지고 서고를 반복하다가 ‘도대체 내 아기는 저걸 해낼 수 있는 걸까.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싶을 그때, 결국 앉고 서고 걸어낸다. 우리에게 성실함과 인내를 가르쳐주는 아기 앞에서 우리가 할 일은 그저 ‘기다려주는 일’ 뿐이다.

 

< 이미지출처 : Netflix >

“아기들의 생애 첫해는 엄청난 도전의 연속입니다. 앞으로 살아갈 날을 위해 신체와 해부학적 구조를 형성하는 과정이죠. 앞으로 이어질 수많은 변화에 시동을 걸게 해주는 사건이죠. 아기는 기고, 일어서고, 걷는 순간부터 자기 세상이 열리고 자기가 가는 곳을 정복할 수 있어요.” (파트1, <첫걸음마> 중.)

 

# 우리 모두의 아기!

SNS에 불평 담긴 피드를 올렸다. 도대체, 왜, 이 새벽에 아기 울음소리를 듣고 나만 깨는가 하는 전형적이고도 전형적인 슬픈 스토리의 주인공이 내가 되었다. 남성은 울고 있는 저 아기를 낳지 않았기 때문에 깰 수 없는가. 처연한 마음이 들었지만 차분히 생각해 보았다. 나는 내가 ‘낳았기’ 때문에 내 아기가 사랑스러운가? 나는 ‘내가 아기를 낳았다’는 사실과 ‘내 눈앞의 아기’를 어떻게 연결시키고 있는가? 이 아기를 내가 낳지 않고 다만 키우고 있다면 사랑스럽지 않을까? 내가 낳은 아기는 나만의 아기인가?

 < 이미지출처 : Netflix >

사회 전반에 여전히 만연한 아기 돌봄의 불균형을 지적하기라도 하듯이, <베이비스>의 첫 시리즈의 첫 챕터는 사랑 호르몬으로 불리는 옥시토신 분비를 실험한다. 기존에 옥시토신은 아기를 임신하고 출산한 여성에게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아기와 어머니의 유대를 만드는 ‘모성 호르몬’이라고 일컬어졌다. 어머니인 여성에게만 분비된다는 뜻. 과연 그럴까.

이스라엘 텔아비브의 사회신경과학 발달센터장 Ruth Feldman은 생물학적 유대에 물음을 던지며, 생후 1년 미만의 아기를 둔 80명의 엄마뿐 아니라 아빠들의 옥시토신 수치를 측정한다. 결과는 실험 자조차 ‘충격적’이라고 말할 만큼 놀라운데, 엄마, 아빠의 옥시토신 수치가 동일했으며, 아기를 입양한 부모들에게서도 동일한 수치가 측정되었다. 그러니까, 모성의 강조는 신화일 수 있으며 아기를 사랑하겠다는 선택과 헌신적 돌봄만 있다면 누구든 깊은 사랑으로 아기를 양육할 신체가 된다. 부디 이 실험 결과가 ‘역시 아기에게는 낳은 엄마가 최고지’, ‘내가 돈 벌어다주잖아’라는 언술 뒤에 숨어 돌봄을 선택하지 않는 무관심한 이들의 정곡을 충분히 찌를 수 있길 바란다. 

“아기와 많은 시간을 보낼수록, 그리고 소매를 걷어붙이고 아기를 돌보고 먹이고 씻기며 양육자의 일을 충실히 수행할수록 옥시토신 분비가 더욱 활성화되는 거였어요. 참 경이로운 일이죠. 부성은 생물학적인 겁니다. 모성만큼 깊고요. 임신과 출산 그리고 수유는 모성의 뇌를 활성화하죠. 하지만 헌신적인 보살핌의 행위도 같은 역할을 해요. 즉 당신이 생물학적 부모든, 헌신적으로 키우는 양육자든, 아무 상관이 없는 겁니다. 선택의 문제죠. 그 아이의 부모가 되겠다는 선택의 문제요.“ (파트1, <사랑> 중.)

