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의 메커니즘과 신뢰의 사회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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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의 메커니즘과 신뢰의 사회문화


강형욱 훈련사와 관련된 문제가 뜨겁다. 강형욱과 전 직원들 사이의 논쟁이 계속되고 있고, 이제는 법적 공방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직원들이 업무용 메신저를 통해 강형욱과 그의 아내에 대한 뒷담화를 했는데 이를 강형욱 부부가 관리자의 권한으로 열람했다는 것이다. 이는 강형욱도 인정한 사실이고 그 나름의 이유를 제시했으나, 과연 직원들의 메신저를 관리자가 열람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의 소지가 있다.

 

감시 사회, 모니터링 시스템의 메커니즘

‘감시’라는 말은 민주주의에 기초한 한국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당장 거리에만 나가봐도 수많은 CCTV를 확인할 수 있으며, 우리가 일하는 노동 현장, 식당, 카페, 어린이집, 학교 등 CCTV의 눈을 피할 수 있는 곳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이뿐 아니라, 업무용 메신저 및 이메일 열람, 업무용 컴퓨터 모니터링 등 직장에서는 나름 타당한 이유를 통해 감시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으며, 권한 있는 관리자는 이를 사용할 수 있다. 이처럼 현대사회는 곳곳에 감시 가능 시스템을 구축한 감시 사회라고 할 수 있다.

감시 사회에 대해 심도 깊이 연구한 이는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이다. 그는 ‘판옵티콘(Panopticon)’이라는 원형 감옥을 통해 감시 사회의 메커니즘을 설명했다. 판옵티콘은 한가운데 감시탑이 있고 죄수들의 감방은 감시탑을 원형으로 둘러싼 구조의 감옥이다. 여기서 핵심은, 감시탑에서는 모든 죄수들을 볼 수 있으나 죄수들은 감시탑 내부를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이다. 즉 감시탑에 감시자가 있든지 없든지, 감시자가 자신의 쪽을 보는지 안 보는지와 상관없이, 죄수들은 감시자의 시선을 의식하게 된다. 그리고 감시자의 의도에 따라 자신의 행동을 교정하게 된다.


[제레미 벤담(Jeremy Bentham)의 판옵티콘 계획도]


현대사회의 수많은 모니터링 시스템도 이러한 효과를 가져온다. 예를 들어, 쓰레기 무단투기가 잦은 지역 위에 달린 CCTV는 표면적으로 무단투기자를 적발하는 역할도 하지만,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공권력의 시선을 의식하게 만들어서 무단투기를 방지하는 역할도 한다. 이처럼 감시의 시선은 타율적으로 사람들의 행동을 유도하게 되며, 이러한 감시의 시선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때 우리는 감시자의 의도를 내면화하게 되어 스스로를 교정하고 훈육하는 과정을 겪게 된다. 이러한 점에서 ‘감시 가능한 시선’은 필연적으로 권력관계와 연결되어 권력을 만들어내고 또 강화한다. 현대사회의 수많은 모니터링 시스템도 이러한 효과를 낳고 있다.

 


신뢰의 사회문화를 만들어가는 그리스도인과 교회

이처럼 모니터링 시스템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 이 시스템이 계속해서 늘어만 가는 데에는 본질적으로 ‘신뢰’의 문제가 깊이 연결되어 있다. 2015년 한 어린이집에서의 아동학대가 사회적 이슈가 되며 어린이집 CCTV 설치가 의무화되었듯이, 신뢰가 약화된 지점에서 감시는 강화된다. 우리 사회의 모니터링 시스템이 강해지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이 약해지고 있다는 반증인 것이다. 사회구성원들이 가진 ‘신뢰’라는 감각이 약해질수록 감시와 모니터링은 늘어나고, 갈등과 분쟁은 많아지며, 각자도생의 삶의 방식은 더욱 강화된다.

이러한 사회적 흐름 속에서,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어떻게 신뢰의 사회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타인과 신뢰의 관계를 만들어가며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사회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성도 간의 관계뿐 아니라, 사회 속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과 신뢰의 관계를 맺어가는 것이 신뢰 사회를 만들어가는 중요한 시작점이 될 것이다.

다양한 모습들이 ‘신뢰’와 연결될 수 있지만, 그중 중요한 것으로 책임감과 정직함을 꼽을 수 있다. 거짓 없이 사람을 대하고 거짓으로 남을 속이지 않는 것, 맡은 일에 책임을 다하고 관계에서의 책임을 다하는 것, 신뢰와 연결되는 중요한 덕목이며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는” 성품적 특징이다. 더 중요한 것으로, 이를 행하는 신앙인의 근거에는 ‘타인과 권력자의 시선’을 넘어서는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존재한다. 신앙인은 하나님과의 관계성 속에서 책임과 정직, 그리고 신뢰라는 것을 재형성하고 재구성하며, 궁극적으로 감시의 문화를 초월하여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 존재해가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신뢰 존재로 빚어지는 길에는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꾸준히 깊이 해나가는 것이 필수적이다. 우리 영성의 깊음은 신뢰를 주는 성품과 삶으로 나타날 것이다.


신뢰의 사회문화 형성과 관련하여 자기성찰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은 바로 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문제이다. 이는 자세한 논의가 불필요할 정도로 우리 모두가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현실이다. 사회적 신뢰도 하락의 문제는 교회의 이미지나 복음전파의 어려움과만 연결되는 것이 아니다.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일구며 신뢰 사회를 형성해야 할 교회가, 도리어 저신뢰 사회, 불신 사회로의 전진에 일조했다는 부끄럽고 뼈아픈 사실과도 맞닿아 있다.

수십 년 동안 한국사회에 기여한 수고와 노력이 무시되는 것, 몇몇 교회의 문제로 인해 모든 교회와 개신교가 지탄받는 것이 부당하다는 생각은 이 사안을 풀어가는 데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사실이지만, 교회 밖 사람들이 볼 때는 그들이 보고 듣고 접한 몇몇 교회가 곧 모든 교회이다.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에서의 고백, ‘모든 교회는 하나’라는 우리의 신앙은 적어도 교회 밖 사람들의 인식 속에 실재한다. 우리는 교회가 신뢰 사회 형성의 저해 요소가 되고 있음을 인정하고, 겸손한 태도와 함께 지역사회 및 한국사회의 신뢰할 수 있는 동반자로 존재하기 위해 힘써야 할 것이다.



김용준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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