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의 문화 읽기"해방에서 자유로, 터벅터벅 훠얼훨!" - <나의 해방일지>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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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선 걷거나 뛰거나 선다. 버스정류장으로 걷고, 버스가 보이면 뛰고, 승강장에서 전철을 기다리며 선다. 탈 것에 의자가 비면 앉고, 앉으면 머리를 옆으로 끄덕거리며 존다. 길은 가만히 있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인다. 그래서일 거다. 김훈은 길의 품사를 명사가 아니라고 한다. “길은 동사다.”

나는 김포에 산다. 김포(金浦)에는 서해와 한강을 오가는 배를 댈 수 있는 나루(浦)가 있었다. 김포는 서울을 질러 서해로 흐르는 한강을 따라 너른 평야였고, 평야 사이 서울과 강화를 오가는 길이었다. 그래서 김포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길다. 김포는 길이었고, 길다. 김포에서 서울로 가는 길, 서울에서 김포로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길다. 길은 길어 오래 걸어야 하고, 다 걷자면 오래 걸린다.

<나의 해방일지> 속 삼남매는 수원 근처 신도시 아닌, 저수지 가까운 산포라는 도시에 산다. 산포에서 서울을 오가는 삼 남매는 걷고, 뛰고, 서고, 졸며 길을 간다. 해가 긴 여름에도 어두워야 집에 도착하는 삼 남매에게 길은, 사실상 사는 곳이다. 길에서 살 듯 출퇴근하는 삼 남매는 늘 몸이 무겁고, 자동차가 없어 여친과 헤어지고, 막차를 타려면 동호회 활동을 할 수 없다. 길은 길어서 오래 걸린다. 긴 길을 오래 걷는다. 힘들고 지친다. 

그래도 힘들 때마다 “말로 털어내는” 언니, 오빠와 달리 말도 적고 표정으로 드러내지 않는 미정(김지원 분)에겐 “모든 관계가 노동”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랑이 오고 가며, 흐르기도 하고 쌓아가며, 사람은 살아갈 힘을 얻는데, 미정은 어떤 관계에서도 힘을 얻지 못한다. 미정은 하얀 도화지같이 예쁘지만,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았다. 부모도 미정을 채워줄 수 없고, “개새끼”같은 남자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이렇게 살다가 그만 다 소진되어버린 것일까. 문제 많아 보이는 남자 구 씨(손석구 분)를 구원해주고 싶었을까. 이름도 모르고, 소주 두 병 이상을 매일 마시는 구 씨에게 특이한 제안을 한다. 

"술 말고 할 일 줘요? 날 추앙해요
 난 한 번도 채워진 적이 없어
 개새끼, 개새끼
 내가 만났던 놈들은 다 개새끼
 그러니까 날 추앙해요 가득 채워지게.."


왜 사랑이 아니고 추앙일까. 들을 때 기분 좋지만, 믿기지 않는 말이 있다. “고객님 사랑합니다.” 낭랑한 사랑 고백 이건만 설레지 않는다. 그 헤픈 고백에 굳이 거절 의사를 밝히지 않는 이유는, 고객을 향한 사랑이 그 소유와 소비를 향한 사랑인 줄 알기 때문이다. 매대에 진열돼 여러 손을 타 흐트러져 있는 게 사랑이 돼버렸다.

상업적인 관계가 아니라 매력적인 존재를 향한 사랑이라도, 자동차가 없으면 헤어질 이유가 된다. 불같이 사랑 하다가도 욕구가 맞지 않으면 쿨 하게 끊는다. 이런 식으로 무수히 사랑을 고백하며 사랑하는 사람들이 발정기가 지나면 그냥 “개새끼”가 되기 때문에, 사랑이 아니라 추앙이어야 하는 걸까. 친구를 위해 죽는 것이 사랑이라는데(요15:13), 오래 참고 온유하며 모든 것을 참는 것이 사랑이라는데(고전13:4~7), 말로 뱉는 사랑이 너무 오염돼 버렸다. 그래서 미정은 사랑 말고 추앙하라고 한다. 

추앙은 다큐멘터리에나 나올 법한 단어라 사전을 찾아봐야 더듬어 이해할 수 있다. 사전 속 추앙의 뜻은 “높이 받들어 우러러 봄”이다. 믿을 수도 없고, 채워지지도 않는 사랑 대신 추앙해야, 

다시 “터벅터벅” 겨우 길을 갈 수 있을 터이다. 길은 동사여서 곧게 가다가도 휘어지며, 굽어지고, 오르막 내리막이 이어 나온다. 길은 땅 위에 있지만, 바다같이 출렁이고 일렁인다. 안전하지 않다. 길을 사는 건, 고단하고 위태로우며, 위험하다. 이런 길을 끝내 가려면 맨 정신으론 갈 수 없다. 취하거나 채워져야 한다. 


