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적 정통성’을 결여한 정권과 ‘종교적 정통성’이 부재한 이단의 유착은 필연적이다. 국민의 지지가 취약한 정치 권력은 이단을 선호한다. 맹종과 맹신에 익숙한 이단 신도들의 일사불란한 조직력과 맹목적인 충성도는 정치 권력 유지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한편, 종교적 정통성이 부재한 이단은 초법적으로 자신들에게 유익을 가져다줄 정치 권력에 줄을 대려고 애쓴다. 기성 종교의 견제와 비판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줄 보호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치적 불안정성을 특징으로 하는 한국 현대사에는, 정치 권력과 이단의 부적절한 공생이 지속적으로 노출되고 있다.
통일교와 유신정권
1970년대를 전후로 군사정권과 통일교의 공생이 시작한다.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권은 권력 유지를 위한 충성도 높은 열렬 지지 세력이 필요했고, 개신교의 집중적인 견제를 받던 이단 통일교는 비판의 바람을 막아줄 보호자가 필요했다.
문선명의 통일교와 군사정권은 ‘반공(反共)’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었다. 통일교는 군사정권이 집권 연장의 명분으로 내세운 반공을 뛰어넘는 승공(勝共)과 멸공(滅共)을 전면에 내세우며 안정적인 물적 토대를 구축했다.
통일교를 비판하던 선친 탁명환 소장이 중앙정보부에 잡혀가 심문을 받을 때, 담당 수사관은 “반공 운동하는 통일교를 반대하니, 당신 빨갱이 아니냐?”고 위협했다. 미국 공화당, 일본 자민당, 한국의 보수정당에 대한 직간접적인 물적·인적 지원을 통해 통일교는 꾸준히 성장해 왔다. 특히 고급 개발 정보에 기반한 부동산 투자는 통일교의 막대한 부의 축적을 가능하게 만든 주요한 수단이었다.
문선명 사망 후, 통일교는 부인 한학자, 3남 문현진, 7남 문형진 등의 세 개 분파로 갈라진 후, 양보 없는 후계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들 중 한학자 통일교는 아베 신조 피격 살해사건 이후, 교세와 자금 기반인 일본에서 법인이 해산되는 위기에 처해 있고, 이를 극복하려는 무리한 정치권 로비와 유착으로 인해, 설립 이후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정치로 흥(興)한 통일교가 정치로 망(亡)하는 모양새다.
구원파와 제5공화국
1980년대는 유병언 구원파의 정치권 로비 의혹이 두드러졌다. 1987년 일어난 32명의 집단 자살 혹은 타살 의혹이 제기되는 오대양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오대양을 통해 조성된 막대한 자금이 군사정권의 제5공화국 핵심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꾸준히 제기되었지만, 중간 관리자로 지목된 오대양 관계자들의 죽음으로 인해, 여전히 미제 사건으로 남아 아직도 세간의 관심을 받고 있다.
구원파의 이단성을 비판하던 선친 탁명환 소장은 유병언과 깊은 갈등을 겪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던 점은, 선친이 유병언을 고소하면 담당 경찰서가 수시로 변경되면서 수사가 지지부진하게 진행됐던 반면, 유병언이 선친을 고소하면 즉시 구속영장이 발부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게다가, 1987년 10월 충북 보은 이단 예방 집회 중 통일교 신도들의 난입과 폭행으로 크게 다친 탁 소장이 경찰의 도움을 요청했을 때, 그러기에 왜 유병언을 비판했냐는 경찰 간부의 핀잔을 들어야 했던 일도 석연치 않은 대목으로 남아 있다.
이후 2014년 세월호 사건을 통해 구원파의 불법적인 정치권 로비 의혹이 사회적인 관심사로 등장했다. 유병언의 사망으로 사건은 종결되었지만, 조사 과정에서 유력한 정치인들의 연루 의혹이 제기되거나, 유병언이 받은 특혜 의혹이 설득력 있게 제기되었다.
최태민과 국정농단
2016년 국정농단 사건에도 사이비 종교인의 개입이 이슈로 등장했다. 군사정권 당시 개신교 목사의 신분으로 ‘대한구국십자군’이란 친정부 단체를 이끌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최태민 일가의 행태가 최순실 국정농단의 출발점으로 알려졌다.