 

# 좋은 공동체, 좋은 어른, 좋은 돌봄자 되기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이 하나를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또 누구든지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인 것이다”(쉬운성경, 막 9:37). 예수께서 어린이를 안으시며 제자들에게 선포하시는 유명한 말씀이다. 어린이를 받아들이는 것이 곧 예수를 받아들이는 것이며, 그것은 다시 하나님을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과감한 발언은 말 그대로 과감한데, 당시 사회적 차원에서 어린이는 의존적이며 배제된 존재였기 때문이다. 배제된 존재를 자신 그리고 하나님과 일치시킨 예수의 선포는 당대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파격적이다.

그럼 어린이의 무엇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베이비스>를 보고, 아기가 가르쳐주는 여러 면면들을 발견하니, 예수의 이 파격적 선포를 받아들일 힌트를 얻게 된다.

 < 이미지출처 : Netflix >

‘기본적으로 관계적 존재’로, ‘관계를 지향하여 태어나는 아기’라는 실험 결과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가장 핵심적이고도 심오한 속성인 페리코레시스. 서로가 서로 안에서 연합되는 관계적 존재인 하나님을 닮아 만들어진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그것은 교리 안에 머무는 개념이 아니라, 인간의 시작 즉 가장 작은 인간 안에서 발견됨으로써 실제가 된다. 나는 고립과 단절을 원하는가? 아니면, 아기와 같이 세상 모든 것에 열려 관계를 지향하는가? 질문한다. 내가 다사다난한 삶 가운데에서도 회복이라는 걸 하며 지금을 살아낼 수 있는 건 스스로의 능력이 아니라, 괜찮다고, 다시 함께 가보자고, 잠깐 쉬어가는 거라고 다독이는 공동체들에 속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안부를 물으며 정서적으로 안아주는 크고 작은 관계들이 결국 우리를 지탱하는 유일한 동력이었다. 이렇게 관계적 인간으로 태어난 우리가 서로에게 그리고 특별히 어린 아이들에게 좋은 어른 공동체가 되어준다면 우리 관계 안에 그리스도가 더 깊이 채워지지 않을까.

무엇보다, 아기에게서 발견되는 ‘성실과 인내’는 하나님의 속성에서 빼놓을 수 없는 특성일 뿐 아니라, 성령의 열매 아니었던가. 아기의 성실을 보며 현재 나의 성실함을 생각한다. 모두가, 아이로부터 배운 성실과 인내를, 다시, 아이를 기다려주고 존중해 주는 좋은 어른이 되는 데에 사용하면 좋겠다. 김소영 작가의 책 <어린이라는 세계>에서는 ‘좋은 어른’, ‘품위 있는 어른’을 이렇게 묘사하는데, 작가의 꿈에 공감한다. “나는 어린이의 품위를 지켜 주는 품위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감사를 자주 표현하고, 사려 깊은 말을 하고, 사회 예절을 잘 지키는 사람, 세상이 혼란하고 떠들썩할 때일수록 더 많이, 결코 자연스럽지 않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어린이라는 세계>, 46p)

마지막으로, 사랑 호르몬이 출산한 여성만의 것이 아니듯, 남성이든, 미혼자든, 누구든 돌봄을 함께 선택해 줬으면 좋겠다. 나아가 공동체가, 사회가, 국가가 돌봄을 선택하고, 돌봄의 인프라를 확실히 해주면 좋겠다. 외출할 땐 수유실과 기저귀 갈이대가 있는 장소를 찾기 바쁘고, 머리카락을 한번 다듬으려고 해도 아기를 맡길 곳이 없어 1년간 손질을 포기해버리고, 여전히 높은 턱이 즐비한 거리를 유모차를 번쩍번쩍 들고 오가는 양육자들의 고충이 사라지길 바란다. 우리의 존재는 상호의존을 통해 그리고 상호의존에 의해 다양한 제각각의 모습으로 형성된다는 것을 인식할 때 모두가 모두를 돌보는 사회가 될 것이다.


글. 정수인 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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