기원전 13세기, 나일강이 흘러 비옥한 이집트 고기 가마 곁에 살던 히브리 사람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길을 나섰다. '젖과 꿀'이라니. 얼핏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젖’은 유목 생활을, ‘꿀’은 채집 생활을 상징한다. 큰 강이 흐르는 평지에서 농사짓고 사는 건 풍요하고 넉넉한 문명이지만, 젖과 꿀이 흐르는 초지와 산지에서 유목하며 채집하는 건 야만에 가깝다. 사람은 문명과 야만 사이에 있다. 이집트 문명을 떠나 “자기 길”을 가던 히브리 사람들은 다시 문명으로 돌아가고 싶다. 돌아가고 싶지만 홍해로 막혀 있어 갈 수 없었을 뿐,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늘 신과 동행하는 사람들도 이집트로 퇴행하고 싶었다. 

구 씨가 산포를 떠나 서울로 퇴행한다. 퇴행의 이유가 미정과 미정네 식구를 지키기 위한 고육책이었지만 퇴행은 퇴행이다. 어쩔 수 없이 되돌리게 할 만큼 서울의 문명은 힘이 세다. 다만 취한 채 구 씨는 문명을 견딘다. 고급 오피스텔에 눕지만 난방이 되지 않은 방에서 야영하듯 산다, 퇴행했지만, 취한 채 여전히 길을 걷고 있다. 취한 채 걷기를 포기하지 않은 구 씨는 해방을 시도한다. ‘나일강이 흐르는 땅’으로부터 빠져나오는 것이 해방이다. 

가방 속에 오만 원 뭉치를 꾹꾹 넣고 해방을 시작하는데, 오백 원 짜리 동전이 길 위를 또르르 굴러가다가 하수구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있다. 납작하게 새겨진 학이 살아있는 양, 위태하지만 빠지지도 않는다. 가방에 가득한 오만 원 뭉치를 살림 밑천 삼아, 위태하나 하수도에 빠지지도 않는 오백 원 동전에 새겨진 납작한 학처럼 훠얼훨 진행하길 응원한다. 오만 원 뭉치가 좋아 납작하게 엎드려도, 오백 원짜리 학처럼 훨훨 살아 있으라고, 나는 우리를 응원한다. 


"추앙은 어떻게 하는 건데?"

"응원하는 거.
 넌 뭐든 할 수 있다 뭐든 된다."

넌 뭐든 할 수 있고, 뭐든 된다고 응원하는 게 추앙이라면, 나도 구 씨와 우리를 추앙한다. 터벅터벅 한 걸음씩 길을 가는 구씨가 퇴행하지 않고 진행하길 응원한다. 서울에서 해방된 구씨가 거기가 어디든 길 위에서 자유롭기를 응원한다. 


예수께서 자신을 길이라 하셨던 말씀을 생각한다. 진리가 자유롭게 할 것이 말씀하신 것도 생각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14:6)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8:32)

예수께선 길이 진리라고, 길이 생명이라고 하신다. 선택하지 않았어도 길 위에 있고 길에 산다면, 진리에 근접해 있고, 진리를 알아 자유로울 것이다. 서울에서부터 해방되고, 길을 향해 자유로울 것이다. 서울이든, 경기도든, 깊은 산이든, 멀리 섬이든, 주소 따위 중요하지 않다. 문명에서 해방되어 길에서 자유하느냐가 중요하다. 


"대한민국은 1945년에 해방됐지만

저희는 아직 해방되지 못했습니다

해방할 겁니다."


진행과 퇴행이 반복 되겠지만, 그래서 해방 역시 반복 되겠지만, 익숙한 것으로터 해방, 그리고 모르는 길을 향한 자유가 사람의 길이다. 길어서 오래 걸어야 하고 다 가려면 오래 걸리는 길이다. 옛날 이스라엘이 나라의 기틀을 잡아가던 때, 첫 번째 왕 사울에서 두 번째 왕 다윗에게 그 헤게모니가 넘어가던 때에도 길이 중요했다. 

"오늘 왕의 생명을 내가 중히 여긴 것 같이 
내 생명을 여호와께서 중히 여기셔서 모든 환난에서 
나를 구하여 내시기를 바라나이다 하니라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내 아들 다윗아 네게 복이 있을지로다 
네가 큰 일을 행하겠고 반드시 승리를 얻으리라 하니라
다윗은 자기 ‘길’로 가고 사울은 자기 ‘곳’으로 돌아가니라."

(삼상26:24~25)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 하고, 다윗이 사울을 살려주는 장면 직후에 나오는 묘사다. 진리와 생명을 품은 자는 ‘길’로 가고, 아집과 죽음을 뿜는 자는 ‘곳’으로 간다. ‘곳’에서 해방되어, ‘길’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에게, 바다처럼 출렁이고 일렁이는 길 위에서 다시 이집트로 퇴행하고 싶은 구 씨들에게, “해방교회”의 소박한 펼침막 아래 말씀을 나눈다. 


예수께서 곧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막6:50)




글쓴이. 김영준 목사
김포에 산다. 민들레교회와 협동조합 달팽이학교가 운영하는 공간 민들레와달팽이를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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