선친 탁명환 소장이 최태민을 처음 만난 것은, 그가 대전 선화동에서 원자경이란 이름의 무속인으로 활동하고 있을 때였다. 2년이 지난 1975년 탁 소장이 최태민의 연락을 받고 신촌의 한 다방에서 만났을 때, 그는 개신교 최고 권력자이자 목사의 신분으로 변해있었다. 상식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 일어난 것이었다.
이후 탁 소장이 최태민을 비판하자, 군사정권의 위세에 기대있던 목사들이 군복을 입고 나타나 탁 소장을 위협하고 겁박했다. 대한민국을 혼란 속으로 빠뜨린 국정농단이 이미 이때부터 예견되었다. 당시 선친이 수집했던 최태민 관련 일차 자료들은, 국정농단의 뿌리를 밝히는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한국교회
최근 정교 유착 비리를 밝히기 위한 합동수사본부가 출범해 검경의 수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문제는, 이단 신천지와 통일교의 불법적인 정치 개입이 주요 수사 대상이지만, 교회도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이단과 정치권의 역사적 유착과 공생은, ‘우발적인 일탈’이 아니라 ‘치밀하게 기획된 조직범죄’이고 ‘필연적인 병리 현상’이었으며, 정치 권력에 기웃거리며 기댈 곳을 찾아 헤매는 이단들의 행태는 도무지 떼려야 뗄 수 없는 숙명이고 운명이라는 점은 명확하다.
하지만 정치 권력과의 부적절한 유착은 이단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한국교회도 전혀 자유롭지 않다. 인지도 있는 교회 지도자들이 권력층에 금품로비를 했다는 의혹이 드러나고 있고, 교회의 주일 설교 강단에서 성경적 용어로 포장된 편향된 정치 선전이 거리낌 없이 행해지고 있다.
통일교와 신천지 등 이단들의 행태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일 수 있다. 만약 이단의 범죄에는 엄격한 법적 잣대를 적용하고, 교회의 불법에는 관용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이는 불공평한 이중잣대이다. 정통의 미명으로 자행되는 비성경적이고 비윤리적인 행태는 ‘정상 참작’이 아니라 ‘가중 처벌’의 대상이다. 정결한 교회만이, 이단의 도전에 당당하게 응전할 수 있다.
글. 탁지일 교수
부산장신대학교 / 월간 「현대종교」 이사장
‘정치적 정통성’을 결여한 정권과 ‘종교적 정통성’이 부재한 이단의 유착은 필연적이다. 국민의 지지가 취약한 정치 권력은 이단을 선호한다. 맹종과 맹신에 익숙한 이단 신도들의 일사불란한 조직력과 맹목적인 충성도는 정치 권력 유지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한편, 종교적 정통성이 부재한 이단은 초법적으로 자신들에게 유익을 가져다줄 정치 권력에 줄을 대려고 애쓴다. 기성 종교의 견제와 비판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줄 보호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치적 불안정성을 특징으로 하는 한국 현대사에는, 정치 권력과 이단의 부적절한 공생이 지속적으로 노출되고 있다.
통일교와 유신정권
1970년대를 전후로 군사정권과 통일교의 공생이 시작한다.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권은 권력 유지를 위한 충성도 높은 열렬 지지 세력이 필요했고, 개신교의 집중적인 견제를 받던 이단 통일교는 비판의 바람을 막아줄 보호자가 필요했다.
문선명의 통일교와 군사정권은 ‘반공(反共)’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었다. 통일교는 군사정권이 집권 연장의 명분으로 내세운 반공을 뛰어넘는 승공(勝共)과 멸공(滅共)을 전면에 내세우며 안정적인 물적 토대를 구축했다.
통일교를 비판하던 선친 탁명환 소장이 중앙정보부에 잡혀가 심문을 받을 때, 담당 수사관은 “반공 운동하는 통일교를 반대하니, 당신 빨갱이 아니냐?”고 위협했다. 미국 공화당, 일본 자민당, 한국의 보수정당에 대한 직간접적인 물적·인적 지원을 통해 통일교는 꾸준히 성장해 왔다. 특히 고급 개발 정보에 기반한 부동산 투자는 통일교의 막대한 부의 축적을 가능하게 만든 주요한 수단이었다.
문선명 사망 후, 통일교는 부인 한학자, 3남 문현진, 7남 문형진 등의 세 개 분파로 갈라진 후, 양보 없는 후계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들 중 한학자 통일교는 아베 신조 피격 살해사건 이후, 교세와 자금 기반인 일본에서 법인이 해산되는 위기에 처해 있고, 이를 극복하려는 무리한 정치권 로비와 유착으로 인해, 설립 이후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정치로 흥(興)한 통일교가 정치로 망(亡)하는 모양새다.
구원파와 제5공화국
1980년대는 유병언 구원파의 정치권 로비 의혹이 두드러졌다. 1987년 일어난 32명의 집단 자살 혹은 타살 의혹이 제기되는 오대양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오대양을 통해 조성된 막대한 자금이 군사정권의 제5공화국 핵심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꾸준히 제기되었지만, 중간 관리자로 지목된 오대양 관계자들의 죽음으로 인해, 여전히 미제 사건으로 남아 아직도 세간의 관심을 받고 있다.
구원파의 이단성을 비판하던 선친 탁명환 소장은 유병언과 깊은 갈등을 겪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던 점은, 선친이 유병언을 고소하면 담당 경찰서가 수시로 변경되면서 수사가 지지부진하게 진행됐던 반면, 유병언이 선친을 고소하면 즉시 구속영장이 발부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게다가, 1987년 10월 충북 보은 이단 예방 집회 중 통일교 신도들의 난입과 폭행으로 크게 다친 탁 소장이 경찰의 도움을 요청했을 때, 그러기에 왜 유병언을 비판했냐는 경찰 간부의 핀잔을 들어야 했던 일도 석연치 않은 대목으로 남아 있다.
이후 2014년 세월호 사건을 통해 구원파의 불법적인 정치권 로비 의혹이 사회적인 관심사로 등장했다. 유병언의 사망으로 사건은 종결되었지만, 조사 과정에서 유력한 정치인들의 연루 의혹이 제기되거나, 유병언이 받은 특혜 의혹이 설득력 있게 제기되었다.
최태민과 국정농단
2016년 국정농단 사건에도 사이비 종교인의 개입이 이슈로 등장했다. 군사정권 당시 개신교 목사의 신분으로 ‘대한구국십자군’이란 친정부 단체를 이끌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최태민 일가의 행태가 최순실 국정농단의 출발점으로 알려졌다.
선친 탁명환 소장이 최태민을 처음 만난 것은, 그가 대전 선화동에서 원자경이란 이름의 무속인으로 활동하고 있을 때였다. 2년이 지난 1975년 탁 소장이 최태민의 연락을 받고 신촌의 한 다방에서 만났을 때, 그는 개신교 최고 권력자이자 목사의 신분으로 변해있었다. 상식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 일어난 것이었다.
이후 탁 소장이 최태민을 비판하자, 군사정권의 위세에 기대있던 목사들이 군복을 입고 나타나 탁 소장을 위협하고 겁박했다. 대한민국을 혼란 속으로 빠뜨린 국정농단이 이미 이때부터 예견되었다. 당시 선친이 수집했던 최태민 관련 일차 자료들은, 국정농단의 뿌리를 밝히는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한국교회
최근 정교 유착 비리를 밝히기 위한 합동수사본부가 출범해 검경의 수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문제는, 이단 신천지와 통일교의 불법적인 정치 개입이 주요 수사 대상이지만, 교회도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이단과 정치권의 역사적 유착과 공생은, ‘우발적인 일탈’이 아니라 ‘치밀하게 기획된 조직범죄’이고 ‘필연적인 병리 현상’이었으며, 정치 권력에 기웃거리며 기댈 곳을 찾아 헤매는 이단들의 행태는 도무지 떼려야 뗄 수 없는 숙명이고 운명이라는 점은 명확하다.
하지만 정치 권력과의 부적절한 유착은 이단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한국교회도 전혀 자유롭지 않다. 인지도 있는 교회 지도자들이 권력층에 금품로비를 했다는 의혹이 드러나고 있고, 교회의 주일 설교 강단에서 성경적 용어로 포장된 편향된 정치 선전이 거리낌 없이 행해지고 있다.
통일교와 신천지 등 이단들의 행태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일 수 있다. 만약 이단의 범죄에는 엄격한 법적 잣대를 적용하고, 교회의 불법에는 관용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이는 불공평한 이중잣대이다. 정통의 미명으로 자행되는 비성경적이고 비윤리적인 행태는 ‘정상 참작’이 아니라 ‘가중 처벌’의 대상이다. 정결한 교회만이, 이단의 도전에 당당하게 응전할 수 있다.
글. 탁지일 교수
부산장신대학교 / 월간 「현대